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혁명은 어떻게 레슬링계를 장악했나?

비키니, 란제리 같은 차림이 아닌 진정한 운동 정신이 통했다.

“사람들은 레슬러가 어떤 스타일로 경기에 나서야 하는지, 내가 외모를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 늘 말하고는 해요. 그런 것이 싫어요.”

“일본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요.” 호주 출신의 레슬러 토니 스톰의 말이다. 22세인 그녀는 일본 여성 레슬링 프로모션 스타덤(챔피언 벨트를 보유한)의 로고가 새겨진 운동복 차림이었다. “첫 일본 투어를 마치고 세상으로부터 조금 더 존중받았다는 느낌을 받으며 귀국했어요. 거기서 꽤나 힘든 활동을 했거든요.” 스톰은 13세 때 어머니의 지원을 받으며 훈련을 시작했는데 딸의 훈련비를 벌기 위해 어머니는 레슬링 경기장에서 핫도그를 팔고는 했다. “1인 록 밴드 같은 존재예요. 에이전트도 없고 매니저도 없어요. 내가 버는 수입의 상당 부분은 마케팅으로 사진을 판매하는 거예요.” 그녀는 영국에서 일본까지 투어하며 100경기 이상 뛴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막 마친 참이었다. 스톰은 ‘제2의 토니 스톰’을 발굴한다는 목표 아래 로스앤젤레스 한 외곽의 미국재향군인회 회관에 있었다. 여성 레슬링의 붐이 대대적으로 일고 있는 이 시대의 최전선에 말이다.

매트에 앉은 여성들의 눈이 두 여성을 보고는 휘둥그레졌다. 한 명은 스타덤의 레슬러 크리스 울프, 다른 한 명은 80년대와 90년대에 갈기 같은 파란 머리를 세우고 얼굴에는 번개 모양을 그리고 경기를 뛴 일본 출신의 레슬러 불 나카노였다. 나카노는 상대선수들의 가슴을 강타할 때마다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고는 했다. 그는 일본 여성 프로 레슬링 프로모션에 뿌리를 둔, 살아있는 전설이다. 언더그라운드 펑크 밴드와 비슷한 신세가 돼버렸지만, 그들의 활동을 본 모든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녹화한 경기 테이프를 팬끼리 돌려보지 않았다면, 그들의 존재를 몰랐을 겁니다.” 30년 넘게 프로 레슬링을 취재해온 데이브 멜처의 설명이다. “당시 인터넷이 있었다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35년 전에 벌어졌을 겁니다.”

“크리스 울프와 불 나카노가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침내 미국에서도 메인 경기의 선수들로 스타디움에 등장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해요.”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캘리포니아 남부의 인디 신을 개척한 인물 중 한 명이던 레슬러,치어리더 멜리사가 한 말이다. 그녀는 프로 레슬링계의 메이저리그라 할 수 있는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에 지원한 적 있지만, 순전히 파멜라 앤더슨과 닮지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한동안 파멜라 앤더슨은 WWE가 TV에 등장시키려던 전형적인 외모의 인물이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자리를 달라고 지원한 셈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위한 무대가 준비되지 않았던 시기에 기량이 절정에 올랐던 멜리사는 추억했다.

“WWE는 여성 레슬러에게 계집애처럼 경기하라고는 했어요. 여성 레슬러는 소규모의 독립 단체에서 남자처럼 훈련받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여성은 유치한 싸움-머리끄덩이 잡기, 뺨 때리기, 링에서 살포시 굴러떨어지기-을 벌여야만 한다는 레슬링계의 ‘성적 대상화 전통’을 비판하며 멜처가 한 말이다. 레슬링계의 여성에게 지금이 그토록 중요한 시기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주류에서 활동하던 여성 레슬러의 처지는 무척이나 오랫동안 열악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여성레슬링이 스포츠로 존중받게 된 거예요.” 스톰은 뿌듯해했다. “여성 레슬러가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존재여야만 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거죠.”

여성레슬링 프로모션 단체인 라이즈와 쉬머를 각각 창립한 케빈 하비와 데이브 프라작은 진흙 레슬링과 소프트코어 포르노 매치가 인기였던 2000년대 중반의 시기를 종식하려 애쓴 프로모터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여성 레슬러를 이벤트 도우미처럼 링에 등장시키던 몇 년의 시기를 거친 후 새로이 나아갈 길을 재정비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WWE는 현재 상황을 “여성들의 혁명(Women’s Revolution)”이라는 브랜드로 다시 이름 붙였다. 남성의 가랑이에 발길질을 하는 민초로부터 압력을 가한 결과물이다. “인터넷 덕에 레슬링 팬들은 여성 레슬러가 운동선수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일본이나 인디 신의 여성레슬링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됐죠. ‘WWE는 어째서 아직까지 저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야?’”

