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보통 사람들 리짓군즈

‘합법적인 멍청이’를 자처하는 힙합 크루다.

왼쪽부터 뱃사공, 카키, 권오준

13명의 남자들이 햄버거를 들고 있다. “우리 중 몇몇이 햄버거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 우리 삶이 패스트푸드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Junk Drunk Love〉로 음반 이름을 지었고, 가사에서도 주된 소재로 쓰이기도 했어요.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소재라 햄버거와 함께 찍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래퍼 뱃사공이 리짓군즈를 대표해 촬영 소품으로 햄버거를 제안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 8월 발매한 리짓군즈의 세 번째 정규 음반 〈Junk Drunk Love〉는 케첩, 패티, 양상추, 할라피뇨 등 햄버거와 어울리는 식자재가 가사에 종종 나오는 등 중요한 소재로 읽힌다. 그리고 햄버거라는 쉽고 빠르며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음식을 인디 뮤지션의 삶에 빗대 깊이 있 는 서사까지 완성했다. 음악으로 예를 들면, ‘내 스타일은 7-eleven 네가 찾는 건 다 있지.’ 재지하고 훵키한 비트가 돋보이는 2번 트랙 가사는 리짓군즈의 코믹하고 친근한 매력을 대변하는 듯하다.

리짓군즈는 4명의 래퍼(뱃사공, 제이호, 블랭, 재달)와 프로듀서 5명 (어센틱, 아이딜, 빅라이트, 코드 쿤스트, 요시), 2명의 뮤직비디오감독(권오준, 카키), 사진작가 이동건 그리고 2명의 친구(부루, 해파리)로 이뤄진 힙합 크루다. 각자 역할이 뚜렷한 이들은 외부 힘을 빌리지 않고 음반과 굿즈 제작, 판매는 물론 콘서트까지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티켓 판매까지 진행한다. 한마디로 계약서 대신 신뢰로 뭉친 작은 회사다.

“자체적으로 모든 일을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면이 커요.” 래퍼 블랭은 농담하듯 말했지만, 리짓군즈는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발전했으며, 특히 이번 〈Junk Drunk Love〉는 전반적 음악 프로덕션의 완성도와 래퍼들의 조화, 뮤직비디오 그리고 음반 커버까지 모든 면에서 크루의 정체성이 명확하다. 모든 음반의 80%를 프로듀서 어센틱이 혼자 담당했으나, 이번 음반은 새로 함께하게 된 래퍼 재달을 포함해, 멤버 모두가 고루 참여하며 컴필레이션 음반으로서 역할을 공고히 했다.

그렇다면 저마다 다른 남자들이 리짓군즈로 뭉치게 된 계기는 뭘까? “모이게 된 이유가 좀 특이해요. 음악을 위해서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 ‘결성’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모인 경우입니다. 평소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도 있고, 그 친구가 데려온 새 친구도 있는데요. 그렇게 친해진 친구들 중 나처럼 랩하는 사람도, 사진 찍는 동생도, 비트를 만드는 형도, 사진 찍는 친구도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리짓군즈로 뭉쳤죠. (권)오준이 같은 경우엔 잘나가는 영상감독이고 영상 프로덕션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래퍼 블랭은 리짓군즈가 ‘그냥 모였다’며 가볍게 얘기했지만, 성인 13명이 한 가지 비전을 가지고 뭉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고정 수입이 있는 회사나 일종의 계약 관계가 아니라면 더더욱.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이들은 리짓군즈라는 이름하에 깊은 유대와 신뢰가 깔려 있기에 지금처럼 ‘모일’ 수 있는 거다.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CD 판매나 공연 예매도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우리 사이트를 통해 진행하고요. 유통 단계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게 아깝다는 게 아니라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자체적으로도 진행할 수 있는데, 굳이 수익을 나눌 필요는 없죠. 앞으로도 우리의 모든 상품은 직접 제작, 판매하고 진행하고 싶어요. 돈 때문에 의 상할 일만 없다면. 수익이 많아지면 리짓군즈엔 좋은 거니까요.”

래퍼 블랭은 농담조로 말을 끝냈지만, 현재 음악 산업이 인디 뮤지션에겐 불합리한 수익 분배가 될 수 도 있다는 일침과 리짓군즈가 독립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할 것임을 예고했다. 리짓군즈의 음악과 행보는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강한 무드의 힙합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장난기 넘치는 친근한 모습과 단체로 옷 을 맞춰 입고 등산을 가거나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는 모습을 SNS 에 올리는 등 코믹한 모습도 종종 보인다. “(리짓군즈만의 특징은 멤 버들끼리) 친하다는 거예요.”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가 말했고, “어느 동네를 가도 있을 법한 남자들이에요. 때로는 우르르 몰려다니는 친구들처럼 미친 척 놀기도 하고요. 이런 우리 모습이 미디어에 솔직하게 비쳐지는 것 같아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리짓군즈만의 장점이 됐어요.” 블랭이 말을 보탰다.

