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헤프너

<플레이보이>가 20번째 생일을 맞이한 1974년. '미스터 플레이보이', 휴 헤프너가 직접 지면에 등장해 자신의 솔직한 야망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플레이보이> 창간호는 헤프너가 품은, ‘남성지라면 이래야 한다’는 비전의 결정체였다. 픽션과 논픽션, 유머, 미술과 사진의 적절한 조화와 헤프너가 ‘끝내주는 실내 생활(the great indoors)’이라고 부른 것을 모두 반영한 결과물. 그 당시 이런 잡지는 단 한 권도 없었다. 창간호는 7만 명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곧 매진됐다. <플레이보이>는 창간 몇 달 만에 대성공을 거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잡지 업계에 등장한 최고의 성공작이 되었다. <타임>이 1967년 커버 스토리에 헤프너에 대해 논평한 대로였다. “그는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진을 출판하더라도 하늘이 무너지거나 어머니들이 시위행진을 벌이지는 않을 것임을 알아차린 최초의 발행인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금기가 사라지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봐야 하는 구닥다리 잡지’라는 포장지를 벗겨낸 다음, ‘사회와 문화, 우아함’이라는 포장지를 입혔다. 이 전략은 <플레이보이>를 성공으로 이끌어준 확실한 공식인 것으로 판명됐다.”

정확한 평가였다. 실제로 창간한 지 10년도 지나기 전에 헤프너는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다른 매체에도 그에 대한 기사가 끊임없이 실렸다. 그는 자신이 발간하는 잡지에 제시한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성적인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대담하게 실행에 옮긴 실천가가 됐다. 그가 철저하게 자족적인 환경을 갖춘 시카고의 맨션을 직접 건설하고 바깥으로 나오는 모험을 거의 하지 않던 1960년대에 <플레이보이>는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19개 도시의 플레이보이 클럽, 그리고 자메이카와 위스콘신, 뉴저지, 시카고, 마이애미 비치의 호텔이 연달아 들어섰다.

10년이 지난 후, 헤프너는 세상에서 제일 호사스러운 전용기를 야심차게 공개했다. 커스터마이징한 DC-9를 그는 빅 버니(Big Bunny)라고 불렀고, 유럽과 아프리카로 수차례 여행을 떠나거나 출장을 다닐 때마다 이 전용기에 올랐다. 생활과 사업을 병행하는 세계가 있는 시카고에서 최근 그 세계로 편입된 LA의 플레이보이 맨션 웨스트로 출장을 갈 때도. 규모가 5.5에이커(약 6730평)나 되는 이 새로운 맨션에서, 그는 영화와 TV, 음반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회사의 활동을 감독했다.

잡지는 물론 잡지에서 파생된 여러 사업이 큰 성공을 거뒀음에도, 혹은 그런 성공을 거뒀기에 <플레이보이>와 그 발행인은 다양한 진영에서 쏟아내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 선두에는 성적 금욕주의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맨살을 드러낸 모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우아하게 연출해서 보여주더라도 말이다. 그다음으로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플레이보이 철학’을 문제 삼았다. 우파에서 쏟아낸 맹공이 잦아들자, 다른 진영에서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플레이보이>의 ‘물질주의’를 격렬히 비난하는 급진 좌파, 그리고 <플레이보이>가 성차별주의를 전파하고 있다고 매도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 해방 운동의 비주류 단체가 이에 속한다. 좌파와 페미니스트는 이 잡지, 그리고 1965년 창설 이래 헌법 권리를 보전하는 운동을 활발히 벌여온 플레이보이 재단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바로 그 대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은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플레이보이>는 비판 세력도 많이 낳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키워낸 건 모방자였다. 대부분의 모방자는 그들이 보기에 <플레이보이>의 성공 공식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뻔뻔하게 도용했다. 그런 잡지 중 일부는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그럼에도 <플레이보이>의 독자층은 월간 2600만 부라는 역사상 최고 성과를 향해 계속 늘어갔다. 이 수치는 다른 모방 잡지의 발행 부수를 모두 합친 숫자보다 크다.

<플레이보이>의 창간 20주년이 가까워졌고, 우리는 편집장이자 발행인, 휴 헤프너에게 126번째 ‘플레이보이 인터뷰’의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헤프너가 스스로 창간한 잡지의 지면에서 지난 20년이 그와 <플레이보이>, 그리고 독자에게 어떤 의미이며 향후 20년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에는 20주년 기념호보다 더 적합한 기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헤프너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우리의 생각에 동의했다.

전례 없는 이 임무를 위해, 우리는 프리랜서인 래리 두보이스(Larry DuBois)를 선택했다. <타임>의 필자이자 기자였던 31세의 두보이스는 과거 ‘플레이보이 인터뷰’를 위해 만화가 줄스 파이퍼, 드라이버 재키 스튜어트,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칼럼니스트 잭 앤더슨을 인터뷰했다. 그만큼 그가 임무 수행에 필요한 자질인 경험과 필력, 끈기, 뛰어난 유머감각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는 걸 확신했다. 우리의 판단은 옳았다. 인터뷰는 시카고에서 시작된다.

시카고 외곽에 위치한 오헤어 공항의 버틀러 에비에이션 터미널. 평범한 리무진들 사이에 있는 비행기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HH1340이라는 번호판을 단 큼지막한 메르세데스 600이 멈추고 리무진의 주인이 차에서 발을 내리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린다. 활기찬 걸음으로 성큼성큼 그곳을 통과하는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아서 마치 스냅 사진에 찍힌 사람들처럼 보인다. 금발 미녀 두 명이 잰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른다. 한 명은 그의 여자 친구다. 다른 여성은 굉장히 유능한 비서인데, 그가 지시를 내릴 때마다 그 내용을 수첩에 미친 듯이 휘갈겨댔다.

몇 시간 후, LA 상공에서 그는 친구들과 모노폴리 마지막 판을 끝내고 있다. 비행기가 프리웨이 위로 기수를 낮춘다. 지나가던 차량들이 굼벵이처럼 느려진다. 운전자들이 꼬리 날개에 래빗헤드가 그려진 매끈한 검은색 DC-9을 구경하려고 속도를 늦춘 탓이다. 그 비행기의 주인은, 물론 휴 헤프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비행기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전용기고, 그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잡지 발행인이며, 그는 공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 사생활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를 직접 만나본 사람과 이야기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왜 항상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그는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요?”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질문을 그토록 자주 한다는 것은 헤프너가 자신의 이름을 그의 잡지만큼이나 유명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러나 무수한 소문이 그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바람에 대다수 사람들은 그가 실제로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와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구들을 제외하면, 나는 누구보다 헤프너를 잘 아는 사람이 됐다. 그런데도 그 질문의 최종적인 대답을 아직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헤프너가 그를 다루는 전설의 내용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인물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뱉은 이 말을 그에 관한 여러 다른 이야기와 연결시키려고 애쓰는 작업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인 것으로 판명됐다.

지난 3월, 2시간짜리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시카고에 있는 헤프너의 맨션을 찾아갔다. 그랬다가 그곳에 6개월이나 머물고 말았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아직까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바깥세상의 온갖 번뇌와 계절로부터 단절된 쾌락적인 환경, 도무지 저항할 길이 없어 마치 별세계 같은 그곳의 매력이 부분적인 이유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머물렀던 가장 큰 이유는, 헤프너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모두가 읽고 싶어 하는 인터뷰 기사를 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첫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잡지와 잡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에 상황 판단이 뛰어난 정치인처럼 대단히 세련되고 품위 있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계속 해봤자, 내가 예전에 사상가와 이론가에 대해 쓴 인터뷰 기사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글이 나올 거라는 사실을 우리 둘 다 깨달은 듯하다. 뻔하디뻔한 인터뷰의 한계를 결코 넘어서지 못할 상황이었다. 나는 그가 어마어마하게 신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게다가 그는 낯선 사람에게 속내를 많이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도록 내게 한동안 손님으로 머무르라며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됐고, 엄청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헤프너의 세계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백개먼(두 사람이 주사위로 하는 놀이)과 핀볼을 하며 놀고, 그의 친구들과 안면을 트고, 그의 사적인 세계에서 리듬과 패턴을 느끼면서 몇 달을 보낸 후, 우리의 인터뷰는 굉장히 개인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됐다. 진지한 순간도 있었고 때때로 유머가 넘쳤으며, 항상 열정적이면서도 지칠 줄 몰랐다. 한번은 그의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헤프너 주위에 있는 건, 몸뚱어리를 전기 소켓에 꽂는 거랑 비슷해요.” 맞는 말이다. 헤프너는 마흔일곱 살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감정을 자극하는 캐치프레이즈를 알고 있는 듯하다. 이런 것처럼 말이다. 필사적으로 살아라, 성공을 향해 돌진하라, 전심전력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들어라.

어떤 날은 그와 한밤중까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사업과 관련된 안건이 쌓여 있는 날이면 그는 임원들과 진행하는 미팅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미팅들은 24시간 마라톤 회의로 둔갑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회의 참석자들이 오전 10시에 비틀거리며 회의실을 떠나면, 헤프너는 친구들과 오락실로 달려갔다. 핀볼 기계로 치열하고 시끌벅적한 전쟁을 벌이며 6시간을 보낸 다음, 여자친구가 있는 그의 진영으로 퇴각했다. 휘황찬란한 불빛에 둘러싸인 헤프너는 분명 그런 생활에 싫증을 내거나 따분함을 느낄 것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통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순간에 몰입한 대상이 무엇이든, 그는 압도적 수준의 집중력을 보여준다. 그의 밑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어떤 직원은 말한다. 헤프너의 시선을 끌기 전까지, 당신은 그가 느끼는 세상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의 생각은 그가 그 시점에 하고 있는 일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 일에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상 당신은 그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어느 날 밤, 이른 저녁에 헤프너를 인터뷰했던 꽤나 젊은 TV 기자가 잘 자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모노폴리 테이블에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가 하나에 쉽게 꽂히는 그의 집중력을 체험했다. 그녀는 그가 고개를 들어 알은척을 하기를 기다리며 최소 2분을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결국, 뻘쭘해진 그녀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헤프너는 머리를 휙 돌리면서 그녀의 손을 털어내려고 펄쩍 뛰어올랐다. 무례한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만한 순간이지만, 실제로는 그 여부를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모노폴리 게임에 너무나 집중한 탓에 그녀가 그에게서 불과 15cm 떨어진 곳에 서 있다는 걸 감지조차 못한 거였다.

헤프너는 매사가 그런 식이다. 그 정도의 에너지와 열정, 집중력이 그를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인물로 만들어준다. 헤프너를 제대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던 필자 중 이런 특성을 제대로 탐구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 1시간 넘게 같이 있어본 이들에게 그의 이런 특성은 놀라운 게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소스라치게 놀란 점이 있었다. 그를 다룬 읽을거리를 모두 섭렵했는데도 단 한 줄의 기록도 발견하지 못한 그의 특성이다. 그는 심각한 기분이 아닌 경우에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괴팍한 인물이다. 그와 게임을 하면서 보내는 평범한 밤은 마르크스 형제의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으면서 약간 제정신이 아닌 시간이다. 예를 들어, 그날 방송한 워터게이트 뉴스에 대해 헤프너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사람들이 그의 소중한 친구이기도 한 레니 브루스에게 기대할 만한 통렬하고 풍자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헤프너가 대중 앞에서도 외향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그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됐을 거라는 말을 나는 허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특성을 친한 친구들을 위해 아껴둔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그의 이런 모습을 녹음기에 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내가 인터뷰를 하며 느낀 최고의 순간 중 많은 부분은 모노폴리 테이블에서 유쾌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때, 백개먼을 할 때, LA에 있는 그의 저쿠지 동굴에서 물을 텀벙거릴 때, 메르세데스를 타고 공항을 오갈 때 던진 질문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그가 그 순간을 나와 기꺼이 함께하려 들지 않았다면, 나는 그 대답을 독자들과 공유하지 못했을 거다. 그 결과, 나는 여러분이 휴 헤프너가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감은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최소한 그의 주위에 있으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게 굉장히 재미있으며 너무도 보기 드문 경험이라는 걸. 헤프너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쉽게 규정하기 힘든 인물이자 모순적인 인물이다. 때로는 남들을 미치게 만들고, 때로는 2억 달러 규모의 기업 제국을 건설한다. 꽤나 상투적이지만 ‘어른을 위한 디즈니랜드’라고 불려온 개인적인 세계를 창조해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경기를 진행해나가는 어마어마한 배짱을 가진 미치광이 천재다.

비행기가 프리웨이 위로 기수를 낮춘다. 지나가던 차량들이 굼벵이처럼 느려진다. 운전자들이 꼬리 날개에 래빗헤드가 그려진 매끈한 검은색 DC-9을 구경하려고 속도를 늦춘 탓이다. 그 비행기의 주인은, 물론 휴 헤프너다.

당신은 이 인터뷰를 왜 하는 건가요?
우리의 창간 20주년 기념호를 편집하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니까요.

당신의 잡지를 위해 직접 인터뷰를 한다는 점에 대한 거리낌은 없나요?
글쎄요. 인터뷰에서 내가 혼잣말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당신의 특별한 통제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이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동의했다는 걸 독자들이 믿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물론이죠. 당신은 그저 <플레이보이>의 컨트리뷰터로서 당신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지도 모르는 주제만 꺼내지 않으면 돼요.

세상에 그보다 더 공평한 얘기가 어디 있을까요? 좋습니다. 그럼 출발점부터 시작해보죠. 처음에 <플레이보이>를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이유는요?
음, 정말 출발점부터 시작하는군요. 이른 나이에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 동네 신문을 발행했어요. 매 호를 구식 로열(Royal) 타자기로 공들여 친 다음, 집집마다 다니면서 1부당 1페니를 받고 팔았죠. 어릴 때는 미치광이 과학자와 괴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탐정, 우주 여행 같은 소재가 가득 담긴 환상적 작품을 쓰고 만화로 그리면서 여가 시간을 보냈어요.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공부를 해야 할 수업 시간에 만화를 그린다며 나를 꾸짖던 걸 기억해요. 학교에서 이런 식으로 계속 시간을 허비하다가는 앞으로 인생에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거라고 적은 쪽지와 함께 내가 그린 그림을 집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내셨죠.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스쿨 데이즈(School Daze)>라는 자서전을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작업은 졸업 후에도, 육군에서 복무했던 2년과 제대 후 대학 생활 내내 계속됐고, 결국에는 지금도 틈틈이 업데이트하고 있는 자전적인 스크랩북으로 탈바꿈했어요. 군에 있을 때 잡지 ‘덕후’가 돼서 다양한 출판물의 편집 콘셉트와 콘텐츠를 공부했어요. <데일리 일리니(Daily Illini)>에 만화를 그리고 캠퍼스 유머 잡지 <섀프트(Shaft)>를 편집했던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만의 잡지를 발행하고 싶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꿈을 위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유일한 요소는 돈이었죠. 무일푼이었거든요. 연재 만화 2편의 아이디어를 신문 신디케이트에 팔아보려 애썼지만, 그들은 흥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 광고부에서 주급 40달러를 받는 카피라이터로 일하기 시작했죠. 이 경험이 다음 직업으로 이어져 <에스콰이어> 홍보부에서 주급 60달러를 받는 카피라이터로 일했어요. 흥미진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에스콰이어>는 내가 10대 초반에 매료됐던 세련된 세상을 대표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잡지에서 찾아내곤 했던 마법은 내 자리에서 전혀 발휘되지 않았어요. <에스콰이어>에서 일하는 페티 걸(Petty Girl, 핀업 아티스트 조지 페티가 <에스콰이어>를 위해 작업했던 작품의 통칭)은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에스콰이어>를 떠난 이유가 주급을 5달러 올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주급을 올려주지 않은 데서 그치지 않았어요. 홍보부 부장은 나를 불러놓고는 내가 우수한 ‘회사원’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퇴사를 고려하는 게 옳다고 설득하는 데 1시간 가까이 노력을 쏟았어요. 그런데, 맞는 말이긴 했어요. 어쨌든 <에스콰이어>는 뉴욕으로 옮겨갔고 나는 나만의 잡지를 발행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 시절에 인기 있던 남성지였던 <트루>와 <아고시>는 대부분 아웃도어와 모험을 다뤘어요. 그런 잡지는 가슴에 수북이 난 털 같은 남성미를 강조했고, 사냥과 낚시, 티베트의 산꼭대기에서 설인을 추적하는 내용을 다룬 기사를 실었죠. 나는 그보다는 약간 더 도시 지향적이었는데 실내인인 데다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로맨틱한 놈이었죠. 그래서 내가 더 관심 있는 주제에 전념하는 남성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지금 발행되는 와인과 여성, 음악을 다룬 잡지를요. 반드시 그런 순서를 유지하는 건 아니더라도요. <에스콰이어> 편집의 지향점은 전쟁 이후에 바뀌었어요. 여성, 만화, 유머 같은 가벼운 소재를 제외하는 쪽으로요. 그래서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잡지를 위한 공간은 활짝 열려 있었어요.

