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 그대로, 싱어송라이터 아를리사

그는 한때 어른들의 '돈놀이' 수단이었다.

그 모습 그대로, 싱어송라이터 아를리사

산타모니카 대로에 지극히 평범한 한 건물이 있다. 바로, 빌리지 스튜디오(The Village). 어찌나 눈에 안 띄는지 평생을 그 앞을 지나가더라도 무슨 건물인지, 건물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절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궁금해하지도 않을 거다. 하지만 외관과 달리 건물 내부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골든 앨범과 플래티넘 음반이 빼곡하다.

사방에 걸린 닥터 드레(Dr. Dre)의 <더 크로닉(The Chronic)>, T-본 버넷(T-Bone Burnett)의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사운드 트랙, 게다가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터스크(Tusk)> 같은 음반이 스튜디오의 역사를 보란 듯이 증명한다. 마치 가장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사람들 눈에 훤히 띄는 곳에 전시한 것과 같다. 그 중 아를리사(Arlissa)의 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로 최근 조나스 블루(Jonas Blue)와 함께 작업한 ‘Hearts Ain’t Gonna Lie’로 강렬하게 돌아왔고, 세상에 나아가 환하게 빛을 발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공연을 더 많이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지금까지는 공연을 많이 한 편은 아니니까요.” 고작 27살인 그가 스튜디오의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서 한 말이다. 조금 전 그는 빌리지 스튜디오 D에서 첫 미국 공연을 마친 참이었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제 음악을 제대로 들려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제대로’라는 단어를 길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쾌활한 성격 뒤에 감춰졌던 괴로운 심정을 표출했다. 왜 그렇게 ‘제대로’를 강조했을까. 아를리사는 자고 일어나면 변해있는 음악 산업의 속성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 아니다. 오히려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다. 19살 무렵, 메이저 레이블과 처음으로 계약한 아를리사는 그를 ‘제2의 샤키라(Shakira)’로 포장하려 애쓰던 이들 때문에, 오히려 아티스트로서 주목은커녕 어른들의 ‘돈놀이’의 수단이 됐다. 아를리사는 나스(Nas)와 함께 ‘Hard to Love Somebody’를 작업한 후에도, 자신의 음악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느끼지 못한 채 오히려 애매하게 붕 뜬 듯했다. 결국, 스스로 진정성이 없는 모습과 음악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

구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듯, 아를리사의 옛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소위 말해 전형적인 ‘팝 스타 스타일’이랄까. 누군가가 ‘되는 것’을 거부하며 원래 피부색을 드러내고 수수한 옷차림을 추구하는 아를리사의 모습은 온대 간데 찾을 수 없다. 사실, 그게 그의 모습인데 말이다. 자신의 모습을 찾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솔직히 저는 ‘음악 산업에게’ 얻어맞는 게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를리사의 토로다. “저는 계속해서 두들겨 맞았어요. 레이블의 계약서에 처음 서명했을 때부터 꾸준히 ‘안 돼’라는 말을 들었고, 이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이렇게 들릴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이건 너답지 않다는 말을 꾸준히 들었어요.” 얼굴에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서 치운 그녀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게 최악이었어요. ‘이건 너답지 않아’라는 말을 듣는 게.”

“솔직히 저는 ‘음악 산업에게’ 얻어맞는 게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를리사가 내면의 용기를 찾기란 쉽지 않았고, 그는 자신의 작곡 실력에 의구심을 품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저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거라는 곡을 쓰는 데 집착했어요. 하지만 그런 곡은 먹혀들지 않죠. 분명해요.” 이런 생각이 든 이후부터 그는 절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침내 그런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됐을 때, 다시는 어느 누구한테도 ‘안 돼’라는 말을 듣기 싫었죠. 그러니까, 그래요. 제가 자신감을 찾은 유일한 방법은 저한테 항상 ‘안 돼’라고 말한 사람에게 지칠 대로 지치는 거였어요. 이런 식의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면 잃는 것이 정말로 많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면서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신세가 돼요.”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당당히 제 주장을 펼치고, 일에 관한 많은 통제권과 자유를 얻고 나니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그 후에 제가 그런 일을 어떻게 했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게 중요한 일인 거죠. 우리가 더 많은 권한을 가졌으면 해요. 그런 권한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아를리사의 LA 데뷔 공연장 출입문이 열리기 전, 보잘것없는 그 골목은 그를 지켜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가 직접 정한 날, 한 곡씩 싱글을 공개하는 그의 열정을 모두 알아본 것이다. 아를리사는 아버지의 제안처럼 메타카페(Metacafe)에 자신의 첫 곡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그의 곡을 온 세상에 있는 팬에게 직접 발표해왔다. “저는 인터넷을 사랑해요! 인터넷은 끝내주죠. 인터넷은 앞으로도 영원히, 영원토록 존재해야만 해요.” 그는 열변을 토했다. “인터넷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발명품이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올릴 수 있으니까요. 저는 노래를 만들어서 올려요. 그러면 그 곡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죠. 그것 말고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뭐가 있나요?”

현재 아를리사는 과거에 맺은 계약이 남긴 상처와 악플러들의 위협에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악플을 보는 게 오히려 재밌더라고요.” 마침내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며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의 진심을 온 세상과 공유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에게 갈채를 보내는 팬과 친구로 가득 차 훈훈한 스튜디오를 생각하면서 그의 얼굴은 상기됐다. “정말 말로 표현 못 할 기분이었어요.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알지만, 그냥 정말 근사하고 가까운 분위기였다는 말밖에는 못 하겠어요. 모두 아는 사람이었죠. 그 사람들과 직접 눈을 맞출 수 있었어요! 정말로 재밌었죠.” 아를리사는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박’ 칠 재능과 오랜 시간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회복력을 지닌 아를리사. 그는 빌리지 스튜디오를 눈부시게 장식한 아티스트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려는 여정에 복귀했다.

Credit

  • 에디터 한수연
  • Bailey Pennick
  • 사진제공 Def Jam Recordings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