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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난 안 미안해.”

문화비평가 록산 게이는 진실을 혼자 간직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동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비교적 ‘친해지기 쉬운’ 문화비평가 록산 게이를 만났다. 성희롱에 둔감한 사회를 당당하게 비판하고, 대의를 위한 발언이라면 “까짓거. 좀 무서우면 어때”라며 용감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이다. 대중문화와 정치, 철학을 가장 영리하게 연결할 줄 아는 그녀를 좀 더 빠르고 쉽게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읽기 전 게이가 극찬한 미국 NBC 드라마 <로앤 오더: 성범죄전담반>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록산 게이의 집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다. 그녀는 흰색 대리석이 깔린 부엌에서 임스 스타일의 스툴에 앉아있다. 집 곳곳에는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이 장착돼 있고 게이는 이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고심하며 음악을 고르는 중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스피커에요.” 비욘세의 앨범 <레모네이드 Lemonade> 중 ‘홀드 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게이는 비욘세의 열혈 팬이다. 지난 9월에 패서디나 로즈볼에서 열렸던 콘서트 ‘카터스 온 런’에 대한 소감을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남겼을 정도니 말이다. 파란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게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플레이보이>의 포토그래퍼 그리고 나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중이다. 꽤나 수다스럽지만 여유가 넘치는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위트와 풍자를 녹일 줄 아는 사람이다. 올해로 44살이 된 칼럼니스트의 굉장히 외향적인 면모라 할 수 있다. 며칠 전 게이와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보다 내성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나를 위해 다정하게 문을 열어주었고 깔끔하게 정리된 서재로 안내했다. 우리는 햇빛이 비치는 차양 아래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첫 주제는 테이블 위에 놓인 존 브랜치의 책 <마지막 카우보이들 The last Cowboys>에 대해서였다.

게이는 짧은 말에도 대답과 미소를 지으며 귀 기울였다. 저널리스트들에게 속내를 밝히지 않는 테크닉을 연마한 걸까? 아니면 원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일까? 지난 몇 년간 게이는 성폭력, 미투(#Metoo) 운동, 총기 규제, 인종차별 등 사회 이슈를 다루는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권, 위선, 불평등에 대해 비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트위터에서 53만 명의 팔로워가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장본인이다. 출판 기념 이벤트라도 열리면 수만 명의 팬이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줄을 선다. 이 정도면 의견을 드러내는 일이 지칠 만도 하다. 또 자신의 말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걸지도 모른다. “저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어요. 결점도 있고 보완이 필요한 한 사람이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는 ‘사람’이에요.”

“영화배우 루이스 C.K 같은 공인은 성폭행 혐의로 위신은 추락했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는 ‘주목 받고 싶은 게 아니냐’는 허무맹랑한 비난을 견뎌야 했다. 정의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이는 2010년 독립적인 블로그에서 활동하는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소설가로 먼저 데뷔했다. 유년 시절에는 주로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지냈으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덕분에 전 세계 곳곳을 많이 돌아다녔다. 자주 전학을 다녔고 아버지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오마하로 돌아왔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혀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과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 덕분에 ‘스토리텔링’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스토리텔링은 무려 4살 때부터 메모장에 짧은 이야기를 써 내려 갔던 그녀의 글 쓰는 재주를 말한다. 이런 열정으로 그는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인디애나에 위치한 퍼듀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그가 2011년 온라인 문학 잡지 <더 럼퍼스>에 기고한 후부터 소설뿐만 아니라 그녀의 에세이와 논문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필집 <성폭행에 대한 경솔한 언어 The Carless Language of Sexual Violence>에서 게이는 피해자가 겪은 사건보다 가해자의 실패한 인생에 초점을 맞추는 <뉴욕 타임스> 기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해당 기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이 지역이 망해가고 있다’라는 식의 내용이었어요. ‘뭐? 지역이 망해가? 그보다 피해자 소녀의 인생이 더 망가졌을 텐데!’라는 탄식 밖에 나오지 않았죠. 몹시 화가 난 상태에서 2시간 만에 이 글을 썼어요.”

