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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데이비스

재즈의 지평을 넓혔을 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마일스 데이비스.

재즈의 지평을 넓혔을 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마일스 데이비스. 위대한 업적만큼 그를 둘러싼 소문도 무성했다. 1962년, 재즈계 최고의 우상 파괴자가 <플레이보이>에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King of Jazz, Miles Davis
Courtesy of <마일스 데이비스>, 그책

마일스 데이비스가 모던재즈에 가장 자극적인 영향을 미친 건 그가 보여준 트럼펫 연주의 기교와 감성 덕분이다. 얼마 전, 뉴욕 허드슨강 근처 웨스트 77번가에 위치한 그의 집에서 이틀을 보냈다. 원래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었다는, 조금은 유별난 5층짜리 주택에서. 때마침 마일스는 공연 사이 짧은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고, 우리는 쉴 틈 없는 그의 일상을 함께하며 질문을 던졌다. 지하실의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 가족을 위해 송아지고기 요리를 준비할 때, 동료 음악가와 변호사, 주식중개인의 전화를 받을 때, 세 아들에게 복싱 레슨을 해줄 때, TV를 볼 때, 기타 입문자용 코드 연습을 할 때, 그리고 당연히 마틴 트럼펫으로 반음계를 엄청난 속도로 불어젖힐 때처럼 적당한 순간에. 자신의 집을 피난처 삼은 마일스와 시간을 보내며 그가 여가 생활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중적으로 알려진 냉정하고 공격적인 이미지와는 잘 겹쳐지지 않았다. 이 관점에서 우리의 첫 번째 질문이 시작됐다.

 

알토색소포니스트 재키 맥린과 마일스 데이비스

당신은 음악적 명성뿐 아니라 무례하고 불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한데, 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대체 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지? 내가 뭐 그리 중요한 사람 이라고, 귀찮게시리. 할 일 없는 평론가가 내가 곡 소개를 안 한다는 둥, 관객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둥, 인사랑 멘트도 생략한다는 둥,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나 해대서 그래. 이보슈, 나는 그냥 트럼펫 연주자라고. 내가 할 수 있 는 건 딱 한 가지야. 나발 부는 것. 그게 전부라고. 뮤지션일 뿐이지, 연예인이 아니고 그렇게 될 생각도 없어. 나에 대한 소문은 일단 대부분 사실이 아니야.

내 행동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든. 곡 제목 소개를 안 하는 건 순서를 정해놓지 않아서야. 애초에 사람들이 내가 연주하는 곡이 어떤 곡인지도 모른다면 소개를 하든 말든 뭔 상관이래? 내가 가끔 무대에서 사라지는 건 다른 연주자의 솔로 타임이기 때문에 그런 거고. 남 연주하는데 옆에 가만히 서 있으면 괜히 방해되니까.

뭐 하러 서 있어? 내가 모델도 아니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도 아닌데. 실실 쪼개는 검둥이 광대는 더더욱 아니니까. 가끔 드럼이나 피아노 옆에서 악기 소리를 듣기도 하지. 다시 내 차례가 될 때까지 무대 근처에서 밴드의 합주를 감상하기도 하고. 그럴 때면 사람들은 내가 관객을 무시한다, 어쩐다, 그딴 소리를 지껄여. 아, 나는 언제나 관객을 잊지 않아. 단지 내 트럼펫 소리를 먼저 신경 쓰느라 그런 거지. 그리고 멘트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개소리야. 얼마나 자주 떠드는데. 공연 분위기가 즐겁고 나도 즐거우면 말이야. 하지만 밴드와 관련된 문제나 다른 게 마음에 걸리면 당연히 멘트 따위는 안 하지.

