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묵시록>을 기억하다

오스카상에 빛나는 1979년 고전 영화 속 잊지 못할 명장면과 플레이메이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콜린 캠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뒤에는 신디 우드.

미국 문화를 거대하게 뻗어 나가는 로드 맵과 비교해보도록 하자. <플레이보이>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명작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의 거리는 놀랍겠지만 꽤 가깝다. 헬리콥터를 잠깐 타고 내리는 정도의 거리라 하면 될까?

영화의 잊을 수 없는 장면 중에는 어쩌면 실제 사건으로부터 영감받아 만들어진, 플레이메이트가 군 위문 공연을 하는 5분짜리 신이 있다. 헬리콥터 날개가 ‘두두두두’하는 소리를 내는 가운데, 플레이보이의 상징인 래빗 헤드가 새겨진 헬리콥터가 밤하늘을 뚫고 내려와 밝게 빛나는 무대로 착륙한다. 이를 지켜보던 수백 명의 군인은 기대에 차서 소리를 지른다. 탈영한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를 암살하기 위해 대원을 이끌고 강 상류로 이동하고 있던 윌라드 대위(마틴 쉰)도 이 위문 공연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지만 동요하지 않는다. 빌 그레이엄이 진행을 맡은 공연을 보기 위해 윌라드 대위와 그의 대원은 관객석에 자리 잡는다.

콜린 캠프와 실제 <플레이보이>의 센터폴드를 장식한 신디 우드(1974년 올해의 플레이메이트), 그리고 린다 카펜터(린다 베티라는 이름으로 1976년 플레이메이트로 선정됨)을 비롯해 세 명의 플레이메이트로 무대에 등장해 <Suzie Q> 노래에 맞춰 춤추기 시작하자 관객은 광분한다. 아니나 다를까, 군인들이 무대에 뛰어들며 공연은 마무리된다. 이 장면은 인류의 무서운 측면을 보여준다: 극단으로 흐른 인간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말이다.

이 장면을 위해 촬영팀은 필리핀에 있는 군대와 교육 기관에서 군인 역할을 할 만한 엑스트라를 선발했다.

“분명 무척 위험한 장면이었죠. 하지만 촬영 중 누구 하나 목숨을 잃지 않았답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틀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코폴라 감독이 <지옥의 묵시록>의 감독을 맡을지 고심하고 있던 1974년, 모두 그를 말렸다. 그동안 코폴라가 찍은 영화 중 큰 성공을 거둔 <대부(The Godfather>, <대부 2(The Godfather part 2>, 그리고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을 보면 갱 단원, 사실주의(불쾌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리고 편집증이 새로운 할리우드의 성공 소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 영화는 누가 봐도 별로였으며, 특히 미국 군인이 참전했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베트남에 관한 내용이니 더욱더 그러했다. 하지만 코폴라는 감독을 맡기로 했고, 촬영팀을 이끌고 필리핀의 정글(당시 계엄령이 선포될 만큼 심각한 민족 분란이 일어나던 곳)로 들어가 존 밀리어스가 쓴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후 촬영이 여러 차례 지연된 후 1979년에 드디어 개봉한 <지옥의 묵시록>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8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촬영과 음향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영화는 인내를 넘어 진화한 영화다. 2001년에는 원작을 재편집한 확장판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Apocalypse Now Redux)>가 개봉했다. 49분의 러닝타임이 늘어났는데, 그 중에는 헬리콥터 연료와 관련된 플레이메이트의 스토리라인도 포함돼있다. 짧게는 윌라드의 팀원 중 한 명이 <플레이보이> 잡지를 너무 애지중지하는 바람에 잡지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베트남 장교를 죽이기까지 한 어느 미군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도 나온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킴 오브리는 원작의 플레이메이트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신이라고 했다. “미국 위문협회 공연 장면은 제가 영화에서 본, 가장 사실적인 장면 중 하나였어요. 무언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죠”라고 그는 말한다. “놀랍도록 강력하고 정치적인 장면이었어요.”

