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플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5

'신축풀옵션'만 멋스러운 게 아니다.

집은 그 시대와 삶을 반영한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 다섯 채를 뽑았다. 빈티지 덕후들이라면 당시에만 남았던 낭만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5
충정 아파트, 네이버 거리뷰

충정 아파트(1937),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30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답게 충정 아파트는 설계자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딴 ‘도요타 아파트’, 한자음을 그대로 딴 ‘풍전 아파트’ 등 세월 따라붙은 이름도 많다. 한 동은 각각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구성된다. 세 동이 삼각형 모양으로 둘러싸여 모던한 스타일의 중정을 이루며, 최초로 중앙난방 시설을 갖춰 당시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6.25 전쟁 시기에 북한군과 유엔군의 군사 시설로도 사용됐다. 전쟁으로 여섯 자녀를 잃었다는 김병조 씨에게 정부가 매각해 ‘코리아 호텔’로도 개조됐지만, 사연이 거짓임이 밝혀져 1975년 정부가 몰수해 일반인들에게 분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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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장의 낡은 모습 ⓒ장해봉

부산 청풍장(1941), 소화장(1944) 부산광역시 중구 중구로5번길 13/ 부산광역시 중구 중구로5번길 부산 최초의 아파트인 청풍장과 소화장은 붉은 벽돌과 회벽으로 지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앞으로도 100년은 거뜬할’ 건축물이다. 수세식 화장실 등 획기적인 시설로 당시에도 많은 거주민의 선망을 샀다. 하지만 집 안에서 쓰레기를 버리면 아래쪽 창고로 떨어지는 구조, 다다미 바닥, 비상 탈출 사다리, 대나무 창살, 타일 장식 등은 지금 봐도 편리하고 멋스럽다. 층간에 1m 두께로 나무를 쌓아 층간 소음이 적고, 화재 시에도 나무만 불타 다른 층까지 불이 옮겨 붙지 않는다. 준공 당시엔 앞면이 바다여서 전망도 좋았다고 전해진다. 2015년 집계 당시 28세대가 거주했고, 현재는 관광지로 인기가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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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숨바꼭질>의 촬영장소가 된 동대문 아파트

동대문 아파트 (1965), 서울 종로구 지봉로 25 준공 당시만 해도 코미디언 이주일, 가수 계수남 등 유명 연예인이 거주해 ‘연예인 아파트’라고 불렸다.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가 지은 동대문 아파트는 ‘최초의 중앙 정원 양식 아파트’로 건물 가운데에 정원을 배치했다. 이를 두고 건축가 천경환은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도시 주거가 간과해버린 마을 단위의 ‘모여살기’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공간”이라고도 평했다. 세월이 흘러 1993년 재난위험시설물 C등급으로 지정돼 보수 필요성이 제기됐고, 현재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거쳐 예술가들의 문화창작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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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굿바이 스카이아파트>에 소개된 작품.

정릉 스카이 아파트 (1969), 서울 성북구 정릉로10가길 18-13 4층 5개 동 140가구 규모로 지은 정릉 스카이 아파트는 양식보다는 문화적 가치로 주목받았다. 2007년 정밀안전진단에서 재난위험시설 E등급으로 지정돼 철거 필요성이 제기됐고, 철거를 앞둔 2016년 11월 25일 성북문화재단과 지역 대학생, 청년예술가, 주민이 모여 정릉 스카이 아파트와의 작별을 기념하는 ‘굿바이 스카이 아파트’ 전을 열었다. 사료아카이브와 건물실측기록, 사진, 영상, 주민인터뷰부터 주민들이 사용했던 가구, 이불, 앨범, 상장, 달력, 문고리 등이 전시됐다. LP가스와 연탄으로 난방을 했던 탓에 연탄 화덕과 연탄재까지 등장했다. 신경림 시인까지 참여한 전시 마지막 날로부터 2주 뒤에 철거가 시작됐고, 이 자리엔 ‘행복주택’ 공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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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인아파트, 네이버 거리뷰

대구 동인아파트 (1969),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149길 50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동인 아파트는 다른 곳과 달리 주민들의 선망을 사지 못했다. 당시 중구엔 부자가 많이 살았고, 주민들이 아파트보다는 기와집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짐승처럼 바위틈 같은 데 산다’는 평이 돌았고, 아파트 주변에 피난민까지 모여들어 ‘몹쓸 사람들만 사는 동네’라는 인식까지 더해졌다. 준공식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여할 정도로 화제가 됐지만, 당시 난방 시설인 구들장과 창문, 싱크대, 도배, 심지어 전기 시설까지 갖춰지지 않아 입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심지어 벽마저도 입주민들의 사비로 칠했다고. 재건축 논의도 있었지만 무산됐고, 지금은 준공 당시 심은 은행나무가 아파트보다 큰 고목으로 자라있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주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