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 이 모아

다재다능한 이 뮤지션은 칠웨이브 장르로 성공의 정점에 섰다가 지금은 창의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탐험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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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올라가 볼래요?”라고 채즈 베어(Chaz Bear)가 내게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미소를 띄며 묻는다. 내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그의 매력이 훅 들어왔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실험적 뮤지션 토로 이 모아(Toro y Moi)로 알려진 베어는 그의 스튜디오이자 레코드 레이블 ‘컴퍼니’에서 긴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지난밤 그는 이곳에서 새벽 5시까지 새로운 음악을 프로듀싱했다. 불과 몇 시간 후 다시 출근해 <플레이보이>와의 사진과 영상 촬영, 인터뷰를 포함한 꽉 찬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했다. 이제 우리와의 일정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 (거의 저물녘이 되어가고 있다) 베어의 에너지는 약해지는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세상을 더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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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위로 손을 뻗어 공업용 파이프에 설치된 둥글고 무거운 비상용 창문을 열었다. 한 줄기의 빛이 쏟아졌고 컴퍼니 2층에 있는 녹음 스튜디오 한쪽 끝을 붉게 물들였다. 베어의 어깨보다 조금 더 넓은 문의 너비는 마치 잠수함 탈출구를 연상시킨다. 거길 통과하기 위해선 사다리를 올라타고 벽에 붙은 금속 배전함을 피해 노련하게 몸을 움직여야만 할 것 같다. 몸을 완전히 치켜 올리기 전 허공에서 다리를 코믹하게 대롱거리던 베어가 먼저 위로 사라졌다.

“안 오세요?” 그가 전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위에 뭐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음악적 거장이라 불리고 있는 베어이니 그를 따라 일몰 속으로 들어가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그의 창의적 위업은 오늘날 그를 가장 참신하고 탁월한 멀티플레이어 아티스트 중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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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캐롤라이나의 스케이터이자 부적응자였던 베어는 기숙사 방에서 제이 딜라와 판다 베어에 열광하던 모습 그대로 대중문화 씬에 토로 이 모아로 등장했다. 이제 그는 32살, 10년 차 뮤지션이다. 최면을 거는 듯한 팝 사운드와 초조하고 몽환적인 2010년 데뷔 앨범 <Causers of This>를 발매하면서 그를 추종하는 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앨범으로 그는 향수, 현실 도피, 몽롱한 체념이 특징인 새로운 장르 칠웨이브(chillwave)의 부흥기를 견인했다. 칠웨이브 장르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황이었고 실업률이 가장 높았던 2008년의 시대상에 영향을 받아 더욱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칠웨이브 스타의 인기는 2010년 초반 힙스터의 도래와 함께 강하고 빠르게 불타오르다 꺼지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토로 이 모아가 칠웨이브 장르의 조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단순히 트렌드를 좇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험을 좋아하는 기질 때문이었다. 그는 여러 스타일을 잡다하게 섞어 놓은 8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2개의 믹스 테이프, 3장의 EP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토로 이 모아는 채즈 베어에게 상상력이 아이덴티티에 중심이 되는 여러 양상 중 하나의 아티스트일 뿐이다. 그가 지금까지 이루어 낸 것들은 마치 진로검사 결과지 같다. 그는 채즈윅 브래들리 베어, 원래의 성을 적자면 채즈윅 브래들리 번딕으로,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그래픽 디자이너, 화가, 그리고 앨범커버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컴퍼니 레코드의 설립자이고 DJ, Les Sin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댄스 음악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는 트래비스 스캇, 플라잉 로터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버클리의 시장이 만든 ‘채즈 번딕의 날’의 자랑스러운 주인공이다. 자타공인 워커홀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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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일이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저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제가 재현하고자 하는 장르에서 말이죠. 이제는 창조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걸 즐기게 되었어요.”

이러한 변화는 토로 이 모아의 가장 최근 앨범 <Outer Peace>에 드러난다. 이 앨범은 감각적 전환(섹시한 R&B식 제작과 일렉트로닉 댄스 비트와 순수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에너지와 잠재력은 주변의 것들과 연결돼 있다는 베어의 자신감을 나타낸다.

다시 컴퍼니의 옥상으로 가보자. “이렇게 안개가 없는 맑은 날에는 금문교도 보여요” 베어는 안개 속을 가리키며 말한다. 내 기대와는 달리 옥상은 타르지와 스투코를 발라 만들고 병뚜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넓은 지붕은 별로 멋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붕 주변을 감싸고 있는 풍경에 압도당했다. 북동쪽으로는 폭포처럼 흐르는 버클리와 켄싱턴의 언덕들이 자리하고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며 낮아진 태양 빛을 받아 오클랜드의 거주지역은 반짝였다. 샌프란시스코의 높은 건축들은 스카이라인을 따라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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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는 12개의 스튜디오가 모여있는 산업예술단지에 있다. 그중에서도 소박한 편에 속하는 컴퍼니는 베어가 정신적, 감정적 속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급조한 대피용 섬이다. “컴퍼니에서는 오늘 같은 날이 그냥 일상적인 하루예요”라고 베어는 오늘의 꽉 찬 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정말 이 일이 좋아요. 하지만 어떤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 여기 옥상에서 생각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죠.”

