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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피가 솟구치도록 연애하고 싶어지는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인간관계에 익숙지 않은 마리어가 인형과 함께 잠을 청하는 장면.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지난 30일 개봉한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On Body and Soul>는 로맨스 장르에서 볼 수 없던 장면이 수두룩하다. 사랑을 낯선 방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몇 가지 장치만 봐도 그렇다. 주된 배경은 도축장. 품질검사관인 여자 주인공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의 표정은 시종일관 애매하고, 도축장 이사를 맡고 있는 남자 주인공 엔드레(게자 모르산이)의 한쪽 팔은 마비가 됐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와 행동은 극히 적다. 오히려 영화 중간에 암사슴과 수사슴이 설원 한복판에서 나누는 눈빛이 더 많은 얘기를 해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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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어 역을 맡은 알렉상드라 보르벨리는 원래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다.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헝가리 유명 출판사의 이사이기도 한 엔드레 역의 게자 모르산이

헝가리 감독 일디코 옌예티(Ildiko Enyedi) 감독은 전혀 공통점이 없는 두 남녀가 꿈 속에서 만나는 일을 소재로 삼았다. 마리어는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며 기억력이 좋고, 엔드레는 모든 것에 질려버려 권태로운 삶을 산다. 영화 제목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의미는 같은 미래를 내다본다는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둘은 꿈속에서 만난다. 산짐승이 되어 입을 맞추고 숨을 몰아쉬는데, 어떠한 컴퓨터 그래픽 효과도 넣지 않은 이 장면은 영화 속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꿈 속에서 만난 엔드레와 마리어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입을 맞추기도 하는데…

감독은 가장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가장 강렬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시에서 첫 영감을 받았다. 바로 헝가리 시인 아그네스 네메스 나지의 시다. “심장은 빛으로 타들어 가는 불꽃 같구나 / 거대한 눈구름 속에서 / 눈송이도 화염 속에 타올라 / 빛으로 가득한 도시의 끝없는 불꽃 같구나”. 정적인 눈꽃과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대비되는 이미지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다. 흰 얼굴의 마리어는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엔드레 때문에 고요한 욕조 속에서 동맥을 긋는다. 선혈의 피가 낭자한다. 정갈한 파스텔 색조의 도축장 안에서 매달려 있는 소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한다. 죽은 소와 살아 움직이는 사슴, 여자와 남자, 꿈과 현실, 흰색과 빨간색 등등 대비되는 여러 요소를 생각해보면 끝도 없을 정도로 많다.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 때문에 예민한 마리어.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현실의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마리어는 혼자 인형 역할극을 한다.

감독은 모두가 공통의 무의식으로 연결돼 있다는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주장을 의미 있게 풀어냈다. “나는 인생 자체에 현실과 꿈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알 수 없는 어느 누군가의 영혼을 울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고 비로소 현실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도축장에서의 러브 스토리는 어떨까?
꿈에서 만나기 위해 함께 잠을 청하는 모습.

마리어와 엔드레가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는 순간. 영화는 격렬한 정사 신도 눈물겨운 내러티브도 없지만, 두 주인공과 함께 조용히 미소 짓게 만든다. 빗장을 걸어 잠근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는 일은 아무리 위험해도 멋진 경험이다. 상처받길 두려워 말자. 피가 솟구치는 생채기를 칭칭 동여매고 그를 만나러 가자. 꼭 노란 드레스를 입고 구애의 춤추지 않아도 충분히 ‘영화’ 같을 테니!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사진제공 영화 배급사 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