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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섹스를 사려 깊게 다룬 영화 3

양지로 나오지 못한 섹스는 퇴폐화될 뿐이다.

섹스에 관한 담론은 주로 젊은 성인 남녀 위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마치 섹스는 젊은 연인들의 특권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만큼, 다양한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수자의 성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없거나, 모른척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양지로 나오지 못한 섹스는 결국 퇴폐화될 뿐. 그래서 성 담론에서 소외되는 장애인, 노인, 그리고 레즈비언의 섹스를 다룬 영화들이 더욱 소중한 이유다.

소수자의 섹스를 사려 깊게 다룬 영화 3
<섹스 볼란티어> (2009)

<섹스 볼란티어> (2009) 천주교 신부와 여대생, 그리고 중증 뇌성 마비 장애인이 한 모텔에서 검거된다. 죄목은 성매매, 그렇지만 그들은 단지 ‘자원봉사’였다고 주장한다.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30대 청년 ‘천길’은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며 제발 죽기 전에 섹스를 한번 하고 싶다고 말한다. 고민하는 신부 앞에 한 여대생이 찾아오며, 신부는 고민에 빠지다 결국 천길을 도와주기로 한다. <섹스 볼란티어>는 금기되어온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다룬다. 장애인 성 도우미란, 손가락조차 움직이기 힘들어 스스로 자위하기도 힘든 중증 장애인들을 돕는 이들을 뜻한다. 일부 선진국에서만 법적으로 제도화되어있고, 다른 나라에서는 암암리에 ‘성 도우미’들이 상품화되기도 해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에서 장애인들의 섹스를 대놓고 억압한 것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인 홀로코스트가 일어났던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 집권 하에서였다. 그들은 우성화의 논리를 잘못 빌어와서, 장애인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안다면, 우리는 당연히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섹스 볼란티어>가 던져주는 논쟁점은 쉽게 지나치기 힘들다.

소수자의 섹스를 사려 깊게 다룬 영화 3
<죽어도 좋아!> (2002)

<죽어도 좋아!> (2002) 일흔이 넘은 박차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는 각각 배우자와 사별한 지 오래다. 고독을 벗 삼아 삶을 연명해온 둘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한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썸’타는 기간도 없이 할머니는 바로 장구 한 채와 옷 한 보따리만 가지고 할아버지네 집으로 들어간다. 물 한 바가지 떠놓고 결혼식을 마친 그들은 행복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사랑이 뜨거워지자 그들은 삶에서 한동안 떨쳐두었던 섹스도 가능해졌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인 박차규 할아버지와 이순에 할머니를 주인공 배우로 삼았다. 감독은 정사 신 촬영 당시 두 사람에게 “섹스를 하든 말든 알아서 하시라”고 이야기하고 방에 카메라만 켜 두고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찍힌 적나라한 정사 신이 심의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봉 후 노인의 성 문제를 잘 다루었다는 평단의 극찬과 함께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영화가 이야기하듯, 육체가 쇠했다고 성욕이 감퇴하지는 않는다. KBS 시사 기획 창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성생활이 필요하다는 응답비율이 70%나 되었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성생활 빈도는 감소하지만, 30~70% 정도의 노인들이 여전히 규칙적으로 성생활을 하고 있다. 섹스는 젊음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행복한 삶의 전제임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소수자의 섹스를 사려 깊게 다룬 영화 3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아델과 엠마,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고등학생 소녀 아델은 엠마를 만나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며 하나의 어른으로 성장한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 이별까지, 세 시간 내내 사랑의 생로병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하다. 배우들을 학대했다는 논란이 생길 만큼 적나라하고 긴 동성애 정사 장면이 나오지만, 영화의 맥락에서는 음란함보다는 육체의 생동감과 사랑의 환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에로티시즘 퀴어 영화가 맞지만, 레즈비언의 사랑이라는 특수성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 영화를 보면 ‘두 여자’라는 특수한 사실은 지워지고, 그저 절절하게 사랑한 연인의 만남에서부터 이별까지의 서사에 집중하게 된다.

Credit

  • 에디터 한수연
  • 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