예의범절을 따지는 프로테스탄트 집안 출신인 당신이 <플레이보이> 같은 잡지를 발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 건 무엇이었나요?
부분적으로는 예의범절을 따지는 내 프로테스탄트 배경 때문일 거예요. 부모님이 경이로운 분들이신데, 이상주의를 내게 심어주셨어요. 지금도 그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요. 어릴 때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 같은 1930년대 클래식 영화를 보고는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던 걸 기억해요. 가장 기초적인 민주주의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사회에 맞서 싸우는 남자라는 전형적인 미국적 테마를 다룬 영화죠. 나는 용인된 ‘진리’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습을 타파하려는 개인의 이미지를 우러러봤어요. 그런데 내 부모님이 키운 아들은 당신이 용인하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헛소리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아들이기도 했어요. 그들은 대단히 엄격한, 거의 철저하게 금욕적인 개신교도로 자라난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무척 어린 나이에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걱정이 많으시고, 악마는 우리의 육신에 거주하고 있다’는, 갈등 상태에 있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에 대한 여러 어리석은 종교적 담화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어요. 금욕주의자는 인간의 성적인 본성을 억누르는 건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 많은 일이 정신없이 벌어지게 됐어요. 결국에는 미국의 것이 돼버린 그들의 성도덕 규범은 ‘모든 쾌락은 위험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정한 규칙 덩어리일 뿐이었어요. H. L. 멘켄(20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미국 저널리스트)은 금욕주의자를 ‘어딘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를 끔찍이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죠. 그런 성도덕은 ‘노동은 고결하지만 노동에 따른 보상을 향유하는 건 퇴폐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됐어요 이런 주제에 대한 내 관점을 표명할 잡지, 섹스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나 물질주의의 혜택을 다룬 잡지, 쾌락을 우리의 생활로 되돌려놓기 위해 힘쓰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그런 대의를 좇는 활동의 일환이었어요. 그리고 나머지 이유는 세련된 남성지를 발행하는 것이 10대 때부터 키워온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였기 때문이에요. 그 꿈이란 게 뭐였냐면, 여자들을 많이 자빠뜨리는 거였죠.

진담인가요?
미안해요. 엉겁결에 말실수를 했네요. 잠깐 뭔가에 씌었던 것 같아요. <플레이보이>를 창간하기 이전에 늦은 밤의 시카고 거리를 걷다가 고층 아파트 빌딩의 불빛을 보고는 ‘풍족한 생활’의 일부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곤 했어요. 그 빌딩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죠. 인생에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에 있고 싶었어요. ‘그런 일’이 무엇이든 말이에요. 물론 난 그런 일이 무엇인지를 결국 알아냈는데, 그건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어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나은 거였고, 꿈꾸던 것보다 더 짜릿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잡지를 창간할 당시에는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어요. 여전히 빈털터리였죠. 그런데 당시 스물일곱 살이던 난 조만간 나만의 잡지 만들기를 시도하지 않으면 결국 좋은 회사원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은행으로 달려가 가계대출로 200달러를 빌렸어요. 그다음에는 같은 거리 아래쪽에 있는 대부업체에 가서 집에 있는 가구를 담보로 400달러를 빌렸죠. 그러고는 친구들과 친척들, 친구의 친구들을 찾아다녔어요. 내 얘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면 누구든. 그렇게 또 다른 3000달러를 마련했죠. 여기서 100달러, 저기서 50달러 빌리는 방법으로 빌릴 수 있는 돈은 몽땅 다 빌린 거예요. 어떤 필자 친구는 창간호에 실릴 기사를 기고하고는 원고료 200달러를 주식으로 받았어요.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수익성이 좋은 잡지 기사일 거예요. 그 기사 덕분에 그는 백만장자가 됐으니까요. 사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3600달러를 갖고 메이저 잡지를 창간할 현실적인 방법은 전혀 없다는 얘기를 해줄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사업을 잘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건 좋은 일이었어요. 내가 <플레이보이>를 창간할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타임>이 창간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좋은 비교 대상이에요. 그들은 3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후에야 흑자를 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내가 오늘날 가진 출판 지식을 그 시절에도 알고 있었다면, 나는 그 기회를 거머쥐기 충분할 정도로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때로는 무식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때가 있어요.

이런 주제에 대한 내 관점을 표명할 잡지, 섹스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나 물질주의의 혜택을 다룬 잡지, 쾌락을 우리의 생활로 되돌려놓기 위해 힘쓰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그런 대의를 좇는 활동의 일환이었어요.

<플레이보이>의 성공을 창간 시점부터 자신했나요?
아뇨.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얼마나 확신이 없었던지, 창간호에 발행일자를 인쇄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첫 달에 책이 다 팔리지 않으면 그 다음 달에도 가판대에 잡지를 그냥 남겨둘 작정이었어요. 회사 전체에서 편집팀의 인원은 나 혼자였는데, 그런 나마저도 전문적 편집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어요.
창간호를 7만 부 인쇄했는데, 처음 2주 안에 거의 다 팔렸어요. 최초의 시장 반응을 본 나는 잡지 유통업자에게 약간의 선금을 받았고, 그 덕에 2호를 인쇄할 수 있었어요. 그러고는 다시 그렇게 3호를 내는 식이었어요. 내가 잡지를 계속 출판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걸 깨달을 무렵, <플레이보이>는 성공작 반열에 올라 있었어요. 창간 1주년이 됐을 때, 그 당시 7명이던 전 직원과 함께 동네 샌드위치 가게에서 축하 파티를 열었죠. 회사가 망하지 않고 여전히 사업을 해나가고 있다는 걸 기념하려고 직원들에게 한턱 쐈거든요. 몇 년 있으면 <플레이보이>가 이 시대에 가장 성공한 잡지가 될 것이고 우리의 토끼가 세계 전역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거대한 제국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거라는 걸, 그땐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내가 처음에 잡지 이름를 ‘수사슴 파티(Stag Party)’로 정했고, 잡지의 상징도 수사슴이 될 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마음을 바꿨어요.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말이에요. 그렇게 됐다면 아마도 지금하고는 생판 다른 일이 벌어졌을 거예요. 사슴뿔을 쓴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시중을 드는 클럽이라니, 상상이 되나요?

상상하지 않는 편이 낫겠군요. <플레이보이>의 경이로운 성공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설명하나요?
알맞은 때에, 알맞은 곳에서, 알맞은 아이디어로 탄생한 잡지였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전통적 도덕적 가치관이 엄청나게 많이 바뀔 즈음 <플레이보이>는 그런 변화를 반영한 최초의 인쇄물이었어요. 우리는 성에 더 자유분방한, 더 많은 유흥과 쾌락을 지향하는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직장을 벗어난 공간에서는 정체성을 그 어느 때보다 덜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서 그들은 더 많은 레저 시간을 소비하고 있고, 그런 활동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어요. 2년쯤 전에 어느 대학의 계간지에 실린 기사가 <플레이보이>와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Poor Richard’s Almanac-벤저민 프랭클린이 쓴 저서로 근검절약에 대한 경구들이 담겨 있다)>을 흥미롭게 비교했더군요. 벤저민 프랭클린은 더욱 검소한, 노동 지향적인 금욕주의 도덕관이 서부 개척 사회의 생존이 필수던 시절에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가이드북을 저술했어요. 그에 반해 <플레이보이>는 도시적인 사회의 새로운 도덕적 가치관을 제공하며 등장했죠. <플레이보이>에 담긴 메시지는 시끌벅적하면서도 뚜렷해요. “당신의 인생을 즐겨라.” 성 조사 연구소 소장인 폴 겝하드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어요.
<플레이보이>의 천재성은 섹스를 경제적 신분의 상승과 연계한 것에서 드러난다고. 이건 내가 설파하는 내용을 사회학자가 사회학적 스타일로 표현한 거예요. 물론, 그가 그런 말을 한 이후로 몇 년간 <플레이보이>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잡지가 됐어요. 경제적 신분 상승과 쾌락 지향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상징물, ‘Entertainment for Men’을 지향하는 잡지를 넘어서는 존재가 된 거예요. <플레이보이>는 꽤나 얌전하게 창간한 이후로 출판 역사상 가장 인기 좋은 잡지 중 하나가 됐을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잡지 중 하나가 됐어요. 시각적, 문학적, 그리고 저널리즘적으로 말이에요. 젠장, <플레이보이>는 정말 최고예요. 성 풍습뿐 아니라 개인의 권리에 대한 옹호자로서의 영향력을 볼 때, 내가 <플레이보이>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는 걸 당신이 알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거예요. 당신은 센터폴드 페이지를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 독자 유형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마음껏 즐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운이 좋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유와 기회를 누리도록 옹호하기 위한 기사와 인터뷰, ‘플레이보이 포럼’에 엄청나게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는 걸 감지하게 될 거예요.

이런 자유와 기회를 지지하기 위해 한 일이 있나요? 잡지에서 그것을 옹호한 것과는 별개의 활동이요.
플레이보이 재단을 설립한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재단은 잡지에서 우리가 지지했던 것과 동일한 대의를 좇는 활동을 많이 후원해요. 특히 정부와 다른 재단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 채로 남기에 충분할 정도로 대중적이지 않은 대의요.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권 옹호 사건과 전쟁 반대 운동, 제시 잭슨의 PUSH(People United to Save Humanity) 운동 등을 지지해왔어요. 다른 여러 민권 조직, 정치 혁신, 성과 관련된 조사와 교육, 그리고 대중적인 이슈가 되기 이전의 낙태 제도에 대한 개혁과 교도소 개혁도 마찬가지예요. 성과 마약을 억압하는 법률을 개혁하자는 캠페인을 벌일 뿐 아니라 자선 기금과 커뮤니티 기금을 모으려는 활동도 많이 해왔고요. 또한, 오랜 기간 킨제이 연구소와 매스터스, 존슨 연구소의 주요 후원자였고, 지금은 마리화나와 관련된 법률을 개혁하기 위한 전국적 조직의 가장 큰 후원자예요.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건 우리 사회의 구조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이 재단,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다른 여러 재단을 통해 사회적 책무를 다해왔어요. 그 재단들은 플레이보이 주식의 주요한 수혜자들이죠.

<플레이보이>는 꽤나 얌전하게 창간한 이후로 출판 역사상 가장 인기 좋은 잡지 중하나가 됐을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잡지 중 하나가 됐어요. 시각적, 문학적, 그리고 저널리즘적으로 말이에요. 젠장, <플레이보이>는 정말 최고예요.

<라이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신이 이 재단에 투입한 기금은 ‘몸이 지은 집’이 올린 수익을 통해 얻어낸 겁니다. 당신이 <플레이보이>의 편집 방침과 사회·정치적 대의를 위한 재정적 책무 이행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건 누드 사진이 잡지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경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일로 비난받고 싶진 않아요. 나는 그 여성들을 사랑해요. 그들은 <플레이보이>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섹스가 인간의 총체적 경험에서 필수 불가결한 부분인 게 마땅한 것처럼요. <플레이보이>는 남성 독자의 에로틱하고 지적인 관심사를 잡지에 통합하려고 애써왔어요. 그런데 그건 창간할 때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논쟁을 일으켰고, 오해를 받은 편집 콘셉트인 것으로 판명됐어요. <뉴스위크> 같은 상대적으로 수준 높은 잡지조차 <플레이보이>가 ‘사람들을 어르는 용도’로 섹스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면서, 그러지만 않았다면 아주 뛰어났을 콘텐츠를 망쳐버렸다고 비난했어요.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 2가지를 아우른 것은 <플레이보이>의 엄청난 미덕이에요. 누드 사진을 공개적으로 출판한 결과, 사람들의 머릿속을 오염시킨 물질을 제거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 사회가 <플레이보이> 덕분에 20년 전보다 성적 콤플렉스에 덜 시달리고 있다고 확신해요. 물론, 섹스를 추잡한 짓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개인의 은밀한 행위이자 개인이 혼자서 걱정할 문젯거리로 남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인간 섹슈얼리티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이죠. 건전한 성적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라고 장려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불건전한 성적 표현을 은밀히 하게 될 거예요. 책과 잡지, 영화, 심지어 일상 대화에서 섹스를 금지하려고 시도할 경우, 당신은 섹스를 더 은밀한 것으로 만드는 걸 돕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걸 더욱더 깊숙한 곳에 감춰버리는 결과를 낳을 거예요. 당신은 섹스를 어둠 속에 계속 묶어두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하려고 애써온 활동은 그 어둠을 비추는 불을 켜는 거예요.

하지만 잡지의 누드 사진은 공개적이고 건전한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관음적인, ‘보기만 하고 만지지는 마라’는 태도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영화 <벌거벗은 유인원(The Naked Ape)>에 멋진 대사가 있어요. “관음증은 살과 살의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건전한 성적 활동이다. 세계는 세계를 바라봐야 마땅하다.” 부인하려고 애쓰든 말든, 우리는 성적인 존재예요. 그리고 공개적이고 건전한 섹슈얼리티는 육체를 창피해하지 말 것을 요구해요. <플레이보이>를 시작할 때, 대다수 남성들은 부인이나 여자친구 앞에서 누드 사진이 실린 잡지를 펼치는 걸 불편해했을 거예요. <플레이보이>가 주장해온 것은 사람이 섹스에 대해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인간의 섹슈얼리티에서 수치심과 미스터리를 조금이나마 들어내 왔어요. 관능적 관심을 이런 식으로 억압한 것은 관음증을 스킨십으로 이어지는 선행 과정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스킨십을 대체하는 행위로 보이게끔 만드는 잘못된 결론으로 생각을 유도해왔죠.

당신은 플레이보이 클럽에서 ‘보기만 하고 만지지 마라’는 방침을 시행하고 있지 않나요?
물론 그러고 있죠. 그러면서 우리가 다른 방침을 허용할 경우 한층 더 시끄럽게 떠들어댈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비판을 받아왔고요. 어떤 비판자는 우리 클럽을 ‘2층이 없는 매음굴’이라고 불렀어요. 회원들이 버니에게 손대는 걸 허용했다면, 우리는 매음굴의 2층을 운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거예요. 그러면 무슨 일이 이어질지를 알아보는 데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을 거고요. 그 방침은 버니를 보호하려고 세운 것이고, 버니의 요구에 따라 그 방침을 계속 유지해왔어요. 우리는 버니의 사생활을 감시하려고 하지 않아요. 버니의 사생활과 클럽 운영을 별개의 것으로 유지하는 활동만 하고 있어요.

