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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키

김오키가 색소폰을 분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매일 다른 마음으로.

김오키

김오키의 ‘오키’는 오키나와의 줄임말이죠?
맞아요. 처음 오키나와에 놀러 갔다가 클럽에서 재즈 긱을 하게 됐어요. 친구들도 좋고, 오키나와도 너무 맘에 들어서 그때부터 이름 앞에 오키나와란 단어를 붙여 썼거든요. 그러다 언젠가부터 어떤 형이 저를 오키 라 부르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냥 쓰게 됐죠. 2011년 정도였나.

올해만 음반 두 장을 냈어요. <fuckingmadness>와 <피스투 아우어솔>. 지난 연말의 <LUVOKI>까지 소급 포함하면 세 장. 지금까지 중 가장 오키나와 같았다 말해보면 어떤가요? 다소 부드럽고 느긋한.
어, 저는 점점 오키나와와 멀어지는 음악을 했다고 생각하거든 요. 1집엔 아예 ‘오리온 스타 하우스’라는 오키나와 곡도 있었죠. 오키나와가 겉으로 보면 평화로운 휴양지지만,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슬픔이 많아요.

김오키가 말하는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의 오키나와인 거죠?
류큐에서 일본이 되는 과정도 있고, 미국에 빼앗겼다가 다시 일본 에 빼앗기는 과정도 있고. 지금도 미군부대 때문에 꽤 골치 아파하고 있죠. 일본에서도 약간 소외받는 지역이고. 젊은 친구들은 잘 몰라도, 예전 분들 은 아직도 싸우는 분들이 많아요. 자기 자아를 찾으려는. 한국 사람들도 일 제 시대 겪으면서 일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좀 있잖아요? 첨엔 아무것도 모르고 갔는데,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속상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 의 아픔을 전혀 몰랐던 거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한국에 돌아왔고, 한 국에서 느끼던 부분을 더해 1집을 만들었죠. 2집까지도.

1집 <천사의 분노> 라이너 노트엔 이렇게 쓰여 있죠.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 자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 시대 의 어느 순간부터 지정되어진 사회 약자의 마음의 힘을 표현하였다.”
그때 재개발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큰 자본이 들어와서 원래 살던 곳을 무너뜨려버리잖아요. 크게 봤을 때는 오키나와의 상황과 비슷하 다고 느꼈죠.

막연히 왜 오키나와가 좋냐고 묻는다면요?
제가 사람이 단순해서 그렇게 물으면 또 모르겠어요. 그냥 좋아 요. 어떤 사람 만나도 알아가기 전부터 좋을 수 있잖아요. 오키나와가 그런 곳이었어요. 태어나서 처음 해외여행 간 곳이기도 하고. 혼자였고.

마냥 단순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관련 인터뷰에서 “계획을 안 세워놓으면 불안해서 미리 계획을 세워놓는다. 제 휴대폰 알람이 백 개다”라 말하기도 했죠.
저 자체는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에요. 맘이 편하지 못한 사람. 그래서 오히려 빡빡한 상황을 못 참아요. 그런 나를 또 어딘가 가 두고 싶지 않기 때문에, 되레 스스로를 타이트하게 잡는 거죠. 예를 들어 제 가 항상 사랑과 평화 얘기하잖아요. 평화로워지려면 싸워야 해요. 마냥 평 화, 평화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와 먼저 싸운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행동이나 관계에 서 평화로워질 수 있는.
그렇죠. 그래서 항상 관념을 깨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저 자체가 되게 보수적인 사람이라.

어떤 면에서 보수적인가요?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지금도 매일 생각하며 바꾸려 해요. 저희 아버지 세대가 갖고 있는, 박정희 세대에 세뇌받은 것들? 그런 고정관념이 저한테도 이미 박혀 있던 거죠. 예를 들어 젠더 문제도 거의 이해를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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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으면 좋은 거죠. 영화도 타란티노 영화 좋아해요. 제가 원래 진지한 걸 잘 못해요. 그냥 저 같은 음악 만들고 싶은 거예요.”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요?
말도 잘 통하고 친한 친구가 게이였는데, 몰랐죠. 몇 년 전 한국에서 행사도 크게 열리고 한창 이슈가 됐을 때,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제가 그런 게 싫다고 얘기했어요. 분위기가 안 좋아지더라고요. 나중에 저랑 친구랑 둘만 남게 됐을 때, 친구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순간 너무 창피했어요. 정말 미안하고. 편견을 갖고 살고 있었구나, 이건 내가 이해하고 뭐하고 그럴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뭐라고 그걸 평가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거예요. 그때 진짜 크게 바뀌었어요. 모든 게.

