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앗싸의 성기완

새로운 밴드 앗싸를 결성한 성기완은 지금 국경에서 일한다. 시인의 태도로.

밴드 앗싸의 성기완

앗싸(AASSA)는 아프로 아시안 사운드 액트의 줄임말이죠. 아프로와 아시안에 어떤 접점이 있다고 봤나요?
저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의 70~80퍼센트는 그 기원이 아프리카에 있어요. 예를 들면 비틀스. 또 2005년부터 EBS 라디오 <세계음악기행>을 진행했는데, 그때 서아프리카 음악에 매료됐어요. 3개월 휴가 내서 말리에 다녀왔죠. 수도 바마코의 홍대 같은 곳에서 맨날 잼하고 놀았어요. 그때부터 언젠가 이 경험을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하나는 2016년에 3호선 버터플라이를 그만둘 무렵 과연 나는 무슨 음악을 하고 있나, 란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미국 음악을 하는 건가 영국 음악을 하는 건가. 그냥 B급 카피인가? 괴롭던 와중에, 그들의 음악에도 일단 아프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거기에 미남부나 리버풀 백인들의 뭔가가 결합 된 거고. 아, 세계의 대중음악이 로컬에 아프로를 붙이는 방식이라면 우리는 아시아인이니까 아프로 아시안이라 해보자, 생각한 거죠. 운 좋게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아미누랑 보컬 하는 (한)여름이를 만나서 앗싸를 시작하게 됐어요.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의 속칭 ‘디지털 음악’이 클럽 신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나요?
그런 게 있다는 건 아프리카에서도 알긴 했어요. 거기 나이트클럽 가면 굉장히 묘한 걸 들으면서 놀더라고요. 물어보면 “무슨 레게야” 그러는데, 보편적 레게는 아니고. 그걸 디깅할 만한 정보가 충분하진 않았고요. 대신 이런 맘은 있었어요. 아프로란 걸 민속음악적으로 접근하면 안 되겠구나. 그러 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전자음악적 요소를 들여온 거죠.

시집과 엮어 낸 솔로 음반 <ㄹ>과 연결점이 있는 게 아닐까, 짐작 했어요. ‘벽지/뜻의 차이’ 같은 곡에서 리듬이나 소리를 활용한 방식이라든가.
한때는 MPC 3000 같은 샘플러 구해서 리듬도 찍고 그랬어요. 90년 대에 99라는 밴드를 결성해 시도해본 적도 있고. 모던 록이랑 힙합을 합쳐보려 했죠. 지금 들어보면 무모하지만. 그러다 뭔가 결정해야 된다는 강박이 생겼고, 마침 허클베리핀에서 남상아가 탈퇴했다는 얘길 듣고 3호선 버터플라이를 하게 된 거예요. 이후에도 가끔씩 시도는 했어요. ‘벽지/뜻의 차이’ 같은 곡에선 80년대 드럼 머신 사운드를 MPC에 넣어서 돌려보기도 하고. 3호선 음반에서도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는 808 사운드를 시뮬레이션한 거고.

밴드 앗싸의 성기완

재미있는 건, 지난해 발매된 3호선 버터플라이의 5집이야말로 ‘전자적’이라는 점이죠.
완전히 일렉트로닉하더라고요. 좋게 들었어요. 멤버들이 하고 싶었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물어봐요. 앗싸는 3호선 버터 플라이와 완전히 단절된 거냐고. 그렇다기보다 한 사람 밑에 여러 레이어가 있는 거죠. 그 중 뭐가 어떻게 드러날 지 모르는 거고.

3호선 버터플라이에서 의외로 성기완의 역할은 ‘록’이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진 않았어요. 록은 어떤 면에서 상아가 더 많이 담당했던 것 같고. 너바나나 소닉 유스를 제대로 흡수한 세대니까. 저는 뼛속에 든 음악이 없 어요. 예를 들어 크라잉넛한테 펑크 말고 딴 걸 해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되 라고 하는 거랑 비슷하잖아요. 드럭에서 펑크를 막 처음 하던 그 과정은 인생 관을 비롯한 모든 게 다 걸린 거니까. 남상아 씨 세대도 마찬가지인 듯해요.