게이의 목소리는 사회가 성폭력과 같은 잔인한 현실로부터 무뎌졌고, 해당 기자가 진실로부터 거리를 두었음을 고발했다. 그녀의 에세이는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주요 신문사가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는 잘못된 방식에 대해 공론화할 수 있었다. 거침 없고 예리한 문화 비평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힌 순간이었다. “비로소 커리어가 시작된 때였어요. 이후 제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저는 계속해서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었죠.” 결국 게이의 글은 영국 대표적 신문 <타임스>에 실리게 되었고 연재한 글을 모아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펴냈다. 출간하자마자 이 책은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갔고 마블 코믹스의 <블랙 펜서: 월드 오브 와칸다>를 공동 집필했으며 2017년에는 회고록 <헝거>, 단편 소설 <어려운 여자들>을 출간했다. 2018년에는 <미국 최고의 단편집 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 <그리 나쁘지 않다: 강간 문화에 대한 보고서 Not That Bad: Dispatches From Rape Culture>를 썼으며 출판 플랫폼 ‘미디엄’을 통해 에세이 <다루기 힘든 몸 Unruly Bodies>을 연재했다.

줄줄이 언급한 저서만 봐도 게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글을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집필 외에 강연도 하는데, 2018년 한 해 동안 진행했던 강의만 해도 무려 58개다. 펜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글도 훌륭해야 한다. 게이는 영문학과 교수답게 요점을 간결하게 정리한, 예리한 지적까지 빼놓지 않은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또한, 흑인 여성이자 양성애자이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뚱뚱한 여성’이기에 받는 고통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로 쓴다.  

최근 그는 <타임스>에 미투 운동에 관한 다양한 글을 선보였다. 내용은 주로 이렇다. 많은 사람이 피해자보다 피의자의 상황을 염려한다는 것. 2018년 8월 29일 자 ‘루이스 C.K.와 정의를 마음대로 이용하는 남성들’이라는 기고에서 “영화배우 루이스 C.K 같은 공인은 성폭행 혐의로 위신은 추락했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는 ‘주목 받고 싶은 게 아니냐’는 허무맹랑한 비난을 견뎌야 했다. 정의는 어디에도 없었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러한 주장은 2018년 10월 5일 미연방 대법관 지명자 브렛 케버노의 청문회에 관한 글에서 이어졌다. “남성들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브렛 케버노의 성폭행 기도를 폭로한 크리스틴 포드의 증언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법정은 오히려 남성 피의자에게 더 관대했다.

방송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존 호켄베리가 성희롱 혐의를 받은 후 잡지 <하퍼스>에 기고한 글을 보면, 지나치게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 전 CBS 라디오 진행자 지안 고메시의 미국 서평 전문 블로그 <뉴욕 리뷰 오브 북>에 게재한 에세이에 대해서도 “해시태그로 점철된 반성의 글은 자신이 마치 오해받는 영웅이라도 된 양 포장했다”고 비판했으며, 캐버노가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동안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녀석”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게이의 섬세한 분석과 비판은 항상 <로앤 오더: 성범죄전담반>의 명상록으로 시작한다. 정치와 대중문화를 이토록 잘 연결하는 비평가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그는 “그저 최대한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남자는 다른 남자의 말을 들어요. 여성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죠. 이 점은 꽤 명백한 사실이에요. 따라서 남성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그거 알아? 이 행동은 지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싶다면 세상 밖에 나와선 안 돼’라고 말해야 해요. 남성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게이는 의견이 명확하기에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과도 자주 부딪힌다. 대부분 트위터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자신의 프로필에 쓰인 문구 “당신이 박수를 치면 나도 박수로 돌려준다.”처럼 주저 없이 응답한다. 게이의 피드를 둘러보면 그녀가 트위터에서 악명 높은 ‘무례한 말투’를 오히려 즐긴다는 걸 알 수 있다. “대체로 재미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요. 특히 인터넷 트롤들과의 소통을 즐기죠. 그건 정말 ‘재미’로요. 스트레스 해소용이랄까요? 지금 네가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해? 다음에 벌어질 사건이 무엇이든 네게 일어날 일이야.”

