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라면박람회 후기(공복주의)

셋이서 갔다. 미식가 에디터, 그냥 배고픈 에디터, 어제 과음한 에디터.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대한민국 라면박람회’가 열렸다. 9일 토요일, 첫날 행사장 앞은 면발처럼 구불구불한 대기 줄이 이어졌다. 포기했다. 점심시간 맞춰서 공복에 간 탓에 긴 줄을 뚫고 입장할 맘이 가셨기 때문이다. 대신 행사 마지막 날을 노렸다. ‘다들 출근하는 월요일이니 별로 없겠지’란 예상은 빗나갔다. 입구 앞엔 교복 무리가 여럿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은 이미 내부를 꽉 채운 상태다. 오렌지 색 출입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익숙하고도 설레는 냄새. 라면, 그 위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단 먹자. 휘황찬란한 라면 봉지들이 발길을 잡았지만, 우선 시식 코너부터 찾았다. 저 앞에 떡 하니, 라면 자판기가 보였다. 한강 공원 매점에서 봤던 그 기계다. 진열된 라면을 선택하고, 용기에 라면과 토핑을 넣고 기다리면 끝. 스태프가 친히 시전해보였고, 소주잔에 받아먹었다. 라면은 역시 ‘사먕라면’인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이곳에 올 자격이 없다. 우리는 좀 더 ‘글로벌한’ 라면을 찾아 나섰다.

베트남의 쌀국수 라면 ‘오! 라이시(oh! ricey)’.
네팔의 와이와이(wai wai) 라면.
태국 마마(mama)의 똠양꿍 컵 라면.

베트남의 라면 회사 비나 에이스쿡(Vina Acecook)에서 쌀국수를 표방해 만든 라면 ‘오! 라이시’, 쫄깃함이 특징인 네팔의 와이와이(wai wai)라면, 태국의 매콤한 똠양꿍 컵라면까지, 각국의 토속 음식과 버무려진 특색 있는 라면이 많았다. 해외 라면을 모조리 먹어본 결과, 한국 라면을 제외하고 베스트는 인도네시아 라면이다. 

인도네시아의 비빔면, 인도미(Indomie) 미고랭 라면.

인도미의 미고랭 라면은 일찍이 ‘라면의 신’이라 불리는 한스 리네시가 2013년, 전 세계 라면 1100종 중에서 1위로 꼽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시식 대기 줄도 제일 길었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두근세근, 드디어 시식.

미고랭 오리지널 라면의 첫인상은 퍽퍽한 비빔면의 모습이었다. 향신료의 나라 인도네시아답게 꼬들꼬들 잘 익은 라면 발 위로 갖은 향신료가 토핑돼 있었다. 첫 향은 고수 향과 약간의 후추 향. 강렬한 인상을 받은 혹자는 겨드랑이 냄새라고도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라면을 한입 먹어보니, 단짠단짠 최적의 궁합이 느껴졌다. 향신료 4가지가 섞였다는데 그 궁합이 잘 맞는다. 게다가 약간의 매운맛도 느껴진다. 맛있다. 별이 다섯 개. 

기분 좋아져서 고량주 한잔 쌔림.
중국 술 중에 이곡주 종류다. 목넘김이 굉장히 부드러웠다.

라면 행사에 참여한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부스 직원은 “그냥 홍보하러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시크한 답변치고 ‘양꼬치 앤 칭따오’ 뒤를 이을 만큼 느끼할 수 있는 라면과 참 잘 어울렸다는 썰(Ssul).  

신나서 기념 사진도 찍었다. 전날 과음한 에디터를 그냥 배고픈 에디터가 담백하게 찍어주는 전경.
귀차니즘 몸소 시전해보이는 미식가 에디터.
미식가 에디터는 이런 인증샷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꽃 머리띠를 얹혀주고 꽃 포토존 앞에 세웠다.

우리는 조금 신이 났었나 보다. 그리고 더 신날 일이 기다리고 있었지 아마. ‘대한민국 라면박람회’의 꽃이라 하면 즉석에서 끓여주는 라면, 즉석 음식들을 마구 사 먹을 수 있다는 점. 취향껏 각개전투 끝에 진수성찬을 차릴 수 있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만두만 같아라, 한만두의 치즈떡볶이 만두. 비주얼보소.
튀김이 빠질 수 없고요.
마라탕 특유 매콤함과 부드럽고 굵은 면이 특징인 대륙의 마라탕 라면.
마라탕 라면의 모범적 이미지.
잘생긴 국적 불명 셰프가 구워준 스테이끼.
여러 해산물을 넣어 얼큰하면서도 깔끔한 맛의 ‘그대라면’, 면은 ‘신라면’의 면을 사용했다.
부탄츄의 돈코츠 라멘.
킨비멘리키의 쇼유 라멘.

우린 각자의 미감을 총동원하여 라면을 맛보았다. 전날 과음한 에디터는 최고의 라면으로 ‘그대라면’을 꼽았다. 해장은 주로 한식으로 하는 편인데, 그대라면의 얼큰한 국물맛은 마치 해장국에 면을 말아먹는 느낌이라 했다. 동행한 포토그래퍼도 그대라면을 베스트로 꼽았는데 그 이유는 부대찌개 같은 진한 국물에 익숙한 면발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한편 미식가 에디터와 그냥 배고픈 에디터는 킨비멘리키의 쇼유라멘을 선정했다. 미식가 에디터의 입을 빌리자면, “들깨 수제비처럼 걸쭉한 국물, 너무 자랑하지 않은 무심히 내어둔 소소한 면발. 철원 평야 한복판에 한가로이 담배 한모금을 피우며 누워있는 할아버지 같은 여유로운 그런 맛”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라면박람회의 아쉬운 점을 한 가지. 라면의 종류가 생각보다 풍성하지 않다는 점이다. 얼마나 기상천외한 라면이 있을까? 혹은 접해보지 못한 맛있는 라면이 있을까? 여기에 대한 궁금증은 글쎄, 아쉽게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라면에 대한 애정을 잘 캐치한 이번 박람회. 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갈지 기대해보자. 진짜 마지막으로, 라면에 고량주 좀 잘 어울리는 듯.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포토그래퍼 홍안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