그렇다. 바로 이런 반응이 이 영화가 저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올해, 코폴라는 그가 말하는 이 영화의 완전한 감독판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름하여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 컷 (Apocalypse Now: Final Cut)>. 이 버전에도 물론 미국 위문협회 공연 장면이 포함될 예정이다. 원작 개봉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관계자의 입을 통해 플레이메이트 장면이 어떻게 영화에 등장하게 됐는지,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영화의 뒷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웰컴 투 더 정글

예상치 못한 참사로 촬영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영화의 제작을 막을 순 없었다.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미술부 수장과 미국 위문협회 공연 세트장을 보면서 “내가 큰 실수를 했네. 그들이 강에서 접근할 때 이 무대가 살짝 보여야 하는데 말이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세트를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그곳에 가려면 차를 타야 할 정도였어요.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윌라드 대위와 일행이 배에서 “도대체 저게 뭐야?”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미술 감독은 “뭐, 우리가 장소를 잘못 잡았네요”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전, “그렇네, 하지만 우린 잘 해낼 거야”라고 말했어요. 그러고 나서 모든 걸 무너뜨린 태풍이 몰아쳤죠.

배우이자 1974년 올해의 플레이메이트 신디 우드 : 장면을 찍으려고 할 때마다 일이 일어났어요. 제가 막 도착한 날인데, 마틴 쉰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영화 촬영이 6주간 중단되기도 했어요. 또 한번은, 촬영장에 도착했는데 때맞춰 10년 만의 최악의 태풍이 불어 닥치기도 했고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모두 뛰면서 “대피하세요! 대피해요!”라고 소리치더니 곧바로 태풍이 무섭게 몰아쳤어요. 우리는 정글 속에 있는 어느 폐건물에 갇혀 있었어요. 세트장과 나머지 스태프도 떨어져 있었는데 전화도 없고 연락할 다른 방법도 전혀 없었어요. 태풍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몰라요. 그 당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25살의 저는, 모두 다 죽게 될 거라고 덜덜 떨며 무서워하는 다 큰 남자들 사이에 있었어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석 달인가 넉 달 정도 촬영을 중단해야 했어요. 무척 심각했죠. 태풍으로 미국 위문협회 공연 세트가 모두 망가져서 새로 지어야만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우리가 전에 했던 실수를 만회할 수 있게 이번에는 강에 바로 세트를 만들도록 하죠”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역할 연기

어떤 장면은 출연을 간절히 바랐던 배우로 채워졌지만(영화 촬영 전반을 사진으로 기록하겠다고작정한 포토그래퍼 낸시 모란 포함), 어떤 장면은 캐스팅이 힘들고 또 오래 걸렸다.

신디 우드 : 이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어요. 아마 영화사 쪽에서 저에게 연락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따로 오디션을 보지도 않았어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그 영화에 4년이나 참여했어요. 물론 촬영 내내 촬영장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요.

배우, 콜린 캠프 : <죽음의 묵시록> 전에 샌프란시스코 해안 지역과 산타로사에서 <Smile (스마일)>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는데, 영화의 공동제작자인 프레드 루스가 절 만나러 온 적이 있어요. 몇 년이 흘러 그가 <지옥의 묵시록>에 출연할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전 프레드뿐 아니라 프란시스 감독과 공동제작자인 그레이 프레더릭슨까지 함께 만났어요. 처음에는 노출이 있는 장면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올해의 플레이메이트였던 신디 우드가 저와는 절친한 사이여서 마음을 바꾸게 된 거예요.

촬영장 포토그래퍼, 낸시 모란 : 저는 1970년대 초 베트남에서 프리랜스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어요. 당시 <뉴욕 타임스> 리포터였던 글로리아 에머슨의 베트남 기사 사진을 찍었어요. 함께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는 제가 <지옥의 묵시록> 촬영지인 필리핀으로 가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그 영화가 전쟁을 그저 오락 소재로 만들 거라며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있었어요. 아무래도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때였으니까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태풍으로 세트가 무너지기 전 우리가 캐스팅했던 플레이메이트는 린다 카터였어요. 세트장을 다시 만들고 3주 후에 촬영을 재개할 수 있게 됐는데, 그 사이 그가 원더우먼으로 캐스팅이 돼 촬영에 합류하지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가 캐스팅한 배우가 바로 콜린 캠프예요. 우리에겐 신디 우드, 콜린 캠프, 그리고 린다 카펜터가 있었죠. 모두 아름답고 아주 괜찮은 젊은 배우였어요. 셋은 안무가와 연습을 통해 공연에서 선보일 춤도 만들어냈죠.

