모터트렌드 7월 2

진보

진보는 정상이길 거부한다. 그런 자신과 요상한 음악을 즐기며.

진보

Q1
진보를 인터뷰 한다니까, 어떤 깍쟁이 같은 여자가 그랬어요. “나 걔랑 자고 싶어”라고. 이유를 물으니, 진보 음악을 들으면 참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덜한 편인데 전에는 더 노골적으로 섹시한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제 노래 중 ‘Tape It Slow Baby’ 같은 건 특히 음란하거든요. 이상한 소리 나오고, 듣고 있으면 뭐가 막 발사되는 것 같고, 적당히 편안하게 야한 무드가 있는 노래죠. 좀 ‘꼴떡꼴떡’ 하달까?(웃음)

Q2
요즘은 그렇지 않고요?
섹슈얼하지 않은 노래도 많아요. 저는 균형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뭐든 한쪽으로 치우친 건 별로예요. R&B가 꼭 섹시한 음악만은 아니니까, 제 음악도 욕정과 순정을 오가는 거죠.

Q3
그럼 최근 파트를 나눠 발매 중인 리메이크 앨범 <KRNB2>는 욕정과 순정 중 어디에 가깝죠?
둘 다 있어요. 어떤 노래에선 섹시하고, 어떤 노래는 순정에 가깝고 그래요. <KRNB2>는 보다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노래를 제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음반이에요.

Q4
아이돌 트와이스부터 김현식, 윤수일, 김성재 등 장르적으로, 시대적으로 한데 묶이기 어려운 가수들의 음악이 진보의 색을 입고 다시 태어났어요. 곡을 고르는 특정한 기준은 있었나요?
우선 ‘좋은 곡’이어야 했어요. 곡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모두가 좋아할 만큼 유명한 노래라는 거고요. 예를 들어 트와이스의 ‘TT’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노래잖아요. 그런 노래가 편곡으로 어떻게 ‘R&B스럽게’ 바뀌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도 누구나 기억하는 멜로디의 노래죠. 이런 곡에 R&B를 입히면, 진보가 하면 어떻게 달라질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 음악이 가진 멋을 진보만의 색으로 녹이고 싶었달까?

Q5
<KRNB2>는 세 번째 파트까지 여섯 곡이 공개됐어요. 아직 들려줄 게 더 남았나요?
총 10곡이 나올 거예요. 더 나올 곡에 대해 다 말하면 재미없으니까, 이렇게 설명할게요. 우선 계절과 어울릴 노래가 있을 거예요. 위로와 감동을 전할 음악도 있을 거고, 어떤 노래는 좀 영적인 무드예요. 내면에서 고요하게 기도하는 마음처럼.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곡은 모두 다른 뮤지션과 함께했는데, 솔로 곡도 하나 있을 거예요.

Q6
크러쉬, 지소울 등 모든 곡에 피처링 아티스트가 있어요. 거의 ‘R&B 뮤지션’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게, 국내에서 힙합은 ‘한국 힙합’이란 이름이 있잖아요. ‘K-팝’도 있고요. 근데 R&B엔 아직 이름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KRNB’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국내 R&B 신이 몇 년 전에 힙합이 그랬던 것처럼, 곧 음원 차트를 휩쓸거나 DOK2 같은 스타가 나올 거라고 봐요. 지금 세대인 자이언티, 딘의 다음 세대 뮤지션들이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R&B 신 자체, 프레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있어요.

Q7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R&B 신에 곧 큰일이 벌어진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봐요. 10여 년 전엔 “어떻게 한국어로 랩을 하냐”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음악적 완성도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자리를 잡았죠. 시대마다 유행하는 장르가 다르고, 유행이 된 장르에선 군계일학처럼 튀어오르는 신인들이 나타나요. 록이 유행일 땐 서태지가 그랬죠. 이제 R&B의 차례가 왔다고 봐요.

Q8
박재범의 참여는 좀 놀랐어요. 지금까지 진보와 교점이 없었으니까.
엄청난 자극과 영감을 받았어요. 박재범은 이미 세계적인 뮤지션이자 엔터테이너잖아요. 그만큼 프로페셔널하고, 예의 바르기까지 한 친구였어요. 제가 곡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신기할 만큼 쿨하게 수락했는데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이룬 업적에 대한 리스펙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고마웠죠.

Q9
<KRNB2>를 듣고 4년 전의 <KRNB1>을 다시 들었어요. 전작보다 덜 자극적이란 말은 어때요?
<KRNB1>에서 작사, 작곡, 편곡, 보컬 등 모든 걸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뮤지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KRNB2>는 남녀노소 불문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넣은 앨범이에요. 프로듀서로서 피처링 아티스트를 밀어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동안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는다거나,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이 환호할 수 있게 음악을 만들었다면, <KRNB2>는 흔히 말하는 ‘대중적인 음악’에 대한 욕심을 낸 거예요.

