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1985)

1985년, <플레이보이>는 비즈니스 혁명의 불길을 당긴 29세의 젊은 잡스와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지금부터 속속들이 캐려는 사람은 애플의 카리스마 넘치는 공동 창립자이자 회장인 스티브 잡스다. 벤처기업을 창립하는 세대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힐 만한 사람. 그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앨터스의 차고에서 시작한 소규모 사업체를 혁신적인 수십억 달러짜리 회사로 성장시켰고, 5년 만에 <포춘> 500 랭킹에 합류한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역사상 그 어떤 회사보다 빠른 성장이었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질투심 섞인 짜증을 내뱉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고작 스물아홉 살이라는 것이다.
잡스의 회사는 미국의 가정과 직장에 개인용 컴퓨터를 들여놓았다. 1976년 애플이 창설되기 이전의 컴퓨터에 대한 이미지는 SF 영화에서 ‘삐’ 소리를 내며 번뜩이는 기계 혹은 대기업과 정부기관의 굳게 닫힌 문 뒤에서 심사숙고하는 척하며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거대하면서도 죽은 듯이 조용한 메인프레임이었다. 그런데 트랜지스터와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이 연달아 개발되면서 컴퓨터의 소형화가 가능해졌고, 그 덕분에 개인도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 중반, 여러 가지 부품이 딸린 초보자용 컴퓨터 키트는 컴퓨터 덕후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는데, 이 키트는 375달러 정도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전자기술 회사와 파릇파릇한 스타트업 회사가 빼곡하게 모여 있던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밸리. 그곳에서 짓궂은 장난과 전자공학을 무척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친구가 힘을 합쳐 소형 컴퓨터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자동차 엔지니어에게 입양된 잡스는 당시 스물한 살로 리드 칼리지(Reed College)를 중퇴한 뒤 아타리(Atari)에 취직해 비디오게임을 기획하고 있었다. 스물여섯 살의 스티븐 워즈니악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휴렛패커드의 엔지니어였다. 짬이 날 때마다 컴퓨터를(실제로는 회로기판을) 뚝딱뚝딱 설계하고 제작한 두 친구는 그 기계에 애플1이라는 묘한 이름을 붙였다. 애플1의 성능은 그리 대단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장치의 주문 건수가 50건이나 쌓여 있는 걸 본 순간,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진짜 제대로 성장할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워즈니악의 관심은 주로 기술적인 분야에 있었고, 잡스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직접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두 사람은 함께 힘을 모아 키보드와 메모리(정보를 저장하는 장치)를 애플1에 덧붙였고, 워즈니악은 디스크드라이브(정보를 영구적으로 읽고 저장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비디오 단말기를 덧붙였다. 잡스는 효율적인 전력 공급 장치를 설계하고 고급스러운 케이스를 디자인하기 위해 전문가를 고용했다. 그 결과 애플2가 탄생했다.
애플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잡스의 차고(링컨 대통령이 태어난 통나무집의 실리콘밸리 버전)에서 보낸 첫해에 2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1984년에는 14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두 창립자는 억만장자이자 민중의 영웅이 됐다. 대학으로 돌아가고 음악 페스티벌을 후원하기 위해 1979년에 사실상 애플을 떠난 워즈니악은 초기 기술 분야에서 창조적 기여를 한 이후 회사를 위해 한 일이 거의 없었다. 회사를 경영하는 일에 계속 머무른 사람은 잡스였다. 그는 미국의 가정과 학교에 있는 컴퓨터 중 70%가 애플 마크를 달고 있는 걸 발견했고,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려는 애플 내부의 적대적 움직임을 방어했다. 그리고 이건 그가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건데, 무자비하기로 유명한 400억 달러 규모의 거물 빅 블루(Big Blue, IBM의 별명-옮긴이)가 개인용 컴퓨터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결정하자 IBM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애플 주식이 대부분인 순자산 가치 4억5000만 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잡스는 <포브스>가 발표한 ‘가장 부유한 미국인’ 명단에 오른 가장 젊은 인물이라는 지위를 지금까지 5년 넘게 지키고 있다(<포브스>가 뽑은 ‘미국인 부자 100명 중 자수성가한 7인’ 중 하나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83년, 힘든 시기에 애플 주가가 폭락하면서 최근에 그의 서류상 재산이 2억5000만 달러 가까이 날아갔으니 현재 순자산은 2억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잡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가 하는 말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이 아니기에 특히 그렇다. 그는 실제로 사교 생활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개인용 컴퓨터(가급적이면 애플이 제조한 컴퓨터)를 통한 구원’이라는 복음을 설교하는 사명을 띤 인물이다. 인상 좋은 상품 선전 요원인 잡스는 그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할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는 컴퓨터가 가전제품처럼 보편화되고 컴퓨터가 미칠 영향이 전화기나 내연기관만큼 혁명적일 시대를 달콤한 말로 묘사한다. 시끄럽게 홍보하는 내용의 신빙성 여부는 듣는 사람이 판단할 일이지만, 현재 미국 곳곳의 교실과 가정집 거실, 농장, 미사일 추적 기지와 중소기업 사무실에 200만 대가 넘는 애플 컴퓨터가 놓여 있는 건 사실이다.
애플은 광대한 컴퓨터 시장과 함께 치열한 경쟁 분위기도 창출해냈다.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수십 개의 기업이 애플이 장악한 시장을 차지하려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중 IBM PC만큼 성공을 거둔 제품은 없었다. IBM PC는 새로운 표준을 확립하면서 시장의 28%를 재빨리 거머쥐었다. 시장점유율이 하락하자, 애플은 리사(the Lisa)와 애플3라는 신형 컴퓨터 2종을 선보였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1983년 중반, 여러 애널리스트는 과연 애플이 살아남을지 의심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사내 분쟁에 휩싸인 와중에도, 잡스는 철두철미하게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던 애플의 특정 사업부를 장악했다. 잡스는 그 컴퓨터를 애플의 최고이자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결코 편협한 시각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실패할 경우, IBM은 홀로 남아 산업을 장악할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산업을 파괴할 겁니다.” 3년 후, 2000만 달러 규모의 홍보 캠페인과 함께 매킨토시가 세상에 공개됐다. ‘우리 중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컴퓨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매킨토시는 사용자가 컴퓨터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찬사를 받았다. 백지처럼 하얀 스크린,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작은 아이콘,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쓰이는 ‘마우스'(상단에 버튼이 있는 바퀴 달린 소형 박스)가 장착된 맥(the Mac)은 사용자를 덜 겁먹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뛰어난 컴퓨터였다. 하지만 사업용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한 ‘장난감’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애플은 매달 4만 대의 매킨토시를 생산하느라 정신이 없고, 올해에는 그 수치를 2배로 늘릴 계획이다.

1960년대의 이상주의와 1980년대의 실용주의가 뒤섞인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청바지와 낡은 운동화 차림의 경영인 잡스는 존경의 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이다.

잡스는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선지자거나, 혹은 믿을 수 없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해주는 마케팅 수완을 가진 기회주의자다. 1960년대의 이상주의와 1980년대의 실용주의가 뒤섞인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청바지와 낡은 운동화 차림의 경영인 잡스는 존경의 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이다. 한 엔지니어는 “잡스는 내가 하루에 20시간을 일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마이클 모리츠가 <작은 왕국(The Little Kingdom)>에 언급했듯, 어제는 칭찬하더니 오늘은 경멸의 목소리를 내뱉는 잡스의 변덕은 매킨토시 팀이 정신줄을 놓는 지경에까지 몰고 갔다. 잡스는 애플의 경영 책임직을 맡는 걸 주저하던 펩시콜라 대표 존 스컬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 손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왔는데도, 어린애한테 계속 설탕물이나 팔 작정인가요?” 이후 스컬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플레이보이>는 컴퓨터 혁명의 젊은(잡스는 다음 달에 30세가 된다) 아버지의 인생과 기술을 탐구하기 위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셰프(David Sheff)를 실리콘밸리의 한복판에 파견했다. 다음은 그가 보낸 보고서다.

이 ‘인터뷰’는 내가 옷을 지나치게 잘 빼입고 진행한,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인터뷰였다. 격식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게 애플의 기업 문화라고 들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10억 달러짜리 기업의 우두머리를 인터뷰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와의 첫 만남에 넥타이를 매고 갔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사무실에서 잡스를 만났을 때, 그는 플란넬 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별다른 위화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애플의 새 대표인 존 스컬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스컬리는 티셔츠 차림이었다.
“애플의 사무실은 대다수 직장의 사무실과는 확실히 달랐다. 비디오게임기가 굉장히 많았고, 사용 중인 탁구대가 모여 있었으며, 스피커는 롤링스톤스의 록부터 윈덤 힐의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회의실에는 다빈치와 피카소 같은 이름이 붙어 있었고, 다과실 냉장고에는 신선한 당근과 사과, 오렌지 주스가 들어 있었다(맥 팀의 한 부서에서 신선한 주스를 구입하는 데 쓰는 돈은 연간 10만 달러에 달한다).
“잡스와 사무실에서, 그리고 그가 1년에 딱 두 번 있는 휴가 기간에 찾아가는 아스펜과 소노마 헬스 스파에서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해야 하는 장소에서. 애플의 거룩한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그냥 방치하지 못하는 잡스는 IBM과 벌이는 전쟁에 대한 얘기를 엄숙하면서도 격렬하게 쏟아냈다. 그러다가도 “뛰어나다!” 또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같은 말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강조했다.
뉴욕에서 열린, 유명인사들이 참석한 어느 아이의 생일 파티에서 잡스를 만났을 때는 면담이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밤이 깊어가는 동안, 나는 잡스를 찾기 위해 파티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그를 발견했을 때, 잡스는 생일을 맞은 아홉 살 사내아이에게 캘리포니아에서 가져온 생일 선물을 주려던 참이었다. 매킨토시 컴퓨터였다. 그는 아이에게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스케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파티에 참석한 두 사람이 다가와 잡스의 어깨너머를 주시했다. 앤디 워홀이 말했다. “흐음. 이게 뭐지? 이것 좀 봐, 키스. 믿을 수가 없어!” 키스 해링이 다가갔다. 워홀과 해링은 자기들도 맥을 써보면 안 되겠냐며 잡스에게 물었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날 때, 워홀이 막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조작하고 있었다. “맙소사! 나, 동그라미 그렸어!”
더 흥미로운 광경은 파티가 끝난 후에 펼쳐졌다. 다른 손님들이 떠난 후에도 잡스는 아이에게 맥의 여러 기능을 가르쳐주느라 파티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에게 유명 아티스트보다 그 아이와 있을 때 더 행복해 보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묻죠. ‘이건 뭡니까?’ 그런데 그 아이는 이렇게 물었어요. ‘제가 이걸로 뭘 할 수 있나요?’

우리는 조지 오웰이 디스토피아의 시대라고 예견했던 1984년을 무사히 넘겼다. 컴퓨터는 세계를 장악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그걸 믿기 어렵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컴퓨터의 확산에 대한 비난 혹은 찬사를 받을 대상이 존재한다면, 컴퓨터 혁명의 젊은 아버지인 당신이야말로 유력한 후보일 것이다. 그 혁명은 당신을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당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5억 달러에 달한다. 사실인가?
사실 주가가 떨어지면서 1년 만에 2억5000만 달러가 날아갔다.(웃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웃음이 나오나?
그 사건이 내 인생을 망치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재미있지 않나? 돈과 관련된 이 사건에 쏠린 모든 시선이 재미있다. 이 사건이 지난 10년간 내게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큰 깨달음을 줬다거나 가장 가치 있었던 사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늙은이가 된 기분이 든다. 연설을 하러 방문한 대학 캠퍼스의 학생들이 내가 백만장자라는 사실에 경외심을 느낀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1960년대 직후였고, 실용적인 목적의식이라는 물결이 밀려오기 전이었다. 요즘 학생들은 이상적인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최소한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경영학 전공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철학적 이슈라면 그 어느 것에도 시간을 쓰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 불어닥친 이상주의라는 바람은 여전히 우리 등 뒤에서 불어오고, 내 또래 대다수의 머릿속에는 이상주의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컴퓨터 분야에 백만장자들이….
정확히 말하면 새파란 미치광이들이다. 나도 안다.

