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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은근하거나 파격적이거나, 지금도 막을 수 없는 8곡의 한국 가요.

억압의 시대에도 뜨거운 노래들이 있었다. 은근하거나 파격적이거나, 지금도 막을 수 없는 여덟 곡의 한국 가요.

 

윤시내 ‘공연히’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윤시내의 ‘공연히’에 나오는 독특한 창법을 모사하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 앨범을(심지어 윤시내라는 디바를) 어렸을 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앨범은 첫 솔로 앨범으로 알려져 있지만, 포시즌 시절의 활동이라든지 <별들의 고향> 사운드트랙, 더 나아가 미 8군 악단 시절의 경력을 합쳐보자면 이미 완성된 디바의 야심작이라 볼 수 있다. 참고로 유튜브에도 깨끗한 화질로 올라와 있는 서울국제가요제 실황은 꼭 보도록 하자. 이 앨범을 이끌어가는 것은(물론 연석원, 최종혁, 방기남 등으로 이어지는 스타 작곡·작사가를 전제로 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이 전해주는 호소력이다. 느린 훵크·소울 리듬 사이에서 리듬 섹션을 장악하는 그녀의 보이스 톤은 유사 이래 별로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다. 그리고 귀엽게 들릴 것만 같은, “남들이 뭐라 하던 그이가 좋아요”(수록곡 ‘짝’ 중) 같은 가사를 강렬하고 섹시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윤시내뿐이다.

김성애 ‘하루 또 하루’ 이 음반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성숙한 여인과 도도하고 차분한 재즈 싱어 사이를 오가는 김성애의 독특한 보이스 컬러. 빅밴드 재즈 계열과 CCM 쪽에서만 그 경력을 찾을 수 있는 맹원식 악단이 직접 편곡·연주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따로 크레딧은 없지만, 관현악단의 구성과 연주로 미루어 연주로도 참여한 것이라 추측된다). 아시안 모던 소울이라고 불릴 만한 트랙 ‘하루 또 하루’를 비롯해 수록곡들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다양한 표현력과 완급 조절은 도회적 세련됨과 한국적 색채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사실 이전 작품에서도 다양한 민요·구전가요 레퍼토리를 선보였던 그녀는 당시의 다른 대중음악계 여가수들과는 약간 다른 목소리를 지녔다. 성인가요의 오묘한 선정적 창법과 전통 민요, 가요의 표현력이 만나 매우 독특한, 한국적인 바이브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정확하고 풍성한 편곡으로 채색된 리듬 섹션과 오케스트레이션이다. 포지션으로 보자면 명백히 성인가요인데, 이러한 방향성과 완성도가 성인가요 시장에서 꾸준히 전개되어왔다면 어땠을까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 <180g Beats>, <Lovers> 등을 발표했으며, <Sound of Seoul> 시리즈로 한국의 록, 훵크 등을 발굴 및 소개했다. 현재 360 사운즈 크루와 레코드숍 rm360을 이끌고 있다.

 

 

신정숙 ‘인형’ 1980년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매력을 발산한 수많은 디바들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져간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신정숙은 명동 쉘부르에서 포크 싱어로 출발해 산울림의 김창완이 이끄는 그룹 꾸러기들에서 ‘욕심꾸러기’라는 애칭으로 활동을 해오다 80년 중·후반 댄스음악과 비디오형 가수에 대한 시대의 요구에 맞춰 신중현과 손잡고 1집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김창완의 순수하고 발랄한 프로덕션에서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과 같은 신중현표 댄스곡으로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어두운 느낌의 신스 베이스와 드럼머신으로 시작해 해맑은 아이의 웃음소리로 끝을 맺는 이 곡은 여러 상충되는 요소가 묘한 섹시함을 만들어낸다. 퍼즈 기타 위에 흩날리는 신스 사운드,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와 허스키하게 속삭이는 관능적인 보컬의 대비는 섹시함을 넘어 컬트적인 분위기로까지 당신을 인도한다. 어느 시절 유행했던 광고 카피와 같이 ‘여자의 변신은 무죄’다.