난 연주를 할 때면 언제나 집중해. 만약 내가 어떤 새끼의 심장을 꿰매고 있는 외과의사라면, 아무도 내가 수술 도중에 떠드는 걸 원하지 않겠지? 나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믿고 싶다면, 믿으라고 해. 그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니까. 나는 사람을 좋아해. 사람을 사랑한다고! 직접 티를 내지는 않지만, 내 방식대로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야. 내 트럼펫으로 말이야. 내가 열 살짜리 꼬마일 때 신문 배달을 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너무 좋아해서 배달해야 할 집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어. 그래도 난 그냥 내 방식대로 일했고, 내 할 일만 신경 썼지. 내가 나발 부는 방식처럼. 그런데 요즘엔 진짜 짜증 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특히 어떤 사람들요?
그러니까, 내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를 바라면서 계속 귀찮게 구는 사 람들이 있다고. 바라는 게 이미 정해져 있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내가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화를 내면서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그런 일이 오백 번 은 있었지. 얼마 전 한 클럽에서 공연할 때 있었던 일이야. 나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는데, 어떤 신문기자가 계속 다가와 알짱거리더라고. 뭔가 건지고 싶었던 게지. 그러더니 다음 세트가 끝났는데도 또 집적대는 거야. 술에 취한 건지, 취한 척하는 건지. 저리 꺼지라고 했더니, 금세 멀쩡해지더라.

그러고는 다음 날 신문에 내가 꺼지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써댄 거야. 왜 그랬는지는 쏙 빼놓고. 그리고 어디든 흑인 차별 같은 게 나오면 꼭지가 돌아버려. 그런 편견은 어딜 가나 있다고.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봐, 당신이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냥 건드리지 말고 돌아가.” 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아. 그런 사람들의 기분까지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그럴 때마다 그자들은 내가 얼마나 나쁜 새낀지 떠드는 무리에 합세해 다 함께 내 흉을 보더라. 내 마음이 바뀌진 않을 거야. 뮤지션을 존중하지 않는 자와는 엮일 생각이 없거든.

요즘 웬만한 재즈 뮤지션은 클래식 뮤지션 못지않은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클래식 공연 중인데 무대에 올라와 귀찮게 하는 사람 있나? 물론 재즈에서도 연주자가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아무도 꽥꽥거리지 않아. 백인 단장이 있다면. 하지만 흑인이 끼면 얘기가 달라져. 흑인 연주자는 뭔가 문제가 있는 놈이 돼버리지. 결국 내가 춤 대신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문제가 시작된 거야.

당신에 관한 불평이 인종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당연히 인종 문제가 많지. 백인이 흑인 뮤지션에게 원하는 건 정해져 있어. 흑인 모두에게 낙인을 찍어놓은 것처럼. 노예 시절부터 쭉 그래왔지. ‘검둥이 광대 짓’을 보고 싶은 거라구. 어릴 때부터 그런 광경을 보고 자란 흑인 아이들은 백인과 어울리려면 광대 짓을 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인식하지. 그래서 백인이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거야. 심지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악기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싱글벙글 웃고 춤추며 그들을 즐겁게 해주길 바라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난 내 생각을 이야기할 뿐이야. 하지만 흑인 대다수에게 자신의 기분에 대한 선택권조차 없다는 건 알지. 흑인이라고 전부 장님은 아니잖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똑바로 알아야지. 크고 작은 차별을 수천 번 맞닥뜨렸어.

흔히 말하는 ‘인종 문제’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 조차 꺼내고 싶지 않아. 난 친구들이 색깔별로 있어. 제일 친한 친구 중 하나는 백인이라고. 차별하는 백인이 싫은 거지. 쥐뿔도 모르는 것들. 흑인뿐 아니라 중국인, 푸에르토리코인, 그리고 모든 다른 인종에겐 예의와 존중을 갖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말이야. 물론 흑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 땅의 소금처럼 소중하다는 뜻은 아냐. 개 같은 검둥이도 많지. 특히 백인에게 빌붙어 사는 것들. 광대 보다 못한 것들이지. 편견에 빠진 자들은 피부가 하얗지 않으면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아.

백인이 은행을 털면 그냥 은행 강도지만, 흑인이 털면 ‘끔찍한 검둥이’가 되는 거야. 백인이 붙여놓은 딱지 때문에 고생 안 해본 사람 거의 없을걸. 예전엔 흑인이면 죄다 의욕 없고, 태평스럽고, 게으르다고 했지. 요즘 들어서야 사실이 아니라는 게 증명 됐지만. 흑인이 백인이랑 한 침대에 누우려고 노력을 엄청 많이 하니까. 그런데 그것도 터무니없는 말이야. 그냥 백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거지. 흑인이 원하는 건 그냥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야.