소닉 유스나 너바나는 어떤 ‘정신’ 같기도 하죠.
음악으로 다가오는 한편 정신적으로 들어오잖아요. 하지만 저희 세대는 헤비 메탈, 그 전엔 레드 제플린, 디스코도 있었고. 어릴 때 라디오에 디스코가 계속 나왔는데, 그 리듬을 괜히 내가 지우려 했던 것 같아요.

음악을 뼛속으로 받아들이는 시기의 장르를 거절해버린 거네요.
디스코 판은 창피해서 길에 일부러 버리고 그랬어요. 지금은 아까운 판이 많죠.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이 있었지만 그건 좀 달랐어요. 세대적으로 어떤 음악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그런 건 다 금지곡이었으니까. 만약 그때 섹스 피스톨스가 금지곡이 아니었다면, 바로 받아들였겠죠. 그 80년대 초반의 수용소 같은 학교를 다닐 땐데.

레드 제플린이나 핑크 플로이드가 어깨동무하고 같이 가는 느낌은 아니니까요.
동경의 대상이죠. 오히려 그런 건 정부가 풀어놓은 거예요. “봐, 이거 동경해. 아니면 다 잊어.” 대신 뒤집자는 식인 건 다 금지곡이었어요.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다음엔 뭘 해볼까’를 생각할 수 있는 세대예요. 책임의식도 없진 않고요. 인디 1세대, 1.5세대라고 하잖아요. “쟤는 계속 록만 하는구나”보 다는 “그래도 뭔가 하려고 하네?” 소리가 낫죠. 생존방식이기도 한 거고.

17년간 몸담은 3호선 버터플라이는 어떤 이유로 탈퇴했나요?
밴드는 의견의 일치가 꼭 필요하잖아요. 그 과정이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멤버들한테 강요하는 모습을 자꾸 보이게 되고. 밴드는 정말 특수한 모임이에요. 일단 식구죠. 그 다음이 동료예요. 세 번째는 비즈니스 파트너고. 그게 한꺼번에 간다는 게 말이 안 돼요. 오해에서 오는 사건이 생기게 되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나오게 됐는데 그게 오히려 현실적 결론이 난 거라고 해야 할까?

오래된 관계는 대부분 우발적인 일로 깨진다고들 하죠.
“오늘 나 갈게” 그랬는데 그게 마지막이었고 이런 거 있잖아요. 2016 년엔 되게 힘들었어요. 다행히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이듬해 3호선 버터플라이 5집이 나왔죠. 나를 내려놓고 다시 배가 항해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속상한 맘도 들었지만, 그 밴드는 그 밴드대로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좋은 일 같아요. 앗싸에 에너지를 더 쏟아부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성기완은 충분히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이죠. 세 장의 솔로 음반을 내기도 했고. 하지만 다시 밴드를 시작했어요.
평생 해본 일 중에 제일 재미있어요. 제가 작곡한 곡이 있다고 쳐요. 밴드 멤버들이 만지다 보면 이쪽으로 갈 거라 짐작한 곡이 저쪽으로 가요. 그 걸 잘 놔두는 재미. 그렇게 나온 사운드는 그 사람들의 총합을 넘어서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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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따라붙는 전위나 실험 같은 말은 어떤가요?
얼마 전에 전위는 죽었다는 글을 썼어요. 그래서 전위는 아니고 실험이란 말은 여전히 쓰는데, 그거랑 언저리란 개념하고 통하는 것 같아요. 경계에 있는 것? 저는 음악만 하는 것도, 시만 쓰는 것도 아니니까. 시인 황유원의 시집 해설을 제가 썼어요. 그 첫 문장이 ‘나는 국경에서 일한다’예요. 3호선 버터플라이 전국 투어 중에 기차에서 쓴 글이에요. 저는 진짜 글쟁이처럼 서재에서 책 쫙 펼쳐놓고 글 써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렇게 국경에서 일하면요, 저 쪽을 보잖아요? 다른 나라죠. 서울 시민이라면 국경은 멀고 주변엔 다 그 나라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예를 들어 국경에선 북한 사람이랑 “밥 먹었니?” 얘기 할 수 있겠죠. 금지된 것이라도 거기선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국경에서 일하면 이쪽에선 금지된 걸 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이쪽 사람 들이 못 보는 걸 보고.

