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음모론자 신제현

썩지 않는 비누의 실체나 인류 살상을 목표로 하는 무기 공모전이 있다는 사실까지. 그의 의심은 층위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작품 ‘발화하는 단어들 Ⅱ 몸의 사전’ 속에 직접 들어간 신제현 작가.

혹시 유리에 묻은 초콜릿을 에로틱하게 혀로 핥던 그 작가를 기억하는지? 도발적인 작업으로 ‘예술계의 사이코패스’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가 바로 신제현이다. 그를 가장 쉽게 소개하면 지난 2014년 아트 서바이벌 TV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의 대상 수상자라는 것이다. 당시 종영할 무렵 그는 상금 1억 원을 받고 “우승한 사람이 빌빌대면 그것도 민폐다 열심히 하겠다. 한국 현대 미술이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길 원한다”라며 꽤 멋진 쾌재를 부른 바 있다.

“저는 주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찾기 힘든 사회의 부정적 측면이나 폭력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면서 불편하게 하는 전략을 사용해요.”

하지만 방송은 방송일 뿐, 그의 어느 한 부분만 부각된 건 사실이다. 오히려 모 평론가가 그의 작가론에 쓴 ‘일상의 음모론자’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신제현의 작업은 의심과 음모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플레이보이>라고 해서 음모가 그 음모일 거라는 오해는 금물이다. 그는 새우깡의 정량을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오랜 시간 썩지 않는 비누의 실체나 인류 살상을 목표로 하는 무기 공모전이 있다는 사실, 피자를 영어로 주문하면 할인이 된다는 억울한 사건까지, 층위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의심을 품는다. “나쁜 목적으로 몰래 흉악한 일을 꾸민다”는 음모의 사전적 정의와는 다르게 그의 음모는 구체적 통계 자료와 객관적 리서치를 수반한다. 오히려 그 많고 많은 자료를 어디서, 어떻게 찾았는지에 대한 음모론을 꾀하고 싶을 정도다.  

6월 15일까지 마포구에 위치한 씨알콜렉티브에서 열리는 신제현의 <텍스트스케이프>展 전경

최근 열린 신제현의 개인전 <텍스트스케이프 Textscape>는 모두가 좋아하는 달콤한 초콜릿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다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첫 번째 작품 ‘말할 수 없는’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남녀 모델은 옷을 걸치지 않은 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에 혀로 글씨를 쓴다. 쇄골이나 얼굴에 기이한 초콜릿 글자가 생긴다. 관람자는 누군가의 벗은 몸에 혀를 댄다는 에로틱한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X발 새끼’, ‘발 냄새 나’, ‘X아재’ 등 단어에서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연인이나 친구인 관계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한 말을 쓰는 거예요.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간에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죠.”

“연인이나 친구인 관계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한 말을 쓰는 거예요.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간에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죠.”

두 번째 작품 ‘몸의 사전’은 스케일과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전시장 한 면을 꽉 채운 세 개의 캔버스에는 각각 몸의 일부분이 등장하고 붉은 혀는 부지런히 단어를 쓴다. “‘팔’, ‘다리’, ‘발목’ 같은 단어에서 시작해 ‘딸’, ‘여성’, ‘아버지’ 같은 사회적 관계를 지칭하는 단어가 나와요. 그다음에는 ‘타자’, ‘마음’ 같은 형이상학적인 단어를 쓰죠. 매우 구체적인 신체 부위에서 점점 추상적인 단어로 바뀌는데 이는 인간의 몸을 지칭하는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방식이 사람을 오브제 다루듯 한다는 점을 비판한 거예요.” 작품 바로 앞에는 거대하고 얕은 수조를 설치했는데 관객이 직접 들어갈 수도 있다. “언뜻 보면 마치 거울처럼 작품을 비추고 있지만, 누군가가 들어가 파문을 만들면 이미지는 왜곡돼요. 이는 언어가 실체를 완벽히 대변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서로를 핥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은 어떻게 섭외했을까? 모델일까?’ 작가 역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모델 섭외와 촬영 과정에 대해 얘기했다. “갑자기 촬영 당일 못하겠다는 모델도 있었어요. 촬영 자체도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초콜릿이 딱딱하게 굳어요. 너무 묽으면 흘러내리기 일쑤였죠. 그 타이밍을 맞추는 게 힘들었어요. 하루 종일 50번씩 촬영해도 쓸 수 있는 컷은 4~5개 뿐이었어요.”