잡지를 편집할 때, 그리고 클럽에서 일할 버니를 선정할 때, 여성에 대한 당신의 취향은 큰 가슴에 대한 유아적 집착에 가까운, 미숙한 취향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으음, 내가 작은 가슴보다 큰 가슴을 선호한다는 걸 부인하지는 못하겠군요. 하지만 그런 비판은 내가 사내아이보다 계집아이를 선호한다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 거예요. 섹스를 하면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신체적 특징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뭔가 유아적이라고 주장하는 대중적 심리 분석가는 미덥지 않아요. 사실, 여자의 몸은 그렇게 구성됐고, 내게 여성의 몸은 창작에 영감을 주는 요소 중 하나예요. 여성 패션지에서 오랫동안 가슴이 납작하고 빼빼 마른 여성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투사해온 여성적인 아름다움의 이미지, 섹스와 무관한 이미지를 상대로 <플레이보이>는 부끄러움 없이 싸워왔어요.

<플레이보이>는 젊음과 미모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쁘고 젊은 여성을 향한 남성의 사춘기적 취향을 키우는 것으로 나이든 여성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주장이죠.
<플레이보이>가 마흔 살의 플레이메이트 사진을 실으면 더욱 성숙해질 거라는 뜻인가요? 내가 예쁘고 젊은 여성들의 사진을 출판하는 걸 선호한다면, 실제로도 그러고 있지만 그건 <플레이보이>나 내 성숙도가 떨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행태라기보다는 젊음과 미모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속성을 더 잘 반영한 결과물로 보여요. 여성에 대한 내 취향은 정확히 말해 순전히 개인적인 일탈 행동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그건 <플레이보이>의 2600만 독자들도 공유하는 취향이죠. 이 점에서 <플레이보이> 독자들은 전 세계 남성 인구 중 압도적인 다수와 다르지 않아요. 옛날부터 젊음은 신체적 아름다움과 관련된 보편적 기준을 설정해왔어요. 이유는 단순해요. 탱탱하고 모양이 잘 잡힌 젊은 얼굴이 축 늘어진 살덩어리와 군살, 주름에 비해 성적으로나 미적으로나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죠.

당신이 잡지에 등장시키는 여성은 굉장히 젊기 때문에 얼굴이나 몸에 주름이 잡힐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플레이보이>는 다른 자연스러운 신체적 결함을 사진에서 몽땅 제거하기 위해 리터칭을 한다는, 그래서 독자들이 실생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여성의 판타지를 창출한다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우리는 플레이메이트가 되도록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포즈를 취하게 하며 촬영하려 애쓰고 있어요. <플레이보이>는 항상 편집 방향을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아가씨라는, 믿음이 가고 진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여성미에 둬왔어요. 그 여성이 당신의 이웃에 사는 아가씨보다 예뻐 보일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건 순전히 우리가 센터폴드 페이지에 실을 후보를 선발하라며 사진작가들을 전국 곳곳에 파견해왔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찾아낼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을 실어왔어요. 우리 독자들은 평범한 얼굴과 몸매보다는 예쁜 얼굴과 몸매를 보는 쪽을 택할 거라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에요. 내 생각에, 우리 사진의 에로틱한 측면을 우리가 연출해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건 더욱 건전한 일이기도 해요. 어쨌든 우리는 상대적으로 리터칭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요. 실제로, 다른 여성지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덜 손질하죠. 화장 수준은 다른 여성이 흔히 데이트를 하러 가기 전에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고요.

최근까지 제기된, 당신이 음모가 보이는 사진은 출판하지 않도록 누드 사진을 손질한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개인적으로, 체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너무나 괴상해서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해요. 음모를 보여주는 것이 외설과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고, 지금도 있기는 하지만요. 사회가 과거의 젊은이가 하고 다니던 장발이 보여준 콤플렉스의 관점에서 음모에 대한 페티시를 만들어왔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어요. 세상이 이런 바보 같은 꼰대를 믿는다면, 서구 문명의 몰락은 바로 눈앞에 닥친 셈이에요. 세상에는 체모가 넘쳐나니까요. 그런데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능력이 성숙해지면서, 리얼리즘을 더 많이 담아내는 사진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느꼈어요. 영화와 연극 무대의 양쪽에서 올 누드가 흔해빠진 일로 자리 잡은 순간이 오니, 대중의 다수가 더 이상 체모에 질색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분이 무척 좋았죠. 어느 재치 있는 인물이 말했듯, 우리는 일찍이 1969년에 ‘음모를 보여주자’고 결정했어요.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나요?
올바른 결정이었던 건 확실해요. 그리고 대중은 음모를 보는 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내 감은 옳은 것으로 판명됐어요. 물론, 첫 반응은 호불호가 갈렸어요. 처음에 우리가 음모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먹은 것처럼 음모를 보여줬다고 욕을 먹을 것 같았죠. 그런데 편집 기준으로 삼으려고 늘 애썼던 취향 덕에, 독자들은 <플레이보이>에 등장한 음모를 그들 자신의 신체를 받아들이듯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한 것 같아요. 음모를 보여줄 때가 된 거죠.

음모가 보이든 말든, 일부 여성 해방 운동가는 <플레이보이>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한다고 주장해요. 특히 플레이메이트를요.
<플레이보이>는 여성을,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남성도 성적인 ‘존재’로 대해요. 성적인 ‘대상’이 아니고요. 물건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한다는 뜻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플레이보이>가 여성 해방이라는 대의를 좇는 활동을 효과적으로 벌인 세력이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언젠가 나를 여성 해방의 아버지라고 불렀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꽤나 기분이 좋더군요. 물론, 그녀는 나를 칭찬하는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죠. 하지만 그 말을 음미해보면, 거기에는 글로리아가 인정한 것보다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어요. 1963년에 쓴 책 《플레이보이 철학》에서, 나는 성 해방의 주된 수혜자는 여성이 될 거라고 적었어요. 여성을 남성이 보유한 재산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억압적인 성 관습의 주된 피해자는 바로 그들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아버지의 소유물로, 그런 후에는 남편의 소유물로 말이에요. 여성의 처녀성은 귀한 것으로 여겨져왔어요. 사회는 누군가의 손길을 받은 소유물보다 그렇지 않은 소유물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기니까요. 여성의 성적 행동을 바탕으로 그들을 ‘착한 아가씨’ 나 ‘헤픈 년’ 중 하나로 판단하는 건 우리가 물려받은 유대교와 기독교적 전통의 일부예요. 전통적으로 여성은 전시물 취급을 받거나, 모든 성적인 유혹과 죄악의 근원이라는 저주를 받아왔어요. 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요. 두 시각 모두 여성을 비인간적 역할에 배치하고 있으니까요. <플레이보이>는 이런 비뚤어진 성적인 가치관을 반대해왔어요. 그리고 그런 태도를 보이는 와중에, 여성이 전시대에서 내려와 그들의 자연스러운 섹슈얼리티를 남성만큼 향유하는 걸 도와줬어요.

여성을 남성만큼 성적으로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그런 활동에 포함되나요?
여자들과 그녀들의 남자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요. 하지만 여성이 남성과 비슷한 존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욕망과 가장 원초적인 정체성은 섹슈얼리티뿐 아니라 성별의 차이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어요. 내가 무척이나 급진적인 여성 해방 운동가와 갈라서는 지점이 여기예요.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모든 문화와 행동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유니섹스 사회예요. 그렇게 되면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고 따분한 곳이 되겠어요!

음, 그렇게 되면 남자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플레이보이>의 플레이메이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군요. 곤란한 점은, 핀업 누드가 인간성을 말살하는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많다는 겁니다.
우리의 플레이메이트 사진이 일으킨 혁신은 핀업 콘셉트를 인간화하려는 시도였어요. 미국에는 ‘9월의 아침(September Morn)’과 세기말의 깁슨 걸, 1920년대의 존 헬드 걸,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페티 걸과 바가 걸로 이어지는 풍요로운 핀업 아트 전통이 있어요. 모두 남성이 품은 에로틱한 판타지를 비현실적이고 고도로 형식화된 방법으로 투사해낸 작품이죠. 일반인은 도저히 접할 수 없는 성적 이미지인 핀업 사진은 당대의 무비 스타와 글래머 걸이 인공적인 스튜디오 세트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포즈를 취하게 만드는 방식을 통해 동일한 전통을 따랐어요. <플레이보이>는 그 모든 걸 바꿔놨어요. 플레이메이트 사진을 위해, 우리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영화계의 여왕이나 전문 모델 대신 비서, 대학생, 승무원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을 선택해요. 그리고 그들에게 현실적인 배경 안에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하죠. 사진에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들의 현실적인 일상 이야기를 곁들이고요. 우리가 센터폴드 페이지에 담으려고 창작해낸 온전한 이웃집 아가씨 콘셉트는, 독자를 위해 플레이메이트를 생활의 일부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거예요. 남성지 지면에 알몸으로 여성을 등장시키는 것을 그 여성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들은 사실 그 사진에 함축된 성적인 의미를 반대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왕년에 성을 억압하던 바로 그 금욕주의에 다른 레이블을 붙인 것에 불과해요.

당신도 알겠지만, 일부 페미니스트는 버니도 남성 우월주의적 창작물이며 버니가 입는 의상은 착용자의 품위를 비하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이보이 클럽을 위한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을 때, 우린 그저 회원의 시중을 드는 여성이 입을 의상이 독특하기를 원했을 뿐이에요. 따라서 이미 세상에 유명해진 우리의 래빗을 응용하자는 생각은 논리적인 귀결로 보였어요. 버니가 세계 전역에서 이렇게나 유명해진 것은 우리 판단이 옳았다는 걸 보여줘요. 심지어 버니라는 단어는 ‘예쁜 아가씨’의 동의어로 언어에 편입되기까지 했어요.

성적 대상이 아니더라도, 매력적인 여성이 번지르르하게 꾸려진 라이프스타일 사업의 일부라는 사실은 <플레이보이>를 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여성을 ‘풍족한 생활’의 액세서리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그런 식으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플레이보이>가 전심전력을 다해 추구하는 전체적 요점을 놓친 게 분명해요. 여성들은 결코 풍족한 생활의 액세서리가 아니에요. 여성은, 그리고 여성과 우리의 남성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로맨틱한 중매쟁이는 <플레이보이>가 생활 가이드로서 지지하는 바로 그 요점이자 목적이에요. 거기에 물리적 장신구가 등장하는 건 둘 사이의 관계가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는 가장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예요. 우리 잡지는 항상 나 자신의 꿈과 판타지를 확장한 것이기에, 나한테 제일 중요한 대상을 가늠해내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어서는 안 돼요. 휴 헤프너의 마음 한복판으로 찾아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다면, 당신은 로맨스에서 행동 동기를 부여받은 남자를 찾아내게 될 거예요. 대다수 남성이 갖고 있는 행동 동기인 재산과 권력, 그 외의 다른 중요한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의 불을 밝힌 것은 여성과 맺는 로맨틱한 관계예요.

대다수 남성은 40대에 도달할 즈음이면 그런 시기를 이미 통과하지 않나요?
30대를 겪은 후,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지루하고 우중충한 일종의 권태기에 ‘정착’하고는 그걸 자신들이 성숙해졌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하곤 해요. 그건 올바르게 표현하자면, 감정이라는 동맥이 경화됐다고 말할 수도 있는 노화 과정이에요. 그 과정은 그 사람의 열정을 메마르게 만들고, 삶을 향한 열의를 식혀버리죠. 전쟁 직후 대학에 다닐 때, F.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다시 살아났어요. 그의 작품에 빠져들었는데, 심지어 그때도 중년기를 향한 그의 침울한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그가 쓴 글에는 공감할 수 있는 측면이 많았어요. 하지만 마흔 살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는 인생에 대한 우울함은 이해되지 않았어요. 나는 그런 경향에 굴복하는 걸 거부해요. 내 40대는 기막히게 좋았던 30대보다도 더 좋았어요. 그리고 내 50대는 40대보다 더 나을 거라고 기대해요. 우리 신체의 손상이 실제로 시작되기 전까지, 노화는 대체로 정신적 상태와 관련이 있으니까요. 소년은 사나이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소년은 소년의 아버지라고 생각해요.

그 소년 같은 열정은 당신이 여성과 맺는 관계로 확장됩니다. 어떤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나요?
글쎄요, 내가 좋아하는 특정한 신체 유형은 존재하지 않아요.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여성은 다양한 체형과 체구로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요. 일부는 금발이었고, 일부는 흑발이었어요. 일부는 키가 컸고 일부는 작았어요. 어떤 여성은 가슴이 컸고,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어떤 여성은 가슴이 작았어요. 나를 정말로 흥분시키는 건 발랄하고 꾸밈없고 개방적이며 진실하고 솔직한 여성이에요. 사회에서 세련된 것이라고 여기는 요소는 나에겐 전혀 매력적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명성 때문에 여자들이 당신을 멀리 하지는 않나요? 세련되지 못한 여성일지라도요.
물론 그런 여성도 있죠.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플레이보이> 지향적인 세상에서, 나는 그들에게 접근하는 편이 아니에요. 흥미롭게도, 다른 많은 여성과 로맨틱하게 엮여 있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여성이 굉장히 많아요. 아리따운 여성을 엄청 많이 거느리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선택할 수 있는 남성의 시선을 단독으로 받고 있다는 걸 자신에 대한 찬사 같은 것으로 느끼는 여성도 있고요.

대중이 당신에게 품은 호기심의 일부는 플레이메이트로 선정한 여성과 맺는 개인적인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플레이메이트로 뽑아줄 테니 몸을 바치라는 식의 거래는 전혀 없어요.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거라면요. 나는 지난 몇 년간 여러 플레이메이트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왔지만, 내 사생활이 잡지의 편집에 지장을 주게 놔둔 적은 전혀 없었어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재미있는 건, 우리 잡지의 가장 인기 많은 플레이메이트와 내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여성 사이에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당신은 분명 많은 남성이 판타지로나 꿈꿀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생활에 구현된 판타지는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 많아요. 이런 생활에 싫증을 느끼게 되진 않을까요?
절대 없어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것 같아요. 나는 지금 2년 전쯤에 예상했던 것보다 로맨틱한 관계에 더 큰 흥분을 느끼고 있어요.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개방적인 사람이 됐고, 더욱 관능적이고 성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당신 주변의 여성은 대부분 당신보다 스무 살 이상 어린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
우선, 나는 육체적으로 그런 여성이 내 또래 여성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보는 것뿐이에요. 여성이 살면서 처음으로 맺는 진지한 관계에는 뭔가 근사한 것도 있고요. 여성이 처음으로 맺는 그런 관계는 상대가 젊을 때의 로맨틱한 반응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줘요. 그건 당신의 젊음을, 그리고 당신이 인생과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느낀 열정을 계속 지켜내는 방법이에요.

