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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군단, 최악의 월드컵

지난밤의 순간을 독일의 관점에서 되돌려봤다.

월드컵 통산 4회 우승,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피파 랭킹 1위. 16강 진출에 대해 그 누구도 ‘설마’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스웨덴에 승점을 허용했을 때도, 멕시코를 가까스로 꺾었을 때도 독일에겐 ‘최약체’ 대한민국과의 3차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F조 4위라는 기록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전차군단은 이번 경기를 통해 무엇을 잃었을까? 지난밤의 순간을 독일의 관점에서 되돌려봤다.

80여 년만의 조별리그 탈락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그동안 월드컵에서 거둔 성과는 화려하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됐던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1라운드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지만, 그 이후로는 꾸준히 선전하며 우승 4번, 준우승 4번이라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80년이 흐른 지금, 독일은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조별리그 탈락. 1승 1패로 부진던 독일은 지난 3차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어야 가까스로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이 독일을 이겨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했고, 첫 패배를 안겨줬던 스웨덴은 멕시코를 상대로 세 골이나 넣어버렸다. 독일의 일간지 <빌트>는 ‘월드컵 최악의 망신’이라며 혹평을 쏟았다.

아시아 팀을 상대로 당한 최초의 패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열렸던 독일과의 준결승전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 국민이라면 어제의 승리가 더욱 짜릿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를 지켜보던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서도 충분히 비슷한 희열을 느낄 만하다. 월드컵에서 독일에 패배를 안겨준 아시아의 국가는 대한민국이 최초이니. 전차군단은 지난 월드컵까지 총 네 번 아시아 팀을 마주해 모두 무찔렀다. 심지어 아시아 팀에게 골을 내준 것도 1994 미국 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점수 차이. 최근 12년간 독일이 A매치에서 2점 이상 실점하며 진 비율은 고작 5% 정도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와 전 세계가 놀란 이유가 있는 셈이다.

마누엘 노이어의 몰락 독일의 축구 통계 사이트인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독일 선수들의 전체 몸값을 한국 선수들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이다. 게다가 손흥민(약 652억 원)보다 몸값이 높은 독일 선수는 총 7명. 토니 크로스, 메수트 외질, 마르코 로이스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은 어제의 한국 선수들 앞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가장 기대에 못 미쳤던 선수는 골키퍼인 마누엘 노이어. 그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골문을 든든히 지키며 ‘골기퍼계의 일인자’로 자리 잡았지만, 승리가 간절한 팀을 위해 경기 종료 직전부터 총공격에 가담했다. 그리고 손흥민은 텅 빈 상대의 진영으로 파고들어 가 쐐기 골을 넣었다. ‘맨 오브 더 매치’ 조현우는 영국 BBC로부터 8.85점을 받았지만 노이어는 2.59점에 그쳤다.

요아힘 뢰브 감독을 향한 실망 2006년부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은 요하임 뢰브 감독. 지난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포함해 여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도록 이끌었던 그는 지난달 계약을 2022년까지 연장했다. 독일 축구협회 또한 “뢰브 만한 감독이 없다”라며 그를 향한 깊은 신뢰를 내비쳤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독일이 16강의 문턱에서 좌절하자 그에게 실망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팬들은 감독 경질까지 주장하고 있는 상황. 경기 직후 뢰브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한국을 이기지 못해 큰 충격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우리의 분위기가 정말 우울했다. 평소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졌다.” 그는 과연 독일 팀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재기할 수 있을까?

디펜딩 챔피언의 저주 독일이라면 통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역시 징크스는 무서웠다. 직전 월드컵에서 우승한 팀에게는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다음 월드컵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가 2002 한일 월드컵의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시작된 이 징크스는 지금까지 브라질, 이탈리아, 스페인의 앞길을 막았다. 아니나 다를까,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2연패에 도전하던 독일은 대한민국이라는 복병을 만나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역시 저주는 저주였다. 물론, 100여 분 동안 혼신이 힘을 다한 대한민국 선수들의 공도 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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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김선희
  • 사진제공 Vlad1988/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