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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흥민이가 느그 흥민이가 되는 이유

그는 왜 국대만 뛰면 느그 흥민이가 되는 걸까?

‘에이스(ACE)’라는 말이 있다. 어떤 조직 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춰 두각을 나타내는 이를 뜻하는 표현으로, 조직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리더(Leader)’와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2017년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는 누굴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최고의 실력과 스타성을 모두 갖춘 당대 팀 코리아 최고의 스타, 바로 손흥민이다.

손흥민을 에이스로 꼽을 이유는 차고 넘친다. 역대 아시아 출신 축구 선수 중 최고의 몸값(약 400억 원, 레버쿠젠-> 토트넘)을 기록했고, 동시에 역대 아시아 출신 축구 선수 중 유럽 4대 리그 한 시즌 최다 골(2016-17시즌 21골)을 넣었다.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지난 시즌엔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소속팀에서의 이 같은 활약상을 놓고 본다면, 손흥민은 명실상부 에이스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손흥민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기만 하면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버린다는 것에 있다. 팬들 모두가 목격했고, 경기 데이터가 증명하는 내용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팬들이 토트넘 유니폼을 입었을 땐 ‘우리흥(우리 흥민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을 땐 ‘느그흥(너네 흥민이)’이라 부르겠는가.

소속팀에서의 엄청난 활약 그리고 대표팀에서의 형편없는 부진. 같은 시기에 같은 선수가 보여준다고는 믿기 힘든 이 상반된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손흥민의 가치

손흥민이 가진 축구 선수로서의 장점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가 첫째로 꼽는 것은 슛이다. 손흥민은 세기와 기술, 타이밍 등 슛에 관한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왼발과 오른발을 모두 잘 쓰며 골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지닌 그는 득점을 올리는 것이 목표인 공격수로서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로 꼽히는 손흥민의 장점은 스피드다. 손흥민의 주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지난 9라운드 토트넘 vs. 리버풀 경기를 떠올려보자. 손흥민은 전반 11분 해리 케인의 패스를 받아 팀의 두 번째 골이자 본인의 올 시즌 리그 첫 골을 터뜨렸다. 골키퍼의 롱 스로인으로 시작된 팀의 역습 기회에서 손흥민은 가공할만한 스피드로 상대 수비를 완전히 압도했다*. 이 장면이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경기 후 방송된 영국 BBC TV의 축구분석 프로그램 ‘매치오브더데이(MOTD)’의 진행자 이안 라이트는 손흥민에게 “유세인 손(육상 스타 유세인 볼트)”이란 새로운 별명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손흥민의 단점은 무엇일까? 일단 톱 클래스 선수들보다 공을 지켜내는 능력(키핑)과 탈압박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키핑과 탈압박의 달인으로 불리며 수비수 서너 명을 달고도 무쌍난무를 펼치는 이니에스타, 다비드 실바 수준은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대한민국의 에이스로서 아시아 레벨에서 수비수 한두 명은 상대해줘야 하는데, 손흥민은 이게 안 된다. 대표팀 주장이자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기성용과 비교해보면 손흥민의 문제점은 더 확연히 드러난다. 기성용이 공을 잡았을 때 드는 생각, 즉 ‘공을 뺏기지는 않겠구나’하는 안정감이 손흥민에게선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손흥민은 훌륭한 슈팅력과 최고의 스피드를 지녔으나 공 소유와 탈압박에 약한 공격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내용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손흥민의 상반된 클럽-대표팀 활약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아래에서 더 자세히 분석해보자.

 

(지난 9라운드 토트넘 vs. 리버풀 경기 전반 11분. 중앙선 뒤에서 출발해 압도적인 스피드로 수비를 제친 후 해리 케인의 패스를 받아 골을 기록하는 손흥민)

 

우리흥과 느그흥의 차이, 쓰임새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현재 세계에서 손흥민 활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는 지난 시즌 손흥민의 엄청난 활약을 이끌어내며 이를 증명했다. 대체 비결이 뭘까?