당신에 대한 글을 쓴 다수의 여성 작가는 당신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 상대에게 대들면서 평등한 연애 관계를 맺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성숙한 여성을 회피하고 있는 거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나이 든 여성이 젊은 여성보다 반드시 나한테 더 도전적인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날의 젊은 사람들은 생각이 정말 잘 정리돼 있어요. 우리가 그 나이일 땐 절대로 그렇지 않았죠. 연애를 하는 두 사람의 나이를 바탕으로 어떤 관계를 예단하는 건 실수라고 생각해요. 사회는 나이 많은 여성과 젊은 남성 사이의 관계를 유독 심하게 비난하는데, 나는 그런 비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내 비서는 지금 연하의 남성에게 꽂혀 있는데,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은 각자 자신에게 옳은 게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해요. 자신을 대신해 결정을 내려줄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 취향이 제각각이죠. 그런데 내가 로맨틱한 관계에서 어떠한 도전을 받는 걸 기대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를 덧붙여야겠군요. 나는 나라는 사람을 보완해주는 여성을 원해요. 나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싶어 하거나 내가 편안하게 느끼지 않는 관계를 요구하려는 여성이 아니고요. 나는 여성판 휴 헤프너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내게 로맨틱한 관계는 일을 하며 마주하는 문제점과 어려움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도피처이자, 내 인생의 나머지 부분이 안겨주는 시험과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심리적 섬 같은 거예요. 하루 일과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서도 자신을 고단하게 만드는 아내나 여자친구를 둔 남자를 딱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연애 관계를 맺은 두 사람은 평등하다는, 요즘 유행하는 ‘해방된 관계’라는 관념을 좇으며 살아가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관계가 효과가 있다면, 뭐 그것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런 관계는 내겐 효과가 없을 거예요. 내가 상당히 고집 센 사람이라는 점은 인정해요. 나는 살면서 내리는 결정의 대다수를 내가 직접 내려요. 그런 방식이 좋아요.

여자친구들도 그걸 좋아하나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예요. 나는 경쟁심이 강하지 않고, 자신이 관계를 주도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낙담하거나 분개하지 않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남성이 상황을 지휘하고 관계의 속성을 확립하는 등의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여성이 여전히 많아요. 그게 남성 우월주의라면, 뭐, 그렇게 욕하라고들 하세요. 나는 그런 사람이고, 내가 그렇다는 이유로 사과를 하지는 않을 거니까. 하지만 그게 나와 연애하는 여성을 착취한다거나, 그녀의 관심사나 욕망에 둔감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내 말은 각자 자신의 욕구를 제일 잘 충족시키는 관계를 추구해야 옳다는 거예요. 감정적으로 경쟁을 벌이는 상대보다는 자신을 보완해주는 파트너와 말이죠.

여성에게 둘러싸여 사는 당신 입장에서는 별 생각 없이 수많은 여자와 놀아나고 싶은 유혹이 엄청날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동안 당신에게는 항상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길 원하는 여자친구가 딱 한 명씩만 있었습니다. 왜인가요?
다양한 관계를 추구하면 그 나름의 보상이 따르는 게 확실해요. 하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로맨틱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장기적인 관계에서만 형성 가능한,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필요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널리 알려진 당신의 연애는 바비 벤턴과의 연애였습니다. 그녀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바비는 좀 유별난 여자예요. 발랄하고 활발한 여자이고, 몰입한 대상을 향한 열정을 품고 있는데, 그 열정은 전염성이 강해요.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대학생이었어요. 새크라멘토 출신으로 올 A를 받는 학생이자 전직 치어리더, 전직 미스 틴에이지 아메리카 참가자였죠. 그녀는 UCLA 의대의 예과에 다니기 위해 LA로 왔어요. 나는 파트타임으로 모델 일을 하는 그녀를 TV 쇼 <한밤의 플레이보이(Playboy After Dark)>의 첫 시즌을 찍던 촬영장에서 만났어요. 스태프들이 다음 촬영을 위해 조명과 카메라를 설치하는 동안 우리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요. 촬영이 끝나면 그 지역의 디스코텍인 캔디 스토어에 친구 몇 명과 같이 가자고 그녀를 초대했어요. 나에겐 이미 데이트 상대가 있었지만, 그날 밤 내 관심의 대상은 바비뿐이었어요. 내 친구 중 한 명이, 아마 셸 실버스타인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에게 나이 많은 남자랑 데이트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녀는 스물네 살이 넘는 상대와 사귀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그 문제는 OK라고 그녀에게 말했어요. 나도 그런 상대랑 사귄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데이트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한동안은 가벼운 사이였어요. 그녀 스스로 나 정도의 명성을 가진 남자와 사귀고 싶어 하는 지를 확신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녀의 대학교 기숙사로 그녀를 태우러 간 첫날밤이 떠올라요. 길가에 리무진을 대자 그녀의 친구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 그녀는 그런 상황에 깊은 인상을 받는 대신, 우리가 데이트할 때는 그녀가 다른 곳으로 직접 차를 몰고 와서 나를 만나겠다는 주장을 당당히 밝혔어요. 그 점이 마음에 들더군요.
우리 관계가 진지해지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어요. 그녀에게는 대학에 다니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영화배우 제임스 칸 같은 사내도 그녀에게 들이대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우리의 관계라는 결정을 내리자 우리 관계는 경이로워졌어요. 그녀는 스포츠 광이에요. 스키와 수영, 체조 실력이 선수 수준이죠. 그런데 나는 앞서 말했듯 실내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에요. 아카풀코로 함께 떠난 여행을 기억해요. 우리 관계가 궤도에 올라선 직후였는데, 일행 중 일부가 카이팅을 가자고 했어요. 당연히, 바비는 카이팅을 시도하는 첫 사람이 돼야 했어요. 로맨스에 빠져 바보가 된 나는, 새로 사귄 여자친구에게 뒤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걸 시도해보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아카풀코 만 상공에 올라가게 됐죠. 카이트를 필사적으로 붙잡고는 카이트를 끄는 모터보트가 내가 처음 출발한 곳인 작은 뗏목 위에 나를 안전하게 내려놓을 수 있을지 의아해하면서요. 그 높이에서 내려다보니 뗏목이 우표 크기로 보이더군요. 게다가 나는 맥주병이에요. 빌어먹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정신이 나갔던 게 분명하군요.
사랑 때문에 정신이 나간 거였어요. 내 인생은 그런 무모하고 바보 같은 짓으로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달콤해요. 그래도 카이트를 탔어요. 내가 그렇게 위험한 스포츠에 참가했던 다른 유일한 사건은 대학생 시절 비행을 배울 때였어요. 조종사 자격증을 따고는 어느 여름을 스티어맨 비행기 트레이너로 스턴트 묘기를 부리는 법을 배우면서 보냈죠. 공중에서 엔진을 정지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회전하기도 하고, 고리 모양으로 날기도 하고, 이멜만 곡예를 선보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때도 나는 호수 위로는 절대로 스턴트 비행을 하러 가지 않았어요.

당신이 현재 시카고 맨션에 거주하고 있는 플레이메이트 카렌 크리스티와 사귀고 있다는 내용이 최근에 상당히 많이 알려졌습니다. <타임>은 이렇게 보도했어요. “오랫동안 원 플러스 원으로만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였던 헤프너는 최근에 그 원칙을 연애에까지 확장했다… 그 관계는 어찌어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그런가요?
언론이 우리 관계를 함부로 대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잘되고 있지는 않아요. 할리우드의 일부 가십 칼럼니스트들은 카렌이 바비를 밀어내고 그녀의 자리를 꿰찼다는 투의 말을 지어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동시에 한 명 이상의 여성과 연애를 하는 게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를 일으키는 쪽으로 이어지지 않나요?
그건 어떤 관계이고, 상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로맨틱한 상황에서는 누군가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항상 존재해요. 남의 감정에 신경 쓰는 사람은 인간 관계에 갈등과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일부는 스스로 일으킨 것이고, 일부는 상황에 따라 일어난 것이겠죠. 나는 연애 상대가 나와 다른 욕구나 욕망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그에 맞게 관계를 조정해야 해요.

결혼이라는 주제가 대화에 등장한 적이 있나요?
가끔은요.

그 주제를 어떻게 처리하나요?
개방적이고 솔직한 태도를 취해요. 그런데 나한테는 명성이라는 걸 앞세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요. 가까운 미래에는 결혼하지 않을 거고, 새로운 연애 때문에 내 라이프스타일이 급격히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는 명성 말이에요. 그래서 나와 만나는 여성이 내게 거는 기대는 다른 남자랑 사귈 때와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실망시키는 걸 쉽게 피할 수 있죠. 사실 오래전에 결혼을 시도해본 적이 있어요.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요. 그러고는 결혼생활을 하는 걸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나는 무슨 일이든 건성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여생 동안 한 여성과 결혼생활을 할 거라고 기대하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도 무엇인가가 빠졌다는 불안감은 존재해요. 결혼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생활에는 못 미친다는 걸 알지만, 우리가 만족스럽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내 결혼 생활은 내가 <플레이보이>를 창간하기 전에 했던 일과 비슷했어요. 우리의 대다수가 어른의 세계를 살아가며 도출해내는 타협안 같은 직업 말이에요.. 마치 그것처럼, 결혼 생활은 행복한 경험이 아니었어요. 내 전처인 밀리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에요.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가까운 친구고, 우리가 낳은 두 아이와 함께 정기적으로 저녁을 같이 먹어요. 딸 크리스티는 브랜다이스 대학의 우등생 동아리 회원이고, 아들 데이비드는 올 6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예정이에요. 우리 헤프너 가족은 모두 가정적인 사람들이에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나는 두 아이를 정말 사랑해요. 그런데 결혼 생활이 끝났을 때, 감옥을 탈출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당시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게 분명해요.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준비돼 있지 않을 거예요.

그럴 가능성조차 없는 건가요?
물론이죠. 나는 독신으로 살아가며 겪는 대부분의 불편한 점은 겪지 않으면서, 동시에 독신 생활의 장점을 제대로 누리고 있어요. 직접 음식을 장만하고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고. 숱하게 많은 외로운 밤을 보내지도 않고요. 내 라이프스타일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에게는 결혼을 해야 할 여러 타당한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결혼하지 않아야 할 타당한 이유도 있죠. 나에게는 그런 이유가 상당히 지배적이에요. 개인적 자유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한 사람인데, 결혼에 따르는 책임감을 받아들이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그 감각의 일부를 포기해야 해요. 그건 내가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는 기꺼이 받아들일 의향이 없는, 이미 형성된 타인의 기대에 따라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일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기대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잊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모든 상황은 나를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넣을 거예요.

달리 말하면, 이기적인 사람이군요.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죠. 마땅히 그래야 하고요. 사회 전체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자신을 향한 이기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다양한 방법을 갖고 있어요. 일부는 개화된 종류의 관심이고, 일부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관심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밤이 낮을 따르는 것과 같이 너는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을 행하지 못할 것이다.”(<햄릿> 1막 3장에 나오는 폴로니어스의 대사) 이 대사는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즐겨 인용하는 대사죠. 나는 <플레이보이 철학>에서 내 가치관 중 일부는 개화된 종류의 사리사욕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러자 일부 평론가는 내가 이기적인 향락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내가 주장하는 건, 우리 모두는 이 사회에서 만족스러운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개인적인 정체성과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스스로의 욕구도 파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성공적으로 다뤄낼 수 있을까요?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주위 사람들을 좋아하는 능력도 갖지 못하게 될 거예요.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걸 배운 사람으로서, 나는 하나의 사람으로 스스로를 추스르는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 걸음을 디뎠다면, 당신의 영향력을 주위에 행사해야 할 필요성이 얼마나 줄어들까요?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자신의 존재에 만족한다면, 무엇인가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요. 스스로에게도, 당신이 거느린 신민들에게도 말이에요.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임금님.
내가 즐겨 던지는 변변찮은 농담 중 하나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맨션에 도착했을 때 왜 당신이 낀 플레이보이 반지에 입을 맞추게 한 건가요?
보석에 특이한 욕망을 품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대중은 당신의 사생활에 대한 숱한 이야기를 통해, 샴페인과 캐비아, 벽에서 벽까지 누워 있는 여성들과의 집단 섹스, 물침대와 베이비 오일, 바이브레이터, 천장에 달린 거울, 즉석 재생이 가능한 비디오테이프 장비로 이뤄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독특한 취향을 가졌다는 얘기를 들어왔습니다.
괜찮은 얘기로 들리는군요. 그렇지만 내 난잡한 파티에 직접 한번 참석해봐야 해요.

솔직히 말해, 우리가 양쪽 맨션에서 보낸 몇 주간, 우리는 당신이 애완용으로 기르는 플라밍고 두 마리가 LA 잔디밭에서 교미하는 것보다 더 난잡한 광경은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 광경을 놓쳤다니 유감이군요. 그런데 진짜로 짜릿함을 느끼려면, 잉어가 알을 낳을 때 연못에서 물장구를 쳐봐야 해요. 있잖아요, 내 친구 아트 버크월드(미국의 유머 작가)가 시카고 맨션에 처음 머물렀던 경험을 소재로 굉장히 재미있는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그는 온갖 난잡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나와 일부 사내들과 같이 밤새 카드를 친 게 전부였다고 썼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아래층의 수영장으로 내려갔는데 텅텅 비어 있었대요. 사우나를 확인하러 갔더니, 뿌연 김 속에서 어렴풋이 사람이 보였다더군요. 우리 집에 사는 버니 중 한 명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셸 실버스타인으로 밝혀졌어요. 버크월드의 글은 <플레이보이>와 관련해서 떠도는 미스터리를 패러디한 거예요. 무도회장에서 엄청난 규모의 섹스 파티가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발견한 다른 기자들은 진심으로 실망한 듯했어요. 그들은 맨션에서 흥청망청하는 파티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내버리고는, 난봉꾼이 아닌 고지식한 헤프너의 이미지를 창조하려고 시도했어요.

어느 쪽이 진짜인가요?
진실은 둘 사이의 어디엔가 있어요.

시카고 맨션에 머물고 있는 버니는 20명이 넘습니다. 거기에 맨션을 방문하는 플레이메이트와 플레이메이트가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거나 <플레이보이>에 실릴 다양한 사진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려는 여성도 많이 있죠. 그런 상황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아요.

이곳을 방문하는 유명인사나 잡지에 기고할 글을 쓰는 작가, 그리고 당신의 개인적인 친구들은 수많은 여성과 재미도 보고 게임을 하는 걸 기대할 게 분명한데요.
2년 전쯤에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맥콜스>(미국의 여성지)에 내 인터뷰 기사를 실었어요. 그녀는 맨션에 도착한 어느 작가가 <플레이보이> 임원으로부터 방에 버니를 보내주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적었어요. 몇 분 후, 그 임원인 것 같던 사람이 작가의 방에 전화를 걸어 물었대요. “흐음, 지금 들어간 그 여자, 어떻습니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우리 맨션의 남성 손님들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개인적인 계획으로 인해 벌인 일이며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일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로 충분히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인 게 보통이에요. <맥콜스>에 실린 기사가 제시하는 비인격적 착취는 나로서는 전대미문의 일이에요. 내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와전된 이야기가 당신과 <플레이보이>에 대한 이야기에 대단히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걸 아나요?
<플레이보이>와 그 발행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로르샤흐 테스트(잉크 얼룩으로 인격 장애를 진단하는 심리 테스트)와 상당히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는 작가들이 빈번하게 써내는 작품이 다루는 섹스의 향유랑 물질주의와 관련된 너무나 많은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작품은 실제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다룬 작품이라기보다는 작가 또는 그 작품을 읽는 독자가 품은 선입견과 판타지를 투사한 작품에 가까워요.