매년, 매일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나요?
많이요. 기본적으로 타인을 인정해야 하는데 잘 그러지 못하니까. 최대한으로 노력해요.

매년 내놓은 음반도 놀라울 정도로 달라요. 의도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인가요?
그렇죠. 음악도 예전엔 스탠더드 재즈만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인디 신은 완전히 무시했죠. 그런데 무키무키만만수 아시죠? 그 친구들이랑 공연하면서 완전히 깨졌어요. 부끄러웠죠.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재즈 하는 애들보다 더 지식 있고, 음악성도 재능도 뛰어난데 그런 건 생각 못하고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머물렀던 거죠.

순간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가요?
그래서 음악도 항상 그런 식으로 만들어요. 순간의 감정이나 기억으로 그냥 떠오르는 것들을 쓰죠.

‘프리 재즈 뮤지션 김오키’란 말은 어때요?
잘 모르겠어요. 일단 너무 재즈 음반을 안 내니까. 어쩔 수 없이 카테고리를 나누다 보니 재즈가 된 거죠. 게다가 프리 재즈라면 더 뭔가 ‘프리’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올해 나온 두 장의 음반은 언뜻 힙합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사실 다섯 번째 음반인 <fuckingmadness>는 예전에 쓴 곡들을 녹음한 거예요. 맞는 멤버들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죠. 호림이라는 알앤비 보컬 뮤직비디오 찍으러 갔다가, 리듬 세션 연주하는 친구들의 느낌이 좋아서 같이 하게 됐어요. 힙합을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어찌 보면 재즈 느낌인데 제가 더 신나게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었달까. 저도 스윙보다 훵크나 힙합 같은 박자가 더 편하거든요. 어릴 때 그런 음악을 듣고 자라서 그런지.

순간의 계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수시로 애착을 드러낸 선 라(Sun Ra) 같은 초자연적 경험을 기대하기도 하나요? 그는 “1936년부터 37년 사이, 토성에 텔레포트 당했다”고 주장하죠.
저는 선 라를 훌륭하면서 재미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요. 만약 같은 반 친구였으면 친하게 지내면서 놀렸을 것 같아요. 똑똑한 오타쿠 친구 있잖아요. 선 라가 토성 얘기 하면 진짜 웃겨요. 너무 좋기도 하고. 그래서 저도 요즘 “토성에서 왔다, 우리 아버지가 사실 선 라다”라고 인스타그램에 쓰고 그랬죠. 장난처럼 이용하는 거예요. 저는 샤머니즘이나 토템 같은 걸 진지하게 믿진 않아요.

김오키는 언제나 어디까지 농담이고 어디까지 진심인지가 모호한 사람이죠.
재밌으면 좋은 거죠. 영화도 타란티노 영화 좋아해요. 제가 원래 진지한 걸 잘 못해요. 그냥 저 같은 음악 만들고 싶은 거예요.

<fuckingmadness>의 주제는 ‘친일파 청산’이었죠. 여기도 일종의 유머가 섞여 있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가져오고 싶지 않아요. 어릴 때 부모님한테 항상 혼났어요. 넌 심각한 문제에도 왜 이리 진지하지 못하냐. 그런데 장난 좋아한다고 해서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니죠. 저 친일파 엄청 싫어해요. 비꼬고 싶었던 거예요. 제가 말한 ‘청산’은 푸를 청에 뫼 산 자예요. 친일파들 푸르고 맑은 하늘에서 아주 잘 지낸다. 김오키가 진지한 사람이었으면 예전에 프리 재즈 하던 선생님들처럼 정색하고 했겠죠. 저답게 장난스레 해보고 싶었어요.

지난 12월호, 한국 <플레이보이>는 김오키를 ‘Playboy of the Year’ 중 1인으로 뽑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썼죠. “근면이 음악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밴드 멤버에게도 ‘천재’나 ‘짐승’이라 불리는 뮤지션이 작업에 몰두할 때 생기는 믿음이 있다.”
저도 멤버들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 기분 좋았어요. 밴드 하면서 스트레스가 엄청나거든요. 하루에도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12번 이상 들어요. 목표는 그저 다 같이 잘되고 싶은 마음인데. 어쨌든 멤버들이 좋은 에너지를 느끼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기뻤죠.

천재는 왠지 괴팍하고 게으를 것 같다는 편견이 있죠.
그런데 제가 음반을 많이 내는 건가? 싶긴 해요. 재즈 황금기 때 연주자들 음반 정말 금방금방 만들었잖아요. 재즈가 오래 끌 게 없거든요. 저는 학교를 나가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라 음악 생각만 해요. 집에 앉아서 노래 만들고, 카페에서 노래 만들고, 차에서 노래 만드는 거죠.