10년 전만 해도 차고에서 작업하던 신세인 당신과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있다. 당신들이 일으키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이 혁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100년 전에 일어난 석유화학 혁명을 토대로 탄생한 세상에 살고 있다. 석유화학 혁명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에너지를 제공했고,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를 바꿔놨다. 이번 혁명도 비슷하지만, 자유로운 ‘지적’ 에너지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종류가 다르다. 현재 시점에서는 대단히 조잡한 수준이지만, 매킨토시 컴퓨터는 구동하는 데 드는 전력이 100와트 전구보다 적고 사용자가 하루에 수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부터 10년이나 20년 후에는, 또는 50년 후에는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 석유화학 혁명도 이 혁명 앞에서는 왜소해질 것이다. 우리는 혁명의 선봉에 서 있다.

논의를 잠시 멈추고, 컴퓨터는 무엇인가에 대한 당신의 정의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컴퓨터는 어떻게 작동하나?
컴퓨터는 실제로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우린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 카페의 벤치에 앉아 있다. 당신이 가장 기초적인 방향 감각만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어떻게 하면 화장실에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매우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벤치에서 2m 옆으로 몸을 옮기세요. 똑바로 일어나세요. 왼발을 드세요. 왼쪽 무릎이 수평이 될 때까지 구부리세요. 왼발을 뻗어 무게중심을 300cm 앞으로 옮기세요.” 당신이 이 모든 지시를 이 카페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100배 더 빨리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마술사로 보일 것이다. 당신이 잽싸게 달려가 밀크셰이크를 움켜쥐고 돌아와서 그걸 테이블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우두둑거리면, 나는 당신이 마술을 부려 밀크셰이크를 나타나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이 움직이는 속도가 내 인지 능력에 비해 굉장히 빨랐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하는 일이 정확히 그거다. 컴퓨터는 대단히, 대단히 단세포적인 지시를 받는다. “가서 숫자들을 불러와. 그걸 이 숫자에 더해. 그 결과를 여기에 놔. 그 숫자하고 이 다른 숫자를 비교해서 어떤 숫자가 큰지 알아내.” 그런데 컴퓨터는 그런 지시를, 예를 들면 초당 100만 번 정도 실행한다. 그렇게 얻은 결과물이 우리 눈에는 마술처럼 보인다. 이는 간단한 설명일 뿐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은 실제로 컴퓨터의 작동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동변속 장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차를 운전하는 방법을 안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는 사람이 자동차에 적용되는 운동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매킨토시도 마찬가지다. 매킨토시를 사용하기 위해 이런 지식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당신이 물어보니까 대답을 한 것이다.(웃음)

당신은 컴퓨터가 개인 생활을 바꿔놓을 거라고 믿는 듯하다. 그런데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철벽 같은 사람은?
컴퓨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도구다. 컴퓨터는 글을 쓰는 작가, 커뮤니케이션 센터, 초특급 계산기, 일정 계획표, 문서 정리 요원,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지시나 소프트웨어가 주어지기만 하면 그 모든 일이 단일 장치 내부에서 실행된다. 컴퓨터의 위력과 다재다능함을 갖춘 다른 도구는 세상에 없다. 우리는 컴퓨터가 얼마나 멀리까지 발전해나갈 것인지 감조차 잡지 못한다. 오늘날 컴퓨터는 우리의 삶을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몇 시간은 걸릴 일을 1초 안에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일부는 단순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간단한 방식에 의해, 또 다른 일부는 우리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것에 의해 달성된다. 상황이 발전될수록 컴퓨터는 우리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줄 것이다.

컴퓨터를 구입해야 하는 구체적 이유를 꼽는다면? 당신이 속한 산업의 어느 임원이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줬지만, 그것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내 가계부의 수입과 지출을 맞춰보는 작업을 수작업으로 컴퓨터보다 더 빨리 할 수 있다.” 개인이 컴퓨터를 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다. 기업체라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쉽게 할 수 있다. 더 뛰어난 품질의 문서를 훨씬 더 빠르게 준비할 수 있고, 사무실의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많을 일을 할 수 있다. 컴퓨터는 여러 하찮은 작업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또한 컴퓨터를 장만하는 건 기업체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창의력을 더 발휘하도록 독려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셈이다. 명심해라. 컴퓨터는 도구다. 도구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교육 분야에서, 컴퓨터는 책 이후로는 처음으로 우리를 찾아온 존재다. 컴퓨터는 선입견 없이 그 자리에 앉아 당신과 끊임없이 소통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식 교육법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열린 마음을 가진 선생님과 함께 컴퓨터를 활용할 때, 컴퓨터는 교육과정에서 진정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우리 제품은 이미 많은 수학교에 들어가 있다.

명심해라. 컴퓨터는 도구다. 도구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교육 분야에서, 컴퓨터는 책 이후로는 처음으로 우리를 찾아온 존재다. 컴퓨터는 선입견 없이 그 자리에 앉아 당신과 끊임없이 소통할 것이다.

지금 한 얘기는 컴퓨터가 기업과 학교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주장이다. 가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그 시장은 실제로 존재하기보다는 개념상으로만 존재하는 시장에 가깝다. 현재 가정용으로 컴퓨터를 구입하는 주된 이유는 회사 업무의 일부를 집에서 하고 싶거나 구매자 자신이나 자식들을 위해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키고 싶어서다. 2가지 이유 중 하나로 컴퓨터를 구입하는 게 타당하다는 걸 입증할 수 없다면, 그럴싸한 다른 이유는 컴맹 신세를 모면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아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를 때, 우리는 그 일이 뭔지 알고 싶어진다. 상황은 바뀔 거다. 컴퓨터가 대다수 가정의 필수품이 되는 상황으로.

무엇이 그렇게 바꿔놓을까?
사람들이 가정용 컴퓨터를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컴퓨터로 전국적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진정으로 놀랍고 획기적 발전의 출발점에 서 있다.

당신이 말하는 획기적인 발전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나로서는 이제 막 추측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많이 본다.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게 대단히 크고 대단히 훌륭한 것이라는 건 안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당신은 본질적으로는 그런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를 하기 위해 가정용 컴퓨터 구매자에게 3000달러를 투자하라고 요청하는 게 아닌가?
미래에는 그게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행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봉착한 상황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데도 우리가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100년 전, 누군가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게 “미래에는 전화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면, 벨은 전화기가 세상에 끼칠 영향력에 대해 말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도 사람들이 전화기로 영화관에 전화를 걸어 그날 밤 상영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알아보거나, 청과물을 주문하거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척에게 전화를 걸게 될 거라는 걸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인류 최초의 전신이 1844년에 날아갔다는 걸 명심해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그 사건은 경이로운 돌파구였다. 당시 사람들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한나절 안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미국의 모든 책상에 전신 장치를 놓는 사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보를 보내고 받으려면 괴상한 주문으로 구성된 과정 전체를, 즉 모스부호의 점과 대시를 통째로 배워야 했다. 그걸 배우는 데는 40시간 정도 걸렸고, 그 누구도 전신 장치의 사용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1870년대에 벨은 전화기의 특허를 신청했다. 전화기는 기본적으로 전신 장치와 동일한 기능을 수행했지만, 사람들은 전화기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전화기의 가장 훌륭한 점은, 단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단순한 언어의 차원을 넘어, 말의 뉘앙스를 전달하는 걸 허용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몇몇 사람들은 생산성 제고를 위해 모든 책상에 IBM PC를 올려놓는 게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배워야 하는 특별한 주문은 ‘슬래시(/) q-z’처럼 직관적으로는 무슨 말인지 파악하기 힘든 명령어다. 가장 대중적인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인 워드스타(WordStar)의 사용 매뉴얼은 길이가 400페이지나 된다.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소설 한 편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미스터리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모스부호를 배우려 들지 않은 것처럼 ‘슬래시 q-z’ 같은 명령어도 배우지 않으려고 할 거다. 매킨토시의 장점이 바로 그거다. 매킨토시는 우리 산업이 만들어낸 최초의 ‘전화기’다. 게다가 정말 훌륭한 점은 전화기가 그랬듯 매킨토시도 노래를 허용했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단순히 단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프린트 기능을 활용할 수 있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덧붙이는 능력도 갖게 됐다.

그건 정말 중요한 기능인가,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을 홀리는 신기한 기능에 불과한 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평론가가 매킨토시를 ‘세상에서 제일 비싼 매직스크린(Etch A Sketch, 기기에 달린 버튼을 조작해 그림을 그렸다 지우는 장난감-옮긴이)’이라고 불렀다.
그건 전화기와 전신 장치의 차이점만큼이나 중요하다. 당신이 자랄 때 이렇게 정교한 매직스크린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지 상상해봐라. 하지만 그건 사소한 부분이다. 매킨토시는 생산성을 제고하고 어마어마한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뿐더러, 단어와 숫자뿐 아니라 그림과 그래프를 이용해 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대다수의 컴퓨터는 명령을 입력할 때 키보드를 이용하지만, 매킨토시는 그 작업의 많은 부분을 마우스라 불리는 장치(책상을 굴러다니면서 컴퓨터 스크린에 뜬 포인터를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상자)로 대체했다. 키보드를 사용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변화다. 왜 마우스인가?
당신의 셔츠에 얼룩이 묻었다는 걸 알려주려고 할 때, 말로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셔츠 옷깃 아래 14cm 지점에, 단추에서 왼쪽으로 3cm 떨어진 곳에 얼룩이 묻었어요.” 당신 옷에 얼룩이 묻었다면 “저기!”(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라고 말하며 그곳을 가리킬 것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위는 세상이 다 아는 메타포다. 우리는 이와 관련한 연구와 테스트를 숱하게 했다. 마우스로 작업하면 자르기(cutting)와 붙이기(pasting) 같은 온갖 기능을 훨씬 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 마우스는 사용하기 쉬울뿐더러 더욱 능률적이다.

매킨토시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컴퓨터 자체를 개발하는 데만 2년 넘게 걸렸다. 그보다 앞서, 거기에 구현된 기술을 연구하는 데 몇 년이 걸렸고. 나는 내가 일을 그토록 열심히 해본 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매킨토시를 작업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경험이었다. 그 작업을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중 그걸 세상에 공개하고 싶어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킨토시가 우리 손을 떠나면, 더 이상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주총회에서 매킨토시를 공개했을 때,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5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다. 연단 앞 몇 줄에 앉아 있는 맥 개발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그걸 실제로 완성하리라는 걸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 분위기였다.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사람들이 가정용 컴퓨터를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컴퓨터로 전국적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진정으로 놀랍고 획기적인 발전의 출발점에 서 있다.

여기 오기 전에 당신에 대한 경고를 들었다. 이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가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말로 듣는 사람을 구워삶는 감언이설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웃음) 우리가 하는 일에 열광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열정과 수백만 달러 규모의 광고 캠페인, 그리고 신문 지면과 방송 시간을 확보하는 당신의 능력을 감안할 때, 화려한 홍보 활동의 배후에 존재하는 제품의 진짜 가치를 소비자들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광고 캠페인은 필수다. IBM의 광고도 세상 어디에나 있지 않나. 그런데 우수한 PR은 사람들을 교육시킨다. 그게 전부다. 이 사업에서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없다. 제품은 스스로 가치를 드러낸다.

마우스는 비효율적이고, 매킨토시 스크린은 흑백만 구현한다는 등 최근에 제기된 일부 비판은 별개로 치더라도, 가장 심각한 비판은 애플이 자사 제품의 가격을 너무 비싸게 매긴다는 점이다. 이런 비판 중 일부를, 또는 전부를 반박할 의향이 있나?
우리는 데이터나 응용프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전통적 방식보다 마우스의 작업 속도가 빠르다는 걸 입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언젠가는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의 컬러 모니터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싼 가격을 매긴다는 비판의 경우, 신제품은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더 많이 생산할수록 가격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그 점이 바로 당신을 비판하는 이유다. 프리미엄 가격으로 ‘애플빠’를 낚은 다음, 상황이 호전되면 나머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
말도 안 된다. 우리는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여건이 되자마자 가격을 내렸다. 현재 우리 컴퓨터가 2년 전보다, 심지어 작년보다 싸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IBM PC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목표는 컴퓨터를 수천만 명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더 저렴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수월하게 달성할 것이다. 매킨토시의 가격이 1000달러라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당신이 매킨토시 이전에 공개한 리사와 애플3를 구입한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신은 그것들을 호환되지 않는,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방치했다.
그런 비판을 하고 싶다면, IBM PC나 PC 주니어(PCjr, IBM이 교육용과 가정용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내놓은 저가 모델로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옮긴이)를 구입한 사람들도 그 리스트에 적어둬라. 리사의 경우, 기술 일부가 매킨토시에 사용됐기에 매킨토시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수 있고, 매킨토시의 맏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리사의 매출액은 현재 엄청나다. 애플3도 매달 2000대 이상 판매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반복 구매자다. 종합해보면, 신기술이 반드시 낡은 기술을 대체하지는 않지만, 낡은 기술을 구식으로 만들기는 할 것이다. 단어의 정의상으로는 그렇다. 결국, 신기술은 낡은 기술을 대체할 것이다. 컬러 TV가 출현했을 때 흑백 TV를 보유한 사람들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 사람들은 신기술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결국 결정했다.