러스트 힐스(미국의 작가)는 <에스콰이어>에 기고한 글에서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창조해낸 개인적인 세계를 놀라워했습니다. 바깥세상과 대조적인, 내부에서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통제된 환경을요. 그의 말이 맞나요?
항상 제대로 작동하는 건 세상에 없어요. 하지만 내 세계는 내가 꿈꾸던 것처럼 복잡하고 야심찬,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환경에 가까워요. 힐스는 플레이보이 맨션이 단순히 공들여 만든 쾌락의 궁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거예요. 이곳은 내가 불필요한 간섭을 받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일과 놀이를 병행할 수 있는 곳이에요. 인간은 주위 환경을 통제할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고, 내가 창조해낸 건 대다수 사람들처럼 많은 시간을 낭비하거나 애써 이동할 필요 없이 인생을 살아가게 해주는 나만의 개인적인 세계예요. 도시에 직장이 있고 교외에 집이 있는 사람은 거주지에서 일터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에만 하루에 두세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요. 그것 말고도, 북적거리는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죠. 식당에서는 정신없고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비인격적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크죠. 그런 사람은 자신의 관념을 따르지 않는 게 확실해요. 하루 일과가 어때야 마땅한지에 대해 사전에 형성된 관념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거예요. 나는 이 맨션 안에 사무실과 개인 스태프, 회의실을 두는 방법으로 그런 문제를 해결했어요. 게다가 두 블록 떨어진 플레이보이 빌딩과 연결된 화상 전화기도 있어요. 덕분에 필요한 경우엔 <플레이보이>의 동료 임원들과 즉석 미니 미팅을 열 수 있죠. 세상 사람들 대부분의 하루 식사는 시계의 영향을 받아요. 일반적으로 사회적 관습에 의해 규정된 시간에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어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자죠. 하지만 우리 맨션에서는 말 그대로 원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나는 야행성이에요. 그래서 늦은 오후에 일과를 시작하고 싶다면, 그런 경우가 잦은 편인데,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맨션에서는 24시간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나 또는 내 손님들이나 버니 중 누구나 원할 경우 한밤중에 아침을 주문하거나 오후에 저녁을 주문할 수 있어요. 우리가 가진 비디오 장비 덕에 나는 좋아하는 TV의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된 이후에나 방영된 다음 날에도 볼 수 있어요. 맨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구대와 핀볼 머신, 오락실에 있는 다른 전자 오락기, 볼링장, 체육관, 수영장, 사우나를 밤낮없이 마음껏 언제나 이용할 수 있어요. 손님들이 알아서 감상할 수 있는 디즈니부터 <목구멍 깊숙이>에 이르는 광범위한 장편영화 라이브러리도 갖췄고요. 노먼 메일러(미국의 소설가)는 시카고 맨션에 머무른 후 ‘한계를 벗어나 영원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탄 것 같았다고 밝혔는데, 나는 그가 이곳의 느낌을 대단히 근사하게 포착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 불편함을 해결하는 수준 이상의 용도를 가진 최첨단 전자 장비에 매료된 게 아닌가요? 어느 인터뷰 기사는 당신이 한 이 말을 인용했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여성 다음으로 첨단 장비를 제일 좋아해요.”
나는 아름다운 여성 다음으로 아름다운 여성들이 가진 첨단 장비를 제일 좋아해요. 전자 장비는 내가 일을 마친 후 이 자리에서 곧바로 노는 데 필요한 모든 걸 내 손가락 끝에 가져다 주면서, 우리의 생활을 더욱 향유할 만한 것으로 이끌 뿐 아니라 더 능률적으로 만들어줘요. 오케이, 내가 20세기 중반을 살아가는 남성의 라이프스타일을 향상시켜주는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첨단 장비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는 건 인정해요. 그런데 본드는 살상과 파괴를 위해 첨단 장비를 사용한 반면, 내가 가진 장비는 생활하고 사랑하는 데 쓰는 거예요.

톰 울프(미국의 소설가)는 당신이 보유한 최고의 첨단 장비인 회전하면서 진동하는 원형 침대를 ‘플레이보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가요?
내가 시카고에 있을 때면 거기가 내 세상의 중심인 게 확실해요. 거기서 일하고 거기서 놀고 거기서 자니까.

원형 침대에 정말 무슨 장점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그 침대에 있으면 리넨 벽장에 들어 있는 모든 동그란 시트를 갖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겨요.

침대 내부와 주위에 설치한 첨단 장비를 비롯해 당신이 환경에 행사하는 통제력의 상당 부분은 지난 20년간의 기술적 발전에 의해서만 가능해졌습니다.
맞는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목표를 향해 발전된 전자 기술을 응용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마셜 맥루언은 전자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거주지와 일터가 분리된 데 따르는 불편함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들의 가정을 전자 엔터테인먼트 복합 단지로 탈바꿈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했어요. 가정은 우리가 벌이는 활동의 대부분을 위한 센터가 될 거예요. 그런 점에서, 나는 당신이 플레이보이 맨션의 통제된 환경은 앞으로 도래할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할 거라고 추측해요. 하지만 그런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당신은 스스로의 버니를 알아서 찾아내야 할 거예요.

당신에게는 통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그 주장을 뒤집어서 물어보고 싶어요. 통제력이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지나친 무력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 무력감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관련된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음, 나는 그런 좌절감을 느끼지 않아요. 내 인생의 통제권을 거머쥐었으니까요. 게다가 나는 바깥세상에 약간의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충분히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해요.

그 개인적인 세계가 당신을 나머지 세상과 지나치게 많이 단절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인생에서 많은 걸 얻어내는 게 가능한지 그 여부를 궁금해 할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육체적 단절과 심리적 고립은 같은 게 아니에요. 시간과 이동할 때 드는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해주는 개인적인 세계는 실제로 사적인 관심사와 대단히 중요한 사안에 엄청나게 집중할 수 있게 해줘요. 내가 시카고 맨션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던 1960년대의 어느 날, 나는 하워드 휴즈 스타일의 은둔자라는 명성을 얻게 됐어요. 우리 둘 다 자조적 환경에서 살아가며 물리적 세계와 결별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지만, 휴즈는 타인과의 모든 접촉을 의도적으로 끊은 반면 플레이보이 맨션은 내가 타인과 어울리는 걸 더 순조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으로 고안한 곳이에요. <플레이보이>를 창간했을 때, 나는 시카고 니어 노스 사이드의 사교계에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잡지가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잡지에 푹 빠져 살아야 했던 나는 아파트로 귀가하는 것보다 사무실에서 사는 게 더 편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생활방식은 한동안 잘 먹혔어요. 그런데 1950년대가 끝날 무렵, 내게 일을 마치고 찾아갈 도피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따금 사무실의 일과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게 만들 정도로 충분히 고상하고 세련된 가정이요. 그 아이디어가 최초의 플레이보이 맨션으로 구체화된 거예요. 그 개념이 너무나 잘 먹혀들었기 때문에 나는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거의 모든 일을 맨션에서 하고 있었어요. 사무실과 비서를 맨션에 들였고, 여러 버니가 도착하면서 내 사회생활도 갈수록 그곳으로 집중됐죠. 얼마 지나지 않아 맨션은 친구들과 동료들, 방문하는 유명인사들이 좋아하는 소굴이 됐어요. 우리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담배 연기 자욱한 바에 가는 대신, 안방의 벽난로 앞에 느긋하게 앉아 수다를 떨면서 좋아하는 음식과 음료를 시내에 있는 대다수의 레스토랑보다 더 뛰어난 장비를 갖춘 주방과 바에 주문했어요. 오락실에서는 핀볼을 하거나 당구를 쳤고, 수영을 하거나 사우나를 즐겼어요. 수중 바에서 로맨틱한 위안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위층에서 화재 대피용 장대를 타고 내려오면 이런 시설에 쉽게 도착할 수 있어요. 그 장대는 내가 세기 전환점에 지은 저택의 웅장한 모습과 대비되는 효과를 연출하려고 도입한 장난기 넘치는 혁신의 전형이었어요. 이런 건물에는 비밀 통로가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이 저택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걸 덧붙이기도 했죠. 맨션은 무척이나 잘 돌아갔고, 그래서 이곳을 벗어나는 건 쓸데없는 짓처럼 보였어요.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맨션을 벗어나야하죠?

당신 앞에 가져올 수 없는 곳을 방문하기 위해서겠죠.
나는 이런저런 장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요. 최근에 어떤 친구가 LA에서 허스트 캐슬이 있는 산 시메온까지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어요. 내가 또 다른 유명한 편집장이자 발행인인 허스트가 살았던 곳을 보는 걸 재미있어할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하지만 나는 허스트에게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그가 살던 유서 깊고 장엄한 곳은 지금은 관광객이나 들르는 장소였죠.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사람들 사이의 관계예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경관이나 역사적 의미가 큰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은 내가 관심을 갖는 누군가와 공유하는 경험이 아닌 한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을 거예요. 파리를 순전히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건 내게는 따분한 일일 거예요. 하지만 로맨틱한 관계를 맺은 여성이 거기에 있는데 나한테 올 수 없다면,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날아갈 거예요.

사실상 모든 시간을 시카고 맨션에서 보낸 1960년대에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거나 시골로 드라이브를 가고 싶다고 느낀 적이 없었나요?
그런 기분이 들면 밖으로 나가곤 했어요. 그건 굉장히 간단한 일이니까. 그런 기분이 자주 든건 아니지만요. 몇 주간, 때로는 몇 달간 맨션 밖으로 나가지 않은 적이 많았어요. 시카고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어느 겨울이 기억나는군요. 그 근사한 설경을 놓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설경을, 적어도 눈을 녹이지 않은 채로는 맨션 안으로 들일 수는 없으니까, 애인과 함께 한밤중에 산책을 나가 맨션 바로 앞에 눈사람을 만들었죠. 집에 돌아온 우리는 그 뉴스가 수감자가 탈옥했다는 소식처럼 집 안 곳곳에 퍼졌다는 걸 알게 됐어요. “헤프너가 밖에 나갔어! 헤프너가 밖에 나갔다니까!” 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런 식의 농담이 세상에 넘쳐났어요. 심지어 이곳 근처에도요. 그런데 인생은 항상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예요. 딱 한 번 사는 짧은 인생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는 걸 가로막는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와 비능률, 불편을 제거하려고 애써왔어요. 이 맨션을 지은 건 정말 순전히 그런 이유에서예요.

그렇다면 1960년대 말에 전용기를 주문 제작하고, 여행을 다니고, 웨스트 코스트 맨션을 구입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히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만든 건 뭐였나요?
많은 남성이 중년기에 접어들면 유부남이든 독신남이든, 성공한 사람이든 그러지 못한 사람이든 자신의 생활 패턴을 재평가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내 입장에서 1960년대 초반에는 대단히 잘 먹혀든 것들이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나는 원할 때면 내 생활 패턴을 급격하게 바꿀 능력을 충분히 가질 정도의 행운아였어요. 그건 인생의 통제권을 거머쥔 채로 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예요. 회사가 크게 성장하는 바람에 더 이상은 내가 예전에 그랬듯이 혼자서 모든 일을 꼼꼼하게 지휘할 수 없게 됐어요. 나는 핵심 임원에게 점점 더 많은 권한을 위임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플레이보이는 늘 한 사람이 운영하는 기업이었으니까요. 나는 LA에서 녹화할 예정이던 TV 시리즈 <한밤의 플레이보이>의 사회를 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하면 억지로라도 집 밖으로 나가 새로운 활동 영역에 들어설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 쇼는 눈에 뻔히 보이는 홍보 가치 말고도, 플레이보이가 서부 해안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영화와 TV, 음반 제작에 뛰어드는 첫 걸음으로 의도한 거였어요. 우리는 시카고의 본사와 미국 및 세계 곳곳에 있는 새로운 사업체 사이를 신속하고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전용기를 구입했어요. 전용기는 맨션을 짓게 된 배경에 놓여 있던 개념을 논리적으로 확장한 거예요. 우리는 더글러스 항공사에 DC-9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주문했어요. 해외로 날아갈 수 있는 비행 능력을 갖추기 위해 연료 탱크를 추가로 달아달라 했고, 인테리어 디자인도 요청해 전용기 내부를 하늘을 나는 아파트로 탈바꿈시켰죠. 그렇게 해서 이동에 소비되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됐어요. 빅 버니에 탑승한 상태에서도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하던 일을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음, 정확히 말하면 거의 모든 일이죠. 비행기에 수영장이나 볼링장은 없으니까요.
몇 년간 LA에 있는 플레이보이 사무용 빌딩 꼭대기에 아파트를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중심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면서, 주택을 얻기로 결정했죠. 내가 찾아낸 저택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어요. 홈비 힐스에 있는, 선셋 불러바드에서 1블록 반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5.5에이커(약 2만2000㎡) 규모의 대지에 지은 고상한 잉글리시 튜더 양식의 저택. 그게 플레이보이 맨션 웨스트가 됐죠. 지금은 시카고에서 보내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을 거기서 보내고 있어요.

그곳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본관은 영국에 있는 홈비 하우스라는 맨션에서 영감을 받은 건물이에요. 슬레이트 지붕과 납틀 창문이 있는 석조 건물이죠. 바깥 풍경이 근사해요. 물결치는 언덕, 다양한 나무, 식물과 꽃,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제일 큰 삼나무 숲이라고 명성이 난 곳. 테니스 코트랑 수영장을 짓고, 근처에 연못과 폭포도 만들었어요. 그러고는 이국적인 물고기와 새, 짐승을 들이는 것으로 작업을 마무리했죠. 규모 면에서는 시카고 맨션에 미치지 못하지만, 건물과 자연의 우아함 덕분에 훨씬 더 인상적인 곳이에요. 별도로 떨어져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온실, 오락실, 그리고 본관에 쓰인 것과 동일한 석재로 마무리된 야외의 바와 뷔페 구역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맨션에서 제일 인기 좋은 곳은 수영장의 일부로 지은 작은 동굴이에요. 수영해서 폭포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사람을 치유하는 가치보다는 사교 활동의 중심지로 더 많이 애용되는 정교한 저쿠지 욕조들이 설치돼 있어요. 정리하자면, 웨스트 코스트 맨션은 진정한 지상낙원이에요. 소문을 듣자 하니, 사람은 지상을 떠난 후에야 진정한 노화가 시작된다더군요.

유산을 상속받은 게 아니라, 중산층으로 시작해 돈을 벌어 부를 쌓은 사람으로서, 당신은 이토록 호화로운 환경을 둘러보며 실제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상황이라서 의아해본 적이 있나요? 이건 모두 꿈이고 그래서 눈을 뜨면 모두 사라져버릴 거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나한테 일어난 모든 일이 경이롭기 그지없다는 기분을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기분은 이 상황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배가해줘요. 앞으로 내가 거두게 될 성공이나 인생에 싫증이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는 건 그냥 내 본성에는 맞지 않는 일이죠. 실제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사탕가게에 들어온 꼬맹이가 된 기분이에요.

이런 상황에 무척이나 심드렁할 게 분명하군요?
심드렁한 척할 수는 있죠. 하지만 나는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요즘 세상에 너무나 만연해 있는 쿨한 척 연기하기, 권태로운 느낌을 유행처럼 퍼트리기 같은 짓은 나한테는 맞지 않을 거예요. 내가 보이는 열정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련되지 않은 짓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그 사람들 문제일 뿐 내 문제는 아니에요.

당신은 여가 시간에 열정의 상당 부분을 게임, 예를 들면 백개먼, 모노폴리, 카드게임과 다른 10여 가지의 오락거리에 쏟습니다. 왜인가요?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면 친구들과 여러 게임을 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지는 걸 좋아해요. 게임에 푹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면, 그건 내가 대부분의 일에 접근하는 방식이 그렇기 때문이에요. 나는 게임의 경쟁적 속성을 즐겨요. 게임을 하는 데 수반되는 사회적 접촉도 즐기고요. 내 친구들도 대부분 게임에 진지하게 임하는 게임꾼들이에요. 당신도 알듯이, 백개먼은 요즘 우리가 몰두하고 있는 게임이에요. 굉장한 게임이죠. 개념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배우기도 쉽지만, 일단 제대로 빠져들면 상당히 정교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요. 체스보다 속도도 훨씬 빠르고 더 짜릿한 게임이에요. 그리고 카드놀이와는 다르게, 패를 다 까놓고 하는 게임이에요. 상치고 받기가 가능하죠. 주위 사람들 모두가 참여자들이 놓는 수를 볼 수 있는 보드 위에서 진행돼요. 최근 친구 2명과 LA에 피프스라는 회원제 클럽을 오픈했어요. 백개먼 참가자가 말을 움직이는 보드 위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구역에서 딴 이름이죠. 이곳의 매력 포인트는 뛰어난 레스토랑과 바, 디스코텍, 그리고 백개먼이에요. 피프스는 오픈한 지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여러 유명인들사이 들락거리고 시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소굴이 됐어요. 백개먼도 제일 인기가 좋았고요.

