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를 넘어

사랑으로 이어진 관계에 비정상은 없다.

I Kissed A Girl가수이자 배우인 자넬 모네는 최근 <롤링스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랑스레 말했다. “나는 ‘퀴어’ 흑인 여성이다.”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를 알고 있는 팬이라면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모네는 자유로운 연애를 찬양하는 ‘Make Me Feel’의 뮤직비디오에서 턱시도 차림으로 노래하는 ‘남장 여성’을 연기했다. 최근까지 꾸준히 성 정체성을 탐구하던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양성애(bisexuality)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범성애(pansexuality)에 대한 글을 읽은 후 인정했다. “와, 나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네 한 사람밖에 없지는 않을 것이다. 범성애와 양성애는 별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범성애는 다양한 젠더를 모두 포용하지만, 양성애는 전통적 젠더 규범을 더욱 밀접하게 받아들인다”라고 말한다. 어쨌든, 확실히 연예계에는 성 소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범성애와 양성애를 주제로 하는 음악과 영화, 드라마가 많이 등장하고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그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0년 전, 한 무명 가수가 동성의 상대와 사랑을 나누는 달콤한 노래 ‘I Kissed A Girl’을 공개해 크게 논란이 됐다. 하지만 당시 침대 위에서 챕스틱을 바르고 ‘체리 맛 키스’를 나눴을 연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덕분에 무명 가수는 순식간에 스타의 반열로 올랐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은? 케이티 페리다.

페리는 동성애를 다루는 노래를 불렀지만 인디고 걸스, 아니 디프랑코, 질 소블을 비롯한 다른 선배 가수들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레즈비언’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페리의 외모는 여성 뮤지션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릴리스 페어보다는 <맥심>에 더 어울리고, 그래서 그의 키스가 성적 해방보다는 남성 판타지의 충족에 가깝다는 사실이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10년 전, 한 무명 가수가 동성의 상대와 사랑을 나누는 달콤한 노래 ‘I Kissed A Girl’을 공개해 크게 논란이 됐다. 하지만 당시 침대 위에서 챕스틱을 바르고 ‘체리 맛 키스’를 나눴을 연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에 담겨있는 메시지다. 이성애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여성이 다른 여성과 키스를 하고는 흐뭇해한다면. 우리는 대체로 그런 사건을 문제없이 받아들인다. 남성의 경우라면 어땠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은 그런 상황을 태연히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왕좌의 게임>부터 <리버데일>까지, 오늘날의 드라마에는 남성끼리 벌이는 행위가 상대적으로 많다. 심지어 대대적 팡파르를 울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며 힘을 얻었고, 마침내 2015년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두 남성의 관능적 장면이 연출될 때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이런 현상은 ‘새로운 정상’으로 자리 잡았다.

캐나다의 시트콤인 <쉬츠 크릭>에서 로즈 가문의 아들로 등장하는 데이비드 로즈는 성 정체성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의 친구인 스티비는 이따금씩 그와 연인처럼 지내는데,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기 전까지는 그가 동성애자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와인 숍을 둘러보던 중, 스티비는 남성과의 섹스를 레드와인에 비유했다. “나는 레드와인만 마셔. 그리고 어제까지는 너도 레드와인만 마실 것 같았어.” 데이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심지어 로제와인도 마셔. 그냥 와인을 즐기는 거야.”

<센스8>은 드라마 역사상 가장 과장된 사랑을 보여준다. 워쇼스키 자매와 J. 마이클 스트라친스키가 공동 제작한 이 드라마는 이성애자인 남성 여러 명과 동성애자인 남성 커플이 뒤엉킨 섹스 신을 보여준다. 19세기를 배경으로 제작된 <페니 드레드풀>에서는 양성의 특성을 모두 가진 남성이 늑대인간을 유혹한다. 또한, 케빈 스페이시는 성폭력으로 고발당하기 전까지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최초로 성 정체성을 자유롭게 하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연기했다. 프랭크, 클레어, 그리고 충직하고 금욕적인 미첨이 했던 스리섬을 기억하는가? 미첨을 연기했던 네이선 데로우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그 장면을 본 팬들이 반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첨이 프랭크를 활기차게 펄떡거리도록 만들었다.”

