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헤프너, 그는 어두운 사회에 밝은 조명을 켰다

1965년 ‘플레이보이 재단(Playboy Foundation)’을 설립했다.

자기 뜻과 맞는 사람을 모아 1953년 12월 처음 <플레이보이>를 선보인 휴 헤프너. 그는 늘 뒤로만 감추고 쉬쉬하던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저녁 식탁의 이야깃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1965년 ‘플레이보이 재단(Playboy Foundation)’을 설립했다. 시민의 자유를 비롯한 성 연구 및 교육, 다방면의 개혁 운동을 위해 지역 기금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휴 헤프너는 1974년 1월호 <플레이보이>의 인터뷰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이 사회적 구조에 매우 큰 해를 끼치고 있는 지금, 플레이보이 재단은 마리화나 법 개혁을 위한 국가 기구 중 가장 큰 재정적 후원자다”라고 전했다. 그 당시는 미국에서 청교도적 분위기 때문에 대중은 어둠 속에서 성관계를 나누고 있었다. “성욕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대중에게 건강한 성적 표현을 공개적으로 권장한다. 나와 <플레이보이>가 하는 건 단지 조명을 켜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위해 <플레이보이>뿐만 아니라 플레이보이 재단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플레이보이 재단의 자선 활동을 통해 그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그는 자선활동과 편집자로서의 신념을 담은 ‘플레이보이 필로소피’를 통해 <플레이보이>가 단순히 포르노 잡지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휴 헤프너는 “나는 <플레이보이> 성공의 요인을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 사회와 도덕적 가치가 많이 변했고, <플레이보이>가 이러한 변화를 최초로 반영한 매체다. 우리는 대중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언제나 그는 성, 문화, 사회에 대한 건강한 담론을 끌어냈다.

현재 그의 아들 쿠퍼 헤프너 역시 그의 뜻을 이어받아 집단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제안한다. 어쩌면 휴 헤프너에게 91년이라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쿠퍼 헤프너는 이렇게 그를 추도했다. “휴 헤프너는 언론의 자유, 시민권, 그리고 성적 자유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움직임을 지지하는 데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플레이보이>의 정신과 기조를 세운 그를 모두가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플레이보이> 성공의 요인을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 사회와 도덕적 가치가 많이 변했고, <플레이보이>가 이러한 변화를 최초로 반영한 매체다. 우리는 대중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 휴 헤프너(Hugh M.Hefner)

Credit

  • 에디터 한수연
  • 포토그래퍼 Joe Seer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