당신은 친구들 대다수가 게임에 진지하게 임하는 게임꾼이라고 했습니다. 게임에 진지하게 임한다는 것은 단어 정의상 모순된 표현으로 보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건 상당히 바보 같은 일 아닌가요?
그런 바보 같은 오락거리를 즐기는 능력도 우리 인생이 마땅히 주력해서 추구해야 하는 목표의 일부예요. 노동은 사회적 구원 행위인 반면, 놀이는 그렇지 않다는 관념은 이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는 금욕주의의 콤플렉스예요. 수많은 회의와 업무 지시, 편집을 끝내고 나면 나는 긴장을 풀고 진탕 놀 준비가 돼 있어요. 회전 침대에서든, 친구들과 어울리는 오락실에서든요.

또는 친구들과 함께 오른 회전 침대에서도요?
당신도 그때 그 광경을 엿보고 있었잖아요.

당신의 양쪽 맨션을 방문한 손님의 명단은 연예계와 스포츠계, 정치계, 언론계, 예술계, 과학계, 법조계, 심지어는 종교계에 속한 명사의 이름을 추린 ‘명사 인명록’과 비슷합니다. 당신 자신을 유명인사에 열광하는 팬이라고 생각하나요?
뻔뻔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겠어요. 하지만 우리 대다수가 그렇지 않나요? 성공의 정도가 어느 정도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나는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자랐어요. 필름 스타들은 어릴 때 내 아이돌들이었죠. 그래서 연예계의 유명인사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미국인에게 그들은 다른 나라의 왕족과 제일 가까운 존재예요. 그리고 그들 중 초대형 스타는 왕족이 누리는 명망과 비슷한 정도의 위신을 누리죠.

유명인사 손님으로는 정치인 조지 맥거번, 비틀스의 링고 스타,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영화배우 리즈 테일러, 심리학자 티모시 리어리, 소비자 보호 운동가 랠프 네이더, 포르노 배우 린다 러브레이스 등이 있습니다.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꿰뚫는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일부는 시카고에 들를 때면 언제든 우리 맨션에 머무르는 가까운 친구들이에요. 그 외의 사람들은 사교적으로 안면을 튼 사이거나 특정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고요. 특정 관심사의 경우,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와 존 로빈슨 주교, 하비 콕스 박사, 제시 잭슨 목사 같은 분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던 저녁을 기억해요. 제시는 킹 목사가 사망한 후로 몇 년간 친한 친구가 됐어요. 그에게 맨션은 그의 모든 사회적 활동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느낄 때 찾는 안식처 비슷한 곳이죠. 다른 경우, 가수 타이니 팀은 <투나잇 쇼> 공개 방송에서 미스 비키와 결혼하기 1년 전쯤 이곳에서 내게 여자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면서 초조한 저녁을 보냈어요. 그는 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분명해요.

롤링 스톤스는 최근 그들의 미국 콘서트 투어 기간 동안 시카고 맨션에서 나흘간 머물렀습니다. 잡지를 위해서, 그 전설적인 방문에 대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나요?
믹과 다른 청년들은 서재에서 브랜디를 마시면서 그날 일어난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우리와 얘기를 나누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휴식을 취하려고 함께 체스를 두어 판 뒀죠.

정말로요?
어라, 내 얘기를 믿지 않는군요? 흐음, 참가자 전원이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해둡시다. 내 로마식 욕조에서 시작해서 나흘이 지난 후 밤의 무도회장에서 롤링 스톤스와 스티비 원더의 즉석 콘서트로 끝난 좋은 시간을요. 투어가 끝났을 때, 롤링 스톤스는 8주 동안 미국에서 제일 좋았던 때는 시카고에 있는 헤프너의 집에서 보낸 시간이라고 언론에 말했어요.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그런 식의 콘서트가 자주 행해지나요?
글쎄요, 버디 리치(미국의 재즈 드러머 겸 밴드 리더)는 시카고에 들를 때면 언제든 시카고 맨션에 손님으로 묵었어요. 어느 날 저녁에 깜짝 선물로 그의 밴드를 데려오더군요. 무도회장 끝에 스탠드를 설치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위한 쇼를 펼쳤죠. 다른 저녁에는 모로코에서 방문한 고위 관리를 위한 파티를 여는 중이었는데, 뮤지컬 <헤어>의 출연진 전원이 ‘아쿠아리우스’를 부르며 등장했어요. 그들은 그 삽입곡을 부르는 내내 알몸으로 수영장에 들어가 있었어요. 물론, 양쪽 맨션에서 음악 공연이 펼쳐지는 순간의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공을 들인 공연은 아니에요. 해리 닐슨은 지난 새해맞이 파티에서 피아노를 치며 그의 노래 대여섯 곡을 들려주는 걸로 우리를 즐겁게 해줬어요. 토니 베넷도 다른 자리에서 같은 일을 했고요. 소살리토에 있는 그의 주거용 보트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내 맨션 중 한 곳에서 보내는 친한 친구인 셸 실버스타인은 정기적으로 그의 노래를 불르며 버니를 즐겁게 해줘요. 그 노래 중에는 여기서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도 있어요.

‘괴짜들의 무도회에서 별난 짓하기(Freakin’ at the Freakers Bal)’ 같은 노래들을 비롯해서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코멘트예요.

톰 존스도 맨션을 가끔 찾는 손님이죠. 그가 공연을 한 적이 있나요?
음악 공연은 없었어요.

가십 칼럼니스트들이 귀를 쫑긋 세울만한 따끈따끈한 얘기가 있나요?
글쎄, 어디 봅시다. 척 퍼시(미국 상원의원)의 평판을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1976년에 대권에 도전하려는 그의 행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퍼시 의원이 최근 시카고 맨션을 방문했을 때 나한테 탁구 시합을 하자며 도전했다가 무참히 깨진 적이 있기는 해요.

그건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종류의 이야기랑은 거리가 먼데요.
어, 그래요? 흐음, 저명한 성 연구자인 매스터스와 존슨은 결혼식 전날 밤을 여기서 보냈어요. 그들은 따로 떨어진, 하지만 근처에 위치한 방에 머물렀죠. 언젠가 노먼 메일러하고 버드 슐버그(미국의 시나리오 작가)가 각각 가까이 있는 방들에 묵으며 긴 주말을 보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썩 좋은 관계를 맺지는 못했어요. 이틀째 밤, 나는 몸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입씨름의 심판을 봐야 했어요. 메일러는 슐버그에게 옛날 스타일의 주먹다짐을 하러 밖으로 나가자고 부추겼어요. 그러자 둘 중 그래도 정신이 맑은 편이던 슐버그는 언젠가 헤밍웨이가 요청한 싸움을 거절한 적이 있다면서 거절했어요. 헤밍웨이하고도 싸우지 않았던 그의 입장에서는 메일러와 싸우는 것으로 싸움 상대를 고르는 기준을 떨어뜨릴 수는 없다는 거였죠. 하지만 사람들이 여기에서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은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꽃피우는 시간이에요. 또 다른 저명한 성 연구자인 워런 비티는 우리 두 사람이 조지 맥거번의 대통령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할 때 시카고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의 모습을 LA 맨션에서 정기적으로 볼 수 있어요. 거기서 수중 스포츠의 유명한 애호가가 된 그가 여자들을 데리고 저쿠지 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에요.

언젠가 러시아의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시카고 맨션에 머물렀습니다. 그와도 어울렸나요?
음, 우리는 우리 양쪽 정부의 시스템이 가진 상대적 장점에 대해 논쟁을 벌이며 대여섯 시간을 보냈어요. 그는 이튿날 아침 일찌감치 떠나더군요. 소련과 미국의 관계를 한층 더 공고히 해줄 버니에게 조금도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기에 기분이 상한 채로요.

시카고나 LA에서 매주, 또는 그와 비슷한 주기로 200명의 친구를 위해 주최하는 성대한 파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스타들이 다른 스타들을 보려고 그런 자리에 찾아오기도 하나요?
우리의 버니와 플레이메이트를 보러 오기도 하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적어도 연예계 유명인사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벌이는 행사 중 참가자 수가 가장 많은 것은 내가 1년에 대여섯 번쯤 주최하는 스포츠 폐쇄회로 중계 시청 이벤트예요. 지난여름 LA 맨션에서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를 시청했는데, 시내에 있는 남자 스타의 절반 정도가 그곳에 있었죠. 여성 팬 몇 명도 같이요. 그루초 마르크스와 조지 래프트가 왕년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인사로 참석했어요. 빌 코스비와 잭 니컬슨, 버트 바카라, 조 나마스, 짐 브라운, 토니 커티스, 밥 컬프,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제임스 칸, 존 데릭,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늘 인기 좋은 워런 비티, 해리 닐슨과 샐리 켈러먼, 라이언 오닐과 우르술라 안드레스, 돈 애덤스와 돈 리클스. 모두 그 자리에 있었어요. 코미디언 토미 스모더스가 친숙한 얼굴이 가득한 방을 둘러보고는 이러더군요. “누군가 오늘 밤 여기에 폭탄을 터뜨리면 연예 산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군요.”

다른 인터뷰에서, 명성을 라이프스타일만큼이나 즐긴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만큼이나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대중이 품는 판타지를 즐긴다는 뜻이에요. 나 때문에 생겨나는, 종종 똑같은 사람들이 보이는 애증 섞인 반응을 보는 게 즐겁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하겠군요. 나에 대해 험담을 하는 사람들조차 나를 보며 무척 즐거워해요. 그 사람들은 이 맨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해요. 그 비행기에 타면 어떤 기분일까? 그는 버니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잡지 커버에 인쇄된 별의 개수가 내가 그달의 플레이메이트와 사랑을 나눈 횟수를 나타내는 거라는 얘기까지 돌더군요.

우리가 들은 버전은 커버에 실린 여성과 관련된 얘기였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품은 그런 판타지를 망치는 게 싫어요. 하지만 그 별의 개수는 잡지가 배포되는 지역의 판본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해요. 그런데 독자가 자신들이 읽는 잡지의 발행인이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잡지사의 최고 임원이 아니라 그 잡지가 홍보하는 풍족한 생활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환상을 품으면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인 것은 <플레이보이>로서는 엄청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박한 의복과 음식을 향한 개인적 취향 중 대부분은 그 이미지에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플레이보이>는 세상에 넥타이나 음악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이 딱 한 가지만 있다는 입장을 취한 적이 없어요. 우리 잡지가 홍보하는 건 사람들은 유행에 정통한 사람으로 보여야 마땅하다는 게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든 인생의 풍미를 제대로 즐기는 것과 관련돼 있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거예요. 나는 그 입장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념물이에요. 그래야만 한다는 강제적 분위기 탓에 즐기지도 않는 옷들을 걸치는 건 내 입장에서는 가식적인 행위가 될 거예요. 어쩌다 보니 펩시를 좋아하게 됐어요. 실제로 펩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루에 펩시를 25병에서 30병 가까이 해치워요. 그러면서 체중이 불어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파이프를 피우기 시작했죠. 그러면 음료수를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음료수를 줄였나요?
아뇨, 그냥 또 다른 나쁜 습관만 얻었죠. 음식에 대한 내 소박한 취향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유리 그릇 아래에 고급스럽게 담아내는 꿩고기 대신 프라이드치킨을 즐겨요. 그건 내 콤플렉스예요. 어쩌면 허송세월을 했던 청춘 시절의 지체된 식사 습관이 남긴 결과일 거예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레스토랑 중 한 곳으로 각광받는 파리의 맥심스에 갔을 때, 사전에 보좌관을 주방에 보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라이드치킨의 레시피를 건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사실이에요. 내 보좌관은 남부식 프라이드치킨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조리하는 법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오후를 보냈어요. 그리고 순전히 맥심스의 솜씨 덕분에 치킨은 맛있었어요. 딱 KFC 치킨 맛이 나더라고요. 이런 전후 사정을 이해해야 해요. 그때 우리는 아프리카와 그리스의 섬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을 여행하면서 한 달을 보낸 뒤였어요. 파리에 도착할 무렵에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더군요. “내가 파리에 다다랐을 즈음 그녀는 달아오르고 있었어.” 어쨌든, 그때쯤 나는 집에서 조리한 치킨 생각이 간절했어요.

당신이 방문한 후로 맥심스는 최고급 레스토랑이라는 원래의 위상을 되찾았나요?
그들은 그 일을 상당히 기분 좋게 받아들인 게 분명해요. 나중에 나한테 자기네 레스토랑을 매각하려고 노력했던 걸 보면요. 하지만 그 치킨은 그다지 마음에 쏙 들진 않았어요. 최종 결론은, 내게 음식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식사를 하지 않고도 이틀을 거뜬히 지내는 걸로 유명했어요. 음식이 내게 주는 건 내게 진정으로 쾌락을 안겨주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전부예요.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야 하나요?

F로 시작하는 단어죠?
F로 시작하는 단어 맞아요. 어떻게 발음하냐면… 그리고 그 일은 재미도 있지만 살이 찌지 않아요. 이 얘기를 <플레이보이 철학>에 언급해야 했는데.

당신은 음식과 음료, 옷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는 취향이 소박하다는 비난을 받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은 흔치 않을 정도로 호화스럽죠. 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그걸 과시적인 소비 철학의 전형으로 간주합니다.
글쎄요, 내가 미국에서 제일 중요한 소비자에 속한다는 걸, 또는 내가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진땀이 날 정도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걸 부인할 길은 없죠.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그건 내가 자초한 비난이고, 내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정확히 그대로 할 권리가 있다고 느껴요. 내가 믿는 대의를 좇는 데 쏟아부은 만큼의 많은 정성을 거기에 쏟아붓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같은 기분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남들이 나에 대해 가진 생각의 차원을 넘어, 일부 사람들, 특히 풍족한 생활을 하는 젊은 좌파들이 품은 적대감에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암묵적인 가정이 있어요. 그들은 과시적인 소비 행위뿐 아니라 물질주의 자체에도 적대감을 품고 있고, 그런 행위를 사악한 짓이라고 가정해요. 그들은 기업의 탐욕, 도시의 어두운 그늘, 오염, 인위적인 제품 노후화 등 물질주의가 초래한 병폐와 기술 진보 덕분에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장수하며 더 잘 먹고 입게 됐다는 혜택을 구분하지 않아요. 또 그들이 얼마나 소박하게 살기로 선택했든, 물질주의의 혜택 덕분에 그들의 인생이 저개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소박한 인생과 대단히 다르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대단히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 실패했어요. 뉴멕시코에 사는 청년이 배가 고플 경우, 그 청년은 접시를 그럭저럭 채울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또는 끼니를 마련하려고, 또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려고 시계를 저당 잡힐 수도 있겠죠. 최악의 일이 연달아 일어날 경우, 그 청년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집으로 언제든 갈 수 있어요. 버마나 탄자니아에 사는 청년들에겐 그런 대안이 없어요. 나는 자신의 모터사이클과 스테레오를 내버리는 청년들을, 또는 청바지나 꽃무늬 셔츠를 사는 데 돈을 쓰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음식과 옷을 사는 데 쓰는, 이상주의에 젖은 젊은 청년들을 그리 많이 보지 못했어요. 그 청년들이 그래야 마땅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을 비난하기 앞서 자신의 가치관을 검토해봐야 마땅해요. 그리고 물질주의의 과잉이 아닌, 물질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건 갓난아기를 목욕물과 함께 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아야 해요.

