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은 잘못이 없다.

그리고 히딩크는 아직 배고프다.

지금 대한민국 축구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히딩크’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외국인 감독으로 꼽히는 그 거스 히딩크(Guus Hiddink)가 맞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그의 이름이 걸린 기사가 올라오고, 뜨겁다 못해 펄펄 끓어 넘치는 열기의 논쟁이 축구팬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다. 하다못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해 화제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대체 왜 그의 이름이 다시 들려오는 것일까?

거스 히딩크

지난 9월 6일(한국 시간) 있었던 월드컵 최종예선 A조 마지막 경기 우즈베키스탄전 직후로 돌아가 보자.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는 안도감과 여전히 좋지 못한 경기력에 대한 불만이 공존하던 그때, 지금의 상황을 촉발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지난 6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을 선정하던 기간에 ‘한국 축구의 영웅’ 히딩크가 대표팀 감독 부임에 관심을 표했다는 내용이었다. 정보 출처는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인 노제호 씨로, 그는 당시 이 내용을 협회에 전달했으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6월 당시 “(적당한)외국인 감독을 찾기 어렵다”며 국내 감독 선임을 추진했던 협회의 입장이 대단히 난감해지는 상황. 하지만 협회는 “연락받은 적도 없고, 논의할 가치도 없는 내용”이라며 히딩크 재단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둘 중의 하나는 거짓을 말하는 상황. 자연스레 분위기는 진실 공방의 양상으로 흘렀고,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축구 팬들도 “히딩크 측의 언론 플레이”라는 주장과 “협회의 기만행위”라는 주장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의 김호곤 부회장이 의도적으로 히딩크 측 연락을 받고도 침묵했다는 후속 보도가 나오며 상황은 달라졌다. 즉, “외국인 감독 후보를 찾기 어렵다”, “히딩크 측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던 협회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다. 파장은 엄청났다. 이 정도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게 아니라 폭탄 투척이나 다름없었다. 이 와중에 김호곤 부회장은 “메신저로 연락을 받아 공식적인 연락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 같잖은 변명을 내놓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협회 측 인사들이 얼마나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모든 언론과 여론이 협회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성토하는 가운데, 뜨거운 논쟁거리가 등장했다. 바로 현 감독인 신태용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당 의견은 대표팀의 잇따른 부진과 협회의 그릇된 행동으로 분노한 축구 팬의 많은 지지를 받으며 대한민국 축구의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본론부터 말하자면, 이 의견은 논의할 가치가 없는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독 사퇴를 말하는 이들의 명분은 다음과 같다. 감독 선임의 절차상 문제가 있었고, 세계적 명장 히딩크의 의향을 알았으니 응당 감독을 교체해야 하고, 무엇보다 최종 예선 마지막 2경기의 내용이 엉망이었으니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비논리적 억지 주장에 가깝다. 첫 번째로 감독 선임의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점부터 살펴보자. 슈틸리케 감독 경질 직후 대한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을 포함한 몇 명의 국내파 감독을 차기 대표팀 사령탑 후보군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김호곤 부회장을 비롯한 협회가 감독직 의사가 있음을 표현한 히딩크 측의 연락을 받고도 모른척했고, 외국인 감독을 찾기 어렵다는 식의 거짓말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는 분명 도의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부분이지만, 신태용 감독의 선임 절차는 이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몇몇 네티즌은 ‘부정 취업’이니 ‘청탁’이니 하는 단어를 써가며 비난하고 있으나 이는 억지다. 신태용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과 클럽팀 감독 커리어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고, 대표팀 감독 부임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애초에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이 부정을 써서 감독직을 따낸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어서 이제라도 히딩크의 의향을 알았고, 그의 역량이 훨씬 뛰어나니 감독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분명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 4강의 업적을 이루고 나아가 대한민국 축구의 토양 자체를 한 단계 발전시켰으며 레알 마드리드, 첼시 등의 세계적 클럽들과 여러 국가대표를 지휘한 풍부한 경험을 지닌 세계적 명장이다. 그렇지만 이런 히딩크의 화려한 업적과 경력이 현임 감독을 강제로 끌어내릴 근거가 되진 못한다. 박근혜가 무능력하다는 것은 온 국민이 다 알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유로 들어 탄핵하지 않았다. 국정농단이란 명분이 있었기에 탄핵을 했다.
반면 신태용은 ‘히딩크에 비해’ 경험과 업적 면에서 밀릴 뿐 대표팀 감독을 맡을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고, 감독직을 내놓을 잘못을 하지도 않았다. 개중에 “어찌 됐건 국민이 원한다”고 우기는 이도 있지만, 일단 이 전제 자체가 부실하다. 정말 국민이 원해도 협회의 인사에 관여할 수는 없다(아쉽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자체 수익으로 운영되는 사단법인, 사기업이다).

마지막으로, 최종 예선 2경기의 경기력이 형편없으니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확실히 신태용 감독 지휘하에 벌어진 두 경기 모두 승리가 없었고, 경기력도 좋지 못했다. 하지만 천천히 경기 내용을 복기한다면 마냥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이란전부터 살펴보자. 이란은 현재 피파 랭킹 25위에 올라있는 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현 이란 대표팀은 역사상 최고의 황금 세대라 불리고 있다. 우리로 치면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인 셈. 반면 대한민국은 랭킹 51위로, 48위인 아이티보다도 낮다. 최근 피파랭킹이 실력과는 별 연관이 없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기록으로 보자면 지금 현재 이란은 명백히 우리보다 훨씬 강한 팀이다. 전임 슈틸리케 감독이 이끈 첫 번째 이란전에서 우리는 무려 유효슈팅 0개를 기록하며 내내 끌려다니다 0-1로 패했었다. 하지만 신태용호는 이란을 상대로 무실점으로 승점 1점을 따냈다. 홈의 이점이 있었지만, 대표팀의 가장 큰 전력인 주장 기성용의 결장을 고려하면 선방이라 볼 수 있는 결과다.
우즈베키스탄전의 무승부는 상당히 아쉬운 결과였지만 이란전과 비교해 준비된 공격 전술에 의한 득점 기회를 많이 창출했고, 신태용 감독이 뽑은 염기훈 같은 베테랑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신예 김민재의 발견이란 수확도 있었다. 무엇보다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대표팀이 엉망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임 감독 슈틸리케의 책임이지 신태용의 탓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엉망이 된 대표팀을 이어받아 짧은 준비 기간과 여러 악조건을 이겨내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감독 사퇴를 외치는 이들은 과연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성질대로 일이 되지 않음에 화를 내는 것일까? 어쨌든 아직 ‘헹가래’보단 격려의 박수가 필요한 시점인 건 확실하다.

Credit

  • 에디터 윤신영
  • 무스비
  • 사진제공 대한축구협회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