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플보

마이닝 인터뷰 #3 신들린 랩귀 ‘다이노티’

다이노티는 <고등래퍼>와 스윙스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마이닝 인터뷰 #3 신들린 랩귀 '다이노티'

*마인(mine)은 다이아몬드를 ‘채굴하다’, ‘내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힙합, 재즈, 알앤비, 록 등 특정 씬에서 주목받는 신인 뮤지션과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세 번째 인터뷰이로 래퍼 다이노티를 만났습니다.

‘마이닝 인터뷰’ 다음 주인공을 물색하던 중 링크 하나를 받았다. 뮤직비디오 링크였다. 한 남자는 신들린 양 랩을 뱉었고, 타이틀은 <랩귀>였다. 서낭당 앞에서 피칠갑을 한 채 랩을 토해내던 사람은 다이노티(Dino.T). ‘토해낸다’는 표현이 이렇게 적절할 수 없을 정도로, 색깔이 뚜렷한 래퍼였다. 당장 가까운 시일 내 그의 공연을 예매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겨울밤, 래퍼 화나(Fana)의 공연장인 어글리 바이 어글리정션(Ugly by Ugly junction)을 찾았다. 기획 공연이었고, 기억나는 수식어는 이렇다. “지금,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공연 잘한다고 소문난 5명의 래퍼” 그중에서도 다이노티는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단연, 관객의 호응도 여느 때와 달랐다. 다이노티가 뿜어대는 열기는 공연장 안을 순식간에 장악했고 팬들은 플래시를 터뜨리느라 바빴다. 그들이 보여주는 호응은 손을 올리고 리듬을 타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놀란 듯 바라보기’ 정도로 묘사할 수 있었다. 그와 중에 이어지는 굉장히 콘셉적 멘트. “내 음악 X나 멋진 거 아니까, 굳이 리듬 타거나 박수 안 쳐도 돼. 그냥 들어”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헉”했으나 “더티 섹시”라는 주변의 외침 속에 단박에 묻혀버렸다.

 

마이닝 인터뷰 #3 신들린 랩귀 '다이노티'

다이노티. 그는 최근 <쇼미더머니>의 지원자 혹은 MC그리를 향한 디스 곡의 주인공으로 조명됐으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는 이미 잔뼈가 굵은 래퍼다. 2014년 소규모 인디 공연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2015년에는 믹스테잎 <헬로’윈’ 데이 Hello’win’ Day>로 이름을 알렸고, 2016년엔 첫 오피셜 곡 ‘Survibe’를 발표했으며, 2017년에는 첫 번째 EP 앨범 <랩귀>를 내면서 그만의 색깔을 짙게 덧칠하는 중이다. 두 음반 모두 핼러윈 데이에 선보이며 죽음, 종교, 자학, 우울 등의 메시지로 점철된 음울하고 강렬한 곡으로 리스너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으레 예상했던 거친 모습과 달리 다이노티는 만나자마자 연거푸 악수를 청하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맞아요, 저 ‘콘셉충’이에요”라며 유쾌하게 농담을 건네다가도, 무대가 아닌 일상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던 그와의 대화를 이곳에 옮긴다.

평소에 뭐 하면서 지내요?
생각보다 밖에서 놀거나 하지 않아요. 공연하지 않을 때는 작업실에 박혀 있거나 일산에 있는 동네 친구들과 술 마셔요. 저는 술자리 없으면 잘 안 나가는 편이에요.

술 말고 좋아하는 것은 없어요?
축구도 좋아해서 매주 월요일마다 공 차러 나가요.

공격수 아니면 수비수?
뭐, 어디든!

어떤 역할이든 잘한다는 말이군요. 축구 하다가 감기 걸리신 거예요?
어제부터 독감 때문에 집에서 썩어 있었어요. 스케줄 전부 취소할 정도로 못 움직였어요. 이번 ‘마이닝 인터뷰’ 때문에 어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주사도 맞았어요.

괜찮으신 것 맞죠? 그럼 요즘 자주 듣는 곡 얘기부터 해볼까요?
원래 좋아했던 돕(dope)한 장르만 들었어요. 소위 ‘장르 편식’이 좀 심했죠. 요새는 거기에 갇혀버리니까, 너무 좁아지는 것 같아서 다른 장르도 들으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런데 잘 못 듣겠어요(웃음). 안 좋아하니까. 그래도 꼽아보자면, 겨울이니까 발라드를 빼놓을 수 없죠!