백인은 “네 동생이 검둥이와 결혼한다고 하면 어쩌겠어?” 따위의 말이나 지껄이지. 애초부터 개소리야. 웬 검둥이가 갑자기 나타나 주례 선생 앞으로 끌고 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백인 여자가 어디 있나? 그딴 소리를 들으면 토 나온다고. 모든 검둥이가 네 동생을 원하진 않을 텐데. 백인 여자가 먼저 흑인 남자를 원했다 해도 모든 비난은 검둥이의 몫이야. 그러면 반대로 노예 시대부터 백인 남자가 흑인 여자를 가까이해온 건 괜찮나?

허여멀건 흑인을 보면 조상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지. 처음 노예로 데려올 땐 피부색이 어두웠을 테니까. 정말 열 받는 건, 백인 중 흑인의 고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야. 대다수 백인은 똑똑한 흑인과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어. 스스로 흑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백인은 찾기 힘들 걸. 특히 백인 남자들은.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할지언정, 흑인과 지낸 경험을 과시하는 타입일 거야.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지는 보나마나 뻔해. 할 얘기가 넘쳐나도, 결국 어릴 때 가까이 지낸 흑인 친구랑 있었던 얘기를 하지. 그 흑인 친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아마 진절머리가 날걸. 얼마나 많은 백인이 나한테 흑인이랑 함께 자랐다고 말했는지. 하지만 그자들 중 그 흑인 친구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는 백인은 한 명도 못 봤어.

그렇다면 당신은 어릴 때 백인 친구가 있었나요?
친구는커녕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었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있었지만. 고 등 학생 때 내가 전교에서 트럼펫을 제일 잘 불었고, 그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어. 하지만 1등은 언제나 파란 눈의 소년이었지. 그때 너무 화가 나서 모든 백인을 능가하는 나발잡이가 되겠다고 작정했어. 아마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진 않았을 거야. 그 이후에도 그때 기억을 자주 떠올렸어. 그런 편견, 그리고 내가 가진 호기심이 내 음악을 만들어 온 본질이라고 할 수 있지.

그 호기심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항상 새로운 음악을 하려는 호기심이 있었어. 신선한 소리를 찾거나, 다른 방법을 시도해봤지. 하지만 자네, 가장 심각한 문제가 뭔지 아나? 이 나라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야! 영화나 TV를 봐. 죄다 백인이잖아. 다음에 영화 볼 때 백인이 아닌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나오는지 한번 세어봐. 하지만 거리로 나가보면 다양한 사람이 섞여있는 게 현실이라고.

그런데 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영화의 등장인물은 전부 백인이야. 흑인은 지나가는 행인 중 한 명으로 나올까 말까지. 영화사에서 굳이 흑인 엑스트라를 쓰지는 않을 테니까. 흑인은 줄곧 하인이나 광대 역할을 맡아왔지. 하지만 그 짓거리를 때려치우니 주요 배역은 1년에 네다섯 개 던져주고는 끝이야. 그것마저 다른 인종의 배우가 연기해도 문제되지 않을 역할이 대부분이고. 그렇게 되면 그 영화는 민주주의를 몸소 실현하는 영화가 되는 거야. 물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죄다 편견 덩어리라는 말은 아냐.

내가 모르는 얘기는 할 수 없지. 그런데 그런 영화가 자꾸 눈에 보이잖아. 많은 흑인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해한다는 걸 제작진이 모른다는 게 문제인 거야. 언젠가 한 대형 방송사에서 내게 TV쇼 진행을 제의한 적이 있어. 싫다고 했는데도, 쇼에 출연한 뒤 유명해진 여러 흑인 가수를 보라고 하더라. 떠오르긴 누가 떠올라? 그리고 무슨 백댄서를 18명이나 세워놓는다고.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백인이더라. 나중에 방송사 관계자한테 이 문제를 지적하니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더군. 생각지도 못했다고 하길래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해줬지.

