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남극의 맥머도 기지

그곳의 술, 파티, 우정과 사랑에 대해.

Antarctica꽁꽁 언 빙하 위에 길게 펼쳐진 간이 활주로. ’이반’이라는 별명의 커다란 차량에 화물을 싣고 승객을 태운 후, 당신은 14.4km를 달린다. 12시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재킷과 오버올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한잔하러, 술집으로. 그런데 가는 길에 만난 친구가 말을 걸어온다. “내 룸메이트한테 ‘특별한 얼음’이 몇 조각 있어.” 당신은 방향을 돌려 그의 공간으로 향한다. 기숙사 방 같은 비좁은 공간에 몸을 쑤셔 넣고, 위스키를 마신다. 그 위스키에는 기상과학자의 분석 과정을 거친 빙하 조각이 담겨있다. 빙하의 코어 샘플에서 얻은, 수백만 년 된 얼음 조각이다.

남극에서 제일 넓고 인구도 가장 많은 맥머도 기지(McMurdo Station)에서 일하는 당신에게, 이건 그저 일상적인 저녁의 풍경이다. “그곳에서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온갖 일들이 일어나요.” 2009년부터 2016년 동안 맥머도에서 일했던 여행 가이드 겸 사진가 로라 거윈(Laura Gerwin)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승객 운송을 담당하는 부서의 직원으로 일하며 ‘이반’의 운전석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맥머도에서 벌어지는 일치고 평범한 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매력이죠. 그 동네에서 하는 모험들은 모두 엄청나거든요.”

맥머도는 남극에서 지구 곳곳의 나라에서 운영하는 40여 개의 기지 중 하나다. 여름에는 900명, 겨울에는 140명을 수용한다(남극은 남반구에 있으므로 그곳의 여름은 북반구의 겨울이며 그곳의 겨울은 북반구의 여름이다). 1956년 미국 해군의 통제 아래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미국국립과학재단의 투자를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생물학과 천문학, 지질학, 기후 변화 등 여러 연구가 진행된다.

“맥머도에서 벌어지는 일치고 평범한 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매력이죠. 그 동네에서 하는 모험들은 모두 엄청나거든요.”

수많은 과학자와 자원 인력이 즐겁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이크 산토스(Mike Santos)가 하는 일이다. ‘유흥 책임자’인 그는 현장에서 음료를 제공하고, 생활용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을 관리하고,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기획한다. “여름에는 아홉 가지 프로그램이 열려요. 과학 강의부터 가라오케의 밤, 술집 퀴즈대회까지. 1주일 내내 열리는 요가 수업도 있어요!” 그가 운영을 도맡고 있는 맥머도의 술집에는 파트타임 바텐더가 60명이 넘는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바텐더는 아무도 없어요. 기지에서 근무하는 배관공과 ‘이반’ 승무원, 건물관리인 같은 인력이 한 달에 두세 번씩 돌아가며 파트타임으로 근무해요.”

맥머도의 술집은 총 세 곳이다. ‘서던 익스포저(Southern Exposure)’는 크리너스와 레너드 스키너드 같은 1970년대의 음악을 자주 틀고, 다트와 당구, 셔플보드를 할 수 있는 싸구려 술집이다. 24시간 영업하는 ‘커피하우스(Coffeehouse)’에서는 에스프레소 음료와 와인, 리큐르를 판매하며, 포커 테이블과 영화 상영 공간이 있어 조용히 밤을 보내기 제격이다. 가장 큰 술집은 ‘갤리허스 펍(Gallagher’s Pub)’인데, 미국 해군이 맥머도를 운영하던 시기에는 군인용 클럽이었다고 한다.

산토스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괴상한 술집을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세 술집에서 취급하는 모든 물품을 1년에 딱 한 번만 주문한다. 그가 주문한 품목 중 일부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와이니미 항구의 화물선에 실린다. 나머지 품목을 싣기 위해, 화물선은 뉴질랜드의 리틀턴 항구에 들렀다가 남극으로 이동한다. 위스키와 와인, 병맥주가 대부분이고 콜라나 진저 비어도 같이 운반된다. (예를 들어, ‘갤러허스 펍’의 칵테일은 아이리시 위스키 ‘제임슨’과 뉴질랜드산 진저 비어 ‘맥스’, 라임 주스를 섞어 만든다.)

술값은 맥주 3달러, 칵테일 4달러다.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이유는 거래를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인터넷 대역폭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작년 품목에는 뉴질랜드 ‘에잇 와이어 브루잉’의 수제 맥주가 포함됐고, 올해에는 시범으로 취급할 생맥주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케그, 위스키 매장과 제휴해 명절에 선보일 스카치위스키도 있다. 남극의 술집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품목이 하나 있는데, 가니시로 사용할 레몬과 라임 등 각종 농산물이다. 현지에서 ‘프레시(Freshies)’라고 불리는 이런 농산물은 대부분 기지 내부의 카페에서 쓰인다.

술값은 맥주 3달러, 칵테일 4달러다.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이유는 거래를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인터넷 대역폭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지 내부에는 웰스 파고 은행의 ATM이 두 대 있다.

