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된다

천국의 섬에서 보내온 마지막 여행기.

내일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된다

“보라카이는 시궁창이다” 보라카이의 환경 문제에 대해 필리핀의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Roa Duterte)는 극단적으로 일갈했다. 그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환경정화를 위해 보라카이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관광객에 의한 하수와 쓰레기가 섬의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 4월 26일부터 6개월 동안 거주자와 근로자, 리조트 소유주만 정부의 신분증을 받아 섬에 들어갈 수 있고 이를 단속하기 위해 600여 명의 경찰이 배치될 예정이다. 즉, 여행을 목적으로 정식 절차를 밟아 보라카이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내일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된다

2016년 3월 22일. 3개월 동안 3대륙 20개국을 쏘다니며 세계 일주를 다녀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비행기를 탔다. 여행에서 돌아온 서울의 3월은 유독 춥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빴다. 건조했다. 퍽퍽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못 견디게 아름다운 해변으로. 나는 ‘계획된 휴식’ 말고 ‘그냥’ 쉬고 싶은 마음으로 보라카이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내일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된다

그때는 누구나 보라카이에 갈 수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4시간 남짓 날아가면 거기에 닿을 수 있으니 한국 사람들이 유독 많이 갔다. 왜들 그렇게 이 작은 섬을 찾냐고 묻는 족족 돌아온 대답은 “아름다워서”. 보라카이에는 몸서리치게 황홀한 바다와 관광객에게 친절한 사람들도 있다. 원한다면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큼 작지만 알찬 섬이다. 누군가에게 보라카이를 ‘살아서 다녀온 천국’이라고 말했을 때, 과장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서운할 정도로 말이다. 

내일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된다

보라카이는 상상했던 것처럼 극적이고 기이하며 목가적인 섬이었다. 에메랄드빛 산호초밭, 관광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동감, 사랑스러운 코코넛 나무, 수십 가지의 붉은 빛을 지닌 석양, 옥색과 녹색이 겹쳐진 바다 색깔. 어디든 주저앉아 정면을 응시할 때면 시간은 나른하다기보다 천천히 흘러갔다.

내일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된다

보라카이엔 한국인 여행객이 유독 많았다. 이 감정은 대체로 친숙하고 편하지만, 가끔 해외 여행객으로서 느끼고픈 긍정적 의미의 소외감 혹은 특별함이 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단점은 미국 플로리다의 팜비치, 호주의 골든코스트와 함께 세계 3대 해변으로 꼽히는 화이트 비치 해변에 발을 들인 순간 말끔히 사라졌다. 체에 거른 듯 고운 하얀 모래밭에 누워 해 질 녘까지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만끽하는 휴식. 모든 곳을 무리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이곳에서, 난 더없이 안락하게 쉴 수 있었다.

내일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된다

도대체 보라카이는 얼마나 오염된 걸까? 오죽하면 매년 관광산업으로 약 12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이곳을 폐쇄하게 된 걸까? 필리핀 정부는 올해 초 열린 보라카이 관련 포럼에서 매년 심해지는 녹조 현상이 대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게다가 보라카이의 일부 관광 시설은 폐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바다에 그대로 흘려보내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필리핀 환경부에 따르면 현지 195개 사업체가 하수도 시설로 폐수를 보내고 있지 않으며 900여 개 이상 불법 건축물이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몇몇 현지 상인들은 꼭 환경오염만이 보라카이 폐쇄 결정이 아닐지 모른다고 말한다. 보라카이 폐쇄 6개월 동안 마카오 기업 갤럭시 엔터테인먼트는 5억 달러를 들여 카지노와 리조트를 짓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인들과 논의 없이 내린 정부의 결정에 관광 산업으로 생계를 잇던 3만 6천여 명의 보라카이 현지인들은 생업을 잃게 됐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아직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내일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된다

보라카이에서 보낸 5일간 매일 늦은 낮부터 밤까지 해변에서 필리핀 로컬 맥주를 마셨다. 청록색 하늘이 부드럽게 주황색과 섞이며 보라색까지 촘촘히 쌓이다 어두워지는 황혼에 압도당하는 걸 즐겼다. 그러면서 파도가 모래를 치는 소리도 들었다. 발가락 사이에 들어온 흙은 산뜻하게 건조했다. 야자수 잎사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지상의 것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나는 그 순간이야말로 보라카이에 있다고, 본격적으로 쉬고 있다고 체감한 것 같다. 천국에서 추방당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리고 다시 이 천국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서울의 황망함을 달래러 갔던 그곳에 더는 갈 수 없게 됐다. 이젠 어디로 쉬러 가야 하나. 아직 다른 휴양지는 보라카이보다 멀거나, 크거나, 덜 아름다워 보인다.

양보연 | 영화 전문지 <맥스무비>와 매거진 <플레이보이>에서 기자로 일했다. 아름다운 것을 사정없이 좋아하고, 못된 것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 즐겁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포토그래퍼 양보연
  • 양보연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