Q10
그동안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진보를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만한 이야긴데요?
그런 말 있잖아요. “유명해지면, 그 맛 들려서 옛날의 모습으론 돌아오지 않겠구나.” 근데 저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저도 전보다 더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면서 두려움은 있었어요. 그러다 다시 용기가 생겼죠. 예전의 실험적인 음악을 하던 나, 슈퍼프릭 레코즈의 나, 과거의 어떤 음악을 하던 내 모습을 언제든 꺼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서고 난 뒤부터.

 

Q11
뮤지션으로서 다음 챕터로 가기 위한 선택이라고 봐도 되나요?
저는 음악이든 뭐든 예술 분야에 속한 사람들은 다 ‘배우’라고 생각해요. 영화로 치면 한 가지 연기를 잘하는 것도 훌륭한 배우지만,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것도 멋진 배우잖아요. 저는 뮤지션으로서 제 커리어를 그렇게 쌓고 싶어요. 음악은 물론 음악의 외적인 부분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Q12
외적인 부분이라면요?
<KRNB2>는 특별한 걸 할 거예요. 처음 얘기하는 건데, 바이닐도 만들 거예요. 그 바이닐의 하이라이트는 책자가 될 거고. 제 야망은 <KRNB2>에 실린 노래 원곡자의 인터뷰와 옛날 사진을 싣는 거예요. 이를테면 ‘그대와 단둘이서’를 만든 장기호 선생님, ‘말하자면’의 이현도 형, ‘TT’를 쓴 블랙아이드필승 등등. <KRNB2>를 만들며 다 직접 만나게 됐거든요. <KRNB2>가 한국 소울, R&B 음악의 전체적인 가이드가 될 만한 음반이 됐으면 좋겠다는 욕심이에요.

Q13
기록의 의미가 있을까요?
해봐야죠. 장기호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진보 씨 같은 젊은 뮤지션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한다”고. <KRNB2>를 만들며 80년대 이후 한국의 현대 음악사의 놀랄 만한 스토리를 모으게 됐는데, 뮤지션으로서 전승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앨범의 골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죠.

Q14
한국 R&B만의 매력은 뭘까요?
‘정(情)’. 소울은 영어잖아요. 직역하면 음악과는 꽤 다른 뜻이 되죠. 의역으론 정인 것 같아요. 다양하잖아요. 온정, 우정, 애정 그리고 욕정.

Q15
진보는 어떤 음악을 추구하나요?
절제. 박수칠 때 더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전 박수칠 때 한 걸음 물러서고, 아무도 안 볼 때 나서서 보여줘요. 저만의 방식이에요. 가사도 비트도 섹시한 듯 아닌 듯 만드는 편이고요. 어떤 음악을 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Q16
아이돌 그룹과의 협업은 어때요? 레드벨벳, 방탄소년단의 곡을 쓰기도 했어요.
SM과 저는 추구하는 음악의 뿌리가 같아요. SM이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과 프로듀서가 마이클 잭슨과 테디 라일리인데, 저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레드벨벳 2집의 ‘봐(Look)’의 작사, 작곡 참여하다 좀 막힐 땐 그런 생각을 했어요. “테디 라일리가 레드벨벳의 곡을 만든다면 어떻게 할까?” 해답은 늘 거기에 있었어요.

Q17
슈퍼프릭 레코즈의 진보일 때는 좀 다르겠죠?
슈퍼프릭 레코즈의 모토는 “정상이란 건 없다”예요. 저는 정상, 보통 이런 말이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저도 더 ‘요상한’ 음악을 해요. 한국에서 살다 보면 남들하고 비슷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받잖아요. 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슈퍼프릭 레코즈는 래퍼, 프로듀서, DJ, 그래픽 아티스트 등 나름의 재능을 바탕으로 자기 분야에서 특출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에요. 정상의 범위를 넘어선 비범한 사람들.

Q18
눈여겨보는 신인이 있나요?
볼 때마다 놀라운 아티스트 수민이 있고요. 래퍼 중엔 쿤디판다. 아직 어린 친군데 그런 랩 실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부러울 정도예요. 이 중에 누가 ‘별’이 될진 모르겠지만.

Q19
아직도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보아. 예전부터 원했는데, 아직 못했어요. 그리고 CL, 015B의 정석원 형, 김건모. 너무 많은데, 다 말할까요?

Q20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깍쟁이가 진보가 여자를 녹일 때 트는 음악을 물어봐 달라고 했어요.
먼저 제 노래 중 하나 고르자면 ‘Tape It Slow Baby’. 그 노래를 부른 제 창법이나 정서가 애끓는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아이즐리 브라더스의 ‘Between the Sheets’. 로맨틱하면서도 고급스러워요. 마지막으론 릭 제임스의 ‘Super Freak’. 이 노래를 들으면 음란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죄의식 같은 거 없이.

진보

“저는 음악이든 뭐든 예술 분야에 속한 사람들은 다 ‘배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것도 멋진 배우잖아요. 저는 뮤지션으로서 제 커리어를 그렇게 쌓고 싶어요.”

Credit

  • 에디터 양보연
  • 포토그래퍼 김잔듸
  • 어시스턴트 김연유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