상황의 변화 속도를 감안할 때, 맥 자체도 2년 이내에 구식이 되지 않을까?
매킨토시 이전에는 시장에 2개의 표준이 있었다. 애플2와 IBM PC. 협곡의 암반을 파내는 강물과 비슷하다. 암반을 침식하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애플2가 침식하는 데는 7년이, IBM이 침식하는 데는 4년이 걸렸다. 우리가 매킨토시로 거둔 성과는 제품의 혁명적 측면을 발휘한 가속력을 통해, 그리고 우리가 보유한 마케팅 역량을 총동원해 1년 이내에 달성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암반을 관통하는 세 번째 수로를 뚫고 세 번째 강물을, 세 번째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 생각엔 오늘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는 애플과 IBM 2곳뿐이다. 지나치게 안 좋은 상황일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그런 일을 제대로 해내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애플이나 IBM이 향후 3~4년 이내에 그런 일을 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80년대 말로 향하며 세상은 몇 가지 새로운 제품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가 될 때까지는?
휴대성이 더욱 뛰어난 제품을 제조하고, 그것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레이저 프린터를 생산하고, 공유 데이터베이스를 내놓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더욱 향상시키고, 전화기와 개인용 컴퓨터를 융합하는 데 노력을 쏟아부을 것이다.

당신은 이 제품에 지나치게 큰돈을 걸었다. 어떤 사람들은 매킨토시가 애플을 대성공시키거나 아니면 쪽박을 차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리사와 애플3 출시 이후 애플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업계는 애플이 생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맞다. 우리는 두 어깨로 온 세상을 짊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매킨토시라는 모자에서 토끼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제품이나 회사에 대해 우리가 품은 꿈을 결코 실현하지 못할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나? 애플이 파산 근처까지 갔던 건가?
아니, 절대 아니다. 사실 이런 예언이 사방에서 튀어나오던 1983년은 애플엔 극도로 성공적인 해였다. 당시 우리의 규모는 사실상 2배로 늘었다. 1983년에 5억8300만 달러였던 매출이 9억8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거의 전부가 애플2와 관련된 매출이었다. 하지만 그 수준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매킨토시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애플2와 관련 버전을 판매하면서 연간 매출 10억 달러 수준을 올리는 회사로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년에 떠돈, 애플은 끝장났다는 얘기의 근거는 뭐였나?
IBM이 굉장히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었고, 시장의 세력도 IBM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IBM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딜러들은 IBM 얘기를 갈수록 많이 하고 있었다. 매킨토시를 작업 중인 우리 모두의 눈에 IBM이 업계에 큰 타격을 가할 거라는 게, 그들이 업계를 재편할 거라는 게 확실해졌다. 그런데 매킨토시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거였다. 매킨토시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냥 그냥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업계 전체를 바라보는 내 비전이 완전히 틀린 거니까.

애플3는 애플2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4년 전 애플3는 출시 이후 실패작이 됐다. 당신은 최초 판매량 1만4000대를 리콜했는데, 심지어 수정판조차 결코 인기를 얻지 못했다. 애플3로 본 손실이 얼마나 컸나?
엄청난, 계산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큰 손실을 봤다. 애플3가 더 큰 성공을 거뒀다면 IBM은 시장에 진입할 때 더 힘든 시기를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인생이다. 우린 그 경험을 통해 더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휴대성이 뛰어난 제품을 제조하고, 그것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레이저 프린터를 생산하고, 공유 데이터베이스를 내놓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고, 전화기와 컴퓨터를 융합하는 데 노력을 쏟아부을 것이다.

리사도 출시 당시엔 상대적으로 실패작이었다. 뭐가 잘못된 건가?
우선, 지나치게 비쌌다. 가격이 1만 달러쯤 됐으니까. 우리는 <포춘> 500이라는 성과에 도취했다가 남은 숙취에 시달렸다. 그 당시 우리의 뿌리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제품을 판매하는 데 있었다. 그런 시기에 대기업에 제품을 팔려고 기를 썼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배달 지연, 우리가 원했던 것처럼 제대로 어우러져 작동하지 않는 소프트웨어. 결국 우리는 기력을 잃었다. 게다가 IBM이 강력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품이 6개월 정도 늦게 출시됐고, 가격도 지나치게 높았다. 게다가 우리는 리사를 150개의 딜러를 통해서만 판매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또 다른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 이건 대단히 비싼 대가를 치른 실수였다. 우리는 마케팅과 관리 분야의 전문가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불행히도 우리 업계는 신생 산업이라 소위 프로페셔널이 알고 있는 지식은 그들이 성공적으로 우리 사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획득하는 걸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런 행보는 당신들이 느낀 불안감을 반영한 거였나? “이 사업은 계속 성장해왔고 우리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그러니 진짜 프로들을 불러오는 게 낫겠어”라는?
명심해라. 우리는 스물세 살, 스물네 살, 스물다섯 살이었다는 걸. 그런 상황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

그런 결정은, 좋은 결정이든 나쁜 결정이든 대체로 당신이 내린 거였나?
우리는 한 사람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상황은 절대로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시기에는 3명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마이크 스콧, 마이크 마쿨라, 그리고 나. 지금은 나와 존 스컬리(애플의 대표)가 경영하고 있다. 초창기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나는 나보다 경험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따랐다. 그들의 생각은 대부분 옳았다. 하지만 몇몇 중요한 사안의 경우, 내 판단을 따랐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당신은 리사 사업부를 경영하고 싶어 했다. 당신이 마쿨라와 스콧을 고용하는 과정에 참여했지만, 그들은 사실상 당신의 상사였다. 그들은 당신이 유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않다. 맞나?
개념의 뼈대를 잡고 핵심 인력을 찾아내 기술적 방향을 설정한 후, 스콧은 내가 그런 팀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굉장히 상처받았다. 상처를 극복할 방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이 애플을 잃고 있다고 느꼈나?
약간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더 힘들었던 건, 그들이 초반의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을 리사 그룹에 많이 고용한 점이었다. 리사 그룹 내에서, 본질적으로 매킨토시와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 사람들과 기업용으로 판매하는 덩치 큰 기계에 대한 생각을 갖고 휴렛패커드와 다른 기업에서 넘어와 입사한 사람들 사이에 큰 갈등이 빚어졌다. 나는 매킨토시를 디자인하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나 소규모 집단과 함께 직접 작업을 해나가기로, 차고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우리를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스콧은 그저 나를 잘 어르고 달래기만 했다.

당신이 창립한 회사가 아닌가. 억울하고 분하지 않았나?
자기 자식에게 분한 마음을 품을 수는 없다.

자식이 당신한테 꺼지라고 하는데도?
그런 상황이 되면 매우 슬프고 절망스럽겠지만, 그래도 분노하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감정을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애플에서 으뜸가는 인재를 확보했다. 안 그러면 정말 곤란해졌을 테니까. 물론, 매킨토시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맥을 봐라!

평가를 내리긴 아직 이르다. 당신은 앞서 리사를 출시할 때와 비슷한 팡파르를 울리면서 맥을 시장에 선보였지만, 리사는 초반에 실패했다.
맞는 말이다. 리사에 큰 희망을 걸었지만, 우리 생각은 틀렸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은 매킨토시가 도래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안다는 것, 그리고 매킨토시는 리사를 향해 쏟아진 모든 반대 견해를 극복할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뿌리, 즉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컴퓨터를 판매하는 것으로 복귀했다. 개발 작업을 진행한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비상식적이고 엄청난 컴퓨터를 제작했다.

비상식적이고 엄청난 물건을 만들려면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필요한가?
사실 비상식적인 엄청난 물건을 만드는 일은 제품을 만드는 과정과 그 물건을 학습하는 방법,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아이디어를 버리는 것과 많은 관계가 있다. 하지만 맞는 말이다. 맥을 만든 사람들은 최첨단에 있는 사람들이다.

비상식적이고 엄청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과 비상식적이고 엄청난 아이디어로 일을 성사시키는 사람들의 차이는 뭔가?
IBM과 비교해보자. 맥 개발팀은 왜 맥을 생산했고 IBM에 있는 인력은 왜 PC 주니어를 생산했을까? 우리는 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맥을 만들지는 않았다. 우리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 맥이 위대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집단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밖에 나가 시장조사를 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당신이 근사한 서랍장을 제작하는 목수라면, 서랍장 뒷면에 합판 조각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뒷면이 벽을 향하고 있고 앞으로 어느 누구도 그 뒷면을 볼 일이 없을 거라고 해도 말이다. 뒷면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당신은 그 뒷면에 근사한 목재를 사용할 것이다. 당신이 밤에 두 다리 쭉 펴고 자려면, 그 서랍장의 아름다움과 품격은 모든 면에서 철저해야 마땅하다.

PC 주니어를 만든 사람들은 제품에 대해 그런 종류의 자긍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건가?
그런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PC 주니어를 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특정한 시장의 일부를, 특정한 인구 통계 유형의 고객을 대상으로 수행한 시장조사를 기초로 그 제품을 설계했다는 게, 그리고 그 제품을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구입하며 큰 돈을 벌게 해준다는 희망을 품었을 거라는 게 확실해 보인다. 우리의 동기에는 그런 차이가 있다. 맥 개발팀은 인류가 지금껏 보아온 것 중 가장 위대한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이토록 젊은 사람들이 컴퓨터 분야를 장악한 이유가 뭔가? 애플 임직원의 평균 연령은 29세다.
새롭고 혁명적인 사건에는 이와 동일한 상황이 과거에 존재하는 경우가 잦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고정관념에 빠진다. 우리의 정신은 일종의 전기화학적 컴퓨터다. 당신이 하는 생각은 마음속에 설치된 공사장 기계처럼 어떤 패턴을 구축한다. 당신은 화학적 패턴을 아로새기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레코드판에 파인 홈이랑 비슷한 패턴을 고수하고, 결코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상황을 바라보는 일반적 방식이 아닌 다른 홈을,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는 홈을 아로새기는 사람들은 드물다. 정말 경이로운 작업에 기여할 수 있는 30대나 40대 아티스트는 보기 드물다. 물론, 드물지만 선천적으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고, 인생을 경이로워하며 영원히 동심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맥을 만들지는 않았다. 우리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 맥이 위대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집단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그냥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40대 중 당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이 애플 회사를 언급할 때 말하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보자. 당신은 애플을 경영하는 방식과 관련해 사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나?
컴퓨터 말고도 사회에 영향을 끼칠 다른 방법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애플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쯤 <포춘> 500대 기업의 모델이 될 기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10년에서 15년 전에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회사 5곳의 명단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면, 폴라로이드와 제록스는 모든 사람의 명단에 올랐을 것이다. 그 회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이제는 어느 누구의 명단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기업은 수십억 달러짜리 법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어쩐 일인지 비전을 상실한다. 기업은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과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들 사이에 중간 관리자를 많이 끼워 넣는다. 기업은 자사 제품에 대한 본래의 감정이나 열정을 더 이상은 품고 있지 않다. 회사를 위해 열정적으로 관심을 쏟는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는 그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 5개 계층의 관리자를 설득해야 한다.
대다수의 기업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개인적으로 이뤄내는 성취를 독려하는 게 아니라 좌절시키는 작업 환경이 걸출한 인재를 붙들어두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걸출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고, 회사에는 평범한 사람들만 남는다. 어떻게 아느냐면, 애플이 그렇게 구축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엘리스 아일랜드(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거쳐야 했던 뉴욕의 섬-옮긴이) 같은 회사다. 애플은 다른 회사에서 피난 온 난민을 바탕으로 구축했다. 그들은 다른 회사에서는 트러블메이커였던, 극도로 영민한 성과 기여자다. 당신도 알고 있듯, 에드윈 랜드 박사는 트러블메이커였다. 그는 하버드를 중퇴한 뒤 폴라로이드(Polariod)를 설립했다. 그는 우리 세대의 위대한 발명가였다. 더욱 중요한 건, 그가 예술과 과학, 사업이 교차하는 지점을 확인하고는 그걸 반영한 조직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폴라로이드는 몇 년간 그런 일을 했다. 그런데 결국 랜드 박사는, 그 영특한 트러블메이커는 자신이 세운 회사를 떠나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평생 들어본 것 중 제일 멍청한 일이다. 랜드 박사는 75세에 순수과학을 연구하고 색각 암호를 해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그는 국보급 인재다. 세상이 그런 사람을 롤모델로 존경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우주 비행사나 미식축구 선수가 아닌 바로 이런 분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믿기 힘든 존재다. 어쨌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는, 그리고 나와 존 스컬리가 5년에서 10년 사이에 반드시 평가받게 될 도전 과제 중 하나는 애플을 믿기 힘들 정도로 위대한, 100억 달러나 200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그때도 애플은 지금의 회사처럼 창립정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까? 우리는 새로운 영역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경영 개념을 위해 눈여겨볼 만한 모델은 없다.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그런 것을 찾아내야 하는 처지다.