WWE에서 ‘여성들의 혁명’이 발발한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가 하는 것은 레슬링계에서 제일 논란이 많은 주제 중 하나다. 그거야 어쨌든, 2014년과 2016년 사이 UFC에서 정상에 올랐던 론다 로우지는 여성 파이터도 유료 시청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여성 레슬링 경기를 보기위해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주장이 먹혔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그런 주장이 더 이상은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버렸죠.” 로우지는 현재 풀 타임 프로 레슬러로 WWE와 계약한 상태다. 오래 전인 1980년대 말 일본의 도장에서 기량을 연마한 론다 로우지와 비슷한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여성레슬링에 진정한 운동 정신을 도입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일본에 먼저 진출해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WWE 명예의 전당에 오른 마두사의 회상이다. 그녀는 ‘앨런드라 블레이즈’로 이름을 바꾼 1990년대 미국 여성 레슬링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블레이즈는 WWE에서 활동한 짧은 기간 동안 나카노와 맞붙어서 시대를 앞서간 과격하고 기술적으로 빼어난 여성의 레슬링을 연달아 선보였다.1995년 마두사는 여전히 챔피언에 등극한 상태지만 WWE에서 영구 제명됐다. 지금도 여전히 비판받는 행보에 따라 그녀가 속한 디비전도 사라졌다. “잃어버린 시대예요. 우리는 다짜고짜 길 밖으로 밀려났어요.” 그녀의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부터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멜처는 북미의 팬이 마두사의 ‘과격한 스타일’ 레슬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WWE의 패배를 모르는 메가스타 아스카가 현재 보여주는 스타일이 바로 그것이다. WWE는 ‘여성들의 혁명’에 기름을 붓는 걸 도우려고 일본의 레슬러들을 선발했다. 이 혁명은 부분적으로는 페미니스트의 봉기이고, 부분적으로는 마케팅 캠페인인 셈.

“나는 ‘여성들의 혁명’에 관한 WWE의 입장에는 동조하지 않아요. TNA가 이미 10년 전에 운동을 시작했으니까요.” 얼굴에 페인트를 칠하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지껄이는 악마 레슬러로 토론토 기반의 레슬링 프로모션 TNA의 여성 디비전을 이끌면서 지난 3년을 보낸 예전의 럭비 스타 로즈마리의 주장이다. 로즈마리는 임팩트 레슬링(Impact Wrestling)으로 불리는 TNA가 일으킨 제2의 물결의 일원으로, 2007년에 TNA가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챔피언 왕관을 씌워주던 시대가 낳은 부산물이다.

“비키니나 란제리 차림의 여성레슬링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어요.” WWE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여성 레슬러에게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으로 경기를 뛰게 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것을 언급하며 로즈메리가 한 말이다. 당시에 그녀가 존경했던 유일한 여성레슬러는 1997년 WWE에 데뷔한 근육질의 천하장사 차이나 같은 불량배 유형의 레슬러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나를 ‘차이나’라고 부르고는 했어요.” 그녀의 회상이다. “나는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였죠.” “그런 행태는 보는 사람에게 무척이나 큰 소외감을 안겨줬죠. 레슬러가 허황된 존재처럼 느껴지게 했고요.” 로즈메리가 이야기했다. “그런 행태는 내가 TNA를 시청하기 시작했을 무렵 바꼈어요.” 그건 2007년경으로, 그녀가 TNA의 녹아웃 디비전에서 뛰는 새로운 여성레슬러 무리를 발견한, 레슬링 덕후에 불과하던 때였다.

붐의 발원지는 TNA 본사일 것이다. 게일 킴이 일본과 멕시코 레슬러의 경기 동영상을 연구한 곳으로, 그녀는 남성 보스의 시선을 끌어모은 과학적인 동시에 예술적으로 최정상에 오른 퍼포먼스들을 갈고 닦는 데 전념했다. “내가 자라던 시기인 80년대에는 우러러볼 대상이 정말로 아무도 없었어요.” TNA 녹아웃의 초대 챔피언이자 WWE를 위해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으로 치욕적인 첫 경기를 치렀던 전직 WWE 디바인 킴의 설명이다. “TNA는 내가 내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 허용했어요.” 킴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녀보다 한 세대 앞선 마두사처럼, 그녀도 예술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당시,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 이야기는 ‘세상에 여성레슬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였죠. 그런 분위기는 내가 콩하고 라이벌 관계가 된 후로 바뀌었죠. 내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일이 바로 그거예요.”

