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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볼 거야

사랑을 나눌 때, 제발 불 좀 켜주세요.

다 볼 거야

우리는 벽이 온통 흰색인 거실 소파에 있었다. 밖은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안의 색온도가 점점 변해갔다. 겨울이니까, 요즘은 오후 5시 즈음부터였다. 과하지 않은 술, 가벼운 안주, 농담 같은 영화. 그러자고 만난 것도 아니지만 안 그러기도 섭섭한 긴장이 우리 사이에는 있었다. 모르는 척 손 등을 쓰다듬거나 어깨에 기댈 때마다, 살과 살이 닿을 때마다 놓치기 싫은 감각이 점점 풍성해졌다. 우리는 이 약하고 부드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 하는 거라는 말은 누가 했지? 약하고 투명하고 부드러워서 손이 닿는 어디라도 좋았다.

5시에 흰색이던 방이 5시 반에는 노란색이 되었다. 6시 즈음에는 주황색을 거쳐 점점 붉어졌다. 7 시에는 모닥불처럼 타오르다 이내 검은색이 되었다. 창밖에 보이던 산이 사라졌다. 마침내 해가 사라졌다는 뜻이고, 그야말로 완곡한 허락 같았다. 우리는 좀 더 과감해졌다. TV는 그녀가 껐다.

어두울 때 가까스로 자연스러워지는 일들이 있다. 우리는 둘이 있을 때 특히 좋아지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옆에 있어도 어두우면 안 보이니까, 그럼 더듬어 찾아야 하니까. 그야말로 본능 같았다. 우리는 조금만 힘을 줘도 지워질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서로 위태로워했다. 처음은 아니었는데, 막 시작한 밤에 예의를 차리듯이 그렇게 했다. 얼굴에서 시작한 손이 손 위에 닿았다가 목에 닿았을 때의 연약함을 절감하다가, 등 뒤를 거쳐 가슴에 닿았을 때 들리는 깊은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식이었다. 잘 안 보이니까 더 예민해졌다. 어디가 어떻게 단단해지는지, 그게 못내 예뻐서 혀끝을 댔을 때 그 부드러운 배가 어떻게 경련하는지, 턱과 쇄골 사이에 있는 그 근육이 도드라질 땐 또 무슨 뜻이었는지 내내 궁금해했다. 알면서도 그랬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계속 뭔가를 찾고 있었다. 이대로 몇 시간이 지난다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욕심이 더 커진 건 둘 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즈음이었다.

“잠깐만.”

몸이 잔뜩 긴장했으니 그녀의 대답은 탄식이었다.

“보고 싶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뭘 더 보고 싶은 거냐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평소보다 동그래진 눈이 웃으면서 묻고 있었다. 실은 다 볼 수 있었으니까. 완연한 어둠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는 채, 눈은 이미 적응하고 있었다. 유난히 흰 피부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고 있었다. 오로지 피부에서만 나는 빛과 윤기를 보는 일도 황홀하긴 했지만, 오늘은 꼭 보고 싶은 게 있었다. 불을 켜야 했다. 해가 질 무렵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가장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잠깐. 불 좀 켜고 올게.”

거실엔 세 가지 조명이 있었다. 일단 형광등. 누군가는 반드시 형광등이어야 하는 밤도 있을 것이 다. 형광등 아래선 모든 게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나라하니까. 그럴 때만 느끼는 흥분이라는 것 도 있는 거라서. 피부 아래 도드라지는 파란 핏줄을 보면서 흥분하거나, 내 혀가 지나간 자리마다 묻어 있는 얇은 침의 레이어까지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기꺼이 형광등을 선택했을 것이다. 솜털 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끝에 바람만 닿아도 어떤 탄식이 터지는지를 관찰하고 싶은 밤이라면 기꺼이. 하지만 형광등 스위치를 켤 때마다 어쩐지 <전국노래자랑> 같은 느낌을 피할 수 없기도 했다. 그들이 39년째 일관되게 꾸밈없어 보이는 비결도 그 빛이었다. 음영도 없이 모든 결과 색을 그대로 노출하는 빛. <전국노래자랑>의 미덕은 자연 광이고, 한낮의 자연광 아래선 출연자나 송해 선생도 뭘 감출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날 우리까지 <전국노래자랑> 무대처럼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중요한 건 균형이니까.

솜털이 다 일어나서 예민해지는 순간, 갑자기 돌기 시작하는 윤기, 서서히 흐려지는 초점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밤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이것만이 우리의 시간이라서.

TV를 켜면 누가 훔쳐보는 느낌으로 절정을 맞을 수도 있었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피부색이 변하 는 데서 재미를 찾을 수도 있었다. 혹은 아주 일상적인 느낌에 젖을 수도 있겠지. TV야말로 외로울 틈도 없이 안온했던 일상의 상징이니까. 하지만 TV를 다시 켜자마자 나오는 VOD 예고편에서 강호동이나 송강호의 얼굴을 보는 일이야말로 끔찍했다. 듣기도 싫었다. 넷플릭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는 <워킹데드>였다.

혹은 50와트 백열등을 벽으로 비출 수 있었다. 강 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조명이었다. 스탠드 머리의 각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해질 녘에 그윽했던 그 색을 연출할 수도 있었다. 오래 쓴 전구니까, 지금 켜면 그대로 개와 늑대의 시간에 가까운 어스름을 볼 수도 있었다. 오늘이라면 오후 6시 40분 즈음, 영하 10℃에 가까운 겨울 저녁과는 아무 관계도 없이 그저 따뜻하고 안락했다가 이내 위태로웠던 그 색. 우리는 이미 위험한 동물이었다.

백열등 스위치를 켜고 스탠드 머리를 멀리 향하도록 두고 다시 소파로 갔다. 시작했을 때, 그녀의 눈이 반쯤 감긴 채 초점마저 흐릿해진 건 빛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자꾸 내 목을 끌어안았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다시 몸을 일으켜 눈을 맞췄다.

“부끄러워.”

음소마다 말줄임표와 내쉬는 숨이 배어 있었다. 빛과 관계없이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어쩌면 몸 보다 부끄러운 표정인지도 몰랐다. 말이 다 끝나기 전에 그녀의 눈이 다시 반쯤 감겼다. 나는 보고 있었다. 양쪽 볼에 노을이 짙어지고 있었다. 색온도가 변하면서 균일하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미간 사이에 귀여운 주름이 잡히면서 꿈틀거렸다. 검은 자위가 조금 커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를 보는 것도, 누굴 의식하는 것도 아닌 상태. 가장 은밀하면서도 자유로운 순간의 표정. 어쩌면 이 얼굴을 보려고 서로에게 열중했던 시간을 우리가 끌어안고 있었다. 은은하고 위험한 저녁의 끝이었다.

“보고 싶어.”

다시 말했다. 그녀한테는 대답할 틈이 없었다.

정우성 | 칼럼니스트 정우성은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쓴다. <GQ>와 <에스콰이어>에서 일했다.

Credit

  • 에디터 양보연
  • 정우성
  • 사진제공 Sebestyen Balint /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