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래머의 미학과 우울

전주국제영화제서 찾아낸 ‘섹시한’ 영화 <허리케인>.

인스타그래머의 미학과 우울, 허리케인
영화 <허리케인>의 한 장면.

‘가정의 달’이란 수식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5월은 왠지 모르게 다른 달보다 더 빡빡하다. 이것저것 챙길 일도 많다. 게다가 후텁지근한 날씨까지 한몫한다. 5월을 그나마 버틸 수 있다면 전주국제영화제가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말까지 정신없이 해본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공식 수식어 ‘영화 표현의 해방구’란 표현이 있다. 그 해방구라는 단어가 여러모로 잘 어울리는 이 영화제에 직접 다녀왔다. 정말 ‘플레이보이’다운 영화만 고르고 골랐다.

인스타그래머의 미학과 우울, 허리케인
영화 <허리케인>의 한 장면.

첫 영화는 <허리케인>이다. 프론트라인 섹션에 등장한 영화다. 이 섹션부터 살펴본 이유는 분명했다. 불편한 영화만 다루겠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어서다. 급진적인 주제와 스타일, 불경하기까지 한 상상력, 영화의 한계를 시험하겠다는 담대한 표현을 앞세운 그야말로 ‘용기 있는’ 영화들의 향연. 그중 덴마크 감독 아니카 버그(Annika Berg)의 데뷔작 <허리케인>은 덴마크의 10대 여성 아나키스트 일당을 좇는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을 거스를 것만 같은 청소년 클럽의 대담한 소녀들은 비주얼 역시 그렇다. 핫핑크 타이즈와 가슴이 드러나는 탱크톱, 강렬한 컬러의 스커트의 자태는 바라보는 자체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게다가 쇼트는 비디오 클립, 인터넷 포토그램, 광고 이미지가 분열돼 나온다. 마치 불안한 성장기 같다.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서 한껏 꾸며진 소녀들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 영화 프레임에서는 자신의 우울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목소리는 남 일 같지만은 않다. 16세 소녀들의 입에서 나온 대사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전위적이며 진실하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소녀들에게 성교육을 가르치는 장면이다. 남성 성기 모양의 인형 탈을 뒤집어쓴 한 무리가 애무의 방식, 콘돔 사용 방법을 가르쳤고, 소녀들은 연신 잠자코 듣는다. 그러다 ‘이다’가 냉철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요는 이렇다. ‘이건 오로지 이성애자만을 위한 관계이며, 다양성이 배제돼있다. 고로 나는 배울 것이 없다’.

소녀들은 혼자 있을 때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가 실패작 같다며 엉엉 운다. 하지만 같이 있을 때 비로소 나 같다고. 동시대의 우리가 불특정 다수에게 ‘좋아요’를 받기 위한 몸부림도 그녀의 고백으로 해명할 수 있을까? 이날 본 <허리케인>은 전석 매진이었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