아무도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TV를 보면서 느끼는 심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정작 본인도 광고를 본 뒤 구매를 하는데도 말이야. 모든 사람은 자기와 피부색이 같은 사람을 TV에 서 보고 싶어 해. 스타가 아니라도. 만약 피부색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난 거기서 나발을 불고 있을 거야. 나와 유색인종 친구들의 유일한 차이점은 내겐 행운이 따랐다는 점이니까. 이런 ‘흑백 비즈니스’는 말하기 예민한 문제야. 분명 채널을 돌릴 때마다 흑인을 보고 싶지는 않겠지. 그건 백인 말고 아무도 안 나오는 상황만큼이나 싫을 테니까.

그런데 방송이랑 영화가 정말 이 나라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 나라가 민주주의국가라면 왜 사실대로 보여주지 않는 거지? 인종과 상관없이 춤추고 연기하는 걸 보여주자고. 학교에서는 모든 인종의 아이들이 춤추고 연기하는데, 왜 방송이나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지? 백인들만 일하고 있잖아. 자, 보라고. 음악도 마찬가지야. 내 앨범 중 <Some Day My Prince Will Come>이 있어. 커버 모델이 누군지 알아? 내 아내 프랜시스야. 흑인들이 레코드 판을 많이 사가는데도, 가수 이외의 흑인 여자가 앨범 재킷에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쁜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백인 여자를 모델로 데려다 쓴 거지. 내 앨범이니까, 그리고 나는 프랜시스의 왕자니까, 내 아내가 모델이 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하더군. 하지만 백인이 다른 인 종에 대한 배려를 잊은 게 전부 실수는 아냐. 의도적으로 차별하기도 하지. 음악에서도 그렇고. 흑인을 고용조차 하지 않는 회사가 많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기들끼리 몇 명만 골라내서 쓰려고 하지. 방송국과 브로드웨이의 밴드, 클래식 오케스트라, 영화사까지 모두 피부색에 따라 차별해.

내가 왜 이렇게 시스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지 말해 주지. 유럽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이야. 잊을 수 없는 사건이지. 어떤 노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흑인 군대를 보고는 너무 놀랐다는 얘기를 하더군. 미국 잡지나 영화에서 죄다 백인들만 봐와서 그래. 루이 암스트롱이나 조 루이스, 제시 오언스 정도만 겨우 알았지, 하인이나 노동자 이외의 흑인은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King of Jazz, Miles Davis
색소포니스트 지미 히스 , 베이시스트 퍼시 히스 형제와 녹음 세션을 준비 중인 마일스 데이비스

다른 흑인이나 유색인종도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할까요?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난 내 생 각을 이야기할 뿐이야. 하지만 흑인 대다수에게 자신의 기분에 대한 선택권조차 없다는 건 알지. 흑인이라고 전부 장님은 아니잖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똑바로 알아야지. 크고 작은 차별을 수천 번 맞닥뜨렸어.

영어도 못하는 이민자들이 이 땅에 나타나고, 그들의 자식이 태어나고 자라서 흑인이 아직까지 오르지 못한 위치에 다다르는 걸 얼마나 많은 흑인이 봐왔는지 알아? 이봐, 얼마 전 어느 유명 잡지에서 읽었는데, 남부의 한 트럭 운전사가 고속도로 주변 식당에서 “검둥이를 손님으로 받으면 차라리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겠다”라는 얘기를 했다더군.

