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여자 아이돌 그룹 BEST 5

레드벨벳, 트와이스를 뛰어넘는 흥부자들이 있었더랬다.

원조 여자 아이돌 그룹 BEST 5 를 선정했다. 한국 여자 아이돌의 계보는 핑클, 베이비복스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보다 더 예전에, 지금봐도 흥 넘치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연륜미 넘치는 가수 윤복희의 상큼한 댄스가 가장 인상적이다. 

저고리 시스터즈 ⓒ이준희
김 시스터즈

저고리 시스터즈와 김 시스터즈 평론가들은 흔히 국내 최초 여성 뮤지션 팀으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저고리 시스터즈’를 꼽는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리더 이난영, ‘오빠는 풍각쟁이야’로 유명한 박향림 등으로 구성한 4인조 보컬 그룹이었다. 그리고 1950년대, 신중현과 조용필 등 우리나라의 굵직한 뮤지션들이 데뷔한 미 8군 무대에서 이난영의 딸들과 조카들로 구성한 ‘김 시스터즈’가 미 8군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노래와 춤은 물론 현란한 연주 실력까지 갖춘 김 시스터즈는 아시아 걸그룹 최초로 60년대 초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했다. 국내 가수들의 해외 진출 소식이 종종 들려오는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해도 김 시스터즈는 해방과 정치 갈등, 6.25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국민들에겐 위안이자 자랑이었다고 전해진다. 저고리 시스터즈의 리더였던 이난영은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하면서 “아이들을 낳아 밴드를 결성하자”고 말할 정도로 패밀리 밴드를 만들 의지가 뚜렷했다.

 

코리안 키튼즈 ⓒHorst Faas/AP

코리안 키튼즈 비틀즈가 자신들의 공연에 초대했고, 잭슨 파이브와 한 무대에 섰다. 라스베이거스 공연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객석에 앉아있었다. 루이 암스트롱이 찾아와 함께 듀엣을 하고 미국으로 데려갔다. ‘허언증 갤러리’에서나 볼 것 같은 이 이야기는 가수 윤복희가 몸담았던 코리안 키튼즈가 겪었던 일이다. 1963년 4인조(윤복희, 서미선, 김미자, 이정자) 보컬 그룹으로 데뷔해 1976년까지 활동한 코리안 키튼즈는 BBC 방송 투나잇 쇼에 한복을 입고 비틀즈의 ‘Can`t buy me love’를 부르는 등 활동 내내 한국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영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런던 타임즈에 비틀즈와 나란히 소개됐고, 훗날 윤복희는 “비틀즈가 이렇게 세계적인 그룹이 될 줄 몰랐다. 나도 잘나갔기 때문이다.”라며 한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만의 여유를 보여줬다. 윤복희는 패션쇼를 통해 국내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선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었다가 계란 세례를 맞았다는 일화는 유명 기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광고가 실화로 오해받은 루머일 뿐이라고.

 

펄 시스터즈 해체 후 동생 배인숙 씨가 부른 ‘누구라도 그러하듯이’(1979)

펄 시스터즈 배인순, 배인숙 자매로 구성한 펄 시스터즈는 트로트가 유행하던 60년대 말, 록과 빅밴드 재즈 등 실험적인 장르를 선보이며 대중들의 이목을 휘어잡았다. 우리나라 최초 록 그룹 애드 포(Add 4)의 창단 멤버 신중현이 작사·작곡한 곡들이었다. 데뷔곡 ‘커피 한잔’은 196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상을 수상하며 펄 시스터즈에게 여성그룹 최초로 가요대상 수상, 공중파 가요대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줬다. 1970년대에 앞선 여성그룹들을 따라 미국으로 진출해 화제가 됐고 브로드웨이에서 1년간 공연하며 당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발성법이나 모던 재즈 발레 등을 배워왔다. 펄 시스터즈는 베트남전으로 불안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줬고, 종전 다음 해인 1976년 데뷔 8년 만에 언니 배인순과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결혼하며 해체했다.

 

희자매 “(희자매로 활동하면서) 루비 반지 받아본 적 있고 백지수표도 받아본 적이 있다.” 여성 중창 그룹 희자매의 막내였던 김효선의 말이다. 탄탄한 가창력과 현란한 춤, 비키니 등 당시로써 파격적이었던 의상까지 갖춘 희자매의 인기는 ‘군부대를 안 간 곳이 없을 정도’로 하늘을 찔렀다. 1978년에 희자매로 데뷔한 인순이는 군 위문 공연만 150회 이상 다녔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흑인 혼혈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기인 만큼, 공연 영상에는 곱슬머리를 감추려 두건을 쓴 인순이의 안타까운 과거도 등장한다. 김효선이 무명 트로트 가수와 결혼을 하며 희자매는 1986년에 해체했다. 그 트로트 가수는 바로 ‘땡벌’을 부른 강진이었다.

 

키메라 영국 유력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1985년 10월 25일 자 기사에서 ‘팝페라(Popera)’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공식적으로 새로운 음악 장르가 탄생했다. 한국인 김홍희 씨가 오페라 아리아에 신시사이저와 록, 디스코 비트 등을 가미한 곡 ‘Lost Opera(1984)’ 다룬 기사였다. 팝페라의 창시자 ‘키메라’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같은 해에 유럽의 유명 일간지 르몽드가 키메라를 ‘한국에서 온 팝페라의 여왕’으로 소개했고, 앨범은 프랑스에서만 100만 장이 팔리고 발매와 동시에 남아공 음악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딸의 납치 사건으로 오랜 세월 활동을 중단했지만, 2009년 7월 스페인 피스컵 안달루시아 전야제와 개막식 축하공연에 모습을 드러내며 화제가 됐다. 국내 유명 팝페라 가수 임형주 씨는 키메라가 클래시컬 뮤지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독특한 무대의상과 헤어, 메이크업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며 ‘지금으로 따지면 클래식계의 레이디 가가’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주동일
  • 영상출처 유튜브 'billybeyond', 'weirdozvidz', '사사구통', 'fritz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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