콜린 캠프 : 산타모니카 대로에 자리한 팜 레스토랑에서 프레드 루스 그리고 신디 우드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어요. 그 자리에서 프레드와 신디가 제가 린다 카터의 배역을 대신 맡고 노출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보도록 설득했어요. 결국엔 하기로 했고 그렇게 전 영화에 합류했어요.

낸시 모란 : 전 매일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지옥의 묵시록>의 미국 영화배급사) 홍보부에 전화를 걸어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을 테니 고용하지 않겠어요?”라고 물었어요. 결국엔 저를 고용했어요. 실제로 베트남에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저는 1976년에 필리핀에서 두 달 가까이 체류했어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우리는 미군처럼 보이는 젊은 남성이 아주 많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두말할 것도 없이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든 곳에 주둔하고 있었죠. 그래서 군사 기지와 교육기관을 찾는 데 온 힘을 썼어요. 어려운 작업이었답니다. 미국 위문협회 공연 장면에서의 진행자 역은 제 친구이기도 한 빌 그레이엄(R.I.P)에게 맡겼어요. 그는 유명한 록 공연 기획자인데, 영화에서 존 가필드를 본 이후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 했어요.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콜린 캠프: 필리핀에 간 경험은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당시 저는 스물세 살이었죠. 계엄령이 선포된 나라에 여자 셋이 4백여 명의 남성과 함께 있게 된 거예요. 우리가 촬영했던 장면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어요.

린다 카펜터와 코폴라 감독.

밤샘 작업

플레이메이트의 미국 위문협회 공연 장면은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있는 가운데 마라톤처럼 촬영됐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이 장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순적인 신이 되리라는 것을 우린 이미알고 있었어요. 고대 원시림에 미국인의 문화를 통째로 가져온다는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런 부분도 재미있는 요소였어요. 물론 가장 큰 도전은 태초와 같은 환경 한가운데에 쇼 비즈니스 중에서도 가장 극한의 쇼를 펼치는 것이었어요. 쇼는 밤에 열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촬영 팀은 어떻게 촬영할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 조명을 한 가득 단 뗏목을 주변에 띄워 조명효과를 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콜린 캠프 : 촬영을 위해 세트장에 간 시간은 오후 두 시쯤이었는데 촬영이 끝난 건 아마 다음날 오전 여섯 시 정도였을 거예요. 아주 멋졌어요. 필리핀 한가운데에 우리가 있었어요. 헬리콥터 날개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했어요. 게다가 파일럿들도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 정도로 아주 어렸어요. 우리는 헬리콥터에서 내린 후 무대에 올라 바로 춤을 췄답니다.

신디 우드 : 우리가 했던 동작은 사실 별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촬영은 16시간이나 쉼 없이 했죠. 춤을 추고 다시 추고 계속 반복했어요. 다양한 앵글에서 촬영해야 했고, 관객도 찍어야 했고, 할 게 많았으니까요. 너무 지쳐 무대에서 쓰러지기까지 했어요. 살면서 그토록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의사가 비타민 B12를 처방해주기도 했어요. 그때 좀 무섭긴 했지만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사람을 보호하는 것. 안전을 지키고 음식과 화장실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큰일이었어요. 일단 그런 것들을 모두 갖춘 후에 우리는 밤새 촬영을 진행했어요. 촬영 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린 이유는 그 장면에 어려운 스턴트가 포함됐기 때문이었어요. 헬리콥터가 날아오를 때 스키드(헬기가 착륙할 때 지지하는 받침대 부분)에 남성이 매달려 있다가 물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분명, 무척 위험한 장면이었어요. 하지만 촬영 내내 누구 하나 목숨을 잃지 않았답니다. 연극이나 영화 감독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에요. 누구나 너무 열심히 그리고 오래 자신의 역할에 빠져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의 안전에 대해 무뎌지게 되거든요. 항상 안전을 강조하지만 너무나 많은 것이 틀어질 수 있는 상황이에요.

낸시 모란 : 무척 긴 밤이었어요. 중단하지 않고 한 번에 할 수 있다는 게 참 멋지다고 생각하며 놀랐던 기억이 나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지만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었어요. 배가 강을 따라 항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플레이메이트를 만난다는 설정은 정말 멋지면서도 비현실적이었어요.