그자가 어디서 뭘 처먹든 중요하지 않아. 뱉은 말이 문제인 거지. “검둥이에게 손가락 하나를 주면 팔뚝을 뜯어간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늘어놓고. 알겠어? 자기들이 ‘인권 프랜차이즈’라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리고 말이야, 이렇게 세상이 개판으로 돌아가는 상황인데도 어떻게든 우리 아프리카인, 아랍인, 인디언, 중국인에게도 영향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전 세계 인구 의 3분의 2는 백인이 아니란 거 알아? 그런데도 백인은 흑인에게만 온갖 지적을 해대면서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또 한 가지. 흑인을 손님으로 받지 않는 식당은 그동안 어떤 비난도 받지 않고 멀쩡히 장사를 계속해왔어. 그러다가 아프리카에서 여행 온 어느 흑인을 돌려보낸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문제가 됐지. 이 나라의 모든 흑인 중 ‘검둥이 사절 식당’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없었을까? 흑인이 이곳에 정착한 지 400년이 됐지만, 그 여행객을 내쫓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지.

당신은 유명한 흑인인데도, 그런 편견을 직접 경험했나요?
말했잖아. 어떤 형태로든 겪지 않을 수 없다고. 흑인이라면 누구든 마찬가지야! 자, 들어봐. 전기수리공을 우리 집에 부른 적이 있어. 초인종을 누르길래 문을 열어주니 날 벌레 보듯이 쳐다 보면서 “집주인 데이비스 씨를 불러주시오”라고 하더라. 내가 하인 비슷한 건 줄 알았나 봐. “지금 눈앞에 있는데요”라고 말했더니, 얼굴이 시뻘게지더군. 괜히 혼자 흥분하고 쪽팔려하더라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러지? 그냥 일거리를 준 건데.

며칠 뒤 동네 바에 갔는데, 유난히 육군사관학교 학생이 많이 보이더군. 그래서 한 친구에게 무슨 일인지 슬쩍 물어봤어. 그런데 참나, 그냥 아무 대답 없이 일어나더니 다른 자리로 옮기더라. 그러다가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는 내 이름을 부르니까 그 친구 얼굴이 그 전기수리공처럼 빨개지더라고. 잠시 후 나한테 다시 오더니 내 앨범도 가지고 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더군. “내가 너 육사 다닐 수 있게 세금 많이 내고 있으니까 그런 줄 알아”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나와버렸어.

아마 지금쯤 내가 얼마나 개새끼인지 흉보 는 무리와 함께 있지 않을까?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기분이 상해서 며칠 동안 아무 일도 못하겠더라고. 몇 년 후 큰아들 그레고리가 군대에 갈지도 모르는데, 그런 자식 밑으로 들어가면 어떡하지? 그러고는 순회공연을 위해 프랜시스와 함께 캘리포니아행 기차를 예약했지. 그런데 내 표와 신분증을 본 역무원이 그 육사생처럼 날 빤히 쳐다보더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으니, 위조한 게 아니냐며 따지는 거야! 간덩이가 부은 놈이었지.

내가 그놈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어. 잡지에는 실을 수도 없는 소리니까. 곧장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버렸지. 철도는 파산 직전이고 그 역무원 놈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이었어. 내가 친히 사비 털어 이용해주겠다는데, 그 자식 눈에는 내가 흑인이란 것만 보였나 봐. 날 모욕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겠지. 그 이후로는 절대 기차 안 타. 비행기를 싫어하지만, 적어도 비행기에서는 그런 차별주의자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

반면 당신의 영역인 음악에서도, 흑인 재즈 뮤지션이 백인 뮤지션을 차별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요?
역차별이라는 게 있긴 하지. 흑인 이 만든 음악을 백인이 연주하는 건데도 좋은 일자리는 주로 백인이 차지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흑인 뮤지션이 많아. 하지만 나는 달라. 나도 똑같은 놈이 될 수는 없거든. 편견은 누구를 향하든 언제나 나쁜 거야. 나는 편곡을 길 에번스에게만 맡겨. 우린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지. 한번은 리코니츠가 왜 흰둥이랑 작업하느냐고 투덜거리길래 “누구든 너만큼 연주를 할 줄 알면 얼굴이 초록색이든 빨간색이든 색소폰 자리에 세울 거다”라고 얘기해줬지.

