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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신여성에 관한 전시가 열린다.

"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신여성(표지화 안석주_봄날), 개벽사, 1934.1., 권진규미술관 소장

종로 한복판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가로등에 묶여 펄럭이는 전시 포스터에 시선이 꽂혔다. 신여성 도착하다. 장대한 문구 아래는 어딘가를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는 근대 여성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전시 포스터였다. ‘신여성’이라는 단어와 여자의 묘한 표정에 이끌려 직접 그 전시에 다녀왔다.

"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안석주, ‘모던-껄의 장신운동’, , 1928.2.5

<신여성 도착하다>展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2월 21일부터 2018년 4월 1일까지 개최되는 기획전이다. 전시 제목에서 알다시피 근대기 ‘신여성’을 다루는데, 시각문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를 다룬다는 점에서 국내 첫 시도라 할 수 있다. 신여성이란 1910년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여자 일본 유학생을 시작으로, 1920년대에는 여성 민권과 자유연애를 주창하는 ‘신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한 마디로 새로운 지식과 문화, 이념을 체현한 여성들이겠다. 하지만 신여성이란 말은 요새도 종종 쓰인다. 이 단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할 때부터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잣대가 있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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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창간호(표지화 안석주), 조선일보사, 1936.4., 권진규미술관 소장
"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신여성(표지화 안석주, 9월의 매력), 개벽사, 1933.9. 권진규미술관 소장

"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전시는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 ‘신여성 언파레드-‘에서는 주로 남성 예술가들이 대중 매체, 대중 가요, 영화 등을 통해 재현한 신여성의 개념을 살펴본다. 1부에서 가장 흥미롭게 볼만한 작품은 1920~30년대 개벽사가 발행한 여성 잡지 <신여성>의 표지를 아카이빙한 것이다. 사색에 잠긴 여성의 얼굴과 무용복이나 수영복을 걸친 매혹적 여성의 모습을 통해 가부장제로부터의 자유를 표현했다.

 

모던여성 십계명
1 노인 말을 듣지 말어라

2 딸을 보지 말어라.
3 어디까지 여성이 되어라.
4 번역식을 쫓지 말라.
5 사랑으로 먹지 말어라.
6 유희를 배우라.
7 시류의 주관을 잡어라.
8 건강을 놓치지 마라.
9 새로운 청춘을 창조하라.
10 조선글을 배우라.

1931년 4월호 <신여성>에 실린 윤지훈의 글

"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기생 김영월(金英月)’, 연도미상, 부산박물관 제공
"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나혜석, ‘자화상’, 1928년 추정, 캔버스에 유채, 88x75cm,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소장

2부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기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상당히 희귀한데, 정찬영, 이현옥, 기생 작가 김능해, 원금홍, 동경 여자미술학교 출신의 나혜석, 이갑향, 나상윤, 박래현, 천경자 등의 작품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남성 위주로 서술되었던 근대 역사를 철저히 여성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여기서 현대 작가 김도희, 조영주는 <신 여성독본>이라는 3채널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짧은 머리를 한 앳된 여성은 ‘계집’, ‘헌계집’, ‘정조’, ‘시집’ 등의 단어를 읊조리는데 가운데 화면에서는 염상섭, 이광수 등 유명한 근대 문학의 한 구절이 나온다. 하지만 이 문장들은 여성을 눈요깃거리나 놀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메시지를 담아 좁은 이미지에 갇힐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해냈다.

"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별건곤(표지화 안석주), 개벽사, 1933.9., 오영식 소장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5인의 신여성’에서는 남성 중심의 미술, 문학, 사회주의 운동, 대중문화 범주에서 선각자 역할을 한 나혜석, 김명순, 주세죽, 최승희, 이난영을 조명한다. 당대 찬사보다는 지탄을 더 많이 받았던 이들은 사회의 통념을 전복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여주었다. 조선의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나혜석의 <이혼고백장>(1934), 동양의 무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최승희의 사진, 1세대 여성 문인 김명순의 문장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세상 다 덤벼", 신여성이 말했다
이유태, ‘인물일대_탐구’, 1944, 종이에 채색, 212×15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조선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오.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이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나혜석이 1934년 8월 <삼천리>에 발표한 ‘이혼고백서’의 한 구절이다. 여성에게 정조를 강요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 이혼을 고백할 엄청난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에 대한 답은 총3부로 이루어진 깊이 있는 이번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를 통해 구해보길 바란다. www.mmca.go.kr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