그 젊은이들에 대해 그렇게 말한 것처럼, 그들 중 다수는 <플레이보이>가 물질주의를 받아들인다고 느끼는 듯 보입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아요. 또는 그렇다는 뜻을 내비치지 않고요. 그렇지만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느끼지도 않아요. 돈의 가치는 모두 그걸 통해 행하는 일에 담겨 있어요. 돈을 착취적이고 파괴적인 목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해요. 워터게이트 선거자금은 그 점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죠. 하지만 돈은 자신과 타인을 위해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도 사용할 수 있어요. 우리가 잡지에서 홍보하려고 애써오고 나 자신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 생활방식이 바로 그거예요. 정말이지, 나는 굉장히 풍족한 생활을 할 정도로 충분히 운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돈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돈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조차 중요하지 않아요. 나한테 중요한 건 돈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쾌락, 그리고 개인적인 자유예요.

재산 전부를 자수성가하며 벌었고, 양껏 벌었다는 사실이 당신을 흐뭇하게 해준 적이 있었나요?
단언컨대, 없었어요. 내 성공의 재무적인 부분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대학에 다닐 때 제일 하고 싶었던 일, 내가 믿을 수 있는 나만의 잡지를 창간하고 편집하는 것이라고 결정한 일이 내가 해올 수 있었던 일하고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 나한테는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 나는 이 잡지가 우리 시대에 가장 많이 모방된 잡지였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와 성적인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만족스러워요. 내게는 이 모든 일이 내가 벌어들인 돈의 액수보다 훨씬 더 의미 있어요.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 보유한 순자산 면에서 나와 공통점이 많은 사람들한테도 나는 거의 관심이 없어요. 나는 경영계에 친구가 거의 없어요. 거대한 철강 회사의 우두머리와 마주 보고 앉아 우리가 어떻게 정상에 오르게 됐는지 얘기하는 건 내게는 지독히도 지루한 일이죠.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 명단의 64위에서 23위로 뛰어오를 수 있도록 5억 달러를 추가로 더 벌어들이는 걸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나는 플레이보이를 제너럴 모터스만큼 거대한 기업으로 만드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내가 진정으로 추구해온 건, 돈 걱정은 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짭짤한 수익을 내기도 하는, 독특하고 흥미진진한 회사를 만드는 거예요.

2년 전, 당신은 미래의 사업 확장과 다각화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주식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플레이보이를 거의 완전한 개인 소유 기업으로 그토록 오래 유지한 이후라서 대중에게 주식을 매각하겠다는 결정은 뼈아픈 결정이었을 게 분명합니다.
전혀요. 내 지분이 80%에서 70%로 떨어진 것뿐이에요. 그러니 정확히 말해, 나는 내 통제권을 팔아치운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내가 자연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는 차원에서는 그 말이 맞아요. 나는 그 결정이 1960년대 말에 내 권한을 위임하기로 한 결정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결정 모두 마지못해 내린 거지만, 어쨌든 회사에 유익할 거라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어요. 우리가 주식을 공개한 건, 더 큰 성장을 보장하는 정당한 행보라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주가가 어떻게 매겨져왔는지를 바탕으로 판단해보면, 플레이보이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닌데요.
주식시장이 우리 회사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쩌다 보니 우리는 급격한 하락 기세가 시장을 강타하기 직전에 기업을 공개하게 됐어요. 내가 아는 한, 주가 하락은 확장의 길 위에 있는 대단히 건전한 기업인 플레이보이 내부의 문제점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심한 주식시장 하락을 초래한 불황과 인플레이션, 빈약한 정치적 리더십과 관련이 있어요. 플레이보이는 온갖 종류의 엔터테인먼트 여가 활동이 대단히 흥미진진한 성장세를 보여줄 상황에 직면해 있어요. 우리가 계획한 프로젝트 중에는 우리가 보유한 호텔의 부지에 통제된 환경을 가진 주거 지역을 만들고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있어요. 지난 5년 사이 위스콘신과 뉴저지에 새 리조트를 마련하는 데 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고요. 두 곳 다 플레이보이 클럽 회원에게 상당한 매력을 어필하며 꽤나 짭짤한 수익을 낼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의 시각에서 새로운 시장을 활용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는 신규 잡지들, 즉 콘셉트가 신선하고 <플레이보이>와 <위>하고는 크게 다른 잡지들을 다수 발행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요. 극장용 메이저 영화 대여섯 편을 준비해온 영화 사업부는 퓰리처를 수상했을 뿐 아니라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 각본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That Championship Season)>의 영화화할 권리를 획득했어요. 그리고 ABC는 우리가 예산을 밑도는 제작비로 완성했는데도 모두 괜찮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TV용 영화 세 편 중 하나인 <우리를 악마에게서 구해줘(Deliver Us from Evil)>의 TV용 영화 시즌을 올 가을에 시작했어요.

첫 영화 <맥베스>로 손해를 봤습니다. 그 일 때문에 깨달은 게 있나요?
그 영화는 예술이 아닌 상업적 측면으로만 실망스러웠을 뿐이에요. 그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전미 영화비평가 위원회는 그 작품에 올해의 작품상을 수여했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가 그 영화를 만든 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영화 산업은 항상 전체 영화 중 일부 작품만 돈을 버는 도박 같은 사업이에요. 하지만 그건 내가 기꺼이 감수한 계산된 위험이었어요. 장기적으로보면, 영화 제작은 갈수록 활자의 시대를 넘어서는 사회적 행보를 표현하는 중요한 형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나는 플레이보이가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가는 일에 개인적으로 관여하고 싶어요. 케이블 TV와 카세트 비디오테이프, 심지어 전자출판이 매스컴의 주요 형식이 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플레이보이는 그런 시장을 활용하는걸 이미 경험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플레이보이 클럽의 강조점을 지난 10년간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옮기는 중이에요. 전통적인 나이트클럽 분위기에서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식사와 음료를 제공하고, TV와 영화관을 대체할 좋은 대안을 찾아나선 젊은 싱글과 커플을 위해 온갖 종류의 현대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쪽으로요. 클럽의 시설도 재설계하고 확장하고 있어요. 그중 몇 곳은 사교 활동 중심지의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입지로 위치를 옮겼어요. 그런데 우리 회원에게 제일 중요한 소식은 내가 그 어느 때보다 플레이보이 클럽의 방침에 개인적으로 깊이 관여할 거라는 거예요. 잡지를 편집할 때 독자의 관심을 강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객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매우 강조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클럽과 리조트, 호텔들은 앞으로 몇 년간 가장 인기 좋은 현대적인 모임 장소가 될 거예요.

지난 1~2년 사이에 <플레이보이>를 모방한 잡지가 급증한 것에 대해, 그리고 그중 일부가 이 잡지를 더욱더 애쓰는 게 명백하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요?
모방은 진심이 듬뿍 담긴 아첨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역사상 다른 그 어떤 잡지 발행인보다 더 애정이 듬뿍 담긴, 그리고 더욱 뻔뻔스러운 아첨을 들어왔다고 생각해요. <플레이보이>는 20년 전에 창간된 이후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유사 간행물에 영감을 줘왔어요. 그중 그런대로 의미 있는 첫 잡지는 <에스커페이드 >였고, 그 뒤를 <너깃>과 <듀드>, <젠트>, <로그>, <카발리어 >가 이었죠. 각 잡지들은 처음엔 약간의 성공을 누렸지만, 그러다가 진흙탕에서 버둥거리게 됐어요. 최근에는 그 자리를 <펜트하우스>와 <갤러리>, <제네시스>, <코크> 같은 잡지와 우리의 흑인 버전인 <플레이어스>가 차지했죠. 프랑스의 <루이>와 이탈리아의 <플레이멘> 같은, 우리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수십 개의 해외 변종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잡지 대다수가 곤경을 겪는 원인은 독자에게 뭔가 신선하고 독창적인 것을 제공하는 대신, 우리가 출판한 잡지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베끼는 것으로 우리와 경쟁하려 기를 쓴다는 거예요. <펜트하우스>가 대표적 사례죠. 원래 그 잡지의 이름은 <플레이걸>이 될 예정이었어요. 변호사들이 <펜트하우스> 발행인 밥 구치오네에게 <플레이보이>와 너무 유사한 제호를 사용했다가는 트레이드마크 침해로 소송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 전까진 말이에요. 그래서 <펜트하우스>로 정한 거예요. 그런데 그것조차 플레이보이랑 굉장히 관련이 많은 제호예요. 우리가 처음 제작한 TV 시리즈의 제목이 <플레이보이의 펜트하우스>인 데다, 플레이보이 클럽의 전시실에도 비슷한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 하지만 소송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지는 않았어요. <펜트하우스>의 주요 특집은 우리만의 고정 기사인 ‘이달의 플레이메이트’를 도용한 사진이에요. 그러고는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해 그 사진에 ‘이달의 펫(Pet)’이라는 제목을 붙인 거죠. 이런 식으로, 결국 우리는 연간 펫 리뷰와 ‘올해의 펫’, 펫 캘린더 같은 스핀오프 파생물에 영감을 줬어요. ‘플레이보이 인터뷰’와 ‘플레이보이’ 포럼을 비롯한 이런 모방 콘셉트는 다른 특집 기사까지 확장됐어요. <펜트하우스>는 새로운 칼럼명을 생각해내는 수고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런 기사를 고스란히 베꼈죠. 최근 발행된 책에는 <리틀 애니 패니>(<플레이보이>에 20년 넘게 연재 같은 느낌의 특이한 연재 만화를 게재하고 있는데, 구치오네가 개인적으로 기고한 그 만화는 줄스 파이퍼(미국의 만화가)의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요. 줄스의 독특한 스타일과 포맷을 지나치게 많이 복제했지만, 줄스 특유의 재치나 통찰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이죠. 심지어 <펜트하우스>에는 래빗 대신 열쇠를 내세운 심벌도 있어요. 그 심벌은 각 기사의 끝에 배치돼 있죠. 그렇게 우리 잡지에서 영감을 얻은 걸 혁신이라고 내세우는 거예요. 그들이 유일하게 베끼지 않은 건 “어떤 부류의 남성이 <플레이보이>를 읽는가?”라는 카피를 내건 광고뿐이에요. 믿거나 말거나, 일부 다른 모방자는 <타임>이 최근에 ‘플레이보이 표절’이라고 언급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 정도로 우리의 미술과 디자인을 복제하려 시도하고, 카피까지 모방했어요. 물론, 가장 노골적으로 우리를 도용한 잡지는 <갤러리>죠. 플레이보이 빌딩의 도로 건너편에 사무실을 차리더니 플레이보이의 하위직 직원 대여섯 명을 고용하고는 우리의 페이지를 하나하나 그대로 복제해낸 창간호를 내놨잖아요. 불행히도, 그 결과물은 오리지널 잡지와 비슷해 보이기보다는 대학교 유머 잡지사에서 내놓은 숱하게 많은 <플레이보이> 패러디 잡지 중 하나로 보였어요.

<펜트하우스>와 <갤러리>, <제네시스>와 나머지 잡지들이 <플레이보이>에 진 빚을 고려할 때, 그 잡지의 발행인들이 인터뷰어들에게 <플레이보이>의 스타일은 구식이고, 그들이 발행한 잡지가 현대적인 기준에 더 잘 부합한다고 말하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굉장히 웃기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들이 달리 무슨 말을 할 거라 기대하겠어요? 그들은 <플레이보이>의 매력 중 제일 눈에 잘 들어오는 자유방임적인 성적 지향과 누드 사진에만 철저히 집중하기 때문에, 그들이 발행한 잡지는 섹스가 남성의 다른 관심사와 분리된 채로 다뤄지던 <플레이보이> 창간 이전 시대를 상기시켜요. 실제로는 그들이 구닥다리 잡지인 거죠. 실제로 나는 <펜트하우스>의 매력이 변태적인 내용의 독자편지 섹션,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 포르노를 암시하는 누드 촬영의 외설적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나 구시대적이라서 독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미덕을 갖고 있죠.

<펜트하우스> 편집 콘텐츠의 제한적 속성을 감안할 때, 작년 <펜트하우스>에 쏟아진 우호적인 언론 기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나요?
구치오네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그의 잡지를 홍보하는 거예요. 2년 전 그는 우리의 래빗헤드를 활용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효과적인 신문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플레이보이>에게 진정한 경쟁자를 안겨주려고 <펜트하우스>를 세상에 선보였다는 걸 드러냈죠. 그는 언론과 인터뷰할 때 <플레이보이>를 개인적으로 공격한다는 아이디어를 한층 극적으로 연출해냈어요. 눈에 뻔히 보이는 수법이지만, 언론은 그 수법을 좋아했어요. 구치오네가 재능 있는 기획자이고 솜씨 좋은 사진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그는 대단히 우수한 편집장은 아니에요.

<스크루>의 구치오네 인터뷰를 진행한 인터뷰어는 <플레이보이>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당신의 발자취를 좇으려는 그의 충동의 기저에 당신을 향한 애증 관계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런던에는 펜트하우스 키 클럽과 리조트 호텔, 펜트하우스 북 클럽, 펜트하우스 라인의 제품도 있는 데다, 최근에는 영화 제작에 뛰어들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죠.
그런 충동은 그의 개인적인 생활에까지 확장된 듯 보여요. 그는 스스로를 위해 매우 눈에 익은 대중적 이미지를 창출하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그가 자신의 펜트하우스 맨션으로 이사했다는 발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그가 벌이는 이런 혈기 왕성한 모방 행위를 정말로 반대하지는 않아요. 내가 그의 입장이어도, 그렇게 되기를 원했을 거예요.

<위>를 발행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뭔가요? <플레이보이>가 자신을 모방하는 행위처럼 보일지도 모르는데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기존에 추구하던 주제를 변형한 잡지 말이죠. <플레이보이>에 싣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콘텐츠를, 약간은 경박하면서도 파격적인 콘텐츠를 담아내는 새로운 잡지가 될지도 모르는 잡지. <위>는 편집 포인트를 국제적인 콘텐츠에 둔 잡지예요. 그 점이 내겐 매력적이에요. 자국주의는 위태로울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우리 자신을 작은 행성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 인류라고 생각해야 해요. <위>는 유럽에서 발행하는 <플레이보이> 모방 잡지 중 가장 뛰어난 <루이>와 공동 발행을 하고 있는 벤처 기업이에요. 어쨌든 <위>는 지리적 한계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성적인 한계 같은 구시대적 제약에서 벗어나 나름의 길을 갈 거예요. <위>는 발행 첫해에 우리가 이미 친숙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리고 그러한 잡지의 혁신적 매력에 반응을 보일 거라고 느끼는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삼았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혁신은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해요. 날이 갈수록, <위>는 여성도 표적으로 삼을 거예요. <위>의 표적은 삶의 환희를 공유하고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전통적 역할과 라이프스타일에서 해방된, 진정한 쾌락을 추구하는 남녀를 모두 아우르는 현대적인 독자들이에요. 우리는 75만 부라는 기록적인 창간호 부수를 찍었고, 판매 2주 만에 대부분을 팔아치웠어요. 발행 부수는 첫해에 월간 150만 부까지 성장했죠. 그래서 이 새로운 잡지의 미래는 매우 밝아 보여요.

