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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새 영화

역시나 김민희다. 카페에 있는 모든 남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역할이다.

홍상수의 새 영화

홍상수의 영화는 대사 듣는 맛이 좋다. 굳이 자막을 읽지 않아도 귀로 들리는 대사가 마치 ‘읽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괜찮아?”, “잘 지냈어”, “우리 그럴 수 있을까?”, “그럼 우리 그냥 술이나 하자.”처럼 단조로우며 형태가 안 보이는 대사는 스크린 안의 두 사람, 그 관계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든다. 가끔 모든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영화보다 빽빽한 텍스트에서 뭔가를 상상하는 더 큰 전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홍상수 감독이 새롭게 내놓은 영화 <풀잎들>은 고귀한 남녀가 여러 명 나오고 가볍게는 안부, 무겁게는 타인의 죽음과 자살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 근저에는 감정의 지질함이 베어 있다. 더욱 ‘홍상수스러워진’ 영화라고나 할까? 이번에도 무게 있는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 김민희는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 속 모든 사건에 위트 있는 각주를 단다. 예를 들면 늙은 연극배우와 젊은 여자 후배와의 대화를 엿듣고 “예쁜 여자 후배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으며 즐기고 싶은 거겠지. 그런 거겠지.”라고 비아냥(?)이 담긴 독백을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체로 이렇다. 동네 골목의 한 카페,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이 각자의 얘기를 한다. 각양각색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이곳 한쪽에는 한 여자가 이들의 상황을 엿듣고 관찰하며 무언가를 기록한다. 결국 밤이 되어서야 카페 안에서 몰래 소주를 기울이며 함께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누게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66분 동안 관객은 김민희와 함께 다양한 이들의 대화를 함께 엿듣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나도 그랬지’, ‘저런 상황이 있었지’, ‘진짜 지질하다’ 등의 생각을 하면서 영화의 제목 ‘풀잎들’은 결국 인간관계에 울고 웃는, 감성을 경멸하다가 그리워하는 ‘사람’ 얘기를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카페 밖에는 건너편 슈퍼 아줌마가 심어 놓은 몇 가지 종류의 야채와 새싹이 고무대야에서 자라고, 카메라는 몇 번이고 풀잎을 유심히 비춘다. “사람들이 만난다. 서로 감정 때문에 부딪히고 결국 서로로 다시 일어서는, 풀잎들의 삶”. 영화 속 김민희의 대사처럼 누군가의 감정이 그리워지는 요즘, 볼만한 신작.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검정 비닐 봉지에 소주 한 병 몰래 싸들고 극장으로 가볼 것. 누군가와 꽤 멋진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영상출처 유튜브 'SDAFF Trailers'
닥터 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