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카의 반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민 아티스트 헬렌 비어드.

‘The Song of Self(나의 노래)’

아티스트 헬렌 비어드(Helen Beard)는 섹스를 아주 좋아한다. “섹스는 본질이에요.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죠”라고 그녀는 노란색 페니스, 분홍색 음순, 보라색 가슴을 표현한 작품에 둘러싸여 말한다. 영국 브라이턴 외곽의 공업지역에 위치한 비어드의 작업실에는 추상화와 구상화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품이 전시돼있다. 대다수의 작품을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보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그의 작품 속에 커다랗게 표현된 곡선과 주름, 구멍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런던에서 종종 열리는 비어드의 전시나 인스타그램 계정(@helenbeardart)를 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작품이 전통적인 구상미술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어드는 성에 관하여 불쾌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거르거나 남성 우월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섹스를 통해 즐거움을 느낄 권리에 대해 묘사한다.

“작품으로써 여성의 몸에 권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라고 47살의 예술가는 말했다. “그 무엇도 숨길 필요가 없어요. 보는 사람의 눈앞에 크게 그려져 있는데 여성의 질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거죠.”

‘What Women Want(여자들이 원하는 것)’
‘Sidesaddle(안장자세)’

지금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포르노물을 흔하게 사용하지만, 비어드는 훨씬 전부터 작품의 근간으로 사용했다. “서점에서 성인용 잡지를 사곤 했어요. 좀 더 하드코어한 잡지를 구입하려고 유럽에 간 적도 있어요. 그러다가 인터넷이라는 게 생겨났죠.” 비어드에게 포르노물을 수집하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이다. “친구들에게 섹스하는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녀는 여성의 몸을 비현실적으로 묘사한 성적 이미지는 피하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포르노에는 날씬한 여자와 근육질 남자가 등장하죠. 저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요.”

이런 생각은 비어드가 <플레이보이>를 위해 그린 작품 ‘The Song of Self’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여성이 긍정적인 마인드 갖게 하는 자기 암시가 잘 드러난다. 초록색 밴드는 접힌 뱃살을 의미하고 가슴은 현실성 있게 늘어져 있다. “작품 속 여성은 구부정한 자세로 자연스럽게 스스로 즐기고 있어요.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것에 관한 작품이에요. 여자도 성욕이 있고 그걸 삽입 섹스가 아닌 다른 형태로도 얻을 수 있죠. 특히 포르노물에서는 남자의 만족이 더 중요하게 비치잖아요.”

‘Temporarily Banishing Isolation(일시적으로 떨치는 외로움)’
‘The Big Dipper(북두칠성)’

작품 속 주인공들은 미디어를 도배하는 비현실적 몸매의 여자들과 현저하게 다르다. 고백하건대 우리 매거진의 수많은 페이지에 등장했던 여성과도 정반대다.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된 남성의 시선에 <플레이보이>도 기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어드 역시 우리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저는 페미니스트예요. 처음 협업 제안을 받았을 때 조금 걱정스러웠어요. 올바른 관점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거든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많이 구했고 결국 <플레이보이>가 여성 작가와 예술가에게 손을 내민다는 사실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드디어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는데 거절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여론을 바꾸고 싶다면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니까요.”


‘The Mirror(거울)’

예술을 하면서 대립 상황을 만드는 게 비어드의 목표는 아니었다. 버밍엄에서 태어난 이 예술가는 영화업계에서 스타일리스트와 미술감독으로 일하면서 수년간 성적 행위에 관한 솔직한 모습을 그려왔다. 비어드가 데미언 허스트를 만나기 전까지 지인과 가족 외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감상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2016년 런던의 한 통근 지하철이 파업에 들어간 사건이 있었다. 허스트 출판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던 비어드의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작업실 한 켠에 간이 사무실을 차려야 했다. 남편은 다가오는 할로윈 행사 준비로 그의 상사와 스냅챗을 하며 의상 사진을 보냈다. 허스트는 사진의 배경에 나온 총천연색 캔버스에 마음을 뺏겨버리게 된 것이다.

‘Can We Conceive of Humanity If It Did Not Know the Flower?(꽃을 몰랐다면 인간미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악명 높은 사업가이자 젊은 예술가는 표면적으로는 추상화 같지만 실제로는 페니스가 질을 관통하는 모습을 그린 비어드의 ‘블루 발렌타인’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시작으로 허스트는 비어드에게 2018년 트루 컬러스 단체 전시회에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주었으며 남부 런던에 위치한 자신의 갤러리에 걸 대형 그림을 제작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 제안은 비어드에게 무척 벅찬 것이었다.