최근에 들어서야 베어는 창의성을 따르는 일이 언제 포기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솔직히 3년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다시 싱글이 되기 전까지는 저만의 즐거움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그는 파트너인 사만다 비어슬리와 짧은 헤어짐에 대해 얘기했다. 현재 둘은 결혼했으며 둘 다 베어의 성을 사용하고 있다. “겪어내야만 해요. 2017년에 <Boo Boo>를 제작할 때 점점 우울해지고 있었죠. 뇌가 멈추지 않는 것 같았고 컴퓨터 앞을 도저히 떠날 수 없었어요. 마치 ‘머릿속에 있는 걸 디자인해야 돼, 이걸 적어놔야 해, 기술적으로 구현해야 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스스로에게 일을 퍼붓기만 한 거죠. 단 하루도 자신에게 그냥 푹 쉬라는 여유를 주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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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 Boo>가 발매되는 시점에 포틀랜드에 살던 베어는 뮤지션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홍보 투어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림을 그리고 하이킹을 하고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며 그곳 예술계에 푹 파묻혔다. “제게는 저를 지원해주는 집단이 없었어요. 당신을 이해해주는 단 하나의 사람이 없을 땐 그런 무리가 꼭 필요해요. 저는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고 친구들을 사귀려고 노력했어요. 안 그러면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요.”

2017년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왔을 때 그는 공식적으로 컴퍼니 레코드를 설립했다. 토로 이 모아가 탄생한 지 10년이 지난 후, 베어는 여전히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한 레이블의 대표가 되었고 기숙사 방이 아닌 기업 인큐베이터를 운영한다. 컴퍼니에는 인쇄소와 녹음 스튜디오, 리허설 공간, 갤러리가 있는데 이는 모두 지역 아티스트에게 개방돼 있다. 이런 자원을 제공하면서 베어는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반면에 혼자서 작업하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그는 근무 시간 외에도 일하는 걸 좋아하지만 쉬는 시간은 그의 창작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작년 그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자리한 어느 작가의 오두막으로 홀연히 떠났고 그곳에서 앨범<Outer Peace>를 마무리했다. 나무 장식 판자와 벽에 걸린 소의 두개골, 고독만이 가득한 오두막집에서 그는 자유낙하 하는 기분을 느끼며 자신의 결과물을 재검토한 것이다.

 “<Outer Peace>를 작업할 때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전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앨범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만 하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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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는 컴퍼니가 예술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영감을 주었던 주변 커뮤니티를 둘러보다가 숭배의 뉘앙스를 띈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포틀랜드로부터 돌아온 이유도 친구가 이사 가면서 이 자리를 배정해줬기 때문이에요. 이곳에는 모두 상징적인 아티스트들이 있죠. 정말 멋져요.”

우리의 뒤에는 스튜디오들이 줄지어 있다. 1970년대부터 세입자였던 인쇄업자와 금속 세공인, 조각가, 화가들의 작업을 창문을 통해 슬쩍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지난 세대의 사람들이에요. 함께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이 정말 영광스럽죠. 당시 그들은 이곳으로 이주한 비트족들이었어요. 그들로 인해서 이 지역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죠.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요.”

오늘날 경쟁의 장소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베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견뎌낸 구세대의 아티스트들은 베어를 재충전해주기도 한다. 아티스트로 활동하기에 지금처럼 역설적인 순간도 없다. 기술의 발전과 스마트 기기의 보급으로 초연결 사회가 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우리는 단절된 사회에 살고 있다. 더 많은 돈이 더 적은 손에 의해서만 교환된다. 기업 권력은 상향식 혁신을 막고 주변 산업은 혼자 힘으로 자생해야 하며 서로에게 의지하여 커뮤니티를 만들도록 강요받는다.

“스스로 브랜드처럼 만들어야 해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거예요. 정말 짜증 나죠. 눈에 띄는 벤치마다 자기의 얼굴이 박힌 광고를 붙여대는 부동산 사장들과 다를 게 하나 없어요. 당신의 존재를 그런 식으로 드러낼 바에야 당신의 작업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게 낫지 않겠어요?”

베어는 그의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로부터 아주 먼 길을 걸어온 셈이다. 그와 그의 이웃 베테랑들의 포부가 무엇이든 베어는 자신이 제작하는 것만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기술을 잘 연마하기만 하면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도 말이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만 만들고 싶어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하는 행위가 여전히 가치 있겠죠.”

얼굴을 마주보는 식의 연결은 억지로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더욱 가치 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별거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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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을 지역 가게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업계를 장악하겠다는 열망이 아니에요. 단지 좋은 일을 하고 싶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한 단계씩 나아갈 거예요. 계속 그런 식으로 해왔어요. 시내에 무언가를 세운다는 식으로 접근해왔죠.”

스튜디오로 다시 내려가면서 베어는 내게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저는 지금 완전히 배고프거든요.” 우리는 식당이 문을 닫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급하게 짐을 챙겼다. 베어는 문을 잠그고 캐비닛을 닫고 장비의 전원을 끄면서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둘러본다. 그의 사무실의 무거운 철문 걸쇠가 “철컹” 소리를 내면서 닫힌다.

“젠장” 베어가 갑자기 휙 돌더니 말한다. 열쇠를 두고 나왔단다. 그의 동료는 몇 시간 전에 이미 떠났기 때문에 우리는 건물 관리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건물의 공동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 있는 작은 나무줄기에 자두가 주렁주렁 무겁게 달려 있었다.

베어는 나무에서 자두를 하나 따더니 내게 건넸다. 한 입 베어 무니 꽃 향이 나면서 꿀처럼 단맛이 느껴졌다. 흔치 않으면서도 무언가 익숙한 맛이다. 우리는 그곳에 서서 자두를 먹으며 그 부조리함에 웃어버렸다. 이 상황은 우리가 전혀 계획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저 자신을 지역 가게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업계를 장악하겠다는 열망이 아니에요. 단지 좋은 일을 하고 싶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번역 이연정
  • 포토그래퍼 Mancy Gant
  • Andrea Domanick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