박윤영 ‘물한모금. 술한모금. 사랑한모금’ 인생의 모든 진리를 깨닫고 ‘술 한 모금’ 꺾으며 내쉬는 매혹적인 중년 여성의 한숨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신선들이 즐기고 떠난 술자리와 같은 황량한 피리 소리와 강렬한 훵크 리듬을 안주 삼은 반도의 뜨거운 ‘뽕끼’, 인생의 끝없는 욕망을 노래하는 애끓는 박윤영의 목소리는 아직까지 우리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핀다. 80년대 성인가요의 뜨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아래의 가사를 음미하며 이 곡을 필청해보길 권한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을 보니 어허야 파랗구나 구름 한 조각. 술 한 모금 입에 물고 앞산을 보니 어허야 푸르구나 바위 한 조각. 살아도 살아도 목마름은 끝이 없어. 살아도 살아도 목마름은 끝이 없어. 어허야 우리네 인생 무엇으로 채울꼬. 물 한 모금 술 한 모금 사랑 한 모금.”

조용훈 | Dydsu 또는 용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스클라벤탄츠, 구토와 눈물, 랑쥐, 너비스 셧, 선결, Dydsu 등에서 남모르게 음악을 하며 가끔 애호가로서 모은 판을 튼다.

 

 

원동숙 ‘말을 하지 말아야지’ 여성의 섹시함은 야성미로부터 나온다고 했던가. 원동 숙의 ‘말을 하지 말아야지’는 “당신이 먼저 말을 걸어오 기 전까지 말을 하지 않겠노라”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 담하게 툭툭 내뱉는다. 꾸미지 않은 듯한 섹시함 속에 야 성미를 드러낸 원동숙만의 특유한 창법은 남자의 마음 을 흔들고 적시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심장을 뛰게 만드 는 대담한 기타 라인과 간주 부분의 요염한 플루트 소리 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하지만 이 곡은 원래부터 섹 시미가 자르르 흐르는 원동숙의 곡이 아니었다. 1979년 대도레코드에서 발매한 원동숙의 첫 데뷔 앨범인 <친구 들아>에 수록된 이 곡의 원래 주인은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했던 서울시스터즈의 키티킴(Kitty Kim)인 옥희다. 1977년 서라벌에서 발매한 옥희의 2집 타이틀이었던 이 곡은 나훈아를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한 ‘찻집의 고독’ 작곡 가 박정웅의 작품이다. 여담으로 훗날 김추자가 부른 ‘찻 집의 고독’은 <거짓말이야/댄서의 순정(금지해제곡)> 앨 범에 실리기도 했다. 표현력이 다채로운 박정웅의 안타 곡 중 야릿한 향기를 품은 곡을 뽑으라면 나는 말할 필요 없이 원동숙의 ‘말을 하지 말아야지’를 꼽는다.

티나 황 ‘그대여 돌아와요’ 1970년대 후반은 엄정화의 디스코처럼 ‘미친 듯이 춤추 고 네 멋대로 Do The Disco’였던 시대였다. 축구 황제 펠 레도 디스코를 춘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영화관에 선 <토요일 밤의 열기>의 포스터가 안 걸린 곳이 없었고, 좀 논다는 힙스터들은 고고장의 디스코 음악에 맞춰 나 팔바지에 하늘을 찔러대는 춤을 췄으며, TV 음악 쇼 프로 그램 <쑈쑈쑈>에선 디스코 가요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 왔다. 그때였다. 1979년 뉴욕에서 온 티나 황이 디스코의 정수를 보여준다며 한국에 상륙한 것이었다. 당시 이은 하, 숙자매, 정애리 등을 내세워 디스코의 금자탑이라 불 린 노만기획을 따라잡고자 오아시스는 티나 황이라는 황 금 열쇠를 내놓았다. 티나 황은 뉴욕의 VIP 클럽에서 약 3천 달러의 출연료를 받는 톱 스타였다. 그런 티나 황이 야심차게 한국에서 낸 첫 번째 앨범 <Tina Hwang From New York>의 많은 곡 중 식은땀 나고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곡이 있다. 바로 ‘그대여 돌아 와요’다. 신명나는 리듬 위에 마치 귓속말로 나에게만 말 하는 것 같은 야들야들한 목소리로 “그대여 돌아와요 나 를 사랑한다면 사랑해요”라 속삭인다. 란제리 룩을 한 채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 일명 교포 화장을 한 티나 황의 앨 범 재킷 또한 섹시의 진수를 보여준다.

