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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파를 찾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이 소장파 노릇을 하는 지금, 진짜 젊은 정치가들이 사라졌다.

1965년 5월. 한 젊은이가 입사 원서를 냈다. 필기시험을 보았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합격 통지 대신 면담을 하자는 전보가 온 것이 아닌가. 젊은이는 훗날 쓴 자서전에서 인사부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필기시험 성적은 아주 좋은데…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구먼. 아직 높은 분 들은 모르지만 곧 보고해야 합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소?”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의 주동자로서 6개월간 감옥에 갔다 왔기 때문이었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 청년이 누구인지 짐작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이명박이다. 위에서 인용한 그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 따르면, 시위와 수감 경력 때문에 입사가 좌절될 위기에 처한 이명박은 박정희 대통령을 상대로 탄원서를 썼고, 민정 담당 비서관 이낙선의 연락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청와대에서 편지를 받고 도움을 제공한 것이다.

이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일개 전과자가 아니라 이른바 ‘6·3세대’의 대표 격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김덕룡, 이재 오, 서청원, 손학규, 정대철, 이부영, 고 김근태 등이 그 세대에 속하는 대표적 정치인들이다. 6·3세대의 일원으로서, 이명박도 운동권이었고, 한때는 소장 파였던 정치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소장파를 오늘날은 볼 수 없다. 왜 소장파가 실종되었을까? 왜 옛날처럼 젊은이들이 한데 뭉쳐 세를 과시하고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세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한국 정치의 시간적 적층 구조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4·19 혁명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을 지칭하는 4·19세대, 6·3 항쟁을 주도한 대학생들을 일컫는 6·3세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결속하게 된 5·18세대 혹은 386세대까지 말이다. 이들 모두는 한 가지 큰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어떤 도덕적 당위를 내걸고 당대의 권력과 투쟁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개척했다는 점 말이다.

이승만과 싸우던 학생들에게는 민주주의가 당위였다. 박정희의 한일협정에 반대하던 대학생들은 “일본과 굴욕적인 협상을 맺을 수 없다”는 민족주의적 당위를 앞세웠다. 전두환과 투쟁하던 386세대가 지니고 있었던 도덕적 당위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안 없는 비판’을 한다고 힐난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4·19 혁명 직후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날이면 날마다 온갖 시위가 계속되었다. 오죽했으면 “더 이상은 데모를 하지 말자”는, 마치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크레타 사람 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역설적인 집회가 열리기까지 했겠는가. 결국 권력은 육군 소장 박정희와 그를 따르던 육군사관학교 8기생들의 손에 넘어갔다.

6·3항쟁 이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선택지는 일본과 수교를 맺고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는 것뿐이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의 휘황찬란한 성공을 지켜본 한국인들은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한 해 뒤인 1965년 김종필이 한일협정을 타결시켰고 경제 성장의 시동이 걸렸다. 그러자 6·3세대는 한일협정 폐지 투쟁에 나서는 대신 이미 획득한 나름의 입지를 바탕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나갔다.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명박처럼 말이다.

한때의 소장파였던 386들이 기성세대로서 나잇값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신세대가 치고 나올 여지가 생긴다. 사회는 안정과 변화의 두 바퀴로 굴러가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른다.

386세대는 전두환의 신군부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족보’를 새롭게 써나가기로 했다.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부역자들을 다 쓸어내지 못한 미국의 꼭두각시인 반면, 휴전선 너머 북한은 이른바 ‘역사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퍼져나갔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운동권은 북한의 세습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된 주체사상에 빠지거나, 마르크스주의의 열화복제된 판본인 소련식 공산주의 이론에 함몰되고 말았다. 이들의 세계관은 금방 한계에 봉착했다.