음악을 할 때 국경 밖의 시를 보며 다르게 생각하고, 반대로 시의 편에서 음악을 실험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경계에서 일하면 아직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것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요. 뜻이 확정되지 않은 소음이 나한텐 뜻이 있는 소리일 수 있는 거죠. 그게 노이즈인 것 같아요. 단순히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도, 미, 솔은 명확한 소리잖아요. 하지만 도랑 도샵 사이에도 소리가 있고, 그런 걸 많이 생산하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닌가 싶어요. 딱 자기가 보는 게 아니면 배제하고 쓰레기라는 식의 생각이 사회를 경직되게 만드는 거니까.

굉장한 자기 확신 없이는 어려운 일처럼 들려요.
국경에서 일하면 돼요. 저쪽에 건너갔다 오기도 하고. 또 국경이라고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곳 사람끼리 맘이 통하는 것도 값진 일이에요.

2004년 박준흠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흐름 자체가 멀티한 흐름으로 가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한가요?
네. 그걸 방법으로 받쳐주는 게 컴퓨터고요. 문서 띄웠다, 음악 프로그램 열었다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원고지에 글 쓰다 음악 만들고 싶으면 아예 자리를 옮겨야겠죠. 이런 환경일수록 외골수로 뭔가 하는 분들이 더 값질 수도 있긴 한데, 전 흐름을 따라가는 편인 것 같아요.

과거엔 뮤지션 성기완과 시인 성기완이 있었다면, 최근엔 소리를 중심으로 한 곳으로 모인 인상이에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소리에 관한 시를 많이 썼고, 3호선 할 때도 가사를 자주 썼고. 옛날엔 멀티플레이어란 식으로 생각했다면, 이젠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푸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작년엔 <노래는 허공에 거는 덧없는 주문>이란 책도 냈어요. 가사를 본격적으로 평론한 책이 없더라고요. 문학으로 받아들이질 않아서. 글로 쓴 시나 제대로 된 시라고 생각하는데, 이젠 뒤집히는 중이에요. 제가 요새 강조하는 게 목소리. 텍스트의 시대에서 다시 목소리의 시대가 오는 거죠.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 축적한 문명이 있잖아요. 거기서 다음 단계 문명으로 가는 굉장히 큰 흐름의 변화예요.

문자가 유일한 저장매체였던 세월을 벗어나, 이젠 목소리를 순식 간에 바로 저장할 수 있으니까.
다시 구비문학의 시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제가 노래 관련 일을 하며 시를 놓지 않아 다행이다 싶어요. 예전엔 둘 중 하나만 할 걸 그랬나, 고민하기도 했거든요.

도, 미, 솔은 명확한 소리잖아요. 하지만 도랑 도샵 사이에도 소리가 있고, 그런 걸 많이 생산하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닌가 싶어요. 딱 자기가 보는 게 아니면 배제하고 쓰레기라는 식의 생각이 사회를 경직되게 만드는 거니까.

특히 한국어 사용 방식에 집중하는 듯 보여요. 일종의 사운드 아트 라 불린 <ㄹ>은 물론이고, 앗싸 음반에서도 특정 구절은 그냥 ‘소리’로 들리죠. “막힌 곳을 뚫어보자, 뚫린 곳을 달려보자”라든가.
아프리카 말도 그래요. 한글로 ‘하나가 되자’는 곡을 만들었더니 아미두가 “앙아벵켈레나”가 그 뜻이래요. 멋있잖아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거죠.

이젠 가사 쓸 때 뜻보다 소리를 먼저 생각하나요?
무대 보면 반응을 알거든요. 3호선 버터플라이 곡 중에 몰리에르의 희곡 <돈 주앙>의 대사를 옮겨 쓴 가사가 있어요. 라이브를 하면,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캐치하기도 전에 노랫말이 다 지나가요. 하지만 티티, 카카! 같은 건 아무 뜻 없지만 관객들이 따라 하죠. 이 발견을 시에도 적용했고요. 뜻보다 사운드가 지나가는 굴곡? 산맥이, 인파가, 강의 흐름이 될 수도 있는. 그걸 산맥이라 확정 짓는 순간 재미없어져버리고. 사운드는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채 사람들한테 다가갔을 때 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성기완의 시는 소리 내어 읽으면 더 좋나요?
세 번째 시집 <당신의 텍스트> 만들 때부터 그랬어요. 의미 없는 후렴구를 중간중간 넣고. 다른 얘기지만, 제가 86년도에 대학을 갔어요. 그땐 소 리보다 의미가 먼저였거든요.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혁명을 해야 된다. 물론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죠. 뒤집어야 되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지겨워졌어요. 탈피하고 싶었고. <ㄹ>은 아무 뜻도 없잖아요. 기호인데 단지 발음이 좋아서 시집 <ㄹ>을 낸 거고.