다른 뮤지션들이 게으르다는 생각도 해봤나요?
그렇다기보단 목표가 좀 달라요. 저는 음반을 굉장히 완벽하게 내려는 생각이 없어요. 죽을 때까지 할 거니까,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죠. 그런데 완벽한 한 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싶어하는 분도 많더라고요. 그러니 오래 걸리죠. 저는 뭐 대충 해서 빨리 내는 거고.

대충 해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잖아요.
감사한 일이죠(웃음).

이런 말도 과연 진심인가? 싶어요.
그렇죠. 대충 해도 막 대충 하는 건 아니니까. 혼자 많은 시간을 갖고 몇 년 생각해놓은 상태에서 낼 때 대충 내는 거예요.

지금 데뷔 음반의 ‘칼날’ 같은 곡 들으면 어때요? 그 곡이야말로 재즈의 속성을 모두 갖추고 있죠.
다시는 못할 것 같아요. 원래는 발매할 생각도 없던 곡이에요. 기념품 만들고 싶어서 한 거였는데. 지금은 그 느낌이 안 나요.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굉장히 분노했을 때니까. 개인적으로도, 사회를 향해서도. 요즘은 화를 잘 안 내요.

그래서 더 아쉽나요, 더 좋나요?
아쉽진 않아요. 인간이 그런 거죠. 우주가 그렇듯 흘러가는 대로. 때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내는 거예요. (김)성배 형하고 통화했을 때, 형이 “연주가 많이 바뀌었다” 그러더라고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맞는 말이죠. 지금의 저는 칼날이 서 있지 않으니까. 웃어넘겼고.

곡은 부드러워졌어도, 색소폰을 부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무겁고 투박하죠.
그건 바뀌지 않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니까. 색소폰을 예쁘게 불 수도 없어요. 그렇게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오키란 이름이 어떤 브랜드가 되었단 인상이기도 해요. 꼭 재즈가 아니라도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처음부터 계속 그렇게 했죠, 절대로 쿼텟, 퀸텟 같은 이름 안 쓰고. 저 같은 캐릭터가 없기도 하고요.

특별히 재즈 신에 속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1집 낼 때부터 재즈 클럽에는 서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데는 사람들이 연주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BGM이죠. 그러다 (김)성배 형 소개로 살롱 바다비에서 처음 연주를 하게 됐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다들 집중해서 듣고 피드백이 있고. 그때부터 재즈 클럽에서 연락이 와도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에반스에선 종종 하지만, 이제는 재즈 클럽에선 거의 연락도 안 와요. 저한테도 이득이에요. 다른 뮤지션들이랑 교감하면서 음악적 폭도 넓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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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리더로서 대부분의 곡을 작곡하죠. 하지만 연주자의 연주가 중심이 되는 악곡이니, 일반적인 멜로디나 코드를 쓰는 일과는 꽤 다를 것 같아요. 어디까지 관여하나요?
악보까지 다 그려요. 그걸 가져가서 설명하는 거죠. 멜로디 악보, 베이스 라인 악보, 피아노 악보 등등. 갖고 가서 “더 좋게 나올 수 있으면 네 마음대로 해라”라고 주문하는 편이에요.

김오키는 어떤 리더인가요?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독재자인가요?
얼마 전에 깨달은 건데, 멤버들 입장에선 힘든 상대일 것 같아요. 편한 대로 하라고 권하지만, 막상 무대에서 연주할 때 맘에 안 들면 그냥 멈추거든요.

실제 공연장에서요?
네. 다시 하자고. 지금 안 맞으니까.

관객이 있는데도요?
그런 경우가 많진 않았고요. 아니면 색소폰을 아예 안 불거나.

연습에서는 더한가요?
합주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개인의 능력이나 센스 같은 걸 중요시해요. 내가 생각해놓은 길 안에서 그걸 해치지 않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으면 너네 마음대로 해라, 인 거예요.

기준이란 게 있는 거죠?
항상 그렇죠. 제 삶이 그래요. 기준이 있고, 그걸 벗어나면 안 돼요. 어떤 부분에 한계치가 있는데, 무슨 짓을 해도 괜찮지만 그건 넘으면 안 돼요.

그 기준이 예전엔 좁았다면 이젠 넓어진 건가요?
옮겨간 걸 수도 있고요.

가장 최근에 세운 기준은 뭔가요? 삶에서든 음악에서든.
음악에서라면, 요즘 작업하고 있는 음반이 하나 있어요. 편안하게 연주하되 섬세하게 하자는 기준을 세웠어요.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도 음을 분다면 도 음만 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낼 수 있는 미세한 소리까지 담아내고 싶어요. 패드가 부딪힌다거나 몸을 움직일 때 색소폰에 몸이 스치는 소리까지 감지하면서. 밴드 멤버들도 저랑 똑같은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고요.

