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트렌드 7월 2

일러스트레이터 서인지

자신만의 취향을 집약해 여름의 화려한 장면을 그린다.

서인지 작가

여자들이 여름을 만끽하고 있다. 파도를 타고, 햇빛 아래 누워 여유를 즐기고, 상큼한 프루트칵테일을 마신다. 과감한 디자인의 스윔슈트를 입은 몸은 살집이 좋다. 부드러운 선과 풍만한 면이 어우러진 자태. 여름을 사랑하는 서인지 작가가 펼쳐놓은 풍경이다.

‘Girls on the Beach’, 118.9×84.1cm, 2017

“여름을 너무 좋아해요. 여름이 연상되는 모든 게 다 좋아요. 과일, 늘어지는 생활, 무더운 날씨….” 여름은 또한 ‘컬러풀’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작품은 마치 팔레트를 펼쳐놓은 듯 눈에 확 튀는 독특한 컬러로 가득하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 제 눈에 예쁜 것을 그리다 보니 여러 컬러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차분한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도 완성하고 보면 요란한 경우가 많아요.”

‘Moco Girls’, 118.9×84.1cm, 2017

화려한 것은 컬러뿐만이 아니다. 인물 주위의 빈 곳에는 과일과 칵테일, 풀, 꽃 등 크고 작은 사물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투 머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자주 느꼈어요. 하나의 화면 안에 많은 요소를 넣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망원동에 있는 그의 집 또한 여행을 다니며 하나둘 모은 기념품으로 장식했다. 작품에도, 작업하는 공간에도 작가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셈이다.

‘Surf in the Wave02’, 118.9×84.1cm, 2017

그러나 취향집약적 작품을 만들기 위해 미리 특별한 구상을 해두지는 않는다. 출발점은 일상 속에서 얻은 아이디어.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어떻게 하면 더욱 재미있어 보일까?’ 고민하는 그는 틈틈이 낙서하듯 적어둔 메모를 찾아본다. “보통 ‘이런 캐릭터를 그려야지’라고 단순하게 마음을 먹고 시작해요. 그러고 나서야 ‘손에는 뭘 들지?’ 생각하다가 칵테일을 그리고, ‘칵테일은 뭐로 하지?’ 고민한 다음에 그 안에 과일을 엄청 많이 넣어요. 어떨 때는 반대로 하늘에 펼쳐진 구름이나 꽃이 달린 모자를 위해 인물을 그릴 때도 있어요.”

‘Way to the beach’, 84.1×118.9cm, 2017

다양한 컬러와 대상을 활용하는 그에게 디지털 방식은 꽤 효율적이다. “원래 수작업도 즐겨 했었는데, 아무래도 디테일이 많은 작업을 하다 보니 ‘Ctrl+Z(실행취소)’가 있어야 훨씬 편하더라고요. 컬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빠른 수정도 가능하니까요.” 대학 시절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애니메이션 작업도 병행한다. “한 장짜리 캐릭터를 만들다 보면 ‘얘가 움직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그림이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거든요. 그러다가도 움직이는 캐릭터를 그리면 한 장에 모든 걸 밀어 넣고 싶기도 해요.”

‘A Girl in a Flower Cap’, 50x50cm, 2017
A Girl in a Sun Cap, 50x50cm, 2017

그의 캐릭터는 대학 졸업작품이었던 애니메이션 ‘Melting in You’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몰랑몰랑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을 캐릭터 속에 투영했다.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의 사랑이 두근거리면서도 포근하고, 함께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들어요. 성인의 사랑은 로맨틱하고 섹시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감정과는 아주 달랐어요. 그래서 그 감정을 시각화해 둥글둥글한 캐릭터로 표현했어요.”