King of Jazz, Miles Davis
1947년 스리 듀스 클럽에서 찰리 파커와 함께 연주하는 마일스 데이비스

당신이 밴드의 리더라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나요?
밴드의 간판이 된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야. 보통 사람들은 음악이 비즈니스라는 사 실을 모르지. 얼마나 힘들고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데. 음악을 하면서 겪어온 일들, 지금도 해나가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해. 나는 모든 걸 음악에 쏟아부었어. 리허설을 잘 마쳐도 허무할 때가 있지.

내 파트도 해야 하고, 밴드도 이끌어야 하고, 공연 도중에 생기는 문제도 많아. 내 가족도 신경 써야 하 고,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가족까지 챙겨야 하지. 한번은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어떤 백인 여자가 다가오더니 자기 테이블에서 남편이랑 같이 한잔하자고 하더군. 그걸 거절했더니 갑자기 소릴 지르는 거야.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다들 그러던데, 그 소문이 사실이군요!” 순간 트럼펫을 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차버릴 뻔했어.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커플 한 쌍이라도 교육을 시켜야겠더라고. 그래서 그 테이블로 다가가 말했지. 예술가의 첫 번째 책임은 스스로를 돌보는 거라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다면, 더 이상 예술을 할 수 없을 거라고.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이만큼 연주를 할 수 있게 됐는지, 어떻게 밴드를 만들고 관객 이 돈을 내가면서 들을 만한 음악을 하게 됐는지 가르쳐주고 싶었어. 클럽에서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면 그 얘기를 해줄 때가 많아. 난 밴드에 대해 걱정할 일이 많다고. 그러면 대개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부디 진심이길 바라지.

당신이 재즈 콘서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왜죠?
콘서트에서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어서. 뮤지션도, 관객도 전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뿐더러 물을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니까. 뮤지션은 모든 걸 내려놓고 관객에게 다가가야 해. 내가 굳어 있는데 어떻게 관객에게 느낌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겠어. 재즈는 느낌이 전부야.

잼 세션과 합주할 때,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는 경우도 있나요?
그럴 만한 잼 세션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제 그런 건 없어. 적어도 대도시에는. 예전에 세인트루이스와 브루클린, 일리노이 주변에서 끝내주는 잼 세션에 낀 적이 있지. 다음 날 오후까지 불어 젖히곤 했어.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작은 블루스 밴드랑 함께하고 싶어. 분명 그들만의 느낌을 가지고 있을 거야.

트럼펫 연주자 투표에서 1등을 휩쓸었죠. 그 밑에 있는 다른 트럼펫 연주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밑이라니! 나뿐 아니라 그 누구의 밑에도 서지 않을 트럼펫 연주자가 널렸는데! 그 래서 내가 평론가를 싫어한다고. 어찌나 아티스트를 비교해대는지…. 10명이 연주를 하면 10가지 다른 스타일이 나와. 테크닉을 마스터하고 나면 각자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거라고. 예술이란 그런 거야. 그런데 평론가는 자기가 이해할 수 없거나 선호하지 않는 음악을 들으면 그 아티스트를 향해 함부로 혹평을 하지. 그런 점이 뮤지션을 짜증나게 하는 거야. 트럼펫이고 뭐고 다 관두고 싶게 만든다고.

다른 악기처럼 트럼펫도 연주자의 아이디어와 스타일에 따라 각양각색이야. 재즈 아티스트를 평가하려고 한다면 그건 어떻게 표현해내는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겠지. 디지 길레스피가 트럼펫을 들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냥 다 쏟아져 나온다고. 다른 연주자도 마찬가지야. 클라크 테리나 레이 낸스, 케니 도햄, 로이 엘드리지, 해롤드 베이커, 프레디 허버드, 리 모건, 바비 해켓…. 셀 수도 없지. 저기 뉴올리언스에 있는 양반, 알 허트. 그 양반도 당차게 불어버리지!

