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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하고 경이로운

포토그래퍼 에드 프리먼이 포착한 물 속 풍경

사진작가 에드 프리먼과의 인터뷰가 있기 전날. 뉴욕의 하늘은 마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소장한 알베르트 카이프(Aelbert Cuyp)의 그림처럼 우유 빛으로 가득 찼다. 일주일 내내 우유 빛 하늘이 펼쳐졌다. 친구 말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산불로부터 뿜어져 나온 연기가 제트기류를 타고 뉴욕까지 온 것이라고 한다.

다음 날 이 이야기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사진작가 에드 프리먼에게 했을 때, 그는 중고 숍에서1945년대 레코드 박스를 발견한 수집가처럼 흥분했다. 그는 1991년 필리핀 화산 폭발을 떠올리며 “피나투보산이 폭발했을 때가 기억나요.”라고 했다. “우리는 1년 동안 눈부신 일몰을 볼 수 있었어요.”

그는 빛의 전문가다. 30년 동안 사진작가로 일하면서 그는 천상의 빛, 무드가 있는 빛, 로스엔젤레스의 아지랑이, 사막의 햇살 등 온갖 종류의 빛을 포착했다. ‘언더워터’라는 시리즈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빛은 아마 그의 전신을 하나로 묶는 공통된 실일 것이다. 이 실들은 너무나 많은 주제와 스타일로 다뤄졌다. 어쩌면 모두 다른 사진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매우 뛰어난 관찰력으로 에로틱한 인체를 포착한다. 그의 작품 중 다수는 사람이 전혀 출연하지 않는다. 어떤 것들은 색의 향연이지만, 다른 것들은 폭풍처럼 어두운 세피아 톤으로 표현된다. 프리먼의 다채로운 예술적 행보는 그가 사진을 독학으로 배웠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라고 그는 설명한다. “원래는 자동차나 정물, 음식, 패션 등을 찍어야 했었는데 그걸 몰랐어요. 그냥 밖으로 나가 다양하게 찍었어요.”

“자동차는 빼고요.”라며 그는 강조한다. “저는 자동차를 엄청 싫어해요.”

그의 다양한 시각은 유목민적인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그는 60년대 중반, 기타와 르네상스 류트를 연주하는 보스턴 포크 뮤직계에서 출발했다. 짧게 연주자로 활동했고, 캐피톨 레코드와 잠시 계약도 하긴 했지만, 그는 백 스테이지를 사진에 담는 데 더 큰 매력을 느꼈다. 70년대에는 칼리 사이먼, 그레그 올먼, 팀 하딘과 같은 싱어송라이터 아이콘의 앨범 편곡자 및 프로듀서로 활동했으며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제작하여 이른바 ’15분간의 명성’을 맞보기도 했다. 비틀즈의 마지막 투어에서 ‘Fab Four’의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아메리칸 파이>와 같은 엄청난 히트곡으로 인지도를 쌓았다는 것은 프리먼이 평생 음악계에서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그는 소프트 록이 정점을 찍을 때 업계를 떠났다.” 전 음악으로 꽤 성공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어요. 조력자가 아니라 예술가가 되고 싶었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80년대에 아방가르드한 전자 작곡을 탐구하는 데 집중했고, 이후 음악을 완전히 그만둔 뒤할리우드에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차렸다. 플래티넘 레코드를 만드는 대신 5년간 배우들을 위해 얼굴 사진을 찍었다. 수천 장의 초상화를 찍고 세계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게티 이미지에 여행 사진을 파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이 당신의 교육비를 지불하는 것과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건너편 식당에 사진 몇 장 걸어놓으라고 제안을 하면서 마침내 빛을 발하게 됐다. 그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배우들의 머리만 늘어뜨리는 대신 뭔가 특별한 것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이유로 그는 남성 누드에 끌렸다. 왜냐하면 게이로서 그는 그 시대의 동성애잡지에 실린 끔찍한 사진에 불만이었다. “<플레이보이>만큼 게이 남성을 위한 에로틱한 예술을 하고 싶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곧 해냈다. 하얗고 조각 같은 남성이 나체로 칠흑 같은 수영장에 뛰어내리는 장면을 포착한 이미지는 팬층을 확실하게 확보했다.

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디지털 편집 소프트웨어가 등장하고 그는 사진작가로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쇼에 갔을 때 리터칭 작업된 사진을 봤어요. 제가 본 것 중 가장 형편없었죠.”라며 회상했다.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6개월 후에 프로그램을 샀고,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작업을 마쳤을 때 ‘오 마이 갓. 이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완전히 사랑에 빠졌어요.”

암실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진 프리먼은 주제마다 다르게 표현되는 스킬을 키워나갔다. ‘Desert Reality’ 시리즈를 위해 그는 차로 미국 서부를 가로질러 2만 마일 정도의 여정을 떠났으며, 그 과정에서 버려진 트레일러, 폐쇄된 바 그리고 평소에 무시하기 쉬운 구조물을 촬영한 후 프레임 밖의 무언가를 암시한다는 듯한 풍경으로 편집했다. 마치 재앙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말이다.

Credit

  • 에디터 김민지
  • 번역 김윤진
  • Miles Raymer
  • 사진제공 Ed Fr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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