확실히 <위>는 미래가 유망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건 플레이보이가 벌이는 사업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회사 전체가 과거 20년간 그랬던 것처럼 향후 20년 동안에도 중요한 존재로 남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20년간 잘해온 만큼, 앞으로의 20년은 더 잘해낼 거예요. 앞으로 사람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레저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 시간에 하는 활동에 전념했던 회사는 갈수록 중요한 회사가 될 것이 확실해 보여요. 특히 그 시장에서 플레이보이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회사라면요. 분명 미래의 우리 잡지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될 거예요. 지금 발행 부수는 역대 최고예요.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남성지의 발행 부수 기록을 훨씬 웃돌죠. 우리가 매너와 도덕관념에 가하는 영향력은 앞으로도 한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거예요. 플레이보이는 앞으로도 개인의 사회적이고 성적인 자유를 고취하는 데 계속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성적인 혁명은 이미 승리를 거두면서 끝이 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순진한 사람들이니까요. 우리 사회는 성적으로 해방된 사회가 아니라 성적으로 분열된 사회예요. 여러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섹슈얼리티를 놓고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고통스럽고 힘겨운 전환기를 거치는 중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대다수 성인의 성적 행위가 불법인 나라에, 억압적인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오며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 나라에 살고 있어요.

최근 대법원이 내린 외설 관련 판결을 염두에 두고 하는 얘기인가요?
물론이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무척이나 무심했던, 일부 경우는 심지어 우호적이거나 아니면 오히려 예민했던 반응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고통과 폭력, 죽음을 다루는 노골적인 이미지와 이에 대한 묘사는 허용하면서, 쾌락과 애정을 추구하는 행위와 관련된 건 금지하려는 사회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1973년, 나는 무엇이 포르노그래피인지 결정하고 불법화할 수 있는 권한을 소위 ‘지역 공동체’에 넘겨주는 걸 미합중국 대법원이 정당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미 조지아주의 대법원에서는 줄스 파이퍼가 시나리오를 쓰고 마이크 니컬스가 연출한 영화 <애정과 욕망(Carnal Knowledge)>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는 사태를 피해갈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어요. 아무리 충분히 예술적이라도 해도 말이죠. 닉슨이 ‘헌법의 엄밀한 혜택’이라고 부르는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마땅한 닉슨 치하의 대법원에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수정헌법 제1조가 사실상 법률 조문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어요. 특정 종류의 표현, 섹스와 관련이 있는 말과 글을 반드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거예요. 법원이 내린 이 결정의 내용은 모든 지역 공동체를 지배하는 엘리트가 그 소도시에 사는 나머지 주민이 읽고 보는 내용을 결정할 권한을 가졌다는 거예요.

그런 판결이 내려진 직후, <플레이보이>와 다른 남성지가 엄중한 단속을 받을 거라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실제로 있었죠.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심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어요. 내 생각에, 분위기가 이 정도에서 멈춘 주된 이유는 대법원 판결이 <플레이보이>를 겨냥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건 하드코어 잡지를 겨냥한 판결이었어요. 그러니 우리가 출판하는 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그래도 그런 탄압을 가하려고 애쓰는 데 따르는 피해는 여전히 존재해요. 나는 성인과 아동을 구별하는데, 이런 걸 보고 싶어 하는 성인 독자가 있다면 소위 자유롭다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감히 성인들에게 극장에서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걸 볼 수 없다고, 또는 서점이나 잡지 판매대에 가서 읽고 싶은 것을 살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회가 검열을 가할 때,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잡지 발행인이나 편집장이 아니라, 주로 억압 받는 자료를 접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에요. 일부 지식인과 배운 사람들이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심란스러워요. <월스트리트 저널>이 그 판결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옳은 것 같다면서 ‘민주주의 사회 내 다수의 권리’를 운운하는 사설을 읽었어요. 글쎄요, 다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는 미국이 전심전력을 다해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에요. 미국이 위대한 까닭은 다수결 원칙을 허용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개인의 자유를, 공동체에서 대중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료를 읽거나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자유를 보호하기 때문이죠. 지나치게 많은 잡지와 신문에서 이렇게 타인의 자유에 가하는 사소한 제약이 포르노 극장을 없애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한 대가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요. 그들이 단골이 될 리 없는, 길거리 아래쪽에 있는 그곳 말이죠. 그들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이에요. 솔직히, 나는 그들을 보면 유대인이 권리를 빼앗기는 게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독일의 훌륭한 시민이 떠올려요. 외설이라는 이슈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검열이라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섹스를 묘사하는 것이 수정헌법 제1조로 보호하기에는 지나치게 두렵거나 불경한 일이라는 관념은 얼마나 기이한가요? 음, 나는 지금 <타임>과 <뉴스위크>와 이 나라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거예요. 이 판결이 진정으로 무슨 의미인지 인식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게 마땅한 사람들이면서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딴청을 부리면서 적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적은 저 밖에 있으니까요. 이 나라는, 사실 이 세상은 대립적인 두 세력으로 구성돼 있어요. 우리, 그리고 자신들의 가치관과 태도를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자들. 전체주의는 문명이 창조된 이후 가장 중요한 악의 세력이었어요. 종교의 이름으로 권좌에 올랐든,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소위 더 나은 사회의 이름으로 권좌에 올랐든 상관없이요. 미국은 그런 종류의 전체주의를 반대한다는 전체적인 개념에 바탕을 둔 나라예요.

대법원의 판결이 노골적인 미디어의 표현에 실제로 미치게 될 효과는 어떨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건 예측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1970년대 포르노그래피의 구성요소에 대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을 배심원단 12명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일 거예요. 그리고 포르노가 어떻게 구성되든, 그건 법률에 의해서만 금지돼야 해요. 뉴욕주의 빙엄턴과 플로리다에서는 <목구멍 깊숙이>를 금지하려고 애썼지만 배심원단의 동의를 구할 수 없었어요.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많이 벌어질 거예요. 포르노 시장이 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사회에는 포르노의 변형된 형태가 등장할 거예요. 금주령 시대에 등장했던 알코올처럼 말이죠.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런 상황 탓에 훨씬 더 심하게 부패한 지방 정치계를 목도하게 될 거고요. 지금은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확신하기엔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든 한 사람의 미국 시민으로서 내가 보이는 반응은 격분 그 자체예요.

편집장이자 발행인으로서의 반응은 무엇인가요? <플레이보이>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우리를 기소하면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멍청한 일부 검사가 있는 공동체를 제외하면, 그 판결은 <플레이보이>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한 마디 하자면, 이런 판결을 바탕으로 <플레이보이>를 금지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든 바보천치 소리를 듣는 신세가 되고 말 거예요. 재판에서 질 테니까요. <플레이보이>를 상대로 이런 소송에서 이길 방법은 없어요. 여태껏 어느 누구도 우리를 이긴 적이 없었어요. 우리의 명성은 정말로 확고하게 다져져 있어요. 냉정하게 말하면, <플레이보이>는 이런 판결 덕택에 실제로는 경제적 수혜를 받게 될 거예요. 노골적인 성적 발행물이 더 많은 금지를 당한다면, <플레이보이>가 다루는 성적인 부분의 매력이 한층 커질 게 분명하니까요. 느닷없이, 우리는 성적 아방가르드의 위치로 복귀했어요. 그런데 나는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아요. 검열이 달갑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20년간 그런 종류의 성적 탄압에 맞서 싸워왔어요. 앞으로도 그 싸움터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예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 계획인가요?
우리의 대응은 주로 법정에 맞춰질 거예요. 그런 문제를 법정에 가져가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일단 그런 소송이 벌어진다면 필요한 모든 법적 자원을 동원할 거예요. <플레이보이>와 직접 관련이 있는 사건의 재판에 법적 자원을 투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플레이보이 재단을 통해 다른 검열 반대 운동에도 자금을 댈 생각이에요.

지적한 대로, 당신은 수년간 검열에 맞서 싸우면서 성적인 자유와 관련 운동을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관여해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폭넓은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보이는 건 어떤 경찰이 야경봉으로 엉덩이를 후려친 1968년 시카고의 민주당 전당대회부터였다는 얘기가 널리 보도됐습니다.
내가 엉덩이를 철썩 얻어맞으면서 사회적 의식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을 말하면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사회적 이슈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살아왔어요. 우리 잡지는 그런 관심을 충분히 뚜렷하게 반영해왔고요.

선출직에 출마해 정치적 신념을 행동에 옮기는 걸 고려해본 적이 있나요?
전에도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정치적 야심은 전혀 품고 있지 않아요. 내가 정서적으로 정치인의 인생에 잘 들어맞는 삶을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잡지의 편집과 재단의 자선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철학>에서 미국은 ‘도덕적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썼죠.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나요?
그 책을 낙관론이 적절한 시대정신이던 케네디 시절에 썼죠.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더 이상 낙관적으로 살기 힘들어졌어요. 그런데 내 기분은 작년에 상당히 희망적으로 변했어요. 예를 들어, 나는 워터게이트 사건 전체가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권력의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조차 철저한 부패를 비밀로 은폐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죠. 그건 우리 체제의 엄청난 강점을 보여준 인상적인 사례예요. 미국에는 주와 시 단위로 사소한 부패들이 늘 존재해왔어요. 티팟 돔 스캔들(1921년에 일어난 유전 관련 뇌물 사건)과 스피로 애그뉴(뇌물수수와 탈세 등의 혐의로 사임한 닉슨 행정부의 부통령) 덕분에 연방 수준에서도 그래왔고요. 이런 스캔들은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닌 돈을 꿀꺽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어요. 그런데 워터게이트는 훨씬 더 불길한 종류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규모의 부패였어요. 민주적 절차를 전복시키려는 음모였죠. 이 사람들은 법조문에 어떻게 적혀 있든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들은 나라를 위해 제일 유익한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으며, 그들의 대의는 정당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건 외설과 마약, 시민 문제를 분석하는 일에 수백만 달러를 써댄 다양한 의회 위원회와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대한 닉슨의 반응을 통해 거듭 드러난 태도와 동일해요. 닉슨은 위원회의 활동 결과를 듣고는 그걸 그 자리에서 곧바로 거부했어요. 그가 가진 편견과 정치적 이해관계에는 적합하지 않은 결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닉슨 행정부의 이런 성격적 결함을 보면서 대경실색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요. 워터게이트는 닉슨이라는 사람이 거쳐온 전체 공직 생활의 정점일 뿐인데 말이에요.

당신을 흥분시킬 1976년 대선의 대권 후보는 누구인가요?
나는 어떨까요?

당신 입으로 그런 건 관심 없다고 그랬잖아요.
흐음, 국민들이 솔직하게 대권 후보를 선택한다면, 미국은 나를 정말로 필요로 할 거라고 느끼는데… 에이, 농담이에요.

아하, 그랬군요.
농담이라는 게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면,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들어내는 게 나을 거예요.

신경 써서 기사를 작성하죠. 그런데 당신을 제외하고 유망한 후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나요?
지금 당장은 나를 흥분시키는 후보가 딱히 눈에 띄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에 대한 해법은 우리를 더 나은 시대로 이끌어 갈 영웅을 찾아내는 것에서 도출되지는 않을 거예요. 정치 시스템의 전체적인 속성과 권력 분산은 어느 한 개인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가지면 안 된다는 관념에 근거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임금님이 발가벗고 있다는 걸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까지 백악관에서 일어나던 일이 딱 그거였어요.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단계를 밟는다고 하더라도, 이번 경험이 준 교훈을 세상이 망각했을 때 똑같은 일이 재현되는 사태를 막을 방안은 뭘까요?
그런 건 전혀 없어요. 민주주의에서 자유로운 언론이 정말로 핵심적 요소인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못 본 척 눈감아주는 걸 거부한 것, 언론을 억압하려는 닉슨 행정부의 체계적 시도에 겁먹는 걸 거부한 것, 최초의 불법침입 사건 재판에 희생양으로 내세워진 6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 그리고 의회와 법무부에서 우리 정부의 최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사건에 개입했음을 폭로하는 데까지 여론을 이끌며 진짜 악당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바로 이 나라의 자유 언론이었어요. 신문과 잡지, 라디오가 그렇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걸 막을 유일한 안전장치는 그런 선동가들이 추악한 머리를 다시 굴릴 때 적절한 경고음을 울릴, 자유롭고 성실한 언론이에요.

<플레이보이>가 그런 목표에 기여해왔다고 생각하나요?
그래왔다고 확신해요. 몇몇 기사, 인터뷰와 사설을 통해 우리는 닉슨 행정부와 함께 권좌에 오른, 진정으로 전체주의적인 성향의 위험 인물들에 대한 경보를 발령하려고 시도했어요. 지난 대통령 선거는 내가 개인적으로 깊이 관여한 첫 선거였죠. 이런 사람들의 리더십 아래 우리나라가 향하게 될 불길한 방향이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 불행히 국민들은 우리가 발령한 경보를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어쨌든 충분히 많은 유권자가 귀담아듣지는 않은 거죠. 우리는 전투에서 패배했어요. 하지만 워터게이트 스캔들 덕분에 전체 전쟁에서는 승리했죠.
우리 모두가 모든 형태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는 사설을 통해 지난 몇 년간 그런 일을 하려고 애써왔어요. 베트남전을 반대한 것부터, 상호 동의 아래 합법적으로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성인의 성행위를 지배하는 법률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자를 위한 법적 지원에 이르기까지. 바로 그것이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앞서 <플레이보이>가 과거 20년보다 향후 20년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창간 40주년까지 잡지와 회사를 운영할 건가요?
그 기간이 약간 더 길었으면 해요. 내게 자발적 은퇴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에요. <플레이보이>는 여전히 내가 하는 모든 행위의 중심이에요.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는 수준까지 잡지를 방치하고 싶지는 않아요. 무슨 말이냐면, 이 잡지를 거의 사람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생각하면서 사랑한다는 거예요. 내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잡지는 쉽게 뒷걸음을 치고는 말할 거예요. “오케이, 이제 끝났어요. 그간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가서 다른 일을 하도록 해요.”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고 있어요. 가끔은 잡지가 내게 요구하는 것 때문에 낙담하곤 하는데, 인생에서 나를 낙담시키는 일은 잡지와 관련된 일 말고는 없어요. 힘들게 보낸 하루가 끝나면,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100만 달러짜리 기분을 느끼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긴장을 풀 수 있어요.

심지어 2억 달러짜리 기분도요.
그렇게 좋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플레이보이가 당신의 비전을 확장해서 표현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에서 볼 때, 당신이 회사를 더 이상 경영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계속 성공적으로 경영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더 이상 경영하지 않게 된 이후요? 미묘한 주제로군요. 내가 ‘저세상으로 간’ 다음을 말하는 건가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회사가 한 사람의 에너지와 전문성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장기적인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어쨌든, 내 밑에서 일하는 재능 있는 여러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에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내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경영하는 동안 <플레이보이>가 업계에서 사라질 거라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물론, 내가 잡지와 함께 이승을 떠나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언젠가 <타임>은 역사에서 당신이 자신의 위상이 린든 존슨만큼이나 대단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비치며 우려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 질문에 답하기에 내가 적합한 인물은 아닌 것 같군요. 그런 건 더 객관적인 사람한테 물어봐야죠. 우리 어머니 같은 분한테요.

그러지 말고 대답해보세요.
음, 나는 당대의 성적인 태도에 꽤나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분야를 넘어서면,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죠.

너무 겸손한 얘기로 들리는군요.
사실이에요. 실제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 다음 자리인 2위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가운데에 있는 자리는 찾아내지 못할 것 같네요.

한 번 더 시도해보세요.
음, 라이트 형제가 없었더라도 세상에는 여전히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있을 거예요. 에디슨이 없었더라도 세상에는 여전히 전등이 존재했을 거고요. 헤프너가 없었더라도 여전히 섹스를 하겠지만, 섹스를 그리 많이 즐기지는 못할 거예요. 그러니 세상은 조금 더 불쌍한 곳이 돼 있겠죠. 그런 세상을 상상해봐요.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여러 동지도 생각해보고요. 자, 이제 백개먼이나 하러 갑시다.

Credit

  • 게스트 에디터 김선희
  • 포토그래퍼 Mindas
  • Larry Dubois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