자본주의의 몰락과 공산주의의 승리를 예견한 운동권 이론과 달리, 1988년 서울올림 이 성황리에 치러졌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1991년에는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었고, 역사의 정통성을 담지하고 있다는 북한은 1995년부 터 1998년까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에 시달렸다. 혁명의 꿈을 접은 386세대는 급속도로 현실 정치와 결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모든 ‘소장파’들은 결과론적으로 볼 때 지는 편에 서 있었다. 독립한 지 고작 10여 년 지난 신생 국가를 견인할 능력도 없었고,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한 채 어 떻게 세계 경제에 편입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했으며,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하고 있고 북한은 독재정권의 혈통적 세습 체제로 퇴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혁명을 하겠다고 설치고 다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젊은이였던 시절, 사회는 그들을 탄압할지언정 무시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이는 감옥에 갔고 때로는 목숨을 잃었으며 권력과 맞서 싸우는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젊은 지성’의 발언은 언제나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존중 받았고 그러한 상징자본을 담보로 그 들은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청년들 스스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들에게 언제나 퇴로를 열어줬다는 것이다. 한일협정에 반대한다고 데모해놓고 전과 때문에 입사를 못 할 위기에 놓이자 청와대에 탄원 편지를 넣었던 1965년의 이명박에 대해 생각해보자. 2012년 이명 박이 대통령이던 시절의 청와대가 그런 운동권 청년의 탄원을 받아들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소장파가 나올 수 있었던 세상은, 젊은이를 감옥에 보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젊은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적극 나서서 감싸주기도 했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소장파들이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자들의 탄압과 사회적 포용으로 형성된 세력인 셈이다.

청년들은 아무 대안이 없어도 정권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도덕적 당위를 얻었다. 정권은 그들을 억누르면서도 미래의 엘리트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다시 말하지만 이명박처럼, 항복하면 받아주었다. 꼭 정권에 투항할 필요도 없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라 는 두 거물이 현실 정치 속에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에게 발탁된 출판사 돌베개의 창립자 이해찬과 김영삼의 품에 안긴 전설적 노동운동가 김 문수를 떠올려보자. 그렇게 소장파는 현실 정치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절대 권력을 지닌 독재자도 없고, 정권에 맞선다는 것만으로 도 덕적 권위를 인정해주는 세상도 아니며, 소장파를 기용해주는 거물 정치인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제도권에 안착한 지 오래인 386세대가 여전히 소장파인 양 적폐청산의 기치를 휘두르고 있는 없었던. 현실의 권력을 가진 세력이 도덕적 당위까지 독 점하려 드는 것이 지금의 정치적 풍경이다.

이래서는 진보 정권도 성공할 수 없고, 소장파도 성장할 수 없다. 사드 배치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핵 실험, 미사일 개발, 한미동맹이라는 안보 현실상 사드 배치 철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직 도 사드가 ‘임시 배치’ 상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집권세력으로서 안보를 지키고 한미동맹을 관리해야 할 입장인데도, 여전히 반미주의라는 80년대적 당위론에 묶여 있는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원내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정의당의 상황도 비슷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좁히려면 기업뿐 아니라 정규직의 양보도 필요하다. 그런데 정의당의 두 간판인 심상정과 노회찬이 여전히 입바른 소리만 하는 동안, 이런 절충적인 현실주의 노선을 제시하는 역할은 1978년생인 조성주 전 미래정치센터 소장의 몫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중년이 된 왕년의 청년들이 젊음의 특권인 ‘대안 없는 비판’을 독점하고 내놓지 않고 있던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 386의 아이콘 격인 전대협 회장 임종석이 현재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이제 ‘어른의 역할’을 할 때다. 기존의 권위에 겁 없이 도전하는 일은 젊은이들에게 넘겨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때의 소장파였던 386들이 기성세대로서 나잇값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신세대가 치고 나올 여지가 생긴다. 사회는 안정과 변화의 두 바퀴로 굴러가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른다.

노정태 | 학부에서 법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주로 <경향신문>과 <주간경향>에 칼럼과 서평을 기고하며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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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유지성
  • 노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