다음날 와인 숍을 둘러보던 중, 스티비는 남성과의 섹스를 레드와인에 비유했다. “나는 레드와인만 마셔. 그리고 어제까지는 너도 레드와인만 마실 것 같았어.” 데이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심지어 로제와인도 마셔. 그냥 와인을 즐기는 거야.”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영문학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강의하며 영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닉 데이비스 교수는 이런 장면이 대중에게 익숙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시청자가 범성애는 물론 양성애에 대해서도 거부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시로 <브로크백 마운틴>을 언급했다. “각자의 아내에게 큰 상처를 남긴 두 명의 ‘게이’ 남성이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들이 ‘바이’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들이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 것은 진실하지 못한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이 ‘게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바이’와 연관된 부분은 자연스레 삭제돼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비스는 사회학자인 헥터 카리요의 ‘양성애 성향이 포함된 이성애’라는 제목의 논문을 인용했다. 논문에 의하면, 우리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할 필요가 없다. “이성애의 범위를 탄력적으로 넓히면 한 가지 방법만 집착하지 않고 욕망을 충족할 수 있어요. 꽤 괜찮은 일 아닌가요? 우리는 ‘그것은 이성애의 특성이 아니다’라며 섹슈얼리티 안에 수많은 카테고리를 창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성애 또한 그런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등학교 동창이자 이성애자인 잭 블랙과 제임스 마스덴이 등장하는 <디 트레인>은 바로 그 지점을 탐구한다. 졸업 20주년을 맞아 재회할 기회가 생기자, 블랙은 학교의 영웅이었던 마스가 참석하도록 유인한다. 그들은 함께 중심가로 나갔다가 야릇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블랙은 과거 마스덴과 섹스했던 장면을 기억해내고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데이비스는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블랙은 자신이 남자랑 섹스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요. 그래서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아요. 마스덴은 상대가 누구이든 행복하게 어울릴 수 있는 남자예요. 코미디와 페이소스 사이에서 줄을 타는 영화인데, 단순히 웃으며 보기 어려운 순간이 때때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것은 이성애의 특성이 아니다’라며 섹슈얼리티 안에 수많은 카테고리를 창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성애 또한 그런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독립영화인 <디 트레인>은 그다지 우수하지 않은 흥행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보다 규모가 큰 영화들 또한 ‘이성애의 규범’이라는 돌기둥을 조금씩 부수며 ‘성적 표현’을 대상으로 행복한 실험을 하는 캐릭터를 묘사해왔다. 우리는 <데드풀>에서 라이언 레이놀즈가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딜도를 착용한 여자친구와 섹스하는 장면, <디스 이즈 디 엔더>와 핑크의 ‘Beautiful Trama’ 뮤직비디오에서 채닝 테이텀이 ‘몸 좋은 남성’에서 ‘보기 좋은 섹스토이’로 변하는 장면을 봤다.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노력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적 내용이 담긴 시나리오를 감상하는 것은 재미뿐 아니라 해방감까지 전한다. <브로드 시티>에서 애비는 일본산 딜도를 사용해 섹시한 매력을 지닌 제러미를 열정적으로 몰아붙이고, 애비의 절친이자 ‘범성애의 신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인 일라나는 그 소식을 들은 후 축하의 의미로 물구나무를 선다. (참고로 <브로드 시티>의 딜도는 현재 판매 중이다. 시청자는 집에서도 그들처럼 섹스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텔레비전의 모든 채널에서 동성애와 양성애, 범성애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리 페이스는 <홀트 앤 캐치 어 파이어>에서 자신이 연기했던 조 맥밀런의 양성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해치워요. 관능적이고 흥미로운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쫓아다닐 거예요.” <아처>의 국장인 팸 푸비는 성별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등장 인물에게 집적거리는데, 그들 중 일부는 양성애 성향을 띤다. <왕좌의 게임>에서 오베린 마르텔은 여러 남성과 여성을 모아두고 집단 섹스를 벌인다. <웨스트월드>의 로건 델로스도 마찬가지다. 양성애 성향이 있는 인물의 명단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의 로사, <프리티 리를 라이어스>의 앨리슨, <리버데일>의 무스와 토니, <제인 더 버진>의 아담, <데릴>의 미치광이 전 여자친구….

다양한 성 정체성이 이제는 당연한 사회적 포용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특히 자신을 ‘스트레이트’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챕스틱을 바르고 ‘체리 맛 키스’를 나눠야 할 때다.

Credit

  • 에디터 김선희
  • Ivy Knight
  • 사진제공 케이티 페리 'I Kissed A Girl' 뮤직비디오
닥터플레이보이 7월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