루이 암스트롱을 언급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아, 우리 아재?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내가 지금껏 모던재즈에 대해 말했기 때문이야. 난 우리 아재를 사랑해. 그 창법이며, 트럼펫 연주며… 뭐든 다 좋아하지만 모던재즈에 반감을 갖는 것만은 동의하지 않아. 본인 스스로 모던재즈에 한몫한 인물이란 걸 깨달아야 할 거야.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니었어. 그가 내 트럼펫 연주를 마음에 들어한 적이 있지. 그가 기억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직도 생생해. 내가 스스로에게 빠져 있듯이, 관객은 우리 아재에게 빠져 있지. 루이는 해외에서 개성 넘치는 연주로 눈부신 성공을 거뒀어.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유럽 말고 남부의 조지아나 앨라배마, 미시시피 쪽으로 보내려 했지. 무슨 친선대사처럼 말이야.

아까 평론가에 대한 날카로운 반감을 내비쳤는데, 뮤지션을 비교한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나요?
글쎄, 그것 말고도 온갖 칼럼에 미사여구만 잔뜩 늘어놓고 결국 중요한 건 다 빼먹 는 것들이 태반이야.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을 이해하고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평론가가 얼마나 헛소리를 잘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고.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평론가들이 나에 대해 뭐라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제일 엄격한 평론가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 나는 나만 신경 쓰면 돼. 내 음악은 이미 나를 초월했고, 내가 듣기에 좋지 않은 것을 연주하기엔 난 너무 잘났으니까. 내가 싫어하는 평론가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을 거야. 다만 존중할 만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알려줄 수 있지. 냇 헨토프, 랠프 글리즌, 그리고 레너드 페더. 더 있는데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네. 많진 않고.

나는 나답게 살 거고, 나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이미 질리도록 삶을 헤쳐왔으니까. 마약쟁이 시절을 되돌아보면, 벌써 몇 번은 죽은거나 다름없어. 터프한 척하거나 흑인우월주의자 행세를 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내 생각을 말할 뿐이고, 그 말을 듣기 싫은 백인이 많을 뿐이야. 

혹시 연주하고 싶지 않은 클럽이나 공연장이 있나요?
많지! 남부에는 안 가. 말했지? 인종차별하고는 상종도 안 해. 그래서 남쪽으로는 안 내려가. 북부도 만만치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는 법적으로 보호를 해주니까. 관객 수준이 낮아서 연주할 때 필요한 숨조차 아까운 곳에서는 절대 연주 하지 않아. 회사 경비로 공연을 보러와서는 마음껏 과시하며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만 하는 사람들 말이야.

음악을 들으러 오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즐길 줄도 몰라. 술이나 처마시고 시끄럽게 뛰어다니면서 주목 받으려고 애쓰지. 매너라고는 없어. 함께 온 여자를 배려하지도 않고. 흑인 밴드가 나오면 ‘검둥이 광 대 짓’이나 보고 싶어 하지. 그런 자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족속이거든. “야 인마, 스위트 조지아 브라운이나 불러봐!”라고 하면 방긋 웃으며 불러줘야 하는 거야. 그런 것들을 위해 연주하느니, 차라리 가진 돈으로 건물 하나 사서 월세나 받으며 살고 말지.

음악을 들으러 오는 다른 관객을 존중하지 않는 머저리는 도저히 상종할 수가 없어. 어떤 때는 그런 손님 하나 때문에 기분을 잡쳐 공연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도 잠 못 들고 방 안을 서성이게 된다고. 흑인이 가지 않는 남부의 공연장에서 연주하지 않는 이유는 2가지야. 들여보내주질 않아서, 아니면 평소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싫어서. 흑인은 백인처럼 클럽에서 탕진할 돈이 없어. 그러니까 흑인이 가는 클럽은 정말 좋은 음악이 나오는 곳이란 걸 알 수 있지.

유럽의 재즈 관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럽은 미국에 비해 관객이 재즈의 역사와 배경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여기서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음악이 유럽에서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고. 이 나라에선 개성을 더 추구하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클럽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돈 내고 내 공연을 보러 오는 건 음악을 들으러 오는 게 아니래. 그냥 나를 보러 오는 거지. 내가 워낙 나쁜 놈으로 소문이 나서. 좆같지 않아? 그래도 이 나라엔 좋은 팬이 많아. 노력하는 걸 인정해주고, 그래서 뮤지션은 자극을 받아 더 많이 노력하지. 재즈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진짜 뮤지션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유럽 순회공연 계획이 있나요?
아마도. 유럽에서 연주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데 이 집을 오래 비우고 싶지는 않아. 내 매니저인 잭 위트모어가 투어 일정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스케줄을 잘 조율해주지. 난 여기서 아이들이랑 프랜시스와 함께 지내는 게 좋아. 그냥 이런저런 고민이나 하면서. 정부가 또 전쟁을 치르겠다고 지랄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좀 하면서. 그래도 케네디 형제는 좋아하지. 스윙을 좀 아는 사람들이니까.

