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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가져다준 자유

우리 둘의 놀이는 암전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어둠이 가져다준 자유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이 켜질 순간이 부끄러울 정도의 일은 해야지. 어둠에 가려진 몸은 거칠 게 없으니까. 암막 커튼으로 도시의 빛을 차단하고, 인공적인 조명도 모조리 꺼버린 이 공간은 내일 아침 날이 밝아온다 해도 여전히 깜깜한 채로 우리 둘을 가려줄 것이다.

남자는 관대한 면이 있었다.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상체를 깊숙이 숙여 고양이가 스트레칭하는 자세를 취하면 남자는 나의 허리를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이어 한 손으로 척추뼈를 쓰다듬어 내리다 꼬리뼈에 닿으면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아주 멋진 몸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흠이라고까지 생각하진 않지만 전형적으로 아름다운 여체라기엔 비율 적으로 골반이 빈약한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단점마저 그렇게 말하는 남자 앞에선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터였다. 남자는 내 몸을 낱낱이 살펴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밝음, 아니 어두운 조명이라 해도 빛이 내려와 나를 비추는 상태에서는 몸이 완벽하게 열리지 않았다.

남자는 사려 깊었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고층 호텔에서라면 유리창에 날 붙여두고 야경을 바라 보며 뒤에서 탐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텐데 남자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커튼부터 쳤다. 나와 보낸 몇 번의 밤에서 내가 완벽하게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이유를 읽어낸 남자에게 전망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남자의 행동은 오늘 밤 내가 해야 할 일을 군더더기 없이 설명하고 있었다. 몸을 자유롭게 쓸 것. 전하고 싶은 느낌을 수줍어하지 말고 펼쳐 내보일 것. 남자의 시선 안에서 어떤 나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안에서 내가 될 것.

불이 켜지면 극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둘의 놀이는 암전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남자는 자 신 앞의 나를 더듬더듬 만져 양쪽 어깨를 찾아 짚었다. 이어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남자는 순식간에 나를 알몸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천이 서로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는 옷이 벗겨진 뒤에도 유난히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평소라면 잘 들리지도 않을 소리도 시각을 잃자 커다랗게 증폭되었다. 옷을 벗는 둥 마는 둥 서 두르며 침대에 뛰어들 때와 달리 까만 방 안에서는 모든 것이 느릿해지고 늘어졌다. 지루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당했다.

나는 캑캑거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깊숙이 넣었다. 배어 나온 눈물에 마스카라랑 아이라인이 번지고 버건디로 반듯하고 짙게 채운 입술도 엉망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런 얼굴을 남자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도 만족스러웠다.

어둠 속에서는 팔로 몸을 감출 필요도, 다리를 반듯하게 붙이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어떤 형태의 나라도 상관없었다. 삽입한 후에는 남자의 감각이 시각보다 다른 곳에 몰려 그곳에 집중되는 게 느껴지면 긴장을 풀 수 있었지만 그 전까지는 몸에 힘을 잘 풀지 못했다. 보는 것으로 얻게 되는 정보는 얼마나 많은 양이 담고 있는지, 또 얼마나 신속하게 전달되는지, 그렇기에 무의식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 섹스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감추기 위한 일이었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컴컴함 속에서 안락함을 느꼈다. 빛이 사라지자 나 역시 시각을 제외한 다른 몸의 감각이 터져버릴 것같이 예민해졌다.

그 순간 남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몸의 다른 곳이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몸속에서 무언가 왈칵 터졌다. 남자가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남자의 목소리가 이토록 저릿했었나. 계속 내 이름을 불러줘. 간절한 요구였다. 늘 듣던 목소리인데 내 몸의 어떤 스위치가 올라가버리고 말았다. 청각이 자극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을 만져볼 수 있게 내 다리 사이로 남자의 손을 인도했다. 손끝에 닿는 미끈거림 이 남자의 흥을 돋운 것일까? 남자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더 깊은 곳에 스며들고 싶어 하는 그 손가락의 진로를 틀어 입으로 가져왔다. 내 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남자의 일부를 정성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빨고 핥아댔다.

남자는 시각을 차단한 것만으로 이렇게 변한 내게 놀란 것 같았다. 남자는 커다란 손으로 내 눈을 덮고 지그시 눌렀다. 완벽하게 눈이 가려진 내가 그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듯이. 눈꺼풀에 닿은 남자의 손이 뜨거웠다. 나의 탐욕스러움을 북돋아주기 충분한 온도였다. 내 입안을 휘젓고 있는 손가락의 자극이 나를 묘하게 끌어올렸지만 조금 더 강한 것과 닿고 싶어졌다. 보이지 않자, 그리워졌다.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나는 남자의 것을 자극하기 위해 손이나 입을 쓰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입을 앙 다물고 눈을 질끈 감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남자의 몸을 더듬어 원하는 것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단단하고 따뜻한 그것. 혀끝으로 살짝 감싸 자 남자의 틈새에서도 미끈한 것이 새어 나왔다. 그 맛도 나쁘지 않았다.

가득 차올라 입안 구석구석에 와닿는 느낌이 좋았다. 조금 더 욕심이 났다. 그것을 붙잡고 있던 손을 떼고 목 안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목에 가득 차 호흡이 힘들었다. 구역감도 올라왔다. 나는 캑캑거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깊숙이 넣었다. 배어 나온 눈물에 마스카라랑 아이라인이 번지고 버건디로 반듯하고 짙게 채운 입술도 엉망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런 얼굴을 남자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도 만족스러웠다. 남자는 그런 나의 머리를 감싸 쥐고 보이지 않는 몸을 더 깊이 밀어붙였다.

현정 | 현정은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자립명사: 연애>의 저자로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다.

Credit

  • 에디터 양보연
  • 현정
  • 사진제공 Family TV /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