3호선 버터플라이의 가사를 쓰던 사람의 말이라기엔, 낙차가 꽤 크게 들려요. 물론 시를 통해 꾸준히 단서를 던지긴 했지만.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음악평론이라든가.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요. 남에 대해 쓰기 때문에. 되게 멋있는 걸 하는데도 설명하지 않으려 들면 안타까워요. 심지어 신비롭게 하는 걸 힙 터진다고 생각하고. 아티스트가 모든 걸 드러낼 의무는 없지만, 어느 순간 한 마디라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밴드 앗싸의 성기완

시와 곡과 글. 이 모든 걸 지속하는 원동력은 뭔가요?
결핍과 애착? 결핍을 상징적으로 얘기하면, “널 좋아했어”라고 고백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인 거예요. 그러면 나는 진짜 좋아했다고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맘이 생겨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사운드를 계속 만들고 보여주는 거죠. “네 소리가 들리더라”라는 작은 대답이라도 듣기 위해. 그리고 애착은요, 내가 나를 어디에 붙여야 한다는 거잖아요. 저는 음악에 붙였어요. 근데 포스트잇인 거죠. 앗싸 음반 발매라고 써 붙여놨는데, 그게 떨어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다시 ‘4월 28일 공연’을 붙여야 돼요. 그렇게 끊임없이 하는 거죠.

나를 음악에 붙였다면, 큰 뜻에서 시와 글도 음악에 포함되나요?
글은 솔직히 큰 애착이 없어요. 시는 좀 달라요. 태도예요. 시를 읽으면서 배운 거죠. 얼마 전 동사무소를 갔는데, 어떤 직원이 자기는 인감 증명 떼는 게 너무 좋대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인감을 다 사진 찍어놓고 싶을 정도래요. 인감은 자기 존재의 증명인 데다 그 모양이 예뻐서 계속 보고 싶대요.

시인의 태도란 그렇게 뭔가 발견하는 사람인 건가요?
그리고 깊이 빠져 있는 사람. 그러면 그 사람은 시인이에요. 어떤 태도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사람을 대하느냐와 관련이 있어요. 저는 계속 애착을 갖고 붙여나가고 싶어요. 포스트잇이 떨어지기 전에. 사운드는 사라지기 때문에 계속 붙여줘야 해요.

한 번 울린 사운드는 이론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아예 ‘제로’가 되는 건 아니라고.
내가 한번 울린 파동이 사라지지 않고 아주 조그맣게 수렴돼서 영원히 존재하는 건 맞는데, 그건 사람의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 손을 떠난 것?

애착과 결핍 안에서 끝내 이루고 싶은 게 있나요?
하나는 했어요. 두 장짜리 LP 발매.

3호선 버터플라이 4집이요? 생각보다 소박한데요.
저한텐 엄청난 로망이었어요. 첫 번째로 들은 2LP 음반이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인데, 그게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다가 순식 간에 사라졌어요. 가사를 보니 “We Don’t Need No Education”. 금지곡이 된 거예요. 더 멋있는 거죠. 그리고 비틀스의 <White Album>. 이건 표지가 없잖아요. 두 장짜리 음반이란 이승에서의 공백하고 관련이 있는, 실체가 없는 엄청난 거구나, 했죠. 글로는 <무의식의 자서전>이란 걸 구상하고 있어요. 자서전을 쓰면 어떻게 쓸래요?

사건 위주 혹은 일대기 형식으로 쓸 수도 있겠죠.
근데 무의식의 자서전을 쓰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거기선 분명히 나를 넘어설 거예요. 그게 시인 것 같아요. 너하고 나하고 다 비슷해지는 거죠.

모두의 욕망과 상상에 대한?
그런 거죠. 의식의 자서전이라면 각자 한 권씩 써야 되지만, 무의식의 자서전은 인류가 한 권 만드는 거예요. 집단창작. 그 한 꼭짓점이란 느낌으로 써야죠. 첫 문장은 썼어요. “나는 40억 년 전에 토성의 띠의 입자였다.”

Credit

  • 에디터 유지성
  • 포토그래퍼 윤석무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