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비언트 인텔리전스

앰비언트는 얌전하기만 한 음악이 아니다.

앰비언트는 장르처럼 통용되는 말이지만, 그 자체로 어떤 분위기를 뜻한다는 점에서 느슨하다. 하우스, 힙합, 록처럼 음악적 특징과 큰 연관이 없어 별도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장르명과 달리, 이름만으로 알아챌 수 있다. 형용사로 ‘주변의’ 혹은 (음악과 조명 등이) ‘잔잔한’이라는 사전적 의미. 박자, 화성, 가사와 상관없이 말 그대로 ‘앰비언트’한 음악이라면 대개 그렇게 불린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장르라기보다는 스타일에 가깝다. 음반 데이터베이스 및 상거래 웹사이트이자 집단 지성의 장인 디스콕스(Discogs) 역시 앰비언트를 장르가 아닌 스타일로 구분한다. 올바르다 볼 순 없지만 범종교적 의미가 희석된 뉴에이지와 혼용되기도 하며, 비슷한 용례로 실험적 음악을 포괄하는 엑스페리멘탈과도 좋은 친구다.

1978년 <Ambient 1: Music For Airport>를 시작으로, 네 장의 앰비언트 연작을 내놓은 브라이언 이노는 <Ambient 1: Music For Airport>의 라이너 노트에 선언하듯 이렇게 썼다. “앰비언트는 고요함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유도하기 위한 음악입니다. 어떤 한 부분을 강조하지 않고 여러 층위의 청각적 흥미가 공존해야 하며, 그것이 흥미로운 만큼이나 무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흡사 고급 무공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 같지만, 이만큼 앰비언트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 또한 없을 것이다.

즉, 앰비언트를 듣는다는 것은 주변 소리와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주변 소리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게 결국 BGM 아니냐 물을 수 있겠으나, 앰비언트는 거기에 그치는 것을 거부한다. 브라이언 이노의 말대로 청각적 흥미가 존재하며, 음악에 젖어 꿈꾸듯 망상하거나 잠에 빠지기보다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한 음악. 또한 BGM으로 취급한다면 시끄럽게 떠들든 딴짓을 하든 상관없겠으나, 결국 고요한 음악을 들으며 고요함을 유지(무시)한다는 것은 곧 음악에 집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인 셈이다. 내 주변을 ‘서라운드’하는 유일한 소리로서 말이다. 실제로 디스콕스에서 ‘Surrounding’이란 키워드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면, 압도적으로 앰비언트와 엑스페리멘탈 음반의 노출 건수가 많다. 총 1천1백여 장의 음반 중, 약 400개에 가까운 개수.

신호탄을 끊은 브라이언 이노를 비롯한 앰비언트 음악가들은 이 음악을 쉼으로 대하기보다 전진하는 맘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또한 앰비언트는 전자음악가가 꼭 한 번씩 도달하는 기착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앰비언트의 키 플레이어로 존경받는 음악가들 중에서도 록 밴드 록시 뮤직 출신의 브라이언 이노는 물론이고 YMO의 호소노 하루오미와 사카모토 류이치, 일렉트로 훵크 뮤지션으로 경력을 시작한 프랑스의 월리 바다루(Wally Badarou)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그들이 젊을 때는 신나는 굿판을 벌이다 휴식을 취하고자 앰비언트로 접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고요함 속에 자신을 섬세하고 정확히 드러낼 수 있는 음악으로서의 쾌감 때문이 아닐까. 앰비언트 하우스, 앰비언트 테크노 등 앰비언트의 유전자를 품은 댄스 음악이 ‘IDM’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또한 좋은 증거다. IDM은 ‘인텔리전트 댄스 뮤직’의 줄임말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감상적이기보다 이성적 접근이 더욱 어울리는 음악.

새삼스럽게 탄생한 지 꼭 40년이 된 이 음악,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에릭 사티나 존 케이지 또는 일군의 독일 크라우트록 뮤지션들로부터 원류를 찾자면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앰비언트를 오늘의 관점으로 다시 듣는다. 눈에 띄는 상업적 성과가 드물기에 되레 새롭게 들리기도 한다. 제 식대로 앰비언트를 받아들인 신예 음악가들도 가세했다. 죽었다 살아난 장르에 꼭 달라붙는 ‘리바이벌’의 거대한 조류는 아니지만, 꼭 앰비언트가 그렇게 들리듯, 이 음악은 고요했을 뿐 전진을 멈춘 적이 없다.