만약 애플이 그런 회사라면, 어째서 20배 성장을 예측하는 건가? 상대적으로 소규모 기업으로 머무르지 않으려는 이유가 뭔가?
우리가 앞으로도 주요한 기여자 중 하나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00억 달러 규모의 회사가 되어야 미래에도 제대로 사업을 영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그 정도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로 표시되는 그런 구체적인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런 회사가 되는 방법이다. 애플 직원들은 하루에 18시간을 일한다. 우리는 다른 유형의 사람들, 누군가가 그들이 어마어마한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기까지 5년이나 10년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머리 위에 작은 그늘이 드리워져 자신을 지켜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주에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뭔가 의미심장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 우리가 있는 이 자리는 그 일이 시작되는 곳이고, 우리는 그 일이 진행되는 방식의 형태를 빚어낼 수 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런 순간 중 하나라는 걸 감지한다. 대체로, 우리는 남들이 만든 것을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신도 나도 직접 옷을 만들어 입지는 않는다. 우리는 음식을 직접 조리하지도, 농사를 짓지도 않는다. 우리는 남들이 개발한 언어를 활용한다. 그리고 다른 사회에서 발전시킨 수학을 활용한다. 그렇게 모여 있는 도구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여할 기회를 포착하는 건 드문 일이다. 나는 우리가 지금 그런 기회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기회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른다. 거대한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당신은 당신이 매킨토시로 정복할 기업 시장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은 미국의 일터에서 IBM을 격파할 수 있나?
그렇다. 기업 시장에는 대여섯 개의 분야가 있다. 나는 IBM이 최상단의 위치를 차지하는 <포춘> 500을 생각하는 대신 <포춘> 500만이나 1400만을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이 나라에는 소기업이 1400만 개나 있다. 다수의 중소기업이 전산화가 필요한 대규모의 사람들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1985년에는 그들에게 의미 있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접근 방식은 그들을 사업체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인 무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 워드프로세서를 더 빠르게 이용하고 숫자를 더 빨리 더하는 걸 돕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바꿔놓고 싶다. 우리는 핵심 개념을 표현하는 도표를 사용하면 5페이지짜리 메모를 1페이지로 축약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종이의 양이 줄어들고 커뮤니케이션의 질이 향상되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일하는 건 재미있기까지 하다. 집에서는 뛰어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일터에만 오면 느닷없이 멍청해지고 따분해진다는 사회적 통념이 늘 존재해왔다. 그건 맞는 말이 아니다. 대단히 진지한 비즈니스의 영역에 교양과목(liberal arts, 역사나 어문학 같은 과목-옮긴이)의 정신을 주입할 수 있다면, 그건 기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여의 여파가 얼마나 멀리까지 퍼질 것인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그때도 애플은 지금의 창립정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까? 우리는 새로운 영역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경영 이념을 위해 눈여겨볼 만한 모델은 없다.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찾아내야 하는 처지다.

당신은 기업 시장에서 IBM과 싸우고 있다. 사람들은 IBM이라면 ‘안정감과 능률’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컴퓨터 분야에 새로 진출한 AT&T도 목전에 닥친 위협이다. 애플은 상대적으로 젊고 검증되지 않은 회사다. 고객이 될 기업의 눈에는 특히.
기업 시장의 영역을 제대로 침투하는 것이 매킨토시의 임무다. IBM은 하향식(top down) 접근 방식과 기업체에 제품을 팔기 위한 메인프레임 중심의 접근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성공을 거두려면, 이 시장을 풀뿌리(grass-roots)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네트워킹을 예로 들면, 우리는 IBM이 하고 있듯이 회사 전체를 전산으로 연결하는 게 아니라 소규모 작업 그룹에 초점을 맞출 작정이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어떤 전문가는 이 산업이 진정으로 번창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소비자에게 유익함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단일 표준이 승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지금 우리한테 단일 표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건 1920년에 자동차의 단일 표준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그걸 믿었다면, 자동변속 장치와 파워 스티어링, 독립식 서스펜션 같은 혁신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냉동시키는 일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컴퓨터 분야에서, 매킨토시는 혁명이다. 매킨토시의 기술이 IBM의 기술보다 우월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IBM의 대안은 분명히 필요하다.

IBM과 호환성을 갖지 않겠다며 당신이 내린 결정 중 IBM의 위협에 굴복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 기초해 내린 결정이 있나? 어떤 비평가는 맥이 IBM과 호환되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스티브 잡스는 IBM에게 ‘좆까’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는 식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남자다움을 표출하는 방식이 차별화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그렇게 내린 결정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나?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더 우월하다는, 대단히 단순한 이유다. 우리가 IBM과 호환되는 쪽으로 기술을 개발했다면 매킨토시는 이렇게 뛰어난 제품이 될 수 없었을 거다. 물론 IBM이 이 산업을 장악하는 걸 원치 않는 건 맞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IBM과 호환되지 않는 쪽을 택한 미친놈들이라고, IBM이 펼친 우산 아래에서 살지 않는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쪽에 배팅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IBM이 언젠가는 호환되는 컴퓨터를 만드는 기업의 머리 위에 펼치고 있던 우산을 접어 그 회사들을 철저히 박살낼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IBM과 호환되는 쪽으로 가지 않은 두 번째이자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 회사를 이끄는 제품 비전 때문이었다. 컴퓨터는 인류가 지금껏 내놓은 것 중 가장 놀라운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구 사용자다. 우리가 더욱 많은 사람에게 컴퓨터를 안겨줄 수 있다면, 세상은 질적으로 달라질 거다. 우리가 애플에서 하고 싶은 일은 컴퓨터를 가전제품으로 만들어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그렇게 단순하다. 그런데 현재의 IBM 유형의 기술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매킨토시를 내놓은 이유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은 29%에서 23%로 떨어졌다. 같은 시기 IBM의 시장점유율은 3%에서 28%로 성장했고. 당신은 그런 숫자를 두고 어떤 식으로 싸워나가는가?
숫자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애플은 제품에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려 애쓰고 있다. 진정으로 차이점을 빚어내는 요소는 제품이니까. IBM은 서비스와 지원, 보안, 메인프레임과 마더보드에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려 애쓰고 있다. 3년 전 애플이 품은 핵심적 견해는 우리가 1년에 1000만 대의 컴퓨터를 운송할 때, IBM은 컴퓨터 한 대마다 한 개를 출하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마더보드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IBM PC를 구입한 소비자는 마더보드를 직접 컴퓨터에 장착해야 했다. 바로 그게 매킨토시의 철학과 장점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애플과 IBM 사이의 경쟁으로 귀결될 거라는 걸 보여준다. 만약 우리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IBM이 승리한다면, 앞으로 20년쯤은 일종의 컴퓨터 암흑시대에 진입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IBM이 기업 시장 분야의 통제력을 거머쥘 경우, 그들은 늘 그랬듯 혁신을 거의 중단할 거다. 그들은 혁신이라는 씨앗이 세상에 머리를 드러내지 못하게 막을 테니까.

왜인가?
한 가지 사례가 있다. 프리토레이(Frito-Lay)는 굉장히 흥미로운 기업이다. 그들은 매주 50만 번 이상 매장을 방문한다. 각각의 매장에는 프리토레이 선반이 있고, 그 선반에는 칩이 진열돼 있다. 모든 매장에는 동일한 선반이 있고, 큰 매장에는 선반이 여러 개 있다. 프리토레이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량품과 맛이 간 칩이다. 프리토레이는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불량품을 집어내고 그걸 우수 제품으로 대체하는 서비스 인력을 1만 명쯤 확보했다. 그들은 그 매장의 과자 코너 담당자와 담소를 나누고 만사가 괜찮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 서비스와 지원 덕분에, 현재 그들은 진출한 칩의 모든 세그먼트에서 8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다른 어느 누구도 그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 프리토레이가 현재 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 잘 수행한다면, 다른 어느 누구도 8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기업은 그만한 규모의 영업 인력과 지원 인력을 확보할 수 없으니까. 그럴 수 없는 건 그 정도 인력을 확보할 만한 재정이 안 되기 때문인데, 이는 8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상황 때문에 빚어진 교착 상태다. 앞으로도 프리토레이 프랜차이즈에는 어느 누구도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프리토레이는 그리 많은 혁신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소규모 과자 회사를 조용히 지켜보다 그 회사들이 내놓는 신제품을 1년간 연구한다. 그러고 1~2년이 지나 나름의 제품을 내놓고 경쟁 제품이 고사할 때까지 서비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1년 뒤 그 신제품의 시장점유율을 80% 확보한다. IBM은 이와 비슷한 게임을 벌인다. 메인프레임의 경우, IBM이 15년 전에 시장의 지배적 통제력을 거머쥔 이후 일어난 혁신은 사실상 0건이었다.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 탈 없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들은 컴퓨터 시장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똑같은 짓을 저지를 것이다. IBM PC는 근본적으로 이 산업에 신기술을 전혀 도입하지 않았다. 그냥 애플2 의 기술을 약간 확장한 다음에 포장만 바꿔 내놓았을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게 전부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런 상황을 원한다. 이 시장은 우리 둘만 남는 시장으로 귀결된다. 개인적으로 딱히 그런 상황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런 상황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애플과 IBM의 싸움으로 귀결되고 있다.

변화 속도가 이렇게 빠른 산업에 대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매킨토시는 지금 당장은 따끈따끈한 신제품이다. 그런데 2년 후에도 여전히 그럴까? 당신은 자신이 표명한 철학과 경쟁을 벌이는 건 아닌가? 당신이 IBM을 좇는 것처럼 애플을 좇는 소규모 컴퓨터 회사들이 있지 않나?
컴퓨터 자체를 공급하는 관점에서, 상황은 애플과 IBM의 대결로 귀결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3위나 4위에 해당하는 기업이 많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6위나 7위에 해당하는 기업은 그보다 적을 것이다. 대다수의 혁신적 신생 기업은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맞춘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많은 혁신이 일어나겠지만,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IBM도 하드웨어에 대해 당신과 똑같은 말을 할지 모른다. 그런데 당신은 그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벌을 면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IBM을 상대로 한 주장과 애플을 상대로 한 주장에 차이가 있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사업의 규모가 충분히 커졌기에 누군가 뭔가 새로운 것을 성공적으로 론칭하기가 무척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한다.

차고에서 부화하는 10억 달러 규모의 회사들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까?
그렇다. 유감스럽지만 컴퓨터 분야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애플은 책임감을 느낀다. 이 산업에 혁신이 일어날 경우, 그건 우리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이야말로 우리가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가 충분히 빠르게 치고 나가면 그들은 우리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말한, IBM이 호환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들 위에 친 우산을 결국 접을 시점이 언제라고 생각하나?
회사 규모가 1억 달러에서 2억 달러 사이인 시장에는 일부 모방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2억 달러짜리 회사가 되는 것은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 이는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나는 IBM이 모방자 스스로 조달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들을 제거할 거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IBM이 지금 생산하는 제품(이런 제품은 지나치게 제약이 많다)과도 호환되지 않을 새로운 표준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당신이 애플에서 한 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떤 사람이 애플2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보유하더라도, 그는 그걸 매킨토시에서 구동시킬 수 없다.
맞는 말이다. 맥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다. 우리는 애플2와 IBM PC 같은 현재의 기술로 초기 혁신자와 보조를 맞출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컴퓨터의 사용법을 배우느라 숱한 밤을 지새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는 대다수 일반인과는 결코 보조를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안겨주기 위해, 우리는 사용법이 엄청 쉬운 동시에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과거와 단절한 채 앞으로 돌진해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게 위대한 제품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 중 누군가가 과거와 깨끗하게 단절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매킨토시는 향후 10년간 탄탄한 혁신의 토대로 판명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출발점인 리사와 맥의 이전 모델로 돌아가보자. 당신이 컴퓨터에 흥미를 보이는 데 당신의 부모님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나?
부모님은 “네게 흥미가 있는 일을 해보라”고 격려하셨다. 아버지는 자동차 엔지니어인데, 손재주가 천재적인 분이다. 무엇이든 척척 고쳐 작동하게 했고, 기계 장비는 무엇이든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기계 장치를 잠깐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전자 기술에 호기심이 생겼고, 아버지는 내가 분해했다가 조립할 수 있는 물건을 구해주시곤 했다.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팔로알토로 전근을 가면서 밸리에 터전을 잡게 됐다.