“전시회 오프닝 전날 너무 긴장되었어요. 데미언에게 ‘제 그림을 누군가 보는 것이 제가 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혼자서 조용히 그림이나 그리면서 브라이턴에 살고 싶어요’라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는 ‘걱정 말아요. 모두들 당신의 작품에 홀딱 반할 거예요’라고 답신을 해줬어요.”

허스트의 예감은 적중했다. 전시회가 열리자마자 비어드는 수많은 작품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미술품 수집가 필립 니아르코스에게도 몇 차례 의뢰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요구가 그에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지만 비어드는 소수의 사람을 조명할 기회로 여겼다. 초반에 이성애자 커플의 그림만 그렸던 비어드는 경험을 토대로 그녀의 10대 자녀들과 친구들 나아가 젊은 세대의 성적 자유로움에서 영감을 받곤 한다.

‘Each Peach Pear Plum(복숭아 배 자두)’

“세상이 자유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무척 좋아요. 다양한 종류의 섹스를 작품으로 그릴 예정이에요. 모든 것을 균형 있게 다루는 일은 아주 중요하거든요.”

비어드의 작품 속에서 생기 넘치는 섹슈얼리티는 제작 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강한 색채로 가득한 분위기, 섬세하지만 경직된 붓 터치는 몸의 작은 굴곡과 텍스쳐를 떠올리게 만든다. 초기에 비어드는 그녀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과 패트릭 콜필드의 영향을 받아 아크릴 물감에 매력을 느꼈었다. 하지만 곧 유화로 전향했다. “훨씬 더 친밀한 느낌을 낼 수 있어요. 마치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비어드는 영화업계에서 15년간 일하며 카메라 감독들이 어떻게 촬영하는지 눈여겨 봤다. 그녀는 색 이론을 따르는 대신 직관에 따라 컬러를 선택해나갔다.

“저도 색 이론을 공부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대로 따르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섹스할 때처럼 무언가 폭발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요.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마찰을 일으키는 컬러를 주로 쓰고 있죠”

그녀의 작품 속 사람들의 몸은 새로운 상징을 거친 몸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관음적이고 영화적인 비유를 좀 더 친밀하게 묘사하여 관객이 작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다. 때로 비어드는 예상 밖의 장소에서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클리토리스의 크기와 모양에 관한 과학적 발견에서 영감을 얻은 그녀는 앙리 마티스의 ‘컷아웃’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2017년 작품인 ‘비스티 보이’는 얼룩말 무늬의 페니스가 특징인 그림으로 놀라운 우연이 완성했다. “이 그림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몇 년 동안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비스티 보이즈의 아담 요크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나오더라고요. 그 그룹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무척 슬펐어요. 갑자기 ‘이 그림 속 남자는 비스티 보이야! 그에게 얼룩말 무늬 페니스를 만들어줘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소식이 이 그림의 영감이 되었어요.

비어드는 ‘비스티 보이’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녀가 런던에 살던 10대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웨스트엔드에서 섹스토이를 구경한 후 중국 제조사로부터 3000개의 딜도를 구입했다고 한다. “모양이 마치 못 같았어요. 그걸로 못 침대를 만들어보고 싶었죠. 하지만 계속 시작을 못 하고 있었어요. 언젠가는 조각품을 만들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작업실에 보관해두었는데 드디어 시작하게 됐어요.”

‘Cyssan(키스)’

헬렌 비어드는 예술계에서 예측불가능한 커브볼이다. 절대로 자신의 작품을 과하게 개념화하지 않고 에이전시가 없으며 아마 경력 단절을 극복한 드문 케이스이기도 하다. 비어드는 아직도 성공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여자들은 대개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아요. 아이를 갖고 나면 커리어는 뒤로 밀어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정과 대성공, 그리고 작품 판매가격 면에서 모두 비어드는 예외적 케이스에 해당한다. 여성 예술가는 여전히 남성 예술가보다 매우 낮은 작품 경매가를 받는다. 심지어 아이를 갖겠다고 하면 남성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작품 활동을 그만두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비어드도 젊은 세대와 트렌디한 크리에이터만이 주목받는 세상에 어떻게 다시 발을 들여야 할지 몇 년간 고민했다. “그들이 제가 하는 것과 똑같은 작품을 만드는데 사람들은 그들 것에만 관심을 가질 거라 생각했어요. 아마 그랬을지도 몰라요. 여자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해요. 하지만 직업 세계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아요.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녀가 그린 작품 속 거대하고 멋있는 몸처럼 비어드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마 예술계에도 크나큰 이득이 될 것이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번역 이연정
  • 아트워크 Helen Beard
  • Holly Black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