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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나의 여름

암스테르담에서 방콕으로 기수를 돌렸다. 뜨거운 맘으로 돌아갈 곳이 생겼다.

도시 곳곳에 빼곡한 자전거

개인과 개인의 도시, 암스테르담
초행길은 조심스럽다. 숙소로 정한 집의 좁고 긴 마루 난간에 걸터앉으면 운하가 보였다. 운하를 멍하게 구경하는 것만으로 첫날이 거의 흘렀다. 이 동네는 ‘레드 라이트 디스트릭트’. 그러니까 홍등가였지만 홍등가가 아니기도 했다. 코너만 돌면 암스테르담에서 제일 맛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점이 있었다. 운하를 건너 줄줄이 이어진 ‘빨간 집’을 지나면 세계를 주름잡는 레코드 가게가 나왔다. 레코드 가게와 함께 운영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은 ‘빨간 집’처럼 통창으로 실내가 다 보였다. “겨울이 정말 끔찍해서, 해만 나면 동네가 시끄러워 살 수가 없어.” 기차역이 가깝다는 이유로 이곳에 사는 집주인의 푸념. 대낮이면 운하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파티를 벌였다. 5월이었다. 정시가 되면 교회당 종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니까 여기는, 홍등가의 ‘파티 피플’들과 홍등가와 상관없는 ‘파티 피플’들과 무려 1213년에 문을 연 구교회가 공존하는 동네였다.

2018년 기준, 암스테르담의 인구는 고작 80만이 간신히 넘는 수준. 그 정도 인구에 이 정도 유명세를 가진 도시가 있었나?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다. 아주 극명하게. 누군가는 술과 약에 절어 홍등가를 기웃거리다 오고, 누군가는 대낮부터 하이네켄을 물처럼 마시고, 누군가는 느긋하게 운하와 그만큼 많은 다리를 걷고 또 걷는다. 형편없는 ‘로컬 음식’과 식민지 시대의 산물인 수리남 음식을 같은 날 맛볼 수 있고, 6시면 카페가 다 문을 닫아 (2유로면 끝내주는 맛을 보장하는) 커피 한 잔 사기 어렵지만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페스티벌을 여는 도시이기도 하다.

퇴근시간 무렵이면 붐비기 시작하는 펍

유럽의 관문이라서? 대부분 시민이 영어를 능통하게 해서? 아니면 런던도 파리도 베를린도 시들하니 온 ‘힙스터’들이 다 모여들어서? 그 또한 이 작은 도시를 생동감 넘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겠으나, 과연 여기는 ‘더치페이’의 나라. 그렇게 개인의 방종과 개인의 흥미가 개인의 것으로서 고유할 수 있는 도시. 이곳에서 2주를 보냈다. 구석구석을 자전거와 트램을 타고 싸돌아다녔지만, 지겨울 때가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묻지 않았다. 레코드를 사면 그 레코드에 대해 얘기했고, 내일 열리는 숨은 이벤트에 대한 정보를 가감 없이 공유했다. ‘대세’보다 취향을 믿는 개인이 존재하고, 그 개인이 모여 느슨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곳. 여행자인 나는 그 공동체의 일원은 될 수 없겠으나, 아무렴 어떠냐며 손을 내미는 키 큰 사람들이 거기 살고 있었다.

레드 라이트 디스트릭트의 낮 풍경

도심에서 공항까지는 불과 15분. 순식간에 암스테르담을 벗어나면서도 아쉽지 않았던 이유는, 언제든 다시 돌아와 그때의 내 모습 그대로, 이곳도 나도 변한 그 모습으로 맘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또한 도시의 문을 활짝 열어뒀을 때 생기는 일.

알아도 모르는 도시, 방콕
또 방콕에 갔다. 매년 간다. 일 년에 두 번도 간다. 이유라면 많다. 음식이 맛있다. (더운) 날씨를 좋아한다. 비가 오면 예쁘다. 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도시다. 아는 도시에 가면 처음 가는 곳을 여행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 생긴다. 암스테르담은 모르는 도시였다. 상상하는 도시였다. 꿈에 그리던 가게들과 운하 옆을 달리는 자전거와 멋진 클럽 같은 것들. 다행히 상상만큼 혹은 그보다 더 좋았다. 그렇게 모르는 도시를 편도로 끊어 놓고, 나는 서울로 돌아오거나 다른 가까운 유럽을 가는 대신, 5월의 끓어오르는 방콕을 골랐다.

방콕 도심의 밤

방콕은 모르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갈 도시, 다만 몇 번 가서 잘난척 한다고 결코 다 알아낼 수는 없는 거대한 도시다. 대로는 대로대로 위풍당당하게 나 있고 그 대로를 기준으로 동네를 형성하지만, 골목이라면 골목 그 자체로 어떤 특색의 거리이자 동네로 자생하는 힘이 있는 곳. 이제 동서남북 다 알았다 싶지만, 거기서 한 시간 넘게 택시를 타고 달려도 아직 방콕이라는 놀라운 스케일. 무더위에 숨이 턱 막히면 오토바이에 올라타 바람을 쐬다 아무 데나 내려서 다시 걸었다. 길을 잘못 들면 대번 막다른 길에 부딪히기 일쑤. 그래서일까, 배낭여행이 끝없이 연결된 길을 탐험하고 알게 되는 재미라면,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는 방콕은 역설적으로 어쩐지 잠시 머무른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뜨거운 낮,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

2주간 지냈고 평소보다 멀리 갈 수 있었다. 작년엔 차오프라야강 변과 차이나타운이 뜬다더니, 이제는 다시 구관이 명관이라며 에까마이와 통로를 주목한다는, 방콕 어느 카페에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명망 있는 도시정보 무가지의 설명이었다. 그러니 거기로 가야지. 새벽 두 시만 되면 종 치듯 불이 활짝 켜지는 클럽이 끝나면, 처음 보는 얼굴들은 다 집에 가고 잘 아는 얼굴들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그리고 셔터를 반쯤 내린, 들어오라는 건지 들어오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술집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술을 마셨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각기 다른 취향과 성별과 국적과 성적 취향의 사람들도 이 시간엔 꼼짝 없이 여기로 집합. 난 여기는 혼자 죽어도 못 찾아오겠지. 방콕이 영어가 잘 통한다는 말은 도심 한정일 뿐, 그래서 이 시간은 지금 뿐이니까 일단 즐겨야만 하는 마법 같은 시간. 그렇게 없던 용기가 생기고, 사랑을 만나고, 땀에 흠뻑 젖게 되는 밤과 아침이 쌓였다.

카오산 로드 근처 어느 가게의 석상

언제 방콕에 가면 좋으냐고 묻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답한다. 아무 때나. 방콕을 연고로 하는 축구팀 경기를 보러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불빛이 하나도 없는 ‘게토’를 목격한 일, 핏물이 줄줄 흐르는 근처 시장 골목을 지나 오리 국수를 사 먹고 나왔는데 택시가 한 대도 없어 다시 불야성 같은 동네로 종일 걸어 새벽을 맞은 일. 아는 도시이기에 걸어볼 수 있는 모험이자, 아직 모르는 것이 남아 다행인 이 도시. 그렇게 여러번 잠시 머무르며, 난 얼마나 많은 제각각의 방콕을 기억하게 될까.

유지성(Jesse You) | 전 <GQ Korea> 피처 에디터, <PLAYBOY Korea> 부편집장. 주로 음악과 스포츠와 섹스에 대해 쓰고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더운 나라를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Credit

  • 에디터 김민지
  • 유지성
  • 사진제공 유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