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문신 수집가

도쿄대 교수 마사이치 후쿠시의 실화다.

시체 문신 수집가

시체 문신 수집가 마사이치 후쿠시(福士 政一)의 얘기다. 1907년, 도쿄대학교 의학부 교수였던 그는 일본 특유의 문신을 오랜 기간 연구했다. 문신이 매독 재발을 억제한다는 효과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의 연구가 빛을 보았다면, 인류 역사상 문신하기 위한 최고의 핑계가 되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마사이치는 문신을 연구할 수록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장인들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술받은 이가 죽으면 문신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마사이치는 돈이 없어 문신 시술을 중단한 이들에겐 비용을 대줬다. 사후에 피부를 기증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완성되지 않은 문신은 불명예라고 여겨, 꽤 많은 이들이 마사이치의 요구에 응했다고.

마사이치가 문신을 수집하는 과정은 이렇다. 사후 기증받은 피부를 물로 적시고 부드러워진 피부를 평평하게 핀으로 고정한다. 이후 글리세린과 포르말린으로 방부 처리하고 유리 상자에 보관했다. 이를 지켜본 추리 소설가 다카기 아키미쓰는 첨언을 하기도 했는데 “표본을 마네킹에 입혀야만 문신의 입체적 진가를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섬뜩한 직업정신이 아닐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 이후 마사이치의 표본은 상당수 손실됐다. 하지만 3000장에 달하는 기록 사진과 표본 일부가 무사히(?) 남았고, 마사이치의 아들 카즈나리 후쿠시가 20개 이상의 표본을 추가해 총 105개의 문신 표본이 남아있다. 미국 <라이프> 지를 비롯한 많은 매체가 마사이치에 대한 기사를 실었고, 다카키 아키미쓰는 표본들을 소재 삼아 <문신 살인사건>(1948)을 출간했다. 이 추리소설은 최초로 일본 전통가옥에서의 밀실 살인사건을 다루며 평론가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사후 문신 기증을 하겠다는 이들이 줄을 선다. 2009년 호주의 조프 오스트링(Geoff Ostling)은 호주의 꽃 등을 문신으로 새긴 자신의 피부를 호주 국립 박물관에 사후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42세 때 새긴 그의 문신은 유명 화가 드 메디치(eX de Medici)가 그려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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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백가경
  • 주동일
  • 사진제공 Alex Volot/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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