콜린은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촬영장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어요. 유일하게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은 신디였고요. 그래서 촬영에 엉뚱한 매력까지 더해졌다고 생각해요. 관객은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반응하고 무대에까지 뛰어오르도록 연기지도를 받았어요. 하지만, 영화 촬영을 할 때는 항상 그렇지만, 수백 명의 엑스트라를 완벽하게 통제하기란 쉽지 않아요. 제가 만약 콜린이나 신디 혹은 린다였다면 수많은 남성이 절 향해 달려오는 것이 두려웠을 것 같아요.

콜린 캠프 : 군인이 무대로 돌진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사실 무서웠어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거든요. 무대 위에 있던 플레이메이트가 두려워하면서 헬리콥터로 달려가고 빨리 무대에서 벗어나야 하는 스토리라인이었어요. 하지만 모두 사전에 계획된 것이어서 잘 해낼 수 있었고 위험할 것은 하나도 없었죠. 회전하는 헬리콥터 날개는 정말 위험하기는 했지만요.

신디 우드 : 군인이 무대로 뛰어오른다는 것은 사전에 모르고 있었어요. 프란시스 감독은 그런 식으로 촬영을 진행했어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을 그는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거죠. 정말 대단한 감독이에요.

래빗 헤드가 새겨진 헬리콥터 위에서 포즈를 취한 콜린 캠프(왼쪽 위), 린다 카펜터(오른쪽 위), 그리고 신디 우드.

진짜 베트남 플레이메이트

<플레이보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영화 속 미국 위문협회 공연 장면은 1966년에 베트남을 방문했던 플레이메이트, 조 콜린스의 실제 이야기로부터 영감받은 것이라고 한다.

1979년 플레이보이에 실린 “Apocalypse Finally” 화보의 촬영감독, 게리 콜 : 당시 플레이메이트가 영화에 출연하기 전, 플레이보이에서 영화 제작자를 검증하거나 대본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플레이메이트가 포르노나 쓰레기 같은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죠. <지옥의 묵시록>은 감독이 코폴라라고 하니 굳이 따로 검증 같은 것은 하지 않았어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미 국방성을 시작으로 모두가 우리를 힘들게 했어요. 플레이보이에서도 단번에 “우리는 당신들이 헬리콥터에 우리 로고를 새기는 게 싫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어요. 소유권은 그들이 가지고 있으니 반대해도 우리가 어떻게 할 바가 없었죠. 그런데 그들은 우리를 그냥 하도록 두었어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답니다.

전 플레이보이 홍보이사, 엘리자베스 노리스 : 1960년대에는 플레이보이 평생 구독권을 플레이메이트가 전해줬어요. 베트남전 당시 173공수여단에서 몇 명이 돈을 모아 평생 정기 구독권을 신청했어요. 그들은 플레이메이트가 그 구독권을 전달해주기를 바랐죠. 그게 계약조건이었으니까요. 스토리는 길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1965년 올해의 플레이메이트였던 조 콜린스가 이들이 있던 베트남의 한 병원에 찾아가 그들과 만났어요.

1964년 플레이메이트이자 1965년 올해의 플레이메이트, 조 콜린스 : 베트남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어요. 사실 유럽에 가는 줄 알고 있었죠. 아무것도 몰랐어요. 절대로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게리 콜 : 사람들은 “세상에, <플레이보이>에서 플레이메이트를 그곳으로 보냈대”라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베트남에 보내고 실제로 군인과 만난 인물은 플레이메이트 조 콜린스였어요.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고 고고 댄스를 추거나 한 플레이메이트는 없었어요.

조 콜린스 : 1966년 베트남에 갔을 때, 우리는 말 그대로 ‘폭발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 도착했어요. 언제든 우리가 있는 곳도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무섭고, 흥분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어요. 저는 군대 관계자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군기지와 의료지역을 방문했어요. 영화에서 플레이메이트가 입었던 미니스커트나 고고 부츠처럼 좀 더 매력적인 옷을 입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로 생각해요.

엘리자베스 노리스 : 조의 베트남 방문이 그 장면이 만들어진 배경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입증된 적은 없지만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모두 존 밀리어스가 만들어낸 거예요. 그야말로 <지옥의 묵시록>을 만든 진짜 천재. 그는 베트남에 플레이메이트가 다녀간 적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저는 물론 몰랐답니다. 존이 쓴 원래의 각본대로 촬영한 거죠. 어쩌면 존은 베트남을 방문했던 플레이메이트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 스토리라인을 더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1973년 2월 플레이메이트이자 1974년 올해의 플레이메이트였던 신디 우드. 영화에서 올해의 플레이메이트를 연기했다.