당신은 입양아가 맞나? 그 점이 당신 인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
말해줘도 당신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친부모를 찾으려고 애써봤나?
입양된 사람들에겐 자신의 일부 특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환경결정론자(인간의 형성에 유전보다 환경이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보는 사람-옮긴이)다. 가치관, 세계관 대부분이 성장하는 동안 겪어온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요소는 그런 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 호기심을 갖는 건 꽤 자연스러운 일이고, 실제로 나도 그랬다.

결국 친부모를 찾았나?
사실, 그에 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당신의 부모님이 이사를 간 계곡은 이후 실리콘밸리로 유명해졌다. 그곳에서 자란 경험은 어땠나?
미국 전역의 대다수 외곽 지역과 비슷했다. 나는 아이들이 많이 사는 블록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 가기 전에 글을 가르쳤고, 그 바람에 따분한 학교 생활을 했다. 그래서 엄청난 말썽꾼이었다. 3학년 때는 담임선생님한테 못되게 굴었다. 교실에 뱀을 풀어놓거나 폭탄을 터뜨리곤 했으니까. 그런데 4학년에 올라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4학년 고급반을 맡은 이모진 힐 선생님은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성인 중 한 분이다. 개학하고 한 달쯤 지날 무렵, 내가 처한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한 그분은 이런저런 것을 배우려는 내 열정에 불을 붙였다. 1년 동안 학교에서 보낸 그 어떤 해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해 학교에서는 나를 고등학교에 월반 입학시키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은 현명하게도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거주지 입지가 당신이 흥미를 보인 일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생겨난 건가?
밸리는 버클리와 스탠퍼드라는 걸출한 두 대학 사이에 전략적으로 입지를 정했다. 두 대학 모두 미국 전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끌어모았으니까. 학생들은 이 지역과 금세 사랑에 빠지면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새롭고 영민한 인적 자원이 꾸준히 유입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스탠퍼드 졸업생인 빌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가 대단히 혁신적인 전자회사인 휴렛패커드를 창립했다. 1948년에는 벨 연구소가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트랜지스터를 공동으로 발명한 세 사람 중 한 명인 윌리엄 쇼클리는 고향인 팔로알토로 귀향해 쇼클리 랩스인가 뭔가 하는 작은 회사를 세웠다. 그는 당대에 가장 뛰어나고 영민한 물리학자와 화학자 10여 명을 데려갔다. 점차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둔 뒤 경쟁력 있는 회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입으로 바람을 불면 사방팔방으로 씨앗을 흩뿌리는 꽃이나 잡초처럼 말이다. 그게 오늘날 실리콘밸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다.

컴퓨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블록 아래쪽에 사는 이웃이 휴렛패커드에서 일하는 래리 랭이라는 엔지니어였다. 그는 나와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걸 가르쳐줬다. 처음 컴퓨터를 본 것은 휴렛패커드에서였다. 그들은 화요일 밤마다 우리 꼬맹이 10명쯤을 초대해 강의를 하고는 컴퓨터로 작업할 수 있게 해줬다. 컴퓨터를 처음 본 게 열두 살 때다. 그날 밤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직접 만든 신형 데스크톱 컴퓨터를 보여준 뒤 갖고 놀 수 있게 해줬다. 나는 그 컴퓨터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그 데스크톱에서 당신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게 뭐였나? 그것의 잠재력을 감지했나?
그때 내 심정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끝내준다고 생각했고, 가지고 빈둥거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당신은 휴렛패커드에 출근했다. 어떻게 그렇게 된 건가?
열두 살인가 열세 살 때 뭔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일부 부품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화기를 들고는 빌 휴렛에게 전화를 걸었다. 팔로알토 전화번호부에 그의 이름과 번호가 올라 있었다. 전화를 받은 그는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는 나와 20분쯤 수다를 떨었다. 그는 나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지만 결국 일부 부품을 제공했고, 여름방학엔 나를 휴렛패커드의 조립 라인에서 고주파 측정기를 조립하는 일을 하게 해주었다. 사실 조립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냥 나사를 조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아직도 출근 첫날이 기억난다. 나는 내 감독관인 크리스라는 남자한테 여름 동안 휴렛패커드에서 일하게 된 것에 대해 느끼는 지독한 열정과 지극한 행복감을 털어놓으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전자 기술이라고 떠벌렸다. 그런 다음 그에게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니 그가 나를 보고 말했다. “떡 치는 거!” (웃음) 그 여름에 많은 걸 배웠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언제 만났나?
워즈(Woz)는 열세 살 때 어느 친구의 집 차고에서 만났다. 그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는 음, 그 시점에서 내가 만난, 나보다 전자 기술에 대해 아는 게 많은 첫 인물이었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됐다.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유머 감각도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장난을 쳤다.

예를 들면?
(웃음) 평범한 짓들. 이런 그림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큼지막하게 그려진 거대한 깃발을 만드는 것 같은. 그걸 졸업식이 한창 진행될 때 펼칠 생각이었다. 워즈니악이 생김새와 소리가 폭탄하고 비슷한 뭔가를 만들어 학교 카페테리아에 가져간 적도 있다. 우리는 블루 박스(blue box) 비즈니스에 같이 진출하기도 했다.

블루 박스라면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걸게 해주는 불법 장비 아닌가?
음, 그런가? 그 박스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워즈가 바티칸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라고 소개했다. 바티칸에서는 한밤중에 사람을 보내 교황을 깨웠는데, 결국 워즈가 키신저가 아니라는 걸 알아냈다.

그런 짓을 벌이다 곤경에 처한 적은 없나?
음, 학교에서 두어 번 쫓겨났다.

컴퓨터 너드(nerd)가 된 건 그 시점인가, 아니면 그 전부터 그랬나?
나는 어느 세계가 됐건 그 세계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없었다. 세상에는 다른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대학교 2, 3학년 때 처음으로 약에 취해봤다. 셰익스피어, 딜런 토머스와 온갖 고전 작품을 발견했다. <모비 딕>을 읽었고, 3학년에 복학해서는 창작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4학년 때, 스탠퍼드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학기의 절반을 보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워즈니악은 특정 사물에 집착했나?
(웃음) 맞다. 하지만 그가 컴퓨터에만 집착한 건 아니다. 워즈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관심사를 공유하지 못했다. 그는 시대를 조금 앞서갔다. 그의 입장에서는 무척 외로운 일이었다. 그는 남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보다는 내면에서 생겨나는 통찰에서 에너지를 얻었고, 그래서 그는 말짱하게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측면에서, 워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비슷한 면이 몇 가지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린 굉장히 가까운 존재다. 우리는 나름의 궤도를 돌지만, 그 궤도들이 대단히 빈번하게 교차되는 두 행성하고 비슷한 존재다. 컴퓨터만 공통 관심사는 아니었다. 둘 다 밥 딜런의 시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걸 깊이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캘리포니아라 스탠퍼드에서 갓 제조한 LSD를 구할 수 있었다. 밤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해변에서 잠을 잤다. 캘리포니아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개방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딜런 외에도 동양의 신비주의에 흥미를 느꼈다. 그 무렵, 동양의 신비주의는 미국의 양쪽 해안을 강타했다. 오리건에 있는 리드 칼리지에 진학했을 때, 티모시 리어리부터 리처드 앨퍼트와 개리 스나이더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작가들이 꾸준히 몰려왔다. 삶의 진실에 지적 의문을 제기하는 책도 꾸준히 몰려왔다. 당시는 이 나라에 있는 모든 대학생이 <비 히어 나우(Be Here Now)>(영성과 요가, 명상을 다룬 1971년 서적-옮긴이)와 <작은 행성을 위한 식단(Diet for a Small Planet)>(육류 제품 생산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다룬 1971년 서적-옮긴이)을 읽던 시절이었다. 그와 비슷한 책이 10권쯤 있었다. 오늘날에는 그런 책들을 찾아볼 수 있는 캠퍼스가 손에 꼽을 정도다. 세상이 달라졌으니까. 엄청 달라졌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사업 경영을 다룬 책)이 <비 히어 나우>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시대상은 당신이 지금 하는 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나?
전체 기간이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가 저물었다는 게 명백해지면서, 1960년대를 겪은 사람 중 다수가 그들이 착수했던 일들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는 결과를 맞았다는 것도 명백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교육을 바람에 흩날려 보냈기에 의지할 곳도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내 친구들이 그 시대의 이상주의를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은 45세에 자연식품 매장의 카운터 뒤에서 일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 앞에서 실용 정신과 인생에 대한 조심성도 받아들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오랜 친구 중 일부가 그런 신세가 되는 걸 실제로 목격했다. 일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그리 나쁜 신세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 했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나쁜 일인 셈이다.

리드를 떠난 뒤 실리콘밸리로 돌아온 당신은 지금은 유명해진 광고를, ‘재미도 보고 돈도 버세요’라고 떠벌리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맞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여행 자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취직을 해야 한다는 현실로 돌아왔다. 신문을 살펴보는데, 이런 광고가 있었다. ‘재미도 보고 돈도 버세요.’ 전화를 걸었다 그곳은 아타리였다. 나는 어릴 때 말고는 취직을 한 적이 없었다. 행운이 여러 번 겹치면서, 그들은 이튿날 전화를 걸어 나를 고용했다.

그 시기가 아타리의 초창기였나?
내 회사번호가 40번인가 그랬을 것이다. 굉장히 작은 회사였다. 아타리는 퐁(Pong, 탁구와 비슷한 비디오 게임-옮긴이)이랑 다른 게임 2개를 만들었다. 내 첫 임무는 농구 게임을 작업하는 돈(Don)이라는 사람을 도와주는 거였는데, 그 게임은 재앙이었다. 돈은 농구 게임을, 다른 사람은 하키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퐁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기에, 당시 아타리는 간단한 실외 스포츠를 모델 삼아 게임을 개발하려 애쓰고 있었다.

당신은 취직을 한 이유를 결코 잊지 않았다. 여행 경비를 버는 것 말이다.
아타리는 유럽에 게임을 다량 발송했는데, 그 게임에 엔지니어링상의 결함이 몇 가지 있었다. 나는 그 결함을 고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런데 누군가가 유럽에 직접 가서 수정 작업을 해야 했다. 유럽에 가겠다고 자원하면서 내가 거기 있는 동안 휴직 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결국 스위스에 갔고, 그 후 취리히에서 뉴델리로 이동했다. 그 후 인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인도는 당신이 머리를 민 곳이다.
일이 정확히 딱 그런 식으로 벌어진 건 아니다. 히말라야산맥 주위를 걷던 중 어떤 종교적 축제 행사와 맞닥뜨렸다. 바바(baba, 힌두교의 영적 지도자를 가리키는 칭호-옮긴이)라는, 그 특별한 행사의 성인이 있었고, 그의 추종자들이 커다란 무리를 이루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다. 오랫동안 맛난 음식을 먹지 못했던 나는 존경을 표하고는 점심을 얻어먹으려고 그들에게 향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바가 거기 앉아서 식사하는 나를 보자마자 곧장 걸어와 자리에 앉더니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내가 구사하는 힌디어는 변변찮았다. 하지만 그는 대화를 진행하려 애썼고, 대화를 하는 동안에는 배꼽을 잡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더니 내 팔을 잡고는 나를 등산로로 데리고 올라갔다. 약간 재미있기는 했다. 그 사람과 고작 10초를 어울리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 온 인도인이 수백 명이었는데, 정작 그는 점심을 얻어먹겠다고 합류한 나를 이끌고 산에 올랐으니까.
우리는 30분 후 산 정상에 다다랐다. 산꼭대기에 작은 우물과 연못이 있었다. 그는 내 머리를 물에 밀어 넣더니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열아홉 살짜리가 해외에, 그것도 히말라야 산맥 꼭대기에 있는 것도 쉽지 않은 경험인데 나머지 군중에게서 나를 떼어내 거기로 끌고 간 기이한 인도인 바바가 산꼭대기에서 내 정수리를 면도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귀국해서는 무슨 일을 했나?
귀국해서 받은 문화적 충격은 해외로 나갈 때 받은 것보다 심했다. 음, 아타리는 나한테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고 꼬드겼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들은 나를 설득해 컨설턴트로 복직시켰다. 워즈니악과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어울렸다. 그가 나를 자가 제작 컴퓨터 클럽 미팅 몇 군데에 데려갔는데, 그건 컴퓨터 덕후가 각자의 아이디어와 물품을 비교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가 탐탁지는 않았지만, 일부 모임은 재미있었다. 워즈니악은 종교 행사에 참석하듯 경건한 자세로 그런 자리에 갔다.

