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준비운동은 끝났다. UFC 선수 김동현은 증명할 일만 남았다고 했다.

작전대로 이긴 거예요. 1분 30초 만에 TKO로 이기는 걸 계산한 건 아니지만, 준비한 그대로 이겼어요. 고미 다카노리 선수가 아무리 하향세라고 해도 한때 챔피언까지 지냈던 선수고. 아직 격투 센스나 펀치가 엄청 좋거든요. 전성기 때 고미 선수의 경기를 보면 거의 무적처럼 느껴져요. 맷집도 좋고, 상대가 누구든 다 때려 눕혔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 나이로 40대가 됐고, 경기 스타일이 몸에 배어서 익숙한 경기 운영만 하고, 따로 작전을 짜 오는 편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경기 초반에 몸으로 부딪쳐보고 깨달았죠. 그래서 저는 난타전을 벌일 것처럼 먼저 치고 들어가는 척하다 빠지고, 그라운드로 몰고 가는 식의 준비된 작전을 그대로 이행했어요. 그런데 그라운드 가기 전 탐색전에서 제 펀치가 고미 선수 얼굴에 제대로 들어갔고 그대로 경기가 끝난 거예요. 나중에 알았는데, 그게 딱 90초였죠. 제가 고미 선수와 붙은 ‘UFC 파이트 나이트 117’은 일본에서 열렸어요. 한일전을 일본 원정 경기로 하게 된 거죠. UFC 역대 한일전에서 한국 선수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고, 저도 지고 싶지 않았어요. 격투기 선수로서 상대가 누구든 이겨야 하는 게 맞지만, “물러서면 안 된다”를 속으로 몇 번 되뇌었죠.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는 정말 중요했어요. UFC와 계약한 네 경기 중 마지막 경기였고 저는 UFC 전적을 2연패로 시작한 터라 고미 선수에게 지면 재계약은 물 건너가는 상황이었거든요.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죠. 2연승을 달리고 있으니, 재계약은 확정이라고 보면 돼요.

제 UFC 데뷔전은 예정된 게 아니었어요. ‘긴급 투입’된 거였죠. 임현규 선수가 부상으로 경기 출전이 무산됐고, 제가 대타로 한 체급 위인 웰터급에서 도미니크 스틸 선수와 경기하게 된 거예요. 이 제안을 경기 10일 전에 받았지만, 고민 없이 승낙했어요. 격투기 선수로서 제 목표는 UFC 입성이었으니까. 하지만 상대와 체급 차이도 있었고, 상대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하기에 짧은 준비 기간이라 졌어요. 결과는 아쉬웠지만 UFC 선수가 된 걸로 만족했어요. 그 경기가 2015년 11월에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79’였는데, UFC 최초로 한국에서 진행된 이벤트라서 경기를 보러 가려고 티켓도 예매했었어요. ‘팬심’이었죠. 그런데 선수로 옥타곤에 서게 된 거예요. 그 티켓은 친한 동생 줬어요. 형 응원하러 오라고.(웃음)

개인적으로 제 UFC 두 번째 경기는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대체로 UFC에서 데뷔전부터 2연패 한 선수는 퇴출이라고 보면 되거든요. 저는 이미 한 번 진 상황이라, 상대가 누구든 반드시 이겨야 했어요. 상대가 폴로 예레스 선수였는데 저는 그 선수의 특징을 철저하게 파헤쳤고 체력, 정신적으로 탄탄히 준비했어요. 지는 건 생각도 안 했어요. 3라운드 동안 제가 몇 번 압도하기도 했는데, 피니시를 못해서 아쉬웠죠. 정말 인정사정없이 펀치를 주고받았어요. 사실 난타전 말고 그라운드로 몰아서 승기를 잡을 수도 있었는데, 그냥 주먹으로 끝내고 싶었어요. UFC에서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김동현이 누구인지, 그런데 상대도 저만큼 악착같더라고요. 결국 3라운드에 TKO를 당했죠. 경기가 끝나고 둘 다 만신창이가 돼서 병원으로 실려갔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 받고 호텔로 가는데 팬들이 와서 환호를 보내주는 거예요. 잘했다고, 멋있다고. 그날 저와 폴로 예레스 선수는 UFC로부터 가장 화끈한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에게 주는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보너스를 받았어요. 메인 경기 말고 언더 경기에 출전한 선수에게 보너스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준 보상이니까, 뿌듯하더라고요.

돌아보니 제게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UFC 세 번째 경기도 마찬가지였죠. 2연패를 했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으니까요. 상대는 브랜든 오라일리라는 선수였어요. 분석했죠. 그러다 제가 선택한 건 무조건 이기기 위한 ‘안전 빵’. 다른 경기에서 지적 받은 문제점을 빈틈없이 보완했어요. 이기고 싶었고, 그래야 했어요. 결국 거리를 두고 타격이나 기술로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어렵지 않게 판정승 했죠. 한숨 돌린 경기였어요. 저는 ‘올라운더’를 추구해요. 타격가랑 싸우면 타격으로 압도하고, 레슬러랑 붙으면 그라운드로 압살하는 그런 선수. 말 그대로 옥타곤에선 뭐든 잘하는, 정정당당하고 멋진 방식이죠. 제 소속 팀인 팀매드에 저와 이름이 같은 UFC 선수 (김)동현이 형이 있어요. UFC 최초 한국인 선수이자 웰터급 랭커인 멋진 형이죠. 형이 처음 UFC 경기에 다녀와서 해외 선수들을 보고 후배들에게 한 말이 있어요. “UFC 선수들 실제로 보니까, 별거 없다. 너희들이 더 잘한다.” 저도 직접 부딪혀보고 같은 생각을 했어요. 모든 종합 격투기 선수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다 뛰어난 실력가들이에요. 매일 연습하고, 피나는 노력을 하는 선수들이죠. 강자들과 싸워 이겨서 선수로서 증명했냐, 못 했냐가 실력으로 한 끗 차이인 선수들의 랭킹을 가르는 거예요. 제가 속한 라이트급을 ‘혼돈의 체급’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쟁쟁한 선수들이 많거든요. 특히 라이트급은 얼마 전 복싱 레전드 메이웨더와 대전료 몇 억 달러가 오가는 복싱 경기를 벌인 뜨거운 감자 코너 맥그리거가 챔피언으로 있고, 1위부터 15위까지 선수들도 쟁쟁한 실력자들이에요. 저는 지금 언제, 누구와 붙어도 자신 있게 싸울 수 있어요. 제 체급에서 항상 위만 바라보고 있죠. 누구라도 붙어서 이기고, 빨리 증명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지금은 먼저 데뷔한 동현이 형에게 묻혀 ‘김동현B’로 불리고 있는데, 팬들이 붙여준 별명 ‘마에스트로(Maestro)’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지휘자처럼 우아하게, ‘간지’나게.

“저는 지금 언제, 누구와 붙어도 자신 있게 싸울 수 있어요. 제 체급에서 항상 위만 바라보고 있죠. 누구라도 붙어서 이기고, 빨리 증명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Credit

  • 에디터 양보연
  • 포토그래퍼 김잔듸
  • 영상 김원
  • 출연 김동현, 윤신영, 양보연
  • 헤어 박슬기
  • 메이크업 박슬기
  • 어시스턴트 김연유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