작품 ‘맞춤형 포르노그라피 제작 방법론’의 이미지

하지만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는 일이 신제현에겐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는 아무리 어려운 주제라도 응당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정액으로 비누를 만들었던 프로젝트나 1인용 포르노를 주문제작 하는 메뉴얼이 그렇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지 않나? 정액은 어떻게 구할 것이며 개인의 성적 판타지는 어떻게 실현할까?

러브 솝 프로젝트(LSP), 1등급이 매겨진 정액 비누

러브 솝 프로젝트(Love Soap Project)의 앞글자를 딴 ‘LSP 프로젝트’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남자들을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분류하는 표가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각각의 등급에 맞는 남성의 정액으로 비누를 만든 것이다. 그의 리서치에 따르면 비누에는 상상 이상으로 더러운 화학물질이 들어간다. 반대로 가장 좋은 비누의 재료가 정액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단다. 역시나 작업의 기저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결혼정보업체의 천박한 시스템과 값싸고 질 낮은 재료로 비누를 만드는 기업의 시스템, 이를 용인하는 정부 시스템이 과연 정액으로 만든 비누보다 더 고귀한지, 더러운지 묻고 싶었어요” 물론 남성의 등급에 따라 비누의 효과도 달라진다는 말은 거짓이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후 실제로 비누가 판매되었다.

주문 제작 방식의 포르노그라피 제작 메뉴얼 이미지

맞춤형 포르노 작업은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만 넘쳐난다는 사회적 문제를 꼬집기 위한 대안적 프로젝트다. “왜 인구의 반은 여성인데 남성을 위한 포르노만 있냐는 거죠”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만드는 이 메뉴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뷰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애인이 파트너를 위해 인터뷰를 하거나 작가가 직접 의뢰인과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인터뷰는 보통 5시간 정도 하는데 많은 의뢰인이 화장실도 가지 않고 대화에 완전히 몰입하시더라고요.

“왜 인구의 반은 여성인데 남성을 위한 포르노만 있냐는 거죠”

여성이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자유롭게 얘기할 기회도 적을 뿐더러 제가 그 이상의 솔루션을 제시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신제현 작가는 그들을 위한 포르노를 만들어주기 위해 두 달 동안 국어사전에서 야한 단어만 찾아내거나 길 가던 멋진 남자의 날숨을 채집하기도 했다. 주로 지인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이 대기하기도 했다.  

페미니즘 옷 만들기 워크숍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키워드를 하나 꼽자면 ‘인지 부조화’다. 신념과 실제로 보는 것 간에 불일치나 비일관성이 있을 때 생기는 심리 현상을 일컫는다. “저는 주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찾기 힘든 사회의 부정적 측면이나 폭력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면서 불편하게 하는 전략을 사용해요. ‘우리는 왜 이렇게 살까?’, ‘누가 이렇게 살게 만들었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거죠.”

저는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살까?’, ‘누가 이렇게 살게 만들었을까?’를 고민하게 만들어요.

의심과 음모가 곧 새로운 작품의 시발점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지금, 가장 궁금한 질문을 할 때가 찾아왔다. “요즘 파고 있는 음모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이라 나중에 작업을 통해 발표할게요” 지금으로선 목 빼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사회 속에서 곪은 문제를 또 한 번 통쾌하게 터뜨릴 거라는 것이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포토그래퍼 임성필
  • 사진제공 신제현(작품 이미지)
  • 장소 씨알콜렉티브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