“옛날 광산촌과 작은 대학 캠퍼스가 섞인 곳 같아요.” 산토스는 맥머드 기지를 이렇게 비유했다. 맞는 말이다. 여름에는 모두 룸메이트와 함께 살며 층마다 욕실을 공유하지만, 겨울에는 방 네 개마다 욕실을 사용할 수 있다. 빙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 더욱 쾌적한 생활을 위한 공간이 할당된다.

거윈의 생각도 비슷하다. “어른용 여름 캠프 혹은 대학교 기숙사라고 불리곤 했어요. 그 말을 듣는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적절한 비교이긴 하죠. 지구에서 가장 공허한 지역 중 하나예요. 고독을 즐기려고 갈 만한 곳을 찾기도 쉽지 않고요.” 대학생의 기숙사 생활처럼, 맥머도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규칙을 악용하고 위반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요령 있는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면 ‘특별한’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아보카도 몇 개랑 금덩어리를 맞바꿀 수도 있는 곳이니까요. 내가 마지막으로 거기 머물렀을 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룸메이트랑 같이 냉장고에 농산물 대신 베이컨을 넣어뒀어요. 안전 문제 때문에 사용이 금지됐던 휴대용 전기 그릴도 가지고 있었고요, 대학생이 기숙사에서 하는 짓이랑 똑같아요. 우리는 관리인이 언제 방 검사를 하러 올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어요.”

두 가지 종류의 ‘얼음 조각’도 마찬가지다. 거윈은 그중 하나를 ‘빙하베리(glacial berries)’라고 부른다. 빙하에서 바다로 떨어진, 수정처럼 맑은 얼음 덩어리. 다른 하나는 선사 시대에 만들어진 빙하의 코어 샘플이다. 산토스는 그것을 ‘예수의 얼음(Jesus ice)’이라고 부른다. “허가된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술집에 들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의 방 안에서는 종종 등장해요. 미국국립과학재단에서 달가워하지는 않지만요.” 맥머도에는 현대식 편의시설이 많지만, 고속 인터넷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거주자끼리 서로를 즐겁게 해주며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다. “놀라운 점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가 없으면 이 기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이벤트를 기획할 때마다 커뮤니티의 멤버들에게 정말 많이 의지해요. 각자 가진 재능을 주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강의하기도 해요. 어떤 재능이든 다 좋아요..”

“작정하고 파트너를 찾아 나서는 게 아닌데도, 사람들끼리 눈이 맞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해요. 평생을 함께하거나, 몇 달만 함께하거나, 아니면 하룻밤을 불태우거나.”

남극의 핼러윈은 초여름인데, 그때 1년 중 가장 성대한 사교 파티가 열린다.  “핼러윈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을 엄청 화려하고 특이하게 꾸며요. 수족관 탱크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는가 하면, 한 명씩 남극에 서식하는 생명체로 변장하기도 했어요. 매해 초에는 음악 페스티벌인 ‘아이스스톡(Icestock)’이 야외에서 열리는데, 이날 무대에 오르는 15팀의 밴드는 모두 현지 거주자다. 매운 요리 경연대회를 개최한 적도 있고, 한 번은 목수들이 ‘톱벅스(Sawbucks)’를 열고 베일리스 아이리시 크림을 얹은 커피를 팔았다. 소프트볼 경기도 열렸었는데, 맥머도 주변에 있는 뉴질랜드의 기지에서 찾아온 원정팀도 참여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프트볼의 개수에 따라, 해협에 빠뜨린 공의 개수에 따라 토너먼트의 진행 방식이 결정돼요. 경기 시즌이 되면 기온이 30도 가까이 될 정도로 올라요. 소시지를 굽기 위해 그릴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 설치하기 시작하죠.”

맥머도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대해, 거윈은 이렇게 덧붙였다. “작정하고 파트너를 찾아 나서는 게 아닌데도, 사람들끼리 눈이 맞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해요. 평생을 함께하거나, 몇 달만 함께하거나, 아니면 하룻밤을 불태우거나.” 이곳은 성비 문제가 심각하다. 남성이 전체 인구의 75%나 된다. 하지만 거윈과 산토스가 주로 다니는 빙판 위에서 탄생한 커플만 해도 여러 쌍이다.

사실, 산토스 자신도 ‘갤리허스 펍’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고 바텐더로 근무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해가 절대 뜨지 않고 남극에 거주하는 인구가 80% 정도 줄어드는 겨울에는 모두 독방을 쓴다. 그런데 2013년, 약혼한 사이가 된 산토스 커플은 우연히 2인용 방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9개월 후, 그들의 첫 아이가 태어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산토스는 이 이야기를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햇빛도 없고 텔레비전 채널도 여덟 개밖에 없는 동네에 사람들만 남겨놓으면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임신한 것은 걱정거리가 아니었어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떠났고, 두 달 후에 결혼했으니까요.”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거윈은 자원봉사를 하며 남극의 모험을 이끌었다. 하이킹, 화산 등반, 펭귄 6만 마리가 사는 보호구역 방문이 포함돼있지만, 그가 이 ‘얼음 대륙’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맥머도의 사람들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중 몇 명은 이 빙판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에요. 이곳에서 맺은 우정은 영원해요.”

Credit

  • 에디터 김선희
  • Jason Horn
  • 사진제공 Alexey Seafarer/Shutterstock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