당시 컴퓨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당신이 컴퓨터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뭐였나?
클럽들은 알테어(Altair)라 불리는 컴퓨터 키트를 중심으로 운영됐다. 실제로 소유할 수 있는 컴퓨터를 제작하는 방식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았으니까. 명심해라. 우리가 고등학생 때, 우리 중 컴퓨터 메인프레임에 접근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걸. 그 시절에 우리는 목적지도 없이 차를 몰고 나가 우리에게 자비로운 태도를 보이면서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해주는 대기업을 찾아 다녀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역사상 처음으로, 실제로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알테어는 1975년경에 나온 키트로, 400달러 미만에 팔렸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그걸 장만할 형편은 아니었다. 컴퓨터 클럽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중심으로 뭉쳤고, 결국 클럽을 결성했다.

집에서 뚝딱 만들어낸 컴퓨터로 무슨 일을 했나?
당시에는 그래픽이 없었다. 순전히 글자와 숫자로 작성하는 코드뿐이었다. 나는 프로그래밍에, 단순 프로그래밍에 매혹되곤 했다. 컴퓨터 키트의 초창기 버전의 경우 명령을 입력하는 방식이 타이핑이 아니었다. 캐릭터를 표시하는 스위치를 켜는 식으로 입력해야 했다.

그런 식으로 알테어는 가정용 컴퓨터 개념을 제시했다.
그건 일반인이 보유할 수 있는 종류의 컴퓨터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갖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정말 몰랐다. 그들이 한 첫 번째 일은 거기에 언어를 입력하는 거였다. 그 덕에 사용자는 일부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1년이나 2년쯤이 지나서야 실용적인 작업에 알테어를 응용했고, 장부 기입 같은 간단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알테어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다 보니 그런 식으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아타리에서 야근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워즈를 사무실에 들이곤 했다. 아타리는 그랜 트랙(Gran Track)이라는 게임을 발표했는데, 운전할 수 있는 핸들이 달린 최초의 운전 게임이었다. 워즈는 그랜 트랙 중독자였다. 그 게임을 하려고 엄청나게 많은 25센트 동전을 게임기에 집어넣곤 했다. 그래서 나는 밤중에 그가 제작팀 사무실에 들어와 바닥에 앉아 밤새 그랜 트랙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장애물에 맞닥뜨리면, 워즈에게 가서 10분간 게임을 중단하고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몇 가지 프로젝트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어느 날, 그는 비디오가 딸린 컴퓨터 단말기를 설계했다. 나중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구입해 그걸 단말기에 연결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만든 모델이 애플1이 됐다. 워즈와 나는 순전히 우리 힘만으로 회로기판을 설계했다.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번 저질러보자, 이거였나?
맞다. 그리고 일을 벌인 뒤에는 친구들한테 자랑할 생각이었다.

다음 단계인 돈을 벌기 위해 그것들을 제작해 판매하는 단계를 촉발한 건 뭐였나?
나와 워즈는 내 폭스바겐 버스와 그의 휴렛패커드 계산기를 팔아 1300달러를 마련했다. 최초의 컴퓨터 매장에 속하는 가게를 막 개점한 어떤 사람이 우리가 컴퓨터를 만들기만 하면 자기가 팔아주겠다고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제품을 만들어 팔 생각은 없었다.

당신과 워즈니악은 어떻게 함께 작업했나?
그가 제품의 대부분을 설계했다. 나는 메모리 분야의 작업을 도왔고, 우리가 그걸 제품으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정할 때도 도움을 줬다. 워즈는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제품 설계는 뛰어났다.

애플1은 덕후를 위한 거였나?
전적으로 그랬다. 우리는 그걸 150대밖에 못 팔았다. 큰 성공작은 아니지만 9만5000달러를 벌었고, 나는 그걸 취미나 소일거리가 아닌 사업으로 보기 시작했다. 애플1은 그냥 프린트된 회로기판이었다. 케이스도, 전력 공급 장치도 없었다. 제품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상품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프린트된 회로기판이었다. 애플1을 구입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 변압기를 구입해야 했다. 키보드도 직접 구입해야 했고.(웃음)

일단 일이 그렇게 굴러가기 시작하자 당신과 워즈니악은 비전을 품었나? 두 사람 다 이게 얼마나 커질 수 있는 일인지를 가늠하면서 컴퓨터가 세상을 바꿔놓을 능력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아니,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 중 어느 쪽도 이 일이 어딘가로 굴러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워즈의 행동 동기는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궁리하는 것이다. 그는 엔지니어링에 더 전념했고, 그러면서 그가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를, 즉 디스크드라이브를 만들어내는 데 이르게 됐다. 디스크드라이브는 애플2를 실현 가능한 제품으로 만들어낸 또 다른 핵심적 위업이었다. 나는 회사를 구축하고 회사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워즈가 없었다면 일이 진행되지 못했을 테고, 내가 없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후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중요한 건, 워즈가 회사로서 애플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프린트된 회로기판으로 애플2를 만들어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제품을 만들 수 있었고, 이동하는 길에 철사를 부러뜨는 일 없이 컴퓨터 클럽까지 그걸 갖고 갈 수 있었다. 그 작업을 완수한 그는 다른 일들로 옮겨가기로 결정했다. 그에게는 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가 1000만 달러 남짓을 날린, US 페스티벌 록 콘서트와 컴퓨터 쇼 같은 아이디어다.
음, 나는 US 페스티벌은 약간 정신 나간 짓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워즈는 그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강했다.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가?
가까운 사이인 사람과 일하면서 우리가 겪은 것과 비슷한 경험을 겪고 나면 평생 가는 유대감이 생긴다. 우리가 얼마나 귀찮은 상황에 처했든, 유대감이 존재한다. 비록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아닐지라도, 우리 사이에는 우정을 초월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워즈는 현재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5년쯤은 애플 주위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했던 일은 역사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그는 지금 많은 컴퓨터 이벤트들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그러는 걸 좋아한다.

당신들은 일을 계속 진행시켜 애플2를 창조했고, 그 제품은 사실상 컴퓨터 혁명의 출발점이었다. 그 일은 어떻게 일어난 건가?
순전히 우리끼리 해낸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끌어들였다. 워즈니악은 여전히 애플2의 로직을 담당했는데, 그게 그 프로젝트의 큰 부분이었던 건 확실하다. 하지만 다른 핵심적 부분도 있었다. 전력 공급 장치는 정말 중요한 핵심이었다. 케이스도 중요한 핵심이고. 애플2를 진정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시킨 요인은 그게 완제품이었다는 점이다. 그건 사람들이 키트가 아닌 상태로 구입할 수 있는 최초의 컴퓨터였다. 제품 전체가 조립돼 있었고, 전용 케이스가 있었으며 키보드가 딸려 있었다. 사용자는 그 앞에 앉아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게 애플2가 이뤄낸 획기적 발전이다. 진짜 제품처럼 보였다는 점.

최초의 시장은 덕후였나?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애플2의 구매자들은 하드웨어 덕후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덕후도 애플2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게 애플2가 이뤄낸 중요한 발전 중 하나였다. 세상에는 나랑 워즈처럼 컴퓨터를 갖고 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컴퓨터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깨달음이 많다는 말이다. 바로 그게 애플2의 존재 이유였다. 그랬음에도, 첫해에는 3000대 아니면 4000대밖에 팔지 못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거의 알지 못하는 사내 2명이 거둔 성과치고는 대단하다.
엄청난 성과였다! 우리는 사업장이 차고에 있었던 1976년에 20만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1977년에는 매출이 700만 달러 정도였다. 경이로운 수치였다! 그리고 1978년에는 1700만 달러, 1979년에는 47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제야 우리는 이 사업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거라는 걸 감지했다. 1980년에는 매출액이 1억1700만 달러, 1981년에는 3억3500만 달러, 1982년에는 5억8300만 달러였다. 1983년에는 9억850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고 생각한다. 올해에는 15억 달러가 될 것이다.

그 숫자들을 다 기억하나 보다.
음, 그 숫자들은 사업의 성공 여부를 판별하는 척도일 뿐이다. 엄청난 일은 1979년에 애플 컴퓨터 15대가 있는 교실에 들어가 그것을 사용하는 아이들을 직접 본 것이다. 기념비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 얘기가 나오면서 한 바퀴를 돌아 당신이 최근에 벌인 획기적인 사건들로 돌아오게 됐다. 맥으로 무장한 당신이 IBM을 상대로 오랫동안 벌인 총격전 말이다. 이 인터뷰에서 당신이 거듭해서 한 말은 이 분야에는 사실상 애플과 IBM 두 기업만 남게 될 거라는 투로 들린다. 당신들 두 기업이 시장의 60% 남짓을 차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40%를 차지한 다른 기업(라디오 색, DEC, 엡손 등)을 그냥 실패한 기업으로, 하찮은 기업으로 볼 수 있는 건가? 더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지금 제일 큰 라이벌이 될 잠재력을 가진 AT&T를 무시하는 건가?
AT&T는 틀림없이 이 사업에 진출할 것이다. 지금 현재 AT&T 내부에서는 대대적인 전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AT&T는 정부의 보조금과 규제를 받으면서 서비스를 지향하는 기업에서 경쟁이 치열한 자유 방임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술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AT&T의 제품은 그 자체로는 최고 품질이었던 적이 없다. 사람들이 AT&T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들의 전화기를 살펴보는 게 전부다. AT&T 입장에서 그건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체 연구소를 통해 엄청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이 극복해야 할 난제는 그 기술을 상용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또 소비자 마케팅도 배워야 한다. 그들이 양쪽을 다 학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배우는 데는 몇 년이 걸린다.

AT&T가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데는 실패할 거라고 보는 건가?
그들이 향후 24개월 이내에 우리가 근심해야 할 어마어마한 요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무튼 그들은 내가 앞서 얘기한 것들을 배울 것이다.

라디오 섀크(Radio Shack, 미국의 전자제품 판매 체인-옮긴이)는 어떤가?
라디오 섀크는 눈곱만치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버스를 놓쳤다. 라디오 섀크는 그들의 소매업 모델에 컴퓨터를 끼워 넣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내 생각에 그런 노력은 정부가 보유한 잉여 물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매장 환경에서 2류 제품이나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걸 의미한다. 컴퓨터를 구매하는 세련된 소비자는 라디오 섀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라디오 섀크 매장을 지나쳤다. 그들의 시장점유율은 바닥을 뚫었다. 그들이 회복해서 다시금 주요한 경쟁자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는다.

제록스는 어떤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DEC, 왕(Wang)은?
제록스는 컴퓨터 사업을 접었다. TI는 그들이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른 일부 기업의 경우, DEC와 왕 같은 대기업은 그들의 장비가 설치된 기반 시설을 상대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그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고급 터미널이라며 판매할 수는 있지만, 그런 비즈니스는 고사할 것이다.

코모도어(Commodore)와 아타리 같은 저가 컴퓨터는 어떤가?
나는 그 제품을 소비자들이 왜 반드시 애플2나 매킨토시를 구입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참고 자료로 본다. 사람들은 500달러 미만 가격대의 컴퓨터는 성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결정을 이미 내린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 제품들은 사람들이 더 많은 걸 원하도록 감질나게 만들거나 사람들을 완전히 좌절시키거나, 둘 중 하나다.