당신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더 이상 당신을 악당으로 보지 않는다면 기뻐 할 건가요?
글쎄, 아무도 자기가 하지 않은 일로 욕을 먹고 싶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야. 나는 나답게 살 거고, 나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이미 질리도록 삶을 헤쳐왔으니까. 마약쟁이 시절을 되돌아보면, 벌써 몇 번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 터프한 척하거나 흑인우월 주의자 행세를 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내 생각을 말 할 뿐이고, 그 말을 듣기 싫은 백인이 많을 뿐이야. 그들이 내 눈에서 두려움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동등하다는 걸 알게 되겠지.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항상 민감하게 여기나요?
어린 시절, 한 백인 남자가 “검둥아! 검둥아!”라고 소리치면서 쫓아온 기억이 있어. 아버지가 총대를 메고 그를 잡으러 갔지. 우리 집안은 노예 시대 때부터 흑인 의식이 강했어. 노예 데이비스 가문은 대농장에서 클래식 현악기를 연주했지. 우리 아버지는 흑인이 해방된 지 6년 후 태어나셨어.

음악을 하고 싶어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백인을 위한 연예인보다 나은 직업을 갖기를 바라셨지. 결국 아버지는 노스웨스턴 대학에 진학했고, 치과의사가 되셨어. 환자가 끊이지 않는 대단히 비싼 치과의 수술 전문의라고. 아버지는 나보다 수입이 많아. 그리고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데, 족보 있는 돼지만 기르시지. 굉장히 유별난 종자인데, 기억이 나진 않지만 꽤나 웃긴 이름이었어.

당신은 돈을 가장 잘 버는 대중음악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맞나요?
글쎄, 다른 뮤지션의 통장을 들여다본 적은 없지만, 나에게 가난하다고 할 사람은 절대 없겠지. 난 손톱만 한 용돈을 받고, 엄청난 양의 신문 배달을 하면서 자랐어. 돈이 필요한 유일한 순간은 음반을 구매할 때였지. 내가 집을 떠나 뮤지션의 삶을 시작했을 때는 버는 대로 다 써버렸어. 마약에 빠졌을 땐 빚을 져가면서 약을 샀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미친 듯 이 돈을 모았지. 지금은 주식 투자도 하고 있고, 이 집도 샀어. 무려 방 6개짜리에 모든 옵션이 포함된 집이야. 아이들도 4명 모두 잘 자라고 있지. 학교에 다닐 만큼 크면 지하실에서 샌드백 두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그리고 항상 열심히 운동하고, 아이들에게 복싱을 가르쳐주기도 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말이야. 아비로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으로는 그게 최고지.

그리고 내겐 음악이 있고, 프랜시스가 있고, 페라리도 있어. 그리고 내 친구들.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졌어. 그 쓰레기 같은 편견만 빼고. 백인을 증오 하는 건 아니야. 그저 눈앞에 놓인 현실을 보고, 무 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 뿐이지. 인종차별이란 것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걸 말할 거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편견 쓰레기를 모조리 처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뱃속의 염증을 떼어낸 것 같은 기분이겠지.

King of Jazz, Miles Davis
마일스 데이비스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의 트럼펫에서 흘러나오던 선율을 기억한다. 평전 는 언제나 재즈와 함께한 마일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를 좀 더 가까이서 느끼게 해주는 가족과 동료의 인터뷰도 담겨 있다. 존 스웨드 지음, 그책 펴냄

Credit

  • Alex Haley
  • 어시스턴트 김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