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유익한 포르노

에로 영화 감독 에리카 러스트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 찬가.

그녀의 유익한 포르노
Filmmaker Erika Lust / Photography by Rocio Lunaire

바비 박스(Bobby Box), 플레이보이 코리아 디지털 에디터들 사이에선 일명 ‘섹스 칼럼 본좌’라 일컬어지는 미국 플레이보이 에디터다. 웬만한 섹스 칼럼은 혼자 다 써낸다. 양도 상당할뿐더러 심지어 여성의 관점에서(SNS 추적 결과, 바비는 수염이 멋진 남자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알지?’란 탄성이 나올 정도로 퀄리티까지 좋다. 며칠 전 그는 애인에서 선사하는 환상적인 오럴 테크닉에 관한 기사를 썼고, 유독 한 문장을 강조했었다. “내 기사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감독 에리카 러스트(Erika Lust)의 영화 한 편만 봐도 당신의 애무 기술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두말 않고 찾아봤다. 에리카 러스트를 구글링하자 황금빛 머리칼에 어딘가 당당하게 카메라를 어깨에 멘 여성이 나왔다. 에로 영화를 전문으로 찍는 스웨덴 감독이란다. 가장 첫 번째 나오는 그의 공식 홈페이지 링크를 눌렀다. 내가 알고 있던 소위 그런 포르노가 아니었다. 영화 포스터 속 여성들은 관능적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영화를 지배하는 하나의 스토리가 있음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인기 있는 영화의 트레일러를 재생했다. <XConfessions>란 시리즈 중 하나였다. 이 시리즈는 인터넷을 통해 시청자로부터 영화의 주제가 될 성적 판타지를 추첨하여 10분 내외의 단편영화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내가 본 편은 도서관에서의 판타지를 다루고 있었다. 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학생들. 이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책상 위에서 로맨스가 펼쳐진다. 여자 주인공을 유혹하는 남자 주인공의 섬세한 유혹. 부끄럽게도 나는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했고 언젠가 한 번쯤 이 장면을 꿈꾼 적 있다. ‘나만 이런 생각한 게 아니구나’라는 연대감과 함께,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전개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2015년 에리카 러스트는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다. “<XConfessions> 프로젝트에서 성적 판타지를 보내는 사람의 비중은 여성, 남성 50 대 50이에요. 대체로 저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감상한 팬들이죠. 영화를 만들 때 저는 항상 그들의 피드백을 염두에 둬요. 저는 주류 포르노에 대한 대안으로서, 성적 평등을 바탕으로 한 포르노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제 작품 속 주인공들은 영화의 맥락 안에서 본인의 역할을 한껏 즐기는 편이에요.”

정말이다. 에리카 러스트의 포르노는 부드럽고 관능적이다. 주로 여자와 남자의 생식기를 클로즈업 하는 기존의 포르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에리카의 영화는 여러 사람들이 꿈꾸는 성적 판타지에 근간을 두지만 외려 기존 포르노보다 현실적이다. 다시 말해서 충분히 따라 해도 되고, 따라 하고 싶은 장면이란 뜻. ‘연인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면 그 감독의 작품 한 편만 보면 된다’라고 조언했던 바비 박스의 말이 들어맞는 지점이다. 그의 영화를 보면 어떻게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드는지, 어디서 성적인 자극을 느낄 수 있는지, 무료하고 반복적인 성생활에 어떻게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다. 게다가 영화는 독특하고 재미있다. 성욕을 ‘해소’하기 보다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한층 섹시한 방법이 아닐지!

끝으로 에리카 러스트가 미국의 비영리 지식나눔콘서트인 테드(TED)강연에서 발표했던 인상적인 대목을 요약해 옮긴다. “포르노 속에서 한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당신을 무엇을 보고 있죠? 금발의 타이트한 드레스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수박만한 가슴이 인상적인 그녀요. 그녀는 그에게 기꺼이 입으로 해주고 있어요. 왜일까요? 길 한복판에 퍼진 차를 친절한 남성이 고쳐줬기 때문이에요. “입으로 해줘서 고마워”라고 그가 말하면 그녀의 얼굴은 한껏 상기되죠. 너무 활짝 웃어서 가식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해요. 이게 주류 포르노예요. 이제 바뀔 때가 됐습니다.” erikalust.com

Credit

  • 에디터 백가경
  • 영상출처 유튜브 'Erika Lust'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