‘A Surfing Girl’, 30x30cm, 2016

최근에 그리고 있는 캐릭터도 ‘Melting in You’에서의 모습과 닮았다. 탄력 있는 곡선을 좋아하는 그는 작품 속에 ‘뚠뚠이’를 등장시킨다. “이것도 그냥 타고난 취향이에요. 사람 말고도 살찐 동물이나 슬라임처럼 부피감이 있는 것들에 애정을 느껴요. 오동통한 것들은 왠지 더 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렇다면 왜 하필 여성의 몸일까? 페미니즘의 관점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여성의 몸을 자주 다루다 보니 작가는 이와 관련된 질문을 종종 받는다. “깊이 고민해본 후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모든 몸은 그 자체로 예뻐요. 관객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뚠뚠이’의 매력이 돋보이도록 그가 그림을 그릴 때 주력하는 부분은 그림자다. “곡선만으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해요. 들어간 부분은 그림자로 확실히 눌러줘야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강조되고, 평면에서도 볼륨을 살릴 수 있거든요.”

‘3faces’, 118.9×84.1cm, 2017

체형은 비슷하지만 각 캐릭터의 스타일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저 자신을 캐릭터에 녹여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이게 나야’라고 규정하지 않아요. 피부색이 제각각인 것도 다양한 친구들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선글라스나 이어링을 비롯한 액세서리, 입고 있는 옷 등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스타일을 기억해두고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꾸민다. “평소에는 오늘보다 더 화려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에요. 옷장을 열어보면 옷이 너무 각양각색이라 일부러 무채색의 무난한 옷을 사들이기도 해요. 그런데도 ‘이것까지는 못하겠다’라고 생각했던 스타일이 있으면 그런 걸 캐릭터에게 입히는 거죠.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페스티벌에 가는 사람들의 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드는데, 평상시에도 페스티벌에 온 것처럼 당당히 꾸미고 다니는 친구들을 그리는 식이에요.”

‘Jam Jam’, 50x50cm, 2017

그렇게 탄생한 개성 넘치는 작품은 굉장히 넓은 분야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갤러리, 바와 카페까지 공간을 가리지 않고 그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뮤지션을 위한 아트워크 또한 서울문의 <아쿠아>와 <해 뜰 때까지>, 엑소의 <Power (Remixes)>을 포함한 앨범 커버, 시와야마 리나의 투어 포스터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마드리드의 지하철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와 국제선에 해당하는 8호선을 소개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했을 정도. 한 달쯤 전에는 휘슬러와 협업해 부엌의 판타지에 대한 뮤직비디오 ‘Chop Chop’을 선보였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통통 튀고 발랄하면서도 위트 있는 장면을 표현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지금과 같은 캐릭터를 볼 수 있을까? 그는 조금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요즘에는 동양화, 특히 가죽을 붓처럼 만들어 글씨를 쓰고 주변에 동식물이나 문양 등을 그려 넣는 혁필화에 관심이 많아요. 얼마 전 뉴욕을 여행하다가 <겨울왕국>을 혁필화로 그린 작품을 봤는데, 이런 방식으로 디즈니 성을 그리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지난 3월 말 김혜림 작가와 함께 열었던 <알랄-낏(I Like It)>전에서도 그는 동양의 병풍에 자신의 작업을 프린트해 붙였다. “제목처럼 ‘취향의 무릉도원’을 표현한 전시였어요. 전통 방식을 따른 건 아니었지만, 묘하고 신비로운 동양의 느낌이 잘 묻어나온 것 같아 가장 재미있었던 작업 중 하나예요.”

‘Surf in the Wave01’, 84.1×118.9cm, 2017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서인지 작가는 꾸준히 자신의 취향을 고집한다. 그리고 그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길 기대한다. “‘어, 특이한 컬러를 쓰셨네요?’ ‘여자를 이렇게 그리셨네요? 보통은 안 그러는데’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 가장 뿌듯해요. 저의 취향을 집약한 작품이 어떤 틀을 깰 수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 작품을 마주했을 때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면 저도 행복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만 그리는 그는 자신의 작업을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I like it!”

Credit

  • 에디터 김선희
  • 포토그래퍼 이창민
  • 아트워크 서인지
  • 영상출처 유튜브 'Fissle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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