어썸 콩은 체중이 113kg이나 나가는 흑인 여성으로 2000년대 초반 일본의 도장에서 기량을 연마한 레슬러다. 그녀는 글래디에이터처럼 차려입고는 무시무시한 스피닝 백 펀치를 날렸다. 그러고는 덩치 면에서 그녀보다 한참 왜소했던 킴과 끝내주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우리는 레슬링 최고 시청률을 끌어내고 있었어요.” 킴의 말이다. 그녀와 콩은 2000년대 후반TNA 텔레비전의 가장 뛰어난 라이벌 매치 중 일부를 낳는 데 도움을 준 근성 가득한 경기를 펼치면서 제대로 된 진짜 운동경기처럼 펼치는 여성레슬링이 높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어썸 콩은 레슬러로 성공하는 데 모델처럼 생길 필요는 없다는 걸 증명했어요.” 영국 출신의 거구의 레슬러 바이퍼 니벤이 한 말이다. “그녀 덕에 나는 이 일을 계속하게 됐죠.” 니벤의 인기는 최근에 WWE가 처음 개최한 매 영 클래식에서 경기를 펼친 이후 크게 올랐다. 매 영 클래식은 지난여름에 초빙된 여성 레슬러끼리 벌인 토너먼트로, 거기에는 니벤의 라이벌인 토니 스톰 같은 독립 레슬러들이 포함됐다. “레슬러는 인간과 초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에요. 협회는 레슬러가 어떤 스타일로 경기에나서길 원하는지, 내가 외모를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를 늘 말하고는 해요. 나는 그런 것이 싫어요.” 니벤은 매 영 클래식을 그런 정해진 틀을 깨부수는 기회로 봤다. “나는 사람들이 그냥 나나 나 같은 사람들을 자기들 잣대로 분류하는 걸 그만두게 만들고 싶은 것뿐이에요.”

현재, WWE는 다수의 세계 최정상급 여성레슬러들과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하지만, “붐”에 속하지 않은 일부 외부인들은 여전히 프리에이전트 상태로, 그들의 재능은 빅 리그와 계약한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시라이 이오는 세계 최고예요. 더 이상 군말이 필요 없어요.” 지금은 스타덤을 위해 경기를 뛰고 있는 니벤이 한 말이다. 시라이 이오는 스타덤 프로모션에서 남자레슬링과 여성레슬링 사이의 격차를 좁히는 경이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레슬러. 시라이는 17살 때 일본의 도장에서 레슬러가 되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체조선수로 혹독한 훈련을 했었는데, 그 덕에 그녀는 진정으로 저돌적인 경기를 펼치는 선수가 되는 데 필요한 깜짝 놀랄만한 메커니즘을 익힐 수 있었다.

“레슬러가 되기 전까지는 레슬링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시라이의 고백이다.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가 날아오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프로 레슬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내게 털어놨다. “커리어를 계속 쌓아가는 동안, 그 세계가 얼마나 위대한 곳인지를 깨달았어요.” 그녀가 최근에 도쿄에서 벌인 시합들은 –그녀를 상대한 선수들 입장에서는- 세레나 윌리엄스를 상대로 테니스를 치는 것, 또는 바리시니코프와 춤을 추는 것과 똑같은 경기들이었다. “처음으로 챔피언이 됐을 때는 압박감을 감당 못 하고 으스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시라이가 한 말이다. “하지만 내 정신과 육체는 더 강해졌고, 그러면서 정상에 오르는 것이 더욱더 큰 보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시라이는 자신을 레슬링계의 르브론 제임스로 만들어주는, WWE부터 임팩트까지 모든 단체들이 선발하고 싶어 하는 경이로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커리어를 조용히 채워가고 있다.

시라이는 정확한 발원 시점을 알지는 못하지만 계속해서 광속으로 발전하고 있는 여성레슬링 붐의 최정상에 서있다. 토니 스톰과 바이퍼 니벤, 로즈마리 같은 많은 레슬러들의 어깨 위에 서있는 것이다. 3년 전, 서로 말을 섞지 않은 채로 20년을 보낸 후, 마두사는 마침내 그녀의 옛 보스이자 레슬링계에서 제일 힘 좋은 인물인 WWE 회장 빈스 맥마흔(Vince McMahon)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가 나를 보더니 이러더군요. ‘앨런드라, 우리는 당신 같은 여성들이 많이 필요해. 당신은 지금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딱 그런 사람이야. 또 다른 당신들이 말이야.’” “나는 할 말을 잃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걸 아는 데 20년이나 걸렸다니 말 다한 거 아닌가요?”

Credit

  • 에디터 김민지
  • Art Tavana
  • 사진제공 Christian Bertrand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