일부 소형 휴대용 기기는 어떤가?
당신이 기자라서 뛰어다니면서 필기를 하려고 애쓰는 상황이라면 그런 제품은 OK다. 그런데 당신이 일반인이라면, 유용하지도 않고 그런 제품을 위한 소프트웨어도 별로 없다. 그런 제품에 적합하게끔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구할 무렵이 되면 약간 더 큰 디스플레이가 딸린 신제품이 나오면서 당신이 구한 소프트웨어는 구닥다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그런 제품을 위한 소프트웨어는 어느 누구도 만들고 있지 않다. 우리가 그런 제품(책 크기만 한 본체에 매킨토시의 성능을 구현한 제품)을 만들 때까지 기다려라!

엡손과 일부 일본 컴퓨터 제조사는?
예전에도 그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일본인은 미국의 양쪽 해변을 물고기 시체처럼 강타했다. 그들은 죽은 물고기처럼 양쪽 해변으로 밀려 올라왔다. 엡손은 이 시장에서는 실패한 회사다.

컴퓨터 산업처럼, 자동차 산업은 미국이 일본에 거의 빼앗긴 산업이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이 일본 기업에 입지를 빼앗기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당신은 어떻게 경쟁 우위를 지켜낼 건가?
일본 기업은 매우 흥미롭다. 일부 사람들은 일본 기업이 미국 제품을 복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기존 제품을 재발명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 발명된 물건을 가져가 그걸 철저히 파악하고 이해할 때까지 연구한다. 일부의 경우, 그들은 그걸 오리지널 제품의 발명자보다 더 잘 파악한다. 그들은 그 이해력을 바탕으로 그 제품을 더 세련된 2세대 버전으로 재발명할 것이다. 그 전략은 그들이 작업하는 대상이 그리 심하게 변화하고 있지 않을 때에만 효과가 있는데, 스테레오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그런 산업에 해당한다. 표적이 빠르게 움직일 때, 그들은 그런 전략을 수행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재발명 사이클은 2년쯤 걸리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라고 정의되는 제품이 지금 같은 속도로 계속 변해가는 한, 그들은 굉장히 힘든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변화 속도가 느려지면, 일본 기업은 이 시장과 관련해 자신들이 보유한 모든 강점을 이 산업에 쏟아부을 것이다. 그들은 컴퓨터 사업을 장악하는 걸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그걸 국가적 우선순위로 삼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4, 5년쯤 지나면 일본 사람들이 괜찮은 수준의 컴퓨터를 제조하는 방법을 결국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산업을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체가 되기까지 4년의 시간이 있다. 우리의 제조 기술은 일본 기업의 그것과 동등하거나 우월해야 한다.

그걸 어떻게 달성할 계획인가?
매킨토시를 설계하던 시점에, 우리는 기계를 제작하는 기계도 설계했다. 우리는 컴퓨터 산업에서 자동화가 제일 잘된 공장을 짓는 데 2000만 달러를 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공장이 쓸모가 없어지는 시점을 여느 기업처럼 7년으로 잡는 대신 2년으로 잡았다. 우리는 1985년 연말이면 그 공장을 내팽개치고 두 번째 공장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2년 뒤에는 그 공장도 쓸모없다고 여겨 폐쇄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3년이 지나면 우리는 세 번째 자동화 공장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학습을 충분히 빠르게 해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하지만 일본 기업과 경쟁 관계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들은 디스크드라이브를 소니에서 구매하고 있다.
우리는 부품 중 상당수를 일본 기업에서 구매하고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첨단 RAM 칩, 디스크드라이브, 키보드 분야에서 우리는 세계 최대의 사용자다. 플로피 디스크드라이브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직접 설계하고 제조할 필요가 없기에 많은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그 에너지를 소프트웨어에 쓸 수 있다.

소프트웨어 얘기를 해보자. 당신이 최근 2년 동안 본 것 중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적 변화는 무엇이었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에 탑재한 것은 진정 획기적 사건이다. 비지칼크(VisiCalc, 세계 최초의 표 계산 프로그램-옮긴이)도 획기적이었다. 그게 기업에 유용한 컴퓨터의 용도 중 최초였기 때문이다. 비지칼크 덕분에 사업하는 사람들은 컴퓨터의 활용이 안겨주는 구체적인 효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이 쓸 응용프로그램을 직접 프로그래밍해야 했는데, 실제로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수는 극소수(1%)에 불과했다. 비지칼크와 짝을 이룬, 현황과 정보를 그래프로 보여주는 능력도 중요했다. 로터스(Lotus)도 마찬가지고.

일반인이 낯설게 여길 만한 브랜드 네임을 자주 언급하는데, 설명 좀 해달라.
로터스가 한 일은 뛰어난 스프레드시트와 그래픽 프로그램을 결합한 것이다. 로터스의 워드프로세스와 데이터베이스 부분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능이 아닌 건 확실하다. 로터스의 진정한 핵심은 스프레드시트와 그래픽 기능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결합했다는 것이다. 그 덕에 사용자는 그것들 사이를 굉장히 빠르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다음 획기적 사건은 지금 벌어지고 있다. 매킨토시 덕분에. 매킨토시는 리사에 구현된 기술을 일반 소비자가 구입할 만한 가격에 제공한다. 매킨토시에는 혁명적인 소프트웨어가 존재하고, 앞으로는 더 많이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은 획기적 사건이 벌어지고 2년쯤 후에야 그 사건을 진정으로 평가하고 싶어 하는 게 일반적이다.

워드프로세싱은 어떤가? 당신은 획기적 사건 리스트에서 그걸 거론하지 않았다.
맞다. 비지칼크 얘기를 한 후에 워드프로세싱을 언급해야 한다. 워드프로세싱은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필요로 하면서 제일 이해하기 쉬운 애플리케이션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용 컴퓨터를 쓰는 첫 용도도 그것일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도 세상에는 워드프로세서들이 있었지만, 개인용 컴퓨터에 깔린 워드프로세서는 경제적인 측면의 획기적 사건에 더 가깝다. 반면, 비지칼크는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 적이 없다.

교육용 소프트웨어에도 획기적 사건이 있었나?
교육 분야에는 대단히 뛰어난 소프트웨어가 많지만, 비지칼크에 비견될 만한 획기적 사건은 없었다. 앞으로 그런 소프트웨어가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향후 24개월 이내에 그럴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는다.

당신은 교육의 우선순위가 높다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컴퓨터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생각하나?
컴퓨터 그 자체가, 그리고 아직은 개발 단계에 있는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학습 방식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애플 교육재단이라는 단체를 결성했고,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선구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과 컴퓨터를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는 학교에 700만 달러 상당의 현금과 장비를 제공했다. 또 우리는 애플2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그랬던 이 매킨토시가 대학에서도 선택 받는 컴퓨터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용 컴퓨터에 대규모로 투자하려는 의향(1000대 이상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힌 대학 6곳을 물색했는데, 우리가 최종적으로 찾아낸 대학은 6곳이 아니라 24곳이었다. 우리는 대학에 매킨토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마다 최소 200만 달러를 투자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비리그 전체가 포함된 24곳이 모두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킨토시는 1년 이내에 대학교 컴퓨터 작업의 표준이 됐다. 마음만 먹으면 올해 우리가 만드는 모든 매킨토시를 그 24개 대학에 전달할 수도 있다. 물론 실제로 그럴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대학에는 수요가 있다.

그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는 깔려 있지 않나?
일부 소프트웨어는 깔려 있다. 거기에 깔려 있지 않은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대학생들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것이다. IBM은 IBM PC를 제공하는 것으로 우리를 저지하려 애썼다. IBM이 그 작업을 하려고 400명 규모의 태스크포스를 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대학들은 꽤나 영리하게 처신했다. 그들은 투자하려던 소프트웨어가 투자액 면에서 하드웨어를 능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많은 소프트웨어 투자액을 IBM 같은 낡은 기술에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그들은 IBM의 제안을 거절하고 매킨토시로 향했다. IBM이 제공한 보조금을 매킨토시를 구입하는 데 쓴 경우도 있다.

그 일부 대학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나?
안 된다. 그들이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

당신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은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당신과 당신의 학우들이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느낀 것은 뭐였나? 정치였나?
대학에서 알고 지내던 똑똑한 사람들 중 정치에 입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관점에서 볼 때,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정치는 그들이 입문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감지했다. 현재 그들 모두는 경영계에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인도로 오지 여행을 떠나거나 삶의 진리 비슷한 걸 찾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했던 사람들임을 생각하면 말이다.

비즈니스, 그리고 돈이라는 미끼는 결국 손쉬운 선택에 불과한 게 아니었을까?
아니다. 그들 중 돈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말은, 그 중 대부분은 돈을 많이 벌었지만, 돈 문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는 무엇인가를 실제로 시도해볼, 실패해볼, 성공해볼, 성장해볼 기회였다. 그 10년간의 세월 동안, 이런저런 일을 시험적으로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정치는 뛰어들 곳이 아니었다. 아직 30대에 접어들지 않은 사람으로서, 당신의 20대는 뭔가를 이뤄내고 싶어 안달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품은 이상의 많은 부분이 정치 분야에서 심각한 좌절을 겪었다. 그들이 품은 이상은 허약해졌다. 미국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게 하려면 위기를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90년대 초에는 정치 지도자들이 반드시 고심해 다뤄왔어야 할 이런 문제들이 부글부글 끓어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상당한 정도의 위기가 발생할 거라고 믿는다. 그 시점이 이들 중 다수가 그들이 한 현실적인 경험과 그들이 품었던 이상주의 모두를 정치 영역에 도입하려고 전면에 나설 때다. 세상은 최상의 훈련을 받은 세대가 정치에 진출하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재를 선택하는 법을, 일을 수행하는 법을, 사회를 리드하는 법을 알 것이다.

그런 얘기는 모든 세대가 하는 말 아닌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기술 혁명은 날마다 우리의 경제와 사회에 더욱 더 밀접하게 엮이고 있는데(미국 GNP의 50% 이상이 정보 관련 산업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대다수의 정치 지도자에게는 그런 혁명과 관련된 이력이 전혀 없다. 우리가 내리는 자원을 할당하는 법, 아이들을 교육하는 법과 관련된 중대한 의사 결정 중 상당수가 굉장히 중요해질 텐데, 그 의사 결정은 기술적 이슈와 기술이 가리키는 방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려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대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교육 분야에서 국가적 망신을 당하기 직전이다. 정보와 혁신이 중추적 요소가 될 사회에서, 우리가 현재 보유한 기술적 추진력과 리더십을 상실할 경우 미국은 2류 산업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교육 투자를 말하지만, 재정 적자가 치솟는 시대에 교육에 투자한다는 건 국가에 또 다른 재정적 부담을 안기는 문제 아닌가?
앞으로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본을 무기 제작에 쏟아부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분야가 우리가 돈을 써야 할 분야라고 결정했고, 그 결정 탓에 재정 적자가,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자본 비용이 늘어났다. 그러는 동안, 차세대 기술 전선인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에게 제일 근접한 경쟁자인 일본은 그 분야에 투자되는 자본을 늘리는 쪽으로 조세 구조와 사회 전반의 틀을 잡았다. 무기 제작 같은 일과 우리가 반도체 산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연관관계가 있다는 걸 미국인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런 위험에 대비해 스스로 교육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컴퓨터가 그 과정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음,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 봐서는 안 되는 비디오테이프를 본 적이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보여주려고 준비된 비디오였다. 2년쯤 전인데 그 테이프를 본 결과, 우리는 미군이 관리하는 유럽 내 모든 전술 핵무기가 표적을 설정할 때 애플2를 사용한다는 걸 발견했다. 우리는 군에 컴퓨터를 판매한 적이 없다. 군에서 직접 딜러를 찾아가 컴퓨터를 구매했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런데 우리 컴퓨터가 유럽 내 핵무기의 표적을 설정하는 데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된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사건에서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긍정적 측면은 군이 사용한 컴퓨터가 적어도 (라디오 섁) TRS-80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요점은, 도구들은 우리가 알게 되면 개인적으로 좋은 기분이 아닐 특정 작업을 위해 늘 사용될 거라는 점이다. 도구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궁극적인 지혜이지, 도구 자체가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는 어느 방향으로 향할 거라고 보나?
지금 우리는 컴퓨터를 좋은 하인처럼 꽤 잘 사용하고 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요구하고, 스프레드시트 같은 일부 작업을 하라고 요구하고, 입력하는 키보드 작업을 받아 편지를 작성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그 작업을 썩 잘 수행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하인으로서 컴퓨터)이 더욱 완벽해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는 컴퓨터가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가이드나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예상하고는 우리를 위해 그 일을 해내고, 우리가 하는 일들의 연결고리와 패턴을 인식하고, 주기적으로 하고 싶은 포괄적인 종류의 일이 있느냐고 우리에게 물어보는 식의 존재에 더 가까워질 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를 들어, 특정 상황 발생 시 자동 작동의 개념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에 우리를 위해 상황을 모니터하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거나 촉발되면 컴퓨터는 특정 행동을 취하고는 사후에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릴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보유한 주식의 주가를 매시간 또는 매일 모니터하라는 식의 단순한 일이 그렇다. 주가가 우리가 설정해놓은 한계치를 넘으면, 컴퓨터는 내 브로커에게 연락해 전자거래로 주식을 판 다음에 나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월말에 컴퓨터가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 할당된 영업 쿼터를 20% 이상 초과 달성한 세일즈맨을 모두 찾아낸 다음, 내 이름으로 그들 각자에게 맞춤 편지를 써서 전자메일 시스템을 통해 발송하고, 편지를 발송한 대상자에 대한 월별 보고서를 나한테 제출할 것이다. 우리 컴퓨터가 100가지 정도의 그런 업무를 수행할 시대가 올 것이다. 컴퓨터는 우리를 위해 활동하는 에이전트와 사뭇 비슷해질 것이다. 향후 12개월 이내에 세상은 그런 일이 조금이라도 일어나기 시작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실제로는 3년쯤 떨어져 있다. 그것이 다음 번에 일어날 획기적 사건이다.

