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보이 합본호

누드와 직업 2편 – 김태일, 민조킹, 정규리

누드란 뭘까? 우리는 누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드'를 표현하는 다섯 명의 아티스트에게 물었다.

김태일 누드를 그리는 오일 페인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다 누드를 그리는 오일 페인터가 됐다. 누드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글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많이 그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형태를 파괴하거나 의도적인 스토리를 넣어 그리는 것이 식상해졌다. 그래서 뒤늦게 오일 페인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국영수처럼 꼭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이 몇 개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누드를 접했다. 누드모델을 앞에 두고 장시간 관찰하고, 내 식대로 표현하는 일이 꽤 흥미로웠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오일 페인터, 그것도 누드를 그리는 오일 페인터는 흔치 않다.
그래서 더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소재는 잘 다루는 작가가 많은데, 유독 누드를 다루는 작가는 드물다. 오히려 훨씬 이전 세대에서는 활발했던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작업을 즐기나?
누드를 주로 그리지만, 내가 그리는 그림의 큰 개념은 사람이다. 직접적인 것보다는 환상, 기억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걸 표현하려 한다.

작업할 때 모델과 대화나 교감을 많이 하는 편인가?
나는 실제 모델을 앞에 두고 작업하지 않는 편이다. 몇 장의 사진을 보면서 혼자 작업한다.

사진은 입체적으로 볼 수 없다.
실제로 보면서 작업하는 건 예전에 연습을 많이 해서 괜찮다. 그것보다 나는 오히려 실제 모델이 앞에 있는 게 방해 요소가 된다. 예를 들면, 몽환적 느낌으로 작업하고 싶은데, 모르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너무 현실의 일이 되지 않나. 휴식 시간도 체크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그러다 보니 집중하기 힘들더라. 그래서 사진으로 대체한다. 그것도 흑백사진만. 컬러사진도 내게는 방해 요소가 되고, 선입견이 생기더라.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여전히 국내에서는 누드 작품을 대중이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페인팅은 더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누드 작품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보여주는 방식이나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전문성을 지닌 갤러리가 드물다는 거다. 콘텐츠가 확실한 갤러리가 많아지면 대중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생각한다. 누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그냥 영화 한 편 본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김태일 | 자신의 그림에 부가적인 설명이나 수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일 페인팅 작품의 제목은 ‘Smorzndo’.
민조킹 일상적 누드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일반 대중이 편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누드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 같다. 일명 ‘짤’로 돌아다니는 누드 그림.
일상성 때문인 것 같다.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연애도 하는 것처럼 스킨십이나 섹스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그런 걸 거부감 없는 형태로 그리려고 한다. 가볍고, 귀여우면서, 위트 있는 그림을 추구한다.

야그림이라는 별칭이 있던데?
내가 만든 말은 아니고, 어떤 분이 댓글에 사용한 것이 퍼져서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마음에 든다. 내 그림에 찰떡같이 잘 붙는 단어다.

야그림, 그러니까 야한 그림인데 유독 19금 딱지가 붙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다들 야하지만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공감된다는 반응도 많고.

주로 혼자보다 둘이 나오는 그림이 많다. 관계와 사랑에 관한 스토리도 많고.
누드를 많이 그리지만, 그 뿌리는 사랑에서 시작된 거다. 그런 주제를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누구나 관심을 두는 이야기니까.

누드를 그리면서 생각한 ‘누드’의 기준은 무엇인가?
남자 가슴이 나오는 건 누드가 아니고, 여자 가슴이 노출되면 누드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부분이 노출된 게 ‘누드’ 아닐까? 사실 나는 사람들에게 기준을 맡기자는 생각이다.

누드를 그린다는 게 특별한 장치가 없어 어려우면서, 동시에 진부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는 없나?
섹스와 관련된 그림이 많은데, 자세가 수천 가지는 아니니까 언젠가 진부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래서 색다른 재미 요소를 넣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부여해보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마주하는 여러 일과 달라지는 시선이 내 그림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거라 생각한다.

민조킹 | 누구나 좋아하는 ‘야그림’의 주인공, 민조킹은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일러스트를 그린다.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포근하고, 유머러스하면서, 공감되는 감정이 담겨있다. 상단은 그중 작가가 고른 두 작품.
정규리 누드모델이자 여성학을 공부하는 학생

어떻게 누드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나?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여성 노동의 성매매적 요소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여기에 좀 더 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위해 2013년 여름부터 시작했다.

실제로 겪은 누드모델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
생각보다 누드가 쓰이는 곳이 많다. 미술이나 사진 작업 외에 의료상의 촬영이나 단편영화의 단역, 오페라 공연에 섭외된 사람도 있다. 시작하기 전에는 성적인 요소가 있어 성희롱이나 추행에 노출된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럴 겨를조차 없는 육체노동이었다.

누드모델에 대한 관심은 언제 처음 생겼나?
대학교 2학년 때 사귀던 언니의 라이브 공연에서 미술 퍼포먼스를 본 적이 있다. 그때 퍼포먼스를 했던 사람이 누드모델 일을 한다고 해서 관심이 생겼다. 전부터 누디스트 문화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관심을 갖고, 일을 하면서 ‘누드’라는 단어에 대해 나름의 정의가 내려졌나?
존 버거의 말을 빌리면, ‘누드는 복장의 한 형식’이다. 그런데 정의를 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누드라는 단어는 분명히 사전에 정의되어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누드’ 하면 젊은 여성의 신체를 떠올린다. 야하다는 인식과 함께.


왜 사람들이 누드를 야하다고 인식하고, 젊은 여성의 신체를 먼저 떠올릴까?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이용하고, 반복적으로 주입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서양화에 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거나 음란물로 소개한 역사가 있지 않나. 재미있는 건 원래 누드모델은 남자의 영역이었다는 거다. 누드는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에서 생긴 장르인데, 그때만 해도 종교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주로 남자의 신체를 이용해 신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그런데 근대 이후 등장한 서양화에 여성이 등장하면서 지금의 인식을 만든 거다.

지금의 인식 속에서 누드모델 일을 하는 젊은 여성으로 사는 건 어떤 건가? 그리고 당신은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이다. 언제나 선입견이나 불편한 시선과 마주해야 할 것 같은데.
좋다. 레즈비언이나 누드모델이어서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여전히 차별과 혐오가 넘치는 사회라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다. 내가 나서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나 싶다가도 일단 내 삶부터 잘 꾸리고, 주변부터 바꿔나가자는 생각에 참곤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혹은 서울에서 무엇보다 ‘누디’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시선의 문제는 평등한 것 같지만, 사실 낙차가 존재한다. 남성이 여성을 응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이런 낙차다. 예를 들어, 누드라는 단어가 쓰이는 맥락에 대해 조금 더 고려되었으면 한다. 광고나 영화, 게임 등에서 벗는 여성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생각하면서, 어떤 알몸은 너무나 불편하게 여긴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 소수자의 노출은 음란하다며 비난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열린 대중적 축제의 노출은 훨씬 심하다. 누드라는 단어는 이런 낙차를 은폐한다.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직시했으면 한다. 나는 이런 낙차를 거스르는 작업을 하고 싶다. 나에게는 페미니즘, 레즈비어니즘이 그렇기 때문이다.

정규리 | 여성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자 누드모델이다. 그녀는 누드모델이 생각보다 평범한 직업이라 말했다. 상단의 사진은 S대학 수업과 M동호회의 15분 크로키에 담긴 자신의 모습이다.

Credit

  • 에디터 강예솔
  • 포토그래퍼 박현구
플레이보이 합본호

플레이보이 합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