김오키의 즉흥 연주는 어디까지 즉흥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즉흥이 확실히 있어요. 지루하지 않을 것. 밑도 끝도 없이 한없이 가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은 그게 원래 있던 곡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뻐킹매드니스 멤버로 공연할 때 즉흥을 많이 했는데, 시작과 끝은 항상 짜임새가 있어야 했어요. 동시에 탁 끝난다거나, 다음 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거나. 무대에서 제가 계속 돌아다니면서 설명하죠. “다음은 이렇게, 다음은 이렇게, 몇 번째에 맞춰서 끝내고, 브레이크는 어쩌고.” 그러면 관객들이 끝나고 항상 물어봐요. 이거 앨범에 있냐고.

보편적으로 즉흥이란 악보에 없는, 그 순간에만 낼 수 있는 독창적 소리를 내는 것 아닌가요?
제가 완전히 즉흥 연주로 구성된 음악을 못 듣겠더라고요.

대가들의 음악이라도요?
네. 오넷 콜맨이라든가. 반면 선 라나 파로아 샌더스는 난해한 음악을 하는 게 아니에요. 멜로디 정확하고, 다만 스타일이 다른 거죠. 말하는 방법의 차이. 그런데 극도의 프리 음악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어요. 저는 규율 안에서 하되, 그 안에서 최대치를 발휘하고 싶은 맘이 있죠.

그렇다면 지금 김오키 음악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뭔가요?
정신이요. 많이 팔리는 것도 중요한데, 제가 전하는 메시지가 항상 있거든요. 내 음악을 듣고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가사가 없는 연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쉽진 않죠.
제목이나 제가 음반 내면서 하는 행동, 공연하면서 던지는 메시지 등으로 커버하려고 해요. 홍보 글이나 해시태그가 될 수도 있고. 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음악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생각하나요?
초인적 힘을 발휘해서 정확한 주파수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멜로디만으론 힘들어요. 대신 사랑, 슬픔 같은 감정은 실을 수 있어요.

감정은 색소폰이란 악기에 100퍼센트 자유롭게 실을 수 있는 건가요?
그건 할 수 있어요.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른 연주자들은 주로 뭘 연습하나요?
저는 아직 일정 수준 이상까지 못 갔고요. 기본 연습은 매일 하고, 요즘은 톤이요. 음 하나하나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연구해요. 음표 하나를 불더라도 그걸 어떻게 끊고 움직이고 하는 것들.

지난여름 <포크라노스>와의 인터뷰에서 “스탠더드 재즈 앨범과 스피리추얼 프리 재즈 앨범 그리고 뻐킹매드니스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죠. 그중 뻐킹매드니스의 두 번째 음반 <피스투아우어솔>이 먼저 나왔고요. 다음은 뭔가요?
새로운 밴드와 나머지 두 개를 같이 합주하고 있어요.

뻐킹매드니스는 해체인가요?
네. 음반 내고 다음 날 끝났어요. 새 밴드랑 1월 23일에 녹음을 들어가요. 스탠더드 음반이랑 스피리추얼 프리 재즈 음반을 섞은 형태로 낼 수도 있고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이번엔 3인조예요. 너무 인원이 많으면 돈이 안 벌려요(웃음).

하지만 재즈 트리오라는 말은 쓰지 않겠죠?
굳이 말하면 색소폰 트리오인데, 팀명이 있어요. 김오키 새턴 발라드. 스탠더드 발라드 곡들을 많이 연주할 거라서.

새턴이라니 ‘선 라의 계시를 실현한’ 음반인가요?
그렇죠. 아, 다른 것도 이미 하나 녹음해뒀어요. 그건 믹싱 중이에요. 전체적으로 파로아 샌더스의 곡 ‘Harvest Time’이 떠오르는 음반이죠. 편안한데 아방가르드 같기도, 아프리칸 같기도 하고.

내년엔 대체 음반 몇 장이 나오나요?
3장 정도? 계획이라기보다 생각은 그래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고.

2017년이 좀 부드러운 김오키였다면, 2018년의 김오키는 어떤 모습일까요?
괴기하게 연주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멜로디는 아름답게. 섬뜩하게 들릴 수도 있고요. 어쨌든 묘한 느낌으로 표현됐으면 해요. 예쁜 멜로디라고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Credit

  • 에디터 유지성
  • 헤어 이지은
  • 메이크업 이지은
  • 스타일리스트 배보영
  • 어시스턴트 김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