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기술

미안하단 말을 '제대로' 하는 방법.

젠더 평등을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가뜩이나 장애물이 넘쳐나는 이 길에 깊게 뿌리 내린 차별은 일상이 된 지 오래. 필자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이러한 차별 행동을 여성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로 묘사하곤 한다. 대다수 여성은 동시대 남성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신체적 조건을 맞추려고 애쓴다. 자신의 생식기 크기와 위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남자들 사이를 헤쳐나간다.

하지만 ‘#미투(metoo) 운동’ 이후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인 ‘사과’에도 이런 변화가 미치고 있을까? 여성들이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고군분투하는 동안, 수치스러운 짓을 벌인 남성 유명인들은 사과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테크닉조차 연마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보다 먼저 공감하는 능력조차 없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지금껏 미투운동을 촉발시킨 남성 유명인들이 그들의 사과문에서 유일하게 보여준 것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정도다. 심지어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등의 말로 진정성 없는 사과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줬을 뿐이다. 그들의 사과는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기보다 성희롱과 성폭행이 낳은 결과를 악화시켰다.

“진정성이 담기지 않거나 적반하장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과는 실패한 거예요. 곤란한 주제에서 잽싸게 빗겨나려는 태도가 보여도 마찬가지죠.” <당신은 왜 사과하지 않나? 배신의 치유 Why Won’t You Apologize? Healing Big Betrayals and Everyday Hurts>의 저자이며 심리학자인 해리엇 래너 박사의 말이다. “우리는 종종 진정으로 미안해야 할 대상에게 애매한 단어를 사용해 사과라고 볼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경우가 잦아요.” 저술가 카렌 A. 세룰로와 재닛 M. 루안은 사람들이 용서하는 이유에 대해 논문으로 밝힌 바 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공개적 사과를 할 때 가해자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지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미디언 루이스 CK는 가해자 기준으로 사과문을 전개하는 술수를 썼는데, 두 저자는 이러한 사과의 유형을 “가해자의 감정, 의도를 자세히 서술하긴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까지 인정하지 않는 사과”로 묘사했다. CK는 사과문에서 본인을 35번 언급했고 스스로 얼마나 존경받는 사람인지 4번 주장했으며, 피해자들이 제안한 합의의 조건을 말하며 이를 무효로 하려는 시도도 1번 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결과물은 자신이 한 짓을 인정하는(동시에 자신을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 자신이 초래한 고통을 인정하는(동시에 조금의 회한도 표명하지 않는) 헛소리와 같은 500단어로 된 성명서였다. 그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한편 CBS 뉴스앵커 찰리 로즈는 정반대의 짓을 했다. 그는 사과는 하면서도 못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을 옹호해왔는지 언급하며 성명서의 운을 뗐다. 실제로 여성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 하더라도 8명의 여성이 주장한 성희롱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하지 않은 것이다. 세롤로와 루안의 분류에 따르면 이러한 사과를 이중 배열(double-sequence)라고 부른다.

그의 사과문에 등장한 용서의 문장은 본인이 저지른 짓만 상기시키는 게 아니라 원래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종류의 사과는 가해자를 죄인인 동시에 그 나름대로 피해자로 그려내며, 대중이 못된 짓이라 판단하는 것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청중은 성명서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이보다 더 끔찍한 사례도 있다. 미국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는 사과문 발표를 피자도우 레시피를 홍보하는 기회로 써먹었으며 영화감독 제임스 토박은 그를 고발한 300명의 성폭행 피해자를 “거짓말쟁이이거나 멍청한 놈, 혹은 둘 다”라고 욕한 사례도 있다.

결혼기념일을 깜빡했거나, 동료 직원과 시시덕거렸다는 이유로 침실에서 쫓겨나본 적 있는 남성이라면 이보다 더 심한 사과를 하지 않기 위해 공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남자들은 진정성이 덜 담긴 사과를 기어코 하려 한다. 본능적인 방어가 이성적인 공감 능력보다 더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 경우 우리는 방어 본능을 가장 먼저 해제해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피해자가 알아주길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만 해요.” 레너의 설명이다.

“사과하지 않는 사람은 자존감이 현저히 낮은 상태로 최소한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 방어하는, 마치 협곡에 걸친 외줄을 타는 셈이죠.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이 탄탄한 사람은 무슨 일에 대해서건 사과하는 일을 뼈아프게 여기지 않아요.”

유명인들은 가해 행위를 한 뒤 대중적 이미지 등을 걱정하며 책임을 회피하다가 결국 소송까지 간다. 설상가상 형편없는 사과문으로 일을 더 민망하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지독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사과는 사건의 끝을 맺어주는 결말이라 할 수 있어요. 또한 피해자에겐 치유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죠.” 뉴욕 소재의 PR 회사의 사장 마리안 살츠먼의 조언이다. 실츠먼은 명성이 위태로운 의뢰인들의 명성을 회복하며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넘쳐나는 시기를 겪고 있어요. 그러니 비슷한 사과를 해봤자 아무런 울림을 줄 수 없는 거죠.” 그는 사과 속엔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레너의 주장에 동의한다. “사과에는 진정이 담겨있어야 해요. 공개적인 사과의 경우 더욱 그렇죠. 사과의 울림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이밍을 완전히 잘못 잡았기 때문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치유하는 데 필요한 시간의 가치를 잘 몰라요. 올바른 타이밍을 포착하는 일은 정말 중요해요. 상황을 지나치게 오래 끌고 가도 안 되겠지만, 정신이 사나운 순간에 무턱대고 사과하는 것도 안 될 일이죠.” 당신이 비단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인과관계는 잘 알아두어야 한다.

격분하여 얼굴이 벌건 사람에게 사과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저지른 짓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그 일로 빚어진 고통이 사그라질 때까지 놔두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개 사과와 달리 개인적인 사과는 일련의 공식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인간을 향한 진심 어린 회한과 연민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며, 제대로 된 사과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앙금 없이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보기 좋은 결과만을 염두에 두고 사과하는 것은 곧 실수를 부를 것이다.

“진짜 사과는 피해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용서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죠.”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일러스트 Kluva
  • Jennifer Neal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