‘좋니?’
좋아하죠. 옛날 발라드. 제가 겨울을 타서요.

마이닝 인터뷰 #3 신들린 랩귀 '다이노티'

소개용 멘트에서 ‘일산에서 온 래퍼’라는 말을 자주 하시더라고요.
4살 때부터 일산에서 계속 살았어요. 논밭만 있을 때부터 일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던 거죠. 그래서 제 얘기를 하다 보면 일산이 빠질 수 없어서 동네 샤라웃(shout out)을 하게 된 거죠.

래퍼 뉴챔프도 일산에 대해 자주 언급하시던데.
맞아요. 챔프 형이 무슨 말을 하든 일산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 걸 보고 ‘저 타이틀은 내가 꼭 뺏어오리라’ 이런 목표가 생겼죠. 일종의 동기 부여가 된 셈이에요.

본격적으로 랩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시점은 언제인가요?
3년 전이에요. 예전에 저는 그룹사운드 밴드 보컬을 했었어요.

록에서 힙합, 장르가 꽤 극명한데 어떤 결심에서 래퍼가 된 건가요?
보컬을 하다가 그 당시 한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그분이 팝송을 많이 알려주셨죠. 그때 더티 사우스(Dirty South)를 알게 된 후로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그 이후로 제가 하던 보컬을 버리지 않고, 힙합을 할 수 있겠다는 결단이 선 거죠. 초창기 제 곡들을 들어보시면 멜로디컬한 훅 위주로 구성한 것도 그 영향을 받아서 그래요.

마이닝 인터뷰 #3 신들린 랩귀 '다이노티'

이번 음반 <랩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뭘까요?
불편한 음악. 저도 이번 앨범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듣지 않아요. 가사부터 시작해서 랩, 목소리, 분위기까지 워낙 세게 몰아치니까 제자신도 듣기 불편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남들이 듣기 좋은 얘기를 하려고 래퍼가 된 게 아니에요. 오히려 평소에 하지 못하는 주제로,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자책, 자학 등의 테마가 주된 내용이에요. 무대 위에서 ‘나 멋지게 하고 있어, 잘 하고 있어’라 말하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아닐 때가 있거든요. 전 그런 것을 솔직하게 말해요.

최근 EP 음반 <랩귀>, 2015년 두 번째 믹스테잎 <헬로’윈’ 데이 Hello’Win’ Day>는 공통적으로 10월 31일, 핼러윈 데이에 나왔어요.
<헬로’윈’ 데이 Hello’Win’ Day>는 특히나 10곡으로 된 첫 앨범 단위 작업물이에요.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앨범 수록곡 안의 서사까지도 중요하게 생각했죠. 완성된 믹스테잎을 쭉 들어보니 대체로 불편한 주제가 많더라고요. 어두운 곡들이 여름이나 봄에 나오는 것보다 핼러윈 데이에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음악이 아무리 하드코어하더라도 날이 날이니만큼 이해해줄 것 같았죠. 일종의 명분 같은 거였어요.

색깔이 짙으면 호불호가 분명해지잖아요. 그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요?
가사를 쓰는 건 제가 남한테 못했던 얘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위험 요소에 대한 고민은 한 적 없어요. 물론 제가 메이저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고요.

마이닝 인터뷰 #3 신들린 랩귀 '다이노티'

가장 좋아하는 래퍼가 있나요?
래퍼 화나 형이요. 제가 이 씬에서 공연을 자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형의 곡 ‘Do ya Thang’에도 잘 나타나는데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이 말이 좋아요. 제가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하는 한마디이기도 하죠. 제가 어떤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길잡이가 돼주시는 분이에요.

이번 앨범 2번 트랙 ‘Suicide Squad’에서 화나가 피처링을 맡기도 했어요.
화나 형은 특히 공연에서 신인 래퍼를 많이 세워줘요. 저도 화나 형 공연에 서면서 알게 되었어요. 제가 너무 좋아해서 화나 형을 따라다녔죠. 이번 곡도 여러 번 부탁했다가 안 한다고 하시는 걸 끈질기게 노력해서 받은 거예요.

본인에 대해 좋은 평도 많지만, 악성 댓글에서는 주로 아이돌 준비했던 과거를 많이 언급하더라고요.
무플 보다는 악플이죠. 그리고 다 제가 잘 생겨서 그래요. 곱상하게 생긴 애가 콘셉트 강한 음악을 하고 있어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어그레시브한 음악이랑 귀여운 얼굴이랑 안 어울리잖아요(웃음).

