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새>의 주인공들

그중에서도 아오이 유우는 가장 진지했다. 어떤 질문에도 쉽게 답하는 법이 없었다.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속 츠다 쉬오리 의 서늘한 표정, <하나와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발레를 추던 순간, <허니와 클로버>에 나온 하구의 스타일, <훌라 걸스>에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울부짖던 타니카의 얼굴, <동경가족> 속 마미야의 미소, <오버 더 펜스>에서 새들의 교미법을 아무렇지 않게 따라 하는 사토시의 행동. 어떤 식으로든, 어떤 장면으로든 배우 아오이 유우는 사람들에게 하나 이상의 장면으로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다.

그녀의 작고 가녀린 몸, 짙은 눈썹과 눈동자에 반한 이들은 누구로 분하든 그 사람이 되고야 마는 그녀의 연기에 여지없이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가 그녀에게 몰입하는 동안, 마냥 해맑던 열일곱 소녀는 이제 자신의 애욕에 관해 자연스럽게 연기할 줄 아는 30대 여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신작 <이름없는 새>를 통해 30대 여배우로서 또 다른 연기 인생의 출발점에 섰다.

헌신적인 남자친구를 두고 전 남자친구를 그리워하고, 또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나쁜 여자 토와코를 연기했다는 것부터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아베 사다오와의 만남까지. 영화 <이름없는 새>는 개봉 전부터 그녀를 흠모하는 이들 사이에서 파격 혹은 신선한 충격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플레이보이>는 내년 개봉을 앞두고 미리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온 그녀와 아베 사다오, 그리고 시라이시 가즈야 감독을 만나 영화의 속사정에 관해 들었다. 비가 내리는 부산의 밤에 만난 이들은 인파 속에서 레드 카펫을 밟은 직후임에도 고요하고 침착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피곤한 기색도 아니었다. 오히려 1박 2일의 짧은 일정 속에서 자신들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제대로 치르겠다는 결의가 보였다.

그중에서도 아오이 유우는 가장 진지했다. 어떤 질문에도 쉽게 답하는 법이 없었다. 짙은 눈썹 사이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질 만큼 고민을 하다 겨우 입을 떼었다. 그러다 가끔 특유의 환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그녀의 모든 말이 의심의 여지 없는 진짜처럼 느껴졌다. <플레이보이>를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강렬한 기억을 남겨주었다.

 

Q1
오늘이 부산국제영화제 첫날인데, 하필 비가 오네요. 개막식 분위기는 어땠나요?
시라이시 가즈야 : 비가 와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현장의 열기는 대단했어요. 부산 사람들이 굉장히 열정으로 환대하더라고요. ‘아 내가 지금 대단한 영화제에 온 거구나.’ 하는 기분을 넘치게 느낄 수 있을 만큼요.

Q2
짧은 일정이라 관객으로서 영화제를 즐길 시간 이 없어 아쉬울 것 같아요.
아이오 유우 : 맞아요. 영화도 보고 간장게장도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Q3
만약 온전히 관객으로 놀러 왔다면, 부산을 어떻게 즐기고 있었을 것 같나요?
시라이시 가즈야 : 산책요. 영화제로는 몇 번 왔는데 그냥 온 적은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 좀 여유롭게 걸어보고 싶네요.
아이오 유우 : 아까 해운대 바다를 보면서 ‘아직 부산 바다에 손 한번 못 넣어봤네’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부산 바닷물을 만져보는 게 소원이에요.

아까 해운대 바다를 보면서 ‘아직 부산 바다에 손 한번 못 넣어봤네’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부산 바닷물을 만져보는 게 소원이에요.

 

Q4
세 분이 함께 만든 영화 <이름없는 새>는 아직 일본에서도 개봉 전이라고 들었어요. 영화제에서 내일 첫선을 보일 텐데,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 영화의 정체를 먼저 밝혀주실 수 있을까요?
시라이시 가즈야 : 쓰레기 같은, 질이 떨어지는 최악의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로, 보는 내내 찝찝한 기분이 들 거예요.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다 보고 나면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Q5
배우로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영화의 어떤 부분에 끌렸나요?
아베 사다오 : 결정할 만한 시간이 없었어요. 보자마자 바로 ‘오케이’였거든요. 전에 해보지 않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제안을 받았어요.
아오이 유우 : 저도 비슷한 이유에서 출연을 결정했어요. 사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헌신적인 남자친구에게 못된 행동만 일삼는, 누가 봐도 욕할 만한 캐릭터잖아요. 그런데 그런 점 때문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캐릭터를 제가 잘 만들어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었거든요. 또 아베 상이 파트너라는 얘기를 들은 것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고요. 아마 일본 배우 라면 누구나 아베 상과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걸요?
아베 사다오 : 이 말 꼭 써주세요.(웃음)

Q6
의외의 캐스팅이라는 반응도 있어요. 감독님은 두 배우가 가지고 있는 어떤 부분에서 캐릭터를 떠올리신 건가요?
시라이시 가즈야 :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미지가 아오이 유우 씨의 얼굴이었어요. 그리고 그녀와 15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 배우를 생각했죠. 이 작품은 연령 차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거든요. 그러니까 상대 남자 배우는 40대 중반 이상이어야 했는데, 그중 가장 매력적인 배우가 아베 사다오 씨였어요. 또 일본 감독이라면 누구나 그와 일하고 싶어하니까요.
아베 사다오 : 이것도 꼭 써주세요.(웃음)

 

Q7
이 영화의 장르를 정해볼 수 있을까요? 사랑 이야기 같으면서도, 미스터리물 같거든요.
아베 사다오 : 어렵네요. 어떤 장르일까?
시라이시 가즈야 : 미묘하게 장르를 알 수 없게끔 만들었어요. 처음엔 휴먼드라마 같은 느낌이지만, 중반부터는 미스터리,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사랑’이 보이게끔요.