포체티노의 손흥민 활용법은 간단하다. 바로 ‘공을 많이 갖고 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풀어서 설명하면 손흥민에게 공격 전개 작업을 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앞서 설명했듯이 손흥민은 공을 점유하고 있을 때 수비의 압박을 버텨내는 키핑 능력과 그 상황을 빠져나오는 탈압박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다(물론 컨디션이 빨딱 선 날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키핑과 탈압박이 안 되니 안정적인 볼 배급과 위치 선정 역시 기대할 수 없고, 그렇기에 이런 능력이 필수적인 플레이 메이커로서는 기능이 힘들다. 토트넘 이적 초기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경기에서 손흥민이 끔찍한 부진을 보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시즌을 써보고 손흥민 사용법(?)을 터득한 포체티노 감독은 2016-17시즌부터 제대로 그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역습 시 가장 먼저 달리고, 기회가 오면 주저 없이 슛을 때릴 것. 볼을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으며, 공격 전개 작업에 참여하는 대신 공간을 파고드는 것에 더 집중할 것. 돌격대장 손흥민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이 같은 감독의 주문은 제대로 먹혔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손흥민은 역대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여기서 우리는 대표팀에서 보여주는 손흥민의 부진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돌격대장’ 역할을 맡는 소속팀과 달리 대표팀에서 손흥민에게 주어진 역할이 ‘사령관’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 손흥민은 공격 작업을 이끄는 역할과 거리가 멀다. 삼국지에 비유한다면 촉나라의 마초와 같은 부류다. 대단한 무력(득점력)과 돌파력(서량기병)을 지녔으나 지력과 통솔력(위치 선정, 패싱력)이 떨어져 군단 전체를 이끌기엔 부족한 스타일이다. 소속팀 토트넘엔 공격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 에릭센이 있고, 수비진을 끌고 다니며 압박을 분산시켜주는 해리 케인과 델레 알리가 있기에 손흥민의 이런 성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표팀은 어떠한가? 작전을 지휘할 사령관(기성용)은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했고, 손흥민의 돌파를 위해 수비수와 싸워 줄 최전방 공격수는 수준 이하의 모습만 보였다(더구나 매번 바뀌기까지 했다. 김신욱-이동국-황희찬-지동원-황의조 등). 상황이 이러니 마음이 급해진 손흥민이 공격 전개 작업을 하겠다며 자꾸 2선으로 내려오고, 못하는 걸 하려다 보니 계속 부진에 늪에 빠진다. 즉 손흥민의 부진은 손흥민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대표팀 공격 시스템의 전반적인 실패이다.

 

대표팀 최고의 무기, 제대로 활용해야

대표팀을 손흥민에게 맞추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을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월드컵에 나가 다른 나라와 맞붙었을 때, 손흥민 이상의 위력을 보여줄 무기가 있느냐고. 채 1년도 남지 않은 월드컵 준비 기간 새로운 무기를 찾아서 그 사용법을 익히는 게 나을지, 아니면 이미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를 잘 활용하는 게 나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손흥민은 세계 레벨에서 통한다는 것이 증명된 우리 대표팀의 가장 위력적인 카드다. 물론 소속팀과 달리 손흥민 활용에 필요한 주변 카드의 급수가 좀 부족하긴 하다. 해리 케인이 관우급이라면, 지동원이나 황희찬은 주창, 요화 정도의 평가를 받을 테니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도 시간도 부족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한민국의 에이스를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월드컵과 2015년 아시안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것이 누구였던가? 바로 대한민국의 에이스인 손흥민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에이스의 운명이니까.
돌격대장 손마초, 손흥민. 그와 그가 이끌 대표팀의 건투를 빈다.

Credit

  • 에디터 윤신영
  • 무스비
  • 사진제공 토트넘 홋스퍼 공식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