〈Junk Drunk Love〉의 동명 타이틀 곡 가사 ‘다 제쳐두고 버거야. 우린 원래 입맛대로 살어’라는 솔직한 가사처럼 리짓군즈는 지금 힙합 신에 누구와도 다른,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 중이다. “일단 편하니까, 모든 작업을 할 때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요. 이 자연스러움이 음악을 비롯한 모든 작업에서 묻어나는 것 같고요. 우리는 모든 작업을 내부에서 해결하는 편이라 호흡이 중요하거든요.”

리짓군즈가 자연스럽게 만들었다는 음악과 독특한 콘텐츠를 기대하던 팬들은 공연 티켓 오픈 첫날에 매진시키며 기다렸다는 듯 화답했다. 리짓군즈의 뚜렷한 개성은 콘서트에서도 빛이 난다. 지난 3월에 진행한 콘서트 〈CAMP〉는 무대를 캠핑 장비로 꾸미는 등 리짓군즈만의 색이 공연으로 이어지자 특별함이 더해진다는 걸 보여줬다.

일반적인 스탠딩 공연과 다른 그들만의 콘텐츠로 이뤄진 공연은 SNS로 확산됐으며,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을 크게 만족시켰다. 리짓군즈는 언제나 그랬듯, 지난 공연도 기획부터 무대 디자인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공연할 때, 미술감독이나 외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았어요. 우리끼리 동묘에서 캠핑 용품 사다가 투닥거리며 꾸몄죠. 이번 공연도 우리만의 방식대로 준비할 겁니다.” 블랭이 말한 ‘우리만의 방식대로 준비’한 리짓군즈의 공연은 어떤 무대로 꾸며질지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힌트라면 이번 음반의 주된 소재인 햄버거.

리짓군즈로선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힙합 팬들에겐 친숙한 소식이 하나 있다. 뱃사공과 블랭이 온라인 힙합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보이는 라디 오 진행을 맡게 된 것. 〈쇼 미 더 머니6〉에서 준우승한 래퍼 넉살과 VMC 소속 래퍼 던밀스가 진행하던 〈황치와 넉치〉의 뒤를 잇는 방송이다. “힙합플레이야에서 진행하는 보이는 라디온데요. 〈황치와 넉치〉는 사무실에서 촬영했는데, 우리가 맡은 〈내일의 숙취〉는 술집에서 진행하게 됐어요. 말 그대로 ‘막장 스타일’이고 게스트와 함께 술 마시며 떠드는 방송이고요. 한 달에 두 번 나올 예정이고, 첫 방송은 9월 21일입니다. 얼마 전 첫 촬영을 했는데 앰비션 뮤직 소속 래퍼 창모가 게스트로 나왔어요.”

블랭과 뱃사공이 맡게 된 라디오는 힙합 팬들에게 ‘힙플라디오’로 불리는 동영상 콘텐츠로 전작 〈황치와 넉치〉엔 박재범, 도끼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래퍼가 참여하기도 했다. 또 다른 방송에서 볼 수 없는 래퍼들의 음악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나, 친숙하고 사적인 모습을 담아내 힙합 팬들 사이에선 놓쳐선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내일의 숙취〉 또한 〈황치와 넉치〉처럼 래퍼 및 힙합계 인물들과 함께할 것이 예상되어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 여기에 “며칠 전 첫 촬영을 했는데, 너무 취해서 아무 기억도 안 나요. 둘 다 촬영 중 필름이 끊긴 거죠”라는 뱃사공의 첫 촬영 소감은 힙합 팬들에게 배꼽 잡고 웃을 준비만 하라는 말과 같다.

넉살과 던밀스로부터 좋은 기운이 있는 힙플 라디오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는 점과 하루 만에 공연이 매진되는 등 리짓군즈는 지금 인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남다른 개성과 탄탄한 실력까지 갖춘 그 들은 앞으로 그들의 데뷔 곡처럼 ‘출항’할 일만 남은 듯하다. 〈Junk Drunk Love〉의 가사처럼 ‘서울 빌딩 사이 캠핑’하고, ‘합법적으로 시간 축내는 바보들’에게 ‘너무나 파라다이스’가 가까이 왔다.


자신들의 삶과 정크푸드를 비교하며 자조하면서도 그런 삶에 자긍심을 드러낸 리짓군즈의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별 볼 일 없는 삶이라 스스로 낮춰 말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는 리짓군즈의 우직함을 보여준다.

Credit

  • 에디터 양보연
  • 포토그래퍼 김연제
  • 장소 News Boy Burger Pub
  • 어시스턴트 김선희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