우리가 지금 가진 하드웨어로도 그 일을 모두 수행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당신은 우리에게 새 기계의 대금을 청구할 건가?
모두? 모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발언은 위험하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개념 면에서 매킨토시가 그렇게 설계된 건 확실하다.

당신은 애플이 타사를 앞서가게 만든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젊은 회사들과 따라잡기 놀이를 해야만 하는, 그러지 못하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늙은 회사에 대해 어떤 기분을 느끼나?
불가피한 일이다. 내가 죽음이야말로 삶이 만들어낸 가장 경이로운 발명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죽음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 낡은 모델의 시스템을 제거한다. 나는 그것이 애플이 직면한 난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두 젊은이가 혁신적인 차세대 제품을 들고 애플에 나타날 때, 우리는 그걸 수용하면서 환상적이라고 말할까? 기존 모델을 기꺼이 내팽개칠까, 아니면 제품에 폐기해야 할 만한 잘못이 없다는 식의 해명을 늘어놓을까? 우리는 더 잘해낼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철저히 인식하고 있고 우선순위 상단에 올려놓았으니까.

당신의 성공에 대해 생각하다 두 뺨을 철썩 때리고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자문하는 단계에 이른 적이 있나? 결국, 당신의 성공은 사실상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1년에 컴퓨터 100만 대를 파는 상황을 상상하곤 했지만, 상상으로 끝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그건 생판 다른 일이었다. “젠장, 그게 정말로 실현되고 있잖아!”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뭐냐면, 이게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째다. 나는 평생 무슨 일을 1년 넘게 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애플을 시작할 당시, 내게는 6개월이면 긴 시간이었다. 내가 자유의지를 가진 성인 비슷한 인간이 된 이후로 내 인생은 그런 식이었다. 해마다 많은 문제가 생겨나고, 많은 성공을 거두고, 많은 것을 학습하고, 인간적 측면에서 겪는 경험을 해왔기에 애플에서 보낸 1년은 평생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나의 지난 10년은 인생을 10번 산 거나 마찬가지다.

당신은 이번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마음속에 이따금 떠오르는 인도의 격언이 있다. “그대 인생의 첫 30년 동안에는 그대가 그대의 습관을 만든다. 그대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에는 그대의 습관이 그대를 만든다.” 2월이면 서른 살이 되기에, 그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다음에는?
그다음은 확실하지 않다. 나는 늘 애플과 연결돼 있을 것이다. 여생 동안 내 인생이라는 실과 애플이라는 실이 태피스트리처럼 안팎으로 엮이는 식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내가 애플을 비우는 기간이 2년쯤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늘 애플로 돌아올 것이다. 그게 내가 하려고 애쓰는 일이다. 세상이 나에 대해 명심해야 할 중요한 점은 나는 여전히 배우는 학생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신병 훈련소에 있다. 지금 이 인터뷰에 실린 내 생각 중 하나라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마음에 담아둘 것이다. 그 모든 일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라. 당신이 아티스트로서 창조적인 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싶다면, 뒤를 너무 많이 돌아봐서는 안 된다. 당신이 완성한 작품이 무엇이건, 당신이 어떤 존재였건 기꺼이 받아들인 다음에 그것들을 내버려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들이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의 대다수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습관, 패턴 무더기에 불과하다. 우리 존재의 한복판에는 우리의 가치관이 존재하고, 우리가 내리는 의사 결정과 우리가 한 행동은 그 가치관을 반영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힘든 일인 까닭이 그거다. 당신이 성장하면서 변화하는 동안, 외부 세계가 생각하는 당신의 이미지를 강화하려 애쓸수록, 아티스트로서 면모를 지속해나가는 게 더 힘들어진다. 아티스트들이 툭하면 “안녕. 가봐야겠어. 미쳐버릴 것 같아. 여기서 벗어날 거야”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거다. 그들은 그렇게 훌쩍 떠나서는 어딘가에서 동면에 들어간다. 그러다 한참 후에 약간 달라진 모습을 드러낸다.

당신도 훌쩍 떠날 수 있지 않나. 돈 걱정할 일이 없는 건 확실하니까.
(웃음) 죄책감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돈에 대한 죄책감.

돈 얘기를 해보자. 당신은 스물세 살에 백만장자가 됐고.
스물네 살 때 나의 순자산은 1000만 달러가 넘었다. 스물다섯 살 때는 1억 달러 이상이었고.

100만 달러를 가졌을 때와 수백만 달러를 가졌을 때의 차이점은?
인지도. 이 나라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순자산을 가진 사람의 수는 몇만 명이다. 1000만 달러 이상의 순자산을 가진 사람의 수는 수천 명으로 줄어든다. 1억 달러 이상의 순자산을 가진 사람의 수는 200명 정도로 줄어들고.

당신에게 돈은 실제로 어떤 의미인가?
아직도 그 의미를 모르겠다. 당신이 평생 쓸 수 있는 정도 이상의 돈을 가지는 건 큰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돈을 써야 한다고 느낀다. 당신은 사후에 자식들에게 막대한 돈을 남기고 싶지는 않을 거다. 그 돈이 자식들의 인생을 망칠 테니까. 당신이 자식 없이 죽으면, 당신 재산은 모두 정부에 귀속될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재산을 인도주의적인 사업에 투자해 세상에 돌려주는 것이 정부가 그 투자를 하게 놔두는 것보다 훨씬 더 영리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돈을 갖고 살아가는 방법과 그걸 세상에 돌려주려고 재투자하는 법을 궁리하는 것이다. 그건 돈을 그냥 기부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관심사나 가치관을 표명하기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 사이의 선택을 뜻한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만의 은밀한 일로 간직하고 싶은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공공재단을 창설할 계획이다. 지금은 사적으로 몇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은 모든 시간을 돈을 쓰며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래야겠지. 나는 1달러를 효과적으로 기부하는 일이 1달러를 버는 것보다 어렵다고 확신한다.

그게 무슨 행동에 나서는 걸 미루는 핑계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거기에는 몇 가지 단순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어떤 일을 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때때로 실패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측정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 대다수 자선 활동의 문제점이 그거다. 그런 활동에는 측정 시스템이 없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돈을 줄 때, 대부분의 경우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한, 또는 그의 아이디어에 대한, 또는 그의 실행에 대한 당신의 판단이 실패한 것인지 성공한 것인지를 측정할 방법이 없다. 당신이 성공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 상황을 개선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또 대부분의 경우,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내놓는 아이디어가 최상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당신은 직접 나가서 최상의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작업에는 시간이 많이 든다.

당신이 사람들을 위한 모델을 창조하기 위해 당신의 인지도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당신이 선택한 이 분야 중 하나를 논의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뭔가?
아직은 해낸 일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이 분야에서는 행동이 사람들을 향해 내는 가장 큰 목소리여야 한다.

당신은 철저히 고결한 존재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사치는 허용하는 편인가?
글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책과 초밥, 그리고…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가 가진 제일 소중한 자원이 시간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현재 상황에서, 나는 개인적인 시간을 그리 많이 갖지 못하는 것으로 대가를 지불한다. 나한테는 연애에 몰두하거나 이탈리아 소도시로 여행을 떠나 카페에 앉아서 토마토와 모차렐라 샐러드를 먹을 시간이 없다. 가끔씩 귀찮은 일을 모면하려고 약간의 돈을 쓰지만, 사실 그 귀찮은 일이라는 건 결국 시간이 드는 일을 뜻한다. 뭐, 그 정도다. 뉴욕에 아파트를 한 채 샀는데, 그건 내가 그 도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소도시 출신으로 대도시의 세련된 문화 속에서 성장하지 못한 사람인 나는 나 자신을 교육시키려 애쓰고 있다. 나는 그걸 내 교육의 일부로 여긴다. 애플에는 원하는 모든 걸 살 수 있으면서도 돈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걸 문제점으로 간주하면서 얘깃거리로 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생각하겠지. ‘그래, 그럼, 당신 문제점을 나한테 줘봐. 내가 해결해줄게.’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고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 재산과 이력을 가진 당신은 남들은 거의 갖지 못하는, 꿈을 좇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자유 때문에 겁이 나나?
당신이 당신만의 꿈이라는 책임을 떠맡기 위한 수단을 갖게 되고 그 꿈이 실현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바로 그 순간, 인생은 훨씬 힘들어진다. 당신의 꿈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희박할 때는 경이로운 생각을 품기가 쉽다. 당신이 최소한 당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기회를 확보하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거기에는 훨씬 더 많은 책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당신이 예견한 가까운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먼 미래는 어떨까? 우리가 유치원에 다닐 때, 당신은 이미 컴퓨터가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게 될 몇 가지 방안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런 당신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나?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한테 인상적인 가장 중요한 일이 뭐였지? 그러면서 서양의 합리적 사고방식이 인간의 선천적 특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우리가 학습으로 습득한 능력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방법을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다. 교육의 최대 난제 중 하나는 우리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는 게 분명하다. 확실한 건, 우리 아이들이 컴퓨터라는 도구를 이용할수록 컴퓨터가 사고의 질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이다. 인간은 도구 사용자다. 책과 관련해 믿기 어려운 점은,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내용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 선생님을 찾을 필요는 없다. 선생님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내용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사고와 아이디어들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회를 이뤄 현재 위치에 있게 된 핵심적 구성요소 중 하나다. 그런데 책의 문제는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잠재적 가능성 중 하나는 경험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본질적 원칙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꽤나 조잡한 사례를 들어보겠다. 오리지널 비디오 게임인 퐁은 중력과 각(角)운동량 등의 물리학적 원칙을 정확하게 담아낸다. 각각의 게임은 그런 근본적 원칙을 준수했다. 그런데도 모든 게임은 우리 인생과 사뭇 다르다. 이것이 가장 단순한 사례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할 수 있는 일은 근본적 원칙, 근본적 본질을 정확히 담아낸 다음 사람들이 근본적 원칙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수천 가지 경험을 하는 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자,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 그의 세계관 기저에 깔린 원칙을 정확히 담아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당신은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당신은 그렇게 얻은 대답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했을 법한 대답과 정확히 같지는 않을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모두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최소한 흥미로운 피드백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 말이 그거다. 우리가 나선 도전의 일부는, 내 생각에는, 그런 도구들을 몇백만, 몇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안겨주고는 그 도구들을 개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우리는 처음에는 조잡하게, 그러다 점차 세련되게, 아리스토텔레스나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는 동안 했던 사고를 정확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그게 어떤 일을 해줄 수 있을지 상상해봐라. 아니, 어린 아이는 제쳐두고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해줄지 상상해봐라! 그게 도전의 일부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 그 작업을 해나갈 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도전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나는 지적 탐구라는 이 분야의 흥미로운 도전은 “우아하게 쇠락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1980년대 말이면 분명 통제권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싶어질 것이다. 다음 세대의 근본적 지각과 통찰력은 최첨단을 달린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작업을 계속 해나갈 수 있고, 우리의 어깨 위에 서서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건 굉장히 흥미로운 도전이다. 그렇지 않나? 우아하게 쇠락하는 방법 말이다.

Credit

  • 게스트 에디터 김선희
  • 포토그래퍼 Baron Wolman
  • David Sheff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