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보이 합본호

야한 영화의 정치학

저항, 혁명, 자유에 관한 영화의 의미 있는 신음을 들어보자.

본능을 절제할 수 있을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친구들과 몰래 훔쳐본 빨간 딱지의 비디오, 수능 끝나고 마셨던 소주 한 잔,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베어 물고 나서야 우리는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한 영화는 본능과 욕망이 점철된 새빨갛고 잘 익은 미야비(붉은색이 탐스럽고 과즙이 풍부한 사과의 한 품종)가 아닐까?

영화 <몽상가들>

최근 출간된 신간 <야한 영화의 정치학>은  오랜 기간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남성적 가부장제도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영화 속 섹스는 어떤 저항의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파고든다. 이 책을 쓴 김효정은 오랫동안 한국 성애영화의 두터운 의미와 역동성을 추적해온 영화 비평가다. 그는 유럽, 할리우드, 일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까지 비평의 대상을 넓혀 성애 재현의 함의와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각 꼭지마다 한 가지 영화에 대해 다루는데 선정된 영화들 대부분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야한 영화의 정치학’과 2019년 2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문화일보>의 ‘에로틱 시네마’에 실렸던 기사와 <플레이보이 코리아>에 기고한 글들을 한데 모아 엮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문적이고 어려운 영화 비평이라기보다 사회, 문화 현상을 통해 성애를 쉽게 해석한 칼럼 같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여러 편 중에서도 서른아홉 번째로 소개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부분이 가장 흥미롭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풋풋한 모습으로 부부를 연기한다. 사회적 지위로도, 수려한 외모로 둘 다 선망의 대상이지만 서로에겐 누군가를 욕망하고픈 욕구를 철저히 감추는 껍질뿐인 관계로 묘사된다. 그러던 중 의사 남편 빌 하포드(톰 크루즈)는 아내 앨리스(니콜 키드먼) 몰래 난교 파티에 잠입하게 되고, 그들의 방탕한 집단 섹스를 관음한 것. 동시에 앨리스가 낯선 남자와 마치 배설하는 듯한 관계를 갖는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빌은 앨리스에게 다시 돌아온다. 자신의 모든 죄를 고하는 빌에게 앨리스는 “이조차도 감사하자. 우리의 모험을 극복할 수 있어서, 그게 생시였던 꿈이었던 간에”라며 그를 용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앨리스의 마지막 대사는 “지금 당장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것이 있어. 섹스!”이다. 스탠리 큐브릭은 이 끊을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이 영화 한 편을 통해 알려준다. 야한 영화라는 편견 뒤에서 영화가 섹슈얼한 장면으로 말하고 싶었던 저항과 자유, 영감의 신음을 들어보자.

Credit

  • 에디터 백가경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

플레이보이 합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