브라이언 이노는 2013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앰비언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기인 신시사이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백그라운드가 없는 악기를 연주할 때, 당신은 근본적으로 사운드를 설계하게 됩니다. 새 악기를 디자인하는 거죠. 신시사이저는 끊임없는 미완성의 악기입니다.” 앰비언트 또한 그렇다.

VITO RICCI <I was Crossing a Bridge>, 2015 ‘ 프라이빗 프레스’를 비롯해 어디서 이런 걸 찾았나 싶은 음악가들의 음악을 발굴하고 다시 편집해 재발매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레이블 뮤직 프롬 메모리는 특히나 실험적 앰비언트에 관해서라면 독보적이다. 그 이름은 비토 리치의 1985년작 <Music From Memory>에서 따온 것이기도 한데, 비토 리치는 “8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신의 소리 없는 영웅(Unsung Hero)”으로 불리며 영화, 연극, 댄스 등을 가리지 않고 용광로 처럼 끓어오르던 도시의 음악 및 공연계에서 은근히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음악 장르는 물론이고 그 것이 쓰이는 형태마저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그의 압도적 전성기가 궁금하다면. Music From Memory

 

SUZANNE KRAFT <Talk From Home>, 2015 LA 출신으로 현재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수잔 크래프트의 데뷔 음반이다. 언뜻 프랑스 출생의 독일인이 나 북유럽 여성 이름 같은 수잔 크래프트는 본명이 아닌데, 그의 차가운 듯 서정적인 음악과 딱 맞아떨어진 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Talk From Home>은 그가 유럽으로 본거지를 옮기기 전 어느 겨울에 녹음한 음반 이다. 햇살은 여전하지만 밤이면 공기가 부쩍 쌀쌀한 캘리포니아의 겨울이 담긴 게 아닌가 짐작해보게 된 다. 멜로디 애즈 트루스는 뮤직 프롬 메모리와 함께 동시대 앰비언트의 물결을 이끄는 레이블로, 수잔 크래 프트는 이후에도 동 레이블에서 1장의 솔로 LP를 비롯한 여러 음반을 발표한다. Melody As Truth

 

HIROSHI YOSHIMURA <Pier & Loft>, 2017 일본은 YMO 이래 전자음악에 관해서라면 한 번도 뒤처진 적이 없다. ‘재퍼니즈 인베이전’이라 불러도 이상 하지 않을 만큼 다시 일본의 전자음악가들이 각광받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직업적 의미가 아닌 장인으로서의 사운드 디자이너란 말이 합당한 요시무라 히로시는 1983년, 이 음반에 수록된 7곡을 세이부 백화점 국제 패션쇼를 위한 음악으로 만들었다. 당시엔 카세트테이프로만 발매됐고, 지난해 처음 LP로 제 작됐다. 음반 이름처럼, 그리고 실제 패션쇼가 열린 부둣가의 어느 로프트에서 바다를 내다보는 것 같은 넓 고 깊은 소리가 담겼다. 17853 Records

 

FINIS AFRICAE <El Secreto De Las 12 (The Secret of 12 O’Clock)>, 2013 앰비언트라고 꼭 전자적일 필요는 없다. 필드 레코딩과 다양한 종류의 악기를 조합해, ‘자연의 소리’를 담아 내는 것 또한 충분히 앰비언트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다소 ‘에스닉’한 성격을 띤다 말할 수도. 피니스 아프리캐는 브라질 밴드로, 멤버부터 악기까지 그들이 조합할 수 있는 최상의 합을 찾아 가상의 세계를 구 축하는 듯한 음악을 만든다. ‘The Wizard’, ‘Magical Ceremony in the Pond’ 등 곡 제목부터 판타지물에 나 오는 대자연을 그리는 듯하다. 영화나 소설이나 가사가 달린 음악으로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 다. 2013년 컴필레이션 형태로 재발매됐다. EM Records

Credit

  • 에디터 유지성
  • 포토그래퍼 박재용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