Q8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로 ‘고독, 외로움’이 자주 등장해요. 흥미로운 건 주인공 모두가 외로움과 고독을 부정하거나 벗어나려 애쓰지만 결국 누구의 고독도 해소시켜주지 못한다는 거예요.
시라이시 가즈야 : 맞아요. 이건 고독을 해소시켜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거든요. 그저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을 노골적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누구에게나 고독은 있으니까요.

Q9
연기를 하면서 가장 고독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아베 사다오 :
사실 남자 주인공인 진지는 영화 속에 서 유일하게 고독을 느끼지 못한 사람일 거예요. 늘 자신에게는 토와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토와코 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가 있을지라도요.
아오이 유우 : 토와코는 진지가 너무 싫어서, 진지가 아닌 다른 남자들과 있을 때 고독이 채워지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다른 남자들과 사랑을 나눈 후 다음 신이 텅 비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어쩌면 토와코는 ‘고독’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Q10
연기를 하면서 감정적인 소모가 꽤 컸을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난 후 별다른 여파는 없었나요?
아베 사다오 :
괜찮았어요. 진지가 늘 더러운 얼굴에 떡진 머리를 하는 노동자로 나오는데, 그것만 잘 씻어내면 됐어요.

Q11
영화 속에서 토와코는 늘 진지에게 가혹하고 험한 말만 하잖아요.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갔나요?
아베 사다오 :
한국에도 사투리가 있죠? 오사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 간사이벤(관서 지방 사투리)을 연습하는 데에 거의 모든 시간을 썼어요.
아오이 유우 : 저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사투리라 어렵더라고요. 계속 억양이나 발음을 확인했던 것 같아요.

Q12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감정적으로 동요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시라이시 가즈야 :
맞아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렇지만 ‘다는 이해할 수 없지만’이라는 마음이 드는 것만으로도 캐릭터에 대한 이해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이 사람들이 안타까웠다는 거잖아요.

Q13 
맞아요. 토와코는 왜 매번 저렇게 진지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돌릴까? 진지는 왜 그렇게까지 토와코에게 맹목적일까? 도대체 사랑이란 게 뭘까?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어요.
시라이시 가즈야 : 그렇죠. 역시 영화 속에서 행해지는 토와코와 진지의 행위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긴 하죠. 그들의 관계를 어떤 운명으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사실 이 영화의 주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가 운명이거든요.

 

Q14 
사실 영화를 본 입장에서는 여성이 부수적 혹은 소모적으로 나오는 영화들이 많은 최근의 영화 시장에서 오랜만에 신선한 작품을 봤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라이시 가즈야 : 비율로 말하자면 일본도 남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건 아니지 만요.

Q15
아오이 유우 씨는 어떤가요? 여배우로서 선택할 만한 작품이 없다거나, 아니면 선택의 폭 자체가 좁다는 느낌이 있나요? 아오이 유우 :
글쎄요. 저는 넓은 것 같아요. 동년배 배우들 사이에선요.
시라이시 가즈야 : 맞아요. 아오이 유우 씨는 많은 역할이 가능하니까요.
아오이 유우 : 그런데 좀 이상한 역할이 많죠.(웃음)

Q16
좋은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관객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어 떤 영향을 받았으면 하나요?

시라이시 가즈야 : ‘사랑’이오. 사랑이라는 건 사람마다 모두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담긴 생각도 다를 거고요. 저희 영화에서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영화를 보고 각자 자신의 사랑에 대해 생각을 했다면, 그걸로 만족이에요.

Q17  
얘기하신 대로 영화 속에서 진지는 자신의 인 생을 걸어 ‘사랑’을 주고 있었어요. 혹시 실제로도 인생을 걸 만큼 사랑한 게 있었나요?
시라이시 가즈야 : 어쩌다 보니 지금은 영화감독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축구를 진짜 사랑했어요.

Q18  
배우분들은 영화 속에서 서로에게 전하지 못해 아쉬운 한 마디가 있다면요? 두 캐릭터 모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베 사다오 :
전 남자친구가 선물한 피어스를 진지가 던져버리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거 다시 찾으러 가지 마.”라는 말요.(웃음) 왠지 찾으러 갈 것 같아 불안해요.

저희 영화에서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영화를 보고 각자 자신의 사랑에 대해 생각을 했다면, 그걸로 만족이에요.

Q19
혹시 스토리가 끝난 이후 남은 캐릭터들의 삶 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을까요? 일종의 열린 결말이라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아오이 유우 :
아! 저도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토리가 끝난 이후 토와코의 삶이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예상할 수가 없는 여자라서 그런가 봐요. 계속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던 토와코가 영화 말미에 처음으로 멀쩡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오히려 그녀에게는 무방비 상태였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됐을까요?

Q20
늘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자를 만났으 니까,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할 수도 있겠네요.

아오이 유우 : 맞아요. 금세 다른 남자를 만나서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아니면 지옥에 떨어 졌을 수도 있고요.

Credit

  • 에디터 강예솔
  • 포토그래퍼 김연제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