게이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 거의 후회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긴 했지만, 나는 지금 게이가 논평을 모조리 외운 후 녹음기에 대고 암기한 것을 듣는 기분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언변은 너무나 논리정연하고 깔끔하다. “사람들은 본인의 경험대로 제 글을 받아들일 거예요. 의견을 말한다는 것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하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후회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게이는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딱 한 번 그런 적 있어요. 상황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글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가장 후회하는 일은 2016년 대통령 선거 때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글을 더 많이 쓰지 못했다는 것이죠.” 당시에 게이는 그런 행동이 위험하다고 느꼈다. 힐러리는 물론, 힐러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다. “저는 정말로 힐러리가 뛰어난 후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팽배했고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만 해도 여러 사람이 반발했죠. 물론 힐러리에 대한 글을 쓰려고는 했지만 당시 상황에 압도당한 거예요. 저는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게이는 두 번 다시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에 전해야 할 말은 꼭 할 겁니다. 조금 무섭고 불편하게 살죠 뭐.”

“세상에 전해야 할 말은 꼭 할 겁니다. 조금 무섭고 불편하게 살죠, 뭐.”

게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특히 정치 성향에 대해 따르지만, 깊은 내용이 많은 그녀의 글 역시 좋아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쓴 글은 게이 자신에 관한 얘기다. 자신의 과거와 마음속 가장 어두운 부분을 공개적으로 파헤친 것이다. 회고록 <헝거>는 게이가 12살에 당했던 집단 성폭행 사건을 고백한 가슴 아픈 글이다. 자신의 외모를 통제하기 위해서 음식을 수단으로 이용했던 일을 써 내려갔다. “제가 필요한 몸으로 만들어야만 했어요. 저를 배신했던 작고 연약한 돛단배가 아닌 안전한 항구가 되길 바랐죠.” 이 책을 출간할 당시 게이는 집단 성폭행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써야만 할 것 같았다’고 강조했다. “굉장히 꺼려졌어요. 아픈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지나치게 노출하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됐죠. 하지만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 ‘뚱뚱함’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이런 소재로 책을 쓰고 싶었어요. 살 빼라는 책 말고요.”

영화배우 앰버 탐블린의 말에 따르면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게이의 글이 팬들을 더욱 열성적으로 만든다고 했다. 탐블린은 게이와 함께 ‘페미니스트 AF’라는 독서 모임을 추진하고 있으며, 게이가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에게선 볼 수 없는 고도의 지식과 솔직함을 겸비한다고 칭찬했다. 더불어 학자들의 권위로 쌓아 올린 그 ‘상아탑’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몇 안 되는 지식인이라고 말했다. “게이는 교수예요. 사회적 지위가 굉장히 높은 세계에서 왔죠. 그 정도의 학식이 있는 여성이라면 다른 사람을 깔볼 거라고 믿어왔어요. 하지만 게이의 말과 글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죠.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는 지금 진짜 재미있고 똑똑한, 정말로 대단한 여성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네. 엄청 많이 배우고 있어’라는 느낌을 받게 돼요.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뒤로는 정말로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신선해요.”

게이는 위험을 무릎 쓰고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특히 대의를 위해 진실을 밝혀도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엔 더더욱 그렇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여성과 소외된 사람들이 있지만, 대의는 쉽게 찾아오지 않아요. 진실을 밝히는 건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죠.”

그녀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변화를 주도하는 남성이 지금보다 많아지는 것이다. “남자는 다른 남자의 말을 들어요. 여성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죠. 이 점은 꽤 명백한 사실이에요. 따라서 남성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그거 알아? 이 행동은 지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싶다면 세상 밖에 나와선 안 돼’라고 말해야 해요. 남성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다시 비욘세의 <레모네이드> 트랙이 촬영장 안을 가득 메웠다. 게이는 헤어 스타일과 메이크업 준비를 모두 마쳤고 여전히 촬영팀에게 농담을 던지는 중이다. 다음 트랙이 흘러나온다. 반복되는 비트를 들으니 수록곡 ‘Sorry’임을 알아챌 수 있다. 곧 코러스 부분이 시작됐고, 고통, 분노, 유머, 혼란이 섞인 모든 진실을 혼자 간직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 대한 게이의 답변처럼 들렸다.

“Sorry, I ain’t sorry / Sorry, I ain’t sorry / I ain’t sorry / No no, hell nah 난 안 미안해 / 난 안 미안해 / 미안하기는, 전혀”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포토그래퍼 Ryan Pfluger
  • Jessica P.Ogilvie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