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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가 김민경

화려하게 치장한 조각으로 위장과 본질을 논한다.

김민경 작가
스페이스 신선에서 브론즈 조형 작품과 함께 서 있는 김민경 작가

화려하게 꾸민 여성을 표현한 부조 작품이 차례로 걸려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헤어스타일은 천차만별이고 액세서리도 각양각색이다. 김민경 작가가 십여 년 동안 이룩한 작품 세계가 스페이스 신선의 <THE OTHER SIDE>展에 펼쳐져 있다. “첫 개인전을 2008년에 열었고, 그때부터 꾸준히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초기 작품부터 ‘위장 토끼(The Camouflaged Rabbit)’와 ‘위장된 자아(Camouflaged Selves)’ 시리즈, 브론즈 작품까지 한 번에 만나볼 수 있어요.”

‘The Camouflaged Rabbit’,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2011

대부분은 부조의 형태로 벽에 걸려있지만, 김민경 작가의 첫 작품은 학부 시절에 만든 조형물이었다. 실제 사람의 몸을 모델링(modeling)하고, 플라스틱 등으로 캐스팅(casting)해 외형을 완성한 후 토끼 가면을 씌운 ‘위장 토끼’. 이 작품을 청계천 주변과 서울시립미술관 야외에 전시하고, 그는 본격적으로 부조 작업에 몰두했다. “조소를 전공하며 조형물에 매우 익숙해졌지만, 부조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정말 단순해요. 크기가 크지 않아 갤러리 공간에 들여놓기도 편하고, 그냥 제 방에 걸어둘 수도 있으니까요.”

‘Camouflaged Doll(Pink)’,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30×30×6cm, 2017
‘Camouflaged Doll(Sky Green)’,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30×30×6cm, 2017

이후에 제작된 부조 작품에도 토끼는 여전히 자주 등장한다. 왜 수많은 동물 중 토끼를 선택했을까? 오히려 작가는 그것이 토끼가 아닐지도 모른다며 반문한다. “제가 토끼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과연 모든 사람이 이 동물을 토끼로 받아들일까요? 실제로 관객들은 귀가 조금 작으면 “곰돌이네?”라거나, 귀가 동그랗고 크면 “미니마우스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요.”

‘Camouflaged Selves-In the Mirror’,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130×100×7cm, 2015
‘Camouflaged Selves-In the Mirror’,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130×100×7cm, 2015

‘귀가 긴 동물=토끼’라는 고정관념을 비틀고자 했던 그가 작품명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위장’. 익숙한 이미지를 통해 작품 속 대상을 위장하는 것이다. “위장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객들이 있는데, 위장은 너무나도 본능적인 행동인 것 같아요. 스스로 감추려는 의도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스스로 치장하고 당당히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는 거잖아요. 그냥 자아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거죠.”

‘Camouflaged Selves’,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2015

 ‘위장 토끼’ 시리즈를 잇는 ‘위장된 자아’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헤어스타일, 가면, 머리띠, 안경, 심지어 작품의 배경까지, 모든 요소는 대상의 개성을 드러내며 위장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흔히 머릿발, 화장발, 안경발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인상을 주기도 하고요. 작품 속 액세서리는 시각적 조합이지만, 자아의 표출을 의미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왜 이 안경은 둥글고 저 안경은 각이 졌지?’ 같은 세세한 부분은 사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Camouflaged Selves’,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2011

컬러와 소재는 위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가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려면 완벽한 구상이 필요하다. 평소에 틈틈이 스케치 작업을 해두고, 포토샵으로 대략적인 컬러와 소재까지 결정하고 나서야 영등포에 있는 작업실로 향한다. “다채로운 컬러를 쓰는 편이지만, 각각의 이미지를 규정해놓지 않았어요. 여러 컬러의 조합과 물질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주황색을 썼다면, 어떤 사람은 강렬한 붉은빛을 떠올리며 따뜻하다고 받아들일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는 플라스틱의 반들반들한 물질성 때문에 차갑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Camouflaged Selves’, Lambda print, saitec and fabric, 40×45×5cm, 2012
‘Camouflaged Selves’, Lambda print, saitec and fabric, 40×45×5cm, 2012

실제로 그가 작품에 주로 사용하는 소재는 FRP(섬유강화플라스틱)를 비롯한 합성수지. 그러나 가끔은 천을 활용한 작업도 즐긴다. “합성수지는 정갈하게 다듬기 위해 먼지를 뒤집어쓰며 사포질을, 천은 쾌적한 환경에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야 해요. 과정이 다른 만큼, 완성된 후의 느낌도 상반되죠. 여러 작품 사이에서 두 소재가 서로를 순화시켜주는 게 재미있어요.”

‘Camouflaged Selves’,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2011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에는 입체와 평면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입체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있는 대상은 ‘평면 위의 여성’이다. 작가는 미리 입체로 만들어둔 대상을 사진으로 찍어 평면화하고, 다시 입체의 요소를 더한다. “하나의 입체를 변형하며 계속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고 새로운 액세서리를 착용시키는 것과 비슷해요.” 그의 ‘작품 속 인형’은 한결같은 얼굴로, 매번 다른 위장을 한다. 일부러 눈동자를 넣지 않기도 하는데, 대상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도록 시선을 부재시켜 관객의 인식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인형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작가가 작품을 만들며 본인의 자아를 함께 다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다른 사람들 앞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작품을 만들면서 대상을 꾸미고 긍정적 의미의 위장을 하며 그 결핍을 해소했어요.”

‘Camouflaged Selves’, Plastic, 25×15×50cm, 2012
‘Camouflaged Selves’, Fabric, 25×15×50cm, 2012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본질이다. “위장을 넘어 관계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한 사람이 직접 꾸민 겉모습은 전부 달라요. 하지만, 위장을 벗겨내고 점점 더 깊은 내면을 파고들면 결국 다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마치 제 작품의 액세서리를 모두 걷어내면 하나의 입체만 남는 것처럼요.”

‘Camouflaged Selves-10 People’,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100×140×8cm, 2016

최근에 만드는 브론즈 조형 작품 또한 본질에 대한 고민을 지속한 결과다. 납작한 형태를 한 대상의 앞면과 뒷면에는 서로 다른 모습이 새겨져 있어 처음 봤을 때와 뒤돌아봤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부조 작품이 위장한 모습과 본질적 모습의 차이를 암시하듯, 하나의 대상일지라도 여러 이면이 내재해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브론즈라는 소재 자체에서도 본질을 발견했다. “합성수지는 입체 작품을 만들기에 최적의 소재지만, 그 한계를 느끼곤 했어요. 그래서 브론즈 같은 본질에 가까운 소재를 쓰고 싶었고, 이를 활용한 대형작품들도 만들고 있어요.”

‘Camouflaged Selves’,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95×95×9cm, 2016

‘작품은 나의 놀이이고 나의 과정이다’라고 말하는 김민경 작가. 위장과 본질을 논하는 그는 작업이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기를 소망한다. “저만의 표출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껏 위장한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들도 제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에게 위장은 가식이나 위선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본능이다.

‘Camouflaged Selves-Lose the Way’, Lambda print, saitec and plastic, 140×110×8cm, 2014


<THE OTHER SIDE>展
기간 
6월 24일까지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56 스페이스 신선 문의 02-793-7400

Credit

  • 에디터 김선희
  • 포토그래퍼 김잔듸
  • 아트워크 김민경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