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남자 김주혁

더 알 수 없으니 오래 기억해야 할 배우, 김주혁.

영화 <청연>

불행히도 포털 사이트에서 그의 영화를 검색하다 알게 됐다. 광속의 시대, 프로필 업데이트는 너무나 빨랐다. 야속하기까지 했다. 영화배우, 김주혁,  ‘~10월 30일’.

김주혁은 그제 강남구 삼성동의 대로 변에서 고귀한 생을 마감했다. 차가운 바닥에서 그의 왼쪽 가슴이 얼마 동안 뛰고 있었을지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고 서늘하다. 배우로서의 김주혁을 열렬히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맨스 영화에서 한층 더 빛나는 배우였다.

아는 사람의 부고를 들은 것만큼 충격이었다. 아는 남자. 팬이 배우를 ‘아는 남자’로 느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모든 답은 그의 연기에 있다.

털털한 웃음으로, 가끔은 모자라도 귀여운 모습으로,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한 함박웃음으로, 노련하고 예민한 표정으로, 본인의 이름을 친근하게 새겨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꾸밈 없는 미소는 로맨스 영화에서 만발했다.

영화 <싱글즈> 포스터.
영화 <싱글즈>의 주인공 나난(故장진영)과 수헌(故김주혁)

SBS 공채 탤런트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영화 <싱글즈>를 통해 튀지 않지만 탄탄한 연기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싱글들의 섹스 라이프를 유쾌하게 그려낸 이 작품에서 김주혁은 능력 있는 증권맨 수헌 역을 맡았다. 2000년대 초반 당시 결혼이라는 억압 아래서 자신의 미래를 꿋꿋이 건설하는 멋진 청년이었다. 게다가 개성 강한 주연들을 접착제처럼 조화롭게 만들어준 그의 연기가 한껏 조명 받은 영화였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이후 가장 뇌리에 박혔던 캐릭터는 2004년 개봉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홍두식이다. 엘리트 치과 의사인 윤혜진(엄정화) 옆에서 묵묵히 돌봐주는 착한 동네 반장 말이다. 갑작스런 술자리 고백에 “짜증나 진짜”하며 사랑스럽게 토라지다가도 윤혜진이 잠들 때까지 곁을 봐주는 따뜻한 남자 홍두식. 소박하고 털털하지만 어느 하나 빠짐없이 잘하는 홍두식의 역할은 김주혁이었기에 온전히 소화할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영화 <청연>
영화 <청연>

영화 <청연>에서 그는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故 장진영)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인 유학생 한지혁 역을 맡았다. 하지만 영화 개봉 직후부터 박경원이라는 인물이 친일파로 재조명되며 두 배우의 열연은 묻혀버리고 만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 두 배우 모두가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12년이 지난 지금 대중들에게 먹먹함을 안겨주고 있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김주혁이 대중에게 자신을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가장 의미 있는 행보를 보여준 영화는 2008년 개봉한 <아내가 결혼했다>가 아닐까? 이 영화는 소설가 박현욱이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원작을 바탕으로 하여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하기도 한다.

극 속에서 김주혁은 섹스와 연애 심지어 결혼까지 자유롭게 생각하는 아내 주인아(손예진)의 남편 노덕훈을 연기했다. 주인아와 사랑에 빠지는 풋풋한 순간부터 아내의 사랑관에 좌절하고, 애걸복걸하며 매달리는 감정의 역류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관객은 노덕훈을 따라 미소 지었다가 울분에 몸서리치다가 회한에 잠기기까지 하는데, 이는 모두 김주혁의 설득력 짙은 연기실력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 영화를 통해 2009년 영화 출연 이후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른다.

따뜻하고 꽉 찬 그의 미소 때문인지, 그를 기억하면서 로맨스 영화만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이후 드라마 <아르곤>과 영화 <공조> 등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연기를 보여준 그.

송곳처럼 튀지 않아도, 둥글고 온전한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였기에, 잘 알고 있던 남자인듯 그의 부재가 가슴 아프다. 그는 향년 45세라는 안타까운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그를 알아갈 수 없으니,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redit

  • 에디터 백가경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