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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디 라머의 아름다운 외모와 지성

매혹적인 배우이자 뛰어난 과학자, 헤디 라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밤쉘>.

헤디 라머

1940년대 할리우드의 섹스 심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인류의 편리한 생활에 이바지한 과학자. 모두 헤디 라머에게 해당하는 문구다. 1913년 오스트리아 태생의 배우인 그는 왜 이렇게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을까? 지난주 개봉한 영화 <밤쉘>은 파란만장했던 헤디 라머의 삶을 탐구한다.

대중의 기억 속 헤디 라머의 모습은 <삼손과 데릴라>(1949)의 데릴라가 가장 익숙할 테다. 데뷔작 <엑스터시>(1933)로 화제가 된 그는 십여 개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미인의 반열에 오른다. ‘백설 공주’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 되고, ‘캣우먼’의 탄생에 영감을 줄 만큼. 그리고 그는 ‘깜짝 놀랄 만한, 섹시한 매력을 가진 여성’을 의미하는 ‘밤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한편, 10대 시절의 라머에게 주변 사람들이 붙인 별명은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범상치 않은 생각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젊은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지, 그 진실은 1990년 경제지 <포브스>를 통해 밝혀졌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라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이들을 태운 잠수함이 어뢰 공격을 당했다는 비참한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그는 보안 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무선 통신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주파수 도약’이라는 기술을 발명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기술은 오늘날의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그리고 다양한 무선 통신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심지어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인 구글은 3년 전 “헤디 라머가 없었다면, 구글도 없었다(No Hedy Lamarr, No Google!)”라는 헌정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머가 언제나 화려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다. 전성기 이후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갔다. 촉망받는 인재이기 이전에 그는 유대인이자 이민자이고 여성이었다. 만약 차별을 받지 않았다면, 라머의 인생은 꽤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뛰어난 미모로 일찍이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과학적 업적이 드러났을 때 그는 이미 77세의 나이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밤쉘>의 제작자인 수잔 서랜든은 존경하는 선배였던 헤디 라머를 주인공으로 세우며 “아름답고 똑똑한,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전할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상영이 시작되면 헤디 라머의 진솔한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목소리가 들린다. <밤쉘>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 라머 본인의 음성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 있고 당당하게 자신이 지향하는 꿈을 이뤄낸 그가 전하는 메시지 앞에는 그 어떤 부당한 차별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인종과 국적과 성별을 넘어, 이 세상의 모든 ‘헤디 라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Credit

  • 에디터 김선희
  • 사진제공 영화사 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