미미 | ‘미미’이기도 하고 ‘유미희’이기도 하다. 1950년대~1960년대 음악을 좋아하고 가요도 좋아한다. 성인만화 편집자이자 <브리티시 서브컬처> 에디터 중 한 명이다.

 

 

김남미 ‘오! 그말’ 가사에 느낌표를 썼다. “오! 그말.” 그게 커버에 그대로 쓰 여 있다. ‘꿈과 인생을 노래하는 매혹의 디스코 스타, 김 남미의 ‘오! 그말.’ 김남미의 목소리는 느낌표의 연속이 다. 후렴구의 “가슴이 타네요, 기분이 좋아요”를 부를 때 가 압권인데, 노랫말을 뜨거운 불판에 올려놓고 탄내가 날 때까지 지지는 느낌이라 말해보면 어떨까. 곡 시작부 터 끝까지 힘이 떨어지는 법이 없다. 사랑이란 응당 그렇 게 온 힘을 다해 타는 맛까지 맛보고 난 뒤에야, 제대로 해 봤다고 할 수 있는 것. 음반 전체는 상대적으로 다른 곡들 의 함량이 떨어지지만, 동시대의 다른 음반들과 달리 ‘뽕 끼’ 넘치는 곡들을 뒤로 젖히고 A 사이드 1번에 단박에 끓 어오르는 본격 훵크 ‘오! 그말’을 배치한 패기 또한 뜨겁다.

김완선 ‘불빛을 좀 더 어둡게 해줘요’ 민해경은 세련됐고, 이선희는 노래를 잘하고, 김완선은 섹시하다. 그건 채 열 살이 안 된 애의 눈에도 보이는 기 준이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든 <가요톱텐> 에서든, 제아무리 다른 가수들이 쏟아져 나와도 그 기준 은 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김완선의 섹시함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서 꿈틀대는. 그건 목소리나 눈빛 같은 것으로 콕 짚기 어 려운 온몸에 밴 태도였다. 물론 이 곡, ‘불빛을 좀 더 어둡 게 해줘요’의 무대를 TV에서 본 적은 없다. 나중에 발견 했고, 김완선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한다. “불을 꺼달라”가 아니라 “불빛을 어둡게 해달라”는 말이야말로 김완선의 언어 같지 않나? 나는 다 컸고, 한 번도 본 적 없으니 더 욱 상상하게 된다. 1집과 2집이 산울림 김창훈, 3집이 이 장희라는 대가들의 작품이라면 이 4집에서는 신예 프로 듀서 하광훈과 호흡을 맞췄다. 이듬해 발매되는 하광훈 의 첫 독집 음반 이름은 <Nude City>, 덕분에 도회적 사 운드와 함께 김완선의 목소리는 더욱 짙은 밤에 가까워 진다. 이윽고 김완선은 4집 백밴드 실루엣의 멤버로 인 연을 맺은 손무현과 의기투합해 5집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다. 샤데이의 전성기 편곡을 방불케 하는 김완선의 첫 1위 곡 ‘나만의 것’ 이전, ‘불빛을 좀 더 어둡게 해줘요’ 가 있었다. 

유지성 | <플레이보이> 에디터

Credit

  • 에디터 유지성
  • 포토그래퍼 김잔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