되찾은 유산

여러 번 재편집된 영화 속에서 핵심적인 플레이메이트 장면은 삭제되지 않았다.

콜린 캠프 : 존 밀리어스의 각본에는 빌 그레이엄과 플레이메이트가 헬리콥터 연료를 잃어버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래서 빌은 여자와 연료를 교환해요. 이 장면은 그다음 장면에 꼭 필요한 거였어요. 하지만 1977년 촬영장에 도착했던 바로 그날, 마틴 쉰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촬영을 진행하지 못했어요. 코폴라 감독은 즉흥적으로 “자네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봐요”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음, 부시 가든에서 조류 조련사로 일을 했어요”라고 대답했죠. 이야기를 들은 감독님은 헬리콥터 속에서 제가 새를 다루는 장면을 만들어냈어요. 일부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에서 볼 수 있답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처음으로 태풍이 몰려왔을 때는 촬영을 중단하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나쁜 날씨 속에서 엄청나게 멋진 장면을 건져낼 기회가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차라리 촬영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나은 거죠. 그래서 우리는 태풍이 부는 도중에도 촬영을 재개했어요. 스태프는 세트를 재정비했고요. 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내렸어요. 그때 촬영한 장면이 부상자를 헬기로 수송하는 장면이었죠. 태풍이 부는 가운데 수송하는 것이었어요. 그 장면도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에서 볼 수 있어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공동제작자 킴 오브리: 헬리콥터 연료와 관련된 장면은 원래 영화에 넣으려고 했어요. 1979년 개봉한 영화에서는 전체 러닝타임과 몇 가지 이유로 중간중간 스토리가 끊기는 느낌이 있어요. 편집된 장면을 봐야만 이해가 되는 연결 장면이 꽤 있어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이렇게 세 명의 여성이 있었고 각자의 개성 있는 재능과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세 장면을 추가 촬영했어요. 오늘날처럼 미투 운동이 큰 이슈일 때에는 무척 안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한 장면이지만, 빌 그레이엄이 플레이메이트를 연료와 바꾸는 신이에요. 요즘 같아선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장면이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었어요; 열일곱 살의 어린 소년을 베트남으로 보내 네이팜탄에 맞아 죽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거예요. 모두 학대의 상징이죠. 우리가 문명사회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우리는 젊은 소년에게 하듯 어린 소녀에게도 악행을 저질러요.

콜린 캠프 : 처음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속상했어요. 제가 나온 장면이 많이 편집됐으니까요. 하지만 결국에는 배움의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일이 정말 많잖아요.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오히려 어린 나이에 배울 수 있게 돼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지옥의 묵시록> 개봉 40주년을 기념해 영화를 상영하기로 했어요. 관계자가 “어떤 버전을 상영하면 좋을까요? 원작인 1979년 작? 아니면 러닝타임이 훨씬 긴 리덕스 버전을 상영할까요?”라고 물어왔죠. 1979년 버전은 짧게 만들기 위해서 어색하게 자른 부분이 많았어요.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에는 이 영화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많은 사람이 러닝타임도 너무 길고 영화 자체도 이상하다고 말했어요. 저는 사실 원작도 별로 좋지 않았고, 리덕스 버전은 너무 길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버전을 만드는 거예요. 이른바 프란시스의 버전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요.” 그래서 결국 그런 버전을 만들었어요. 무척 만족스럽답니다. 처음 영화를 만들었을 때와는 영상과 사운드 수준이 발전해 최종 버전도 놀라울 정도로 멋있게 완성됐어요.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 컷>에도 플레이메이트의 공연 장면은 들어가 있어요. 하지만 헬리콥터 수송 장면은 편집되었답니다.

신디 우드 : 이 영화 촬영을 하면서 무섭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경험이었어요. 최악의 태풍이 닥쳤을 때 우리는 콘크리트로 뼈대만 있는 건물에 있었어요.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시끄러웠어요. 당장이라도 건물이 무너져버릴 것 같았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전 그때만큼 저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Credit

  • 에디터 김민지
  • 포토그래퍼 Nancy Moran
  • Steve Palopoli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