남들은 외모가 잘 나려고 안달인데, 스스로에게는 어떤 걸림돌일 수도 있었겠네요.
네. 일부러 머리도 기르고 젤도 바르고, 추레하게 보이려고 해요. ‘나 지저분해, 자유로워’ 이런 걸 외모부터 느껴지게 만들고 싶었어요. 아마 팬들이 얘기하는 ‘더티 섹시’는 이런 노력에서 나온 결과물일 겁니다.

<랩귀> 뮤직비디오도 정말 인상적이던데요. 서낭당 같은 데서 피칠갑하고 랩하시더라고요.
제가 콘셉트를 워낙 세게 잡아서 뮤직비디오 또한 콘셉트에 맞게 영상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도전이었죠.

제작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야산이라 특별한 사건은 없었어요. 그런데 다른 곡 ‘나락’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정말 길 가다가 우연히 찾은 폐가였어요. 좀비가 나올 것 같은 그곳으로 걸어들어갔는데 썩은 내가 진동하는 거예요. 보니까 돼지 간, 토끼 사체 이런 게 널브러져 있는 폐 동물실험실이었던 거죠. ‘여기다!’ 싶었어요. 들어가기 무서워서 그 앞에서 1시간을 머뭇거렸던 것 같아요.

마이닝 인터뷰 #3 신들린 랩귀 '다이노티'

최근 몇 년 동안 힙합이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어요. 아마도 M.Net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Show Me The Money>의 영향이 컸겠죠.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신지 궁금해요.  
씁쓸하지만 <쇼미더머니>(이하 쇼미)가 가져온 영광이긴 하죠. 하지만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해요. 힙합이라는 콘텐츠를 알리고, 인지도가 필요한 마이너 래퍼들에겐 등용문이 되었어요. 언뜻 보면 굉장히 유익한 포맷이죠. 그런데 점점 예능의 비중을 늘리더라고요. 장사가 되니까 더 유명한 래퍼들이 출연하고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요. 또 어떤 래퍼에게는 ‘쇼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였어요. 래퍼들이 유명해져서 잘살게 된 건 ‘쇼미’덕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거기까지였어야 해요. 이후에 TV 프로그램 <고등래퍼>가 나와버렸잖아요. 진짜 X 밟은 느낌이었죠. 물론 잔뼈가 굵은 친구들도 있겠지만 그런 친구들은 소수잖아요. 그냥 랩 하는 연습생들이랑 <프로듀스101> 찍는 느낌이에요. 아이돌 연습생 발굴하는 프로그램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스윙스가 최하민을 데려간 것처럼 기성 래퍼들이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는 모습도 안타까워요. 이제는 힙합도 회사에서 데려가서 키우는 공장식 시스템이 돼버린 거죠. 이 상황에서 힙합을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은 자기의 음악과 가사를 잘 만들어내는 것보다 <고등래퍼>에 출연하는 것 자체에 목표를 두기도 해요. 여러 면에서 <고등래퍼>는 ‘쇼미’가 남긴 찌꺼기라 볼 수밖에 없어요.

요즘은 모든 게 오디션이고, 무한 경쟁이에요. 컨텐츠의 본질까지 지워버릴 정도죠. 그에 반해 언더그라운드 씬에 대한 애착은 어떤가요?
제가 늘 공연하는 곳이니까 당연히 애착이 많죠. 딥플로우 형님을 멋있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도 그거예요. 요즘 그 분에 대해서 일각에선 “비즈니스 맨 다 됐다, 연예인 됐다” 이런 말이 많은데 그래도 사상은 여전할 겁니다. 그 형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돈 벌 수 있는 큰 공연은 따로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인디펜던트 공연에 설 땐 큰돈을 받지 않는다.” 아주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훗날 저도 이렇게 공연하고 싶어요.  

근시일 내에 있을 좋은 소식 있나요?
따뜻해지기 전에 싱글 음반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하지 못한 얘기가 있나요?
사람들이 제가 쓴 가사를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노래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사에 집중해줬으면 해요. 그리고 좀 속상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혹은 ‘나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하면서 속상해하시길, 행복한 노래는 세상에 널렸잖아요.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포토그래퍼 홍안
  • 영상 김원
  • 헤어 장수일
  • 메이크업 장수일
  • 어시스턴트 구연, 윤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