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플보

너랑, 나랑, 영화, 봄

벚꽃 지기 전에 연애 합시다.

간지러운 계절이 온다. 콧구멍에 들이치는 꽃가루 얘길 하는 게 아니다. 아지랑이 꿈틀댈 때마다 붕 뜨는 그 기분 말이다. 새로운 연인을 찾거나, 옆에 있는 연인과 더 애틋한 한해를 시작하기 좋은 계절. 옛말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듯 봄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가 사라지기 전에 미리 바운스를 타고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 아래 소개하는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별 내용 없지만 누군가와 봄밤 냄새를 맡으며 계속 걷고 싶게 만드는 신묘한 작품들이다. 참고로 나는 대놓고 알콩달콩한 영화에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당신도 낭만을 쥐어짜는 영화를 싫어한다면, 안심해도 되겠다.

영화 <오버 더 펜스>

아오이 유우와 오다기리 죠가 주연이다. 눈 호강에 관해선 말 다 했다. 두 주인공은 녹록지 않은 삶을 산다. 시라이와 요시오(오다기리 죠)는 결혼에 실패한 상태고 타무라 사토시(아오이 유우)는 낮에는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며 상처를 안고 산다. 쉽게 서로의 마음을 열지 못하는 두 주인공은 밤의 동물원에서 기러기 떼를 마주하거나 서로를 유혹하는 백조 흉내 내는데, 묘하게 몰입하여 보게 된다. 게다가 “난 더 잃을 게 없거든!”하며 서로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중에서도 명장면.

 

 

영화 <녹색 광선>

감독 에릭 로메르는 ‘연애의 모럴’이다. 국내에서 열렸던 그의 회고전의 카피 문구인데, 이보다 그를 잘 표현도 없을 것 같다. 그의 대표작인 영화 <녹색 광선>은 주인공 델핀느(마리 리비에르)가 여름 휴가 동안 겪는 로맨스에 대한 얘기다. 하지만 시작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생길 듯 생기지 않는 흥미로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이내 포기하고 말았을 때 녹색 광선처럼 멋진 남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당장 여행을 가서 기차 역에 주야장천 앉아 있고 싶어진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년 전 이 영화를 보고 감상평에 딱 한 문장 메모해놨다. “연애하고 싶다” 단 4일 만났는데 평생을 서로 그리워하는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의 얘기다. 줄거리만 보면 비현실적 사랑이라 생각되겠지만, 영화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게다가 중년의 감정묘사를 완벽히 연기한 두 배우 덕에 20대의 풋풋한 로맨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이렇게 확실한 느낌은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거요”

 

영화 <서울연애>

버스 전용 차선에서,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주택 사이 골목길 가로등 아래서 만나는 연애 이야기다. 가능성의 차원에서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고, 어쩌면 겪어봤을 로맨스라서 더 와 닿는다. 감독 최시형이 그려낸 서울의 모습은 봄의 춘곤증처럼 거부할 수 없이 스며든다. 연애하자. 연애는 서울에서 흑수저에 월급쟁이로, 심지어 백수로 살아도 잠깐이나마 현실을 몽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영상출처 유튜브 '미디어로그영화', 'Altrincham Seen', '민병석', 'PIXEL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