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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깃든 페티시

과연 모스키노와 알렉산더 맥퀸은 페티시의 영향을 받았을까?

패션에 깃든 페티시

미니 블랙 드레스와 뾰족한 스틸레토 힐, 초커와 체인까지, 섹스의 은밀한 비밀을 품은 듯한 차림새는 늘 유행이다. 그리고 패션계가 다양한 소재로 관능적 시선과 흥미를 부추기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의상 페티시즘의 특징은 가죽이나 레이스와 같은 특정 소재에 ‘에로틱’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 페티시 패션은 BDSM 의상과 연관 있는 게 일반적인데, 요즘 이런 의상이 일으키는 흥분이 패션계의 주류로 자리 잡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패션은 페티시를 지향할까?

패션에서의 페티시 역할에 의문이 생길 때 ‘페티시’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약 25년간 페티시 패션 사업에 종사한 BDSM 학자이자 라텍스 디자이너 배러네스는 ‘페티시’라는 단어가 얼마나 희석되고 정제됐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내게 페티시는 당혹스러운 느낌 그 자체다. 혹자가 자신이 페티시로 삼는 대상을 보고 느낄 때, 그 사람의 의식은 한껏 고조되지 않나. 남들이 자신이 보이는 반응을 알아차리고 있는 건 아닐지 떨리면서 피가 솟구치고 동공은 확장된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가게에 들어온 손님이 라텍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공공장소에서 엑스터시를 한 듯한 모습을 자주 본다. 만약 페티시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알 거다. 그렇지 않으면 모를 테고. 그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 말을 ‘페티시의 느낌은 누구에게나 명백할 것’이라는 말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사랑에 빠지는 게 어떤 느낌인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페티시 패션’이라고 부르는 의상의 기원은 여성이 코르셋과 호블 스커트로 자신의 신체를 일그러뜨린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몸이 의상에 딱 맞도록 신체를 구속하고 몸매를 과장하는 그 시대의 관행, 그리고 주류 사회의 시선에서 몸을 감출 수 있는 특징을 담고 있다. 의복이 지닌 신체 구속적 속성과 그걸 입는다는 반항적 행위 사이의 ‘건방진’ 병치는 성적 복종과 지배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과 비슷하다. 현대의 페티시 주얼리 디자이너 크리스 아바나는 복종과 지배의 관계를 “언뜻 처음 봤을 때는 공격적이고 강압적으로 보이지만, 다시 보면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운 관계”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주얼리 즉, 피어싱이 피부를 찌르는 그 행위와 그것을 착용하는 대상 사이의 이중성을 ‘성적 자극’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일부 패션 전문가는 페티시 패션이 발흥한 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런던 게이 언더그라운드 레더 커뮤니티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또 대중은 TV 속 제멋대로인 록큰롤 뮤지션들과 1960년대, 1970년대에 라텍스를 걸친 슈퍼히어로를 보며 이때 페티시 패션을 처음 받아들였다고 한다. 섹스 피스톨즈가 그렇듯 1970년대에 성장한 펑크 문화는 BDSM 관련 테마를 바탕으로 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마찬가지. 성적 에너지가 넘치면서 본디지 요소가 가득한 ‘펑크 록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그 문화를 소화했다. 결국, 음악과 미술 그리고 섹스와 패션을 융합해 앞으로 태어날 몇 세대를 위한 패션 혁명을 일으켰다.

‘속옷을 겉옷으로 운동(The Underwear-as-outwear Movement)’이 일어나던 1980년대로 돌아가 보자. 이 운동의 시그너처는 마돈나가 1990년 블론드 앰비션 투어에 입었던 장 폴 고티에의 원뿔형 브라다. 장 폴 고티에는 고무와 라텍스, 코르셋과 보디슈트, 문신을 새긴 피부처럼 보이는 나일론 상의 등 페티시와 오트 쿠튀르 사이에 다리를 놓은 선구적 인물이다. 그는 뻔뻔한 에로티시즘, 예를 들어 남성을 위한 스커트를 선보이면서 섹스와 젠더에 의문을 던졌다. 사회적 진보를 추구하는 이런 활동은 오늘날에도 페티시 패션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젠더와 인종, 종교 같은 주제와 연관된 권력 투쟁을 보시라. 모두 자신이 거머쥔 통제력을 활용하는 데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투쟁하고 있다.” 크리스 아바나가 강조했다. “격렬한 지배하는 역할이건, 순수히 복종하는 역할이건, 페티시 문화는 권력에 따른 역할 위주로 돌아간다. 패션계는 이런 특징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과정에 관한 완벽한 ‘메타포’로 보는 듯하다.”

페티시 패션은 기존 권력 구조를 향한 거부 반응과 권력 분산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주류 패션계도 비슷한 도전을 했었다. 하지만 여성 패션은 남성이 떠올리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오랫동안 집중했다. 안타깝게도 패션계의 보편적 관행은 남성 지배적 시스템을 전복시키려는 방향으로 변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1970년대에 여성이 입었던 팬츠슈트의 데뷔. 시간이 흘러 1980년대에는 남성적 실루엣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파워숄더’ 스타일로 발전했다. 오늘날의 중성적 패션은 구체적 형태가 없이 젠더와 권력의 관계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페티시 패션과 같다.

“젠더 역할을 전복시키는 BDSM 문화에는 보편적이면서도 강렬한 테마가 있는데, 그건 사람이 기대하는 행동 방식이나 의상 착용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프로페셔널 도미넌트’인 마스터 도미닉은 미국 <플레이보이>에 이렇게 밝혔다. “젠더 역할을 전복시키는 BDSM 문화에는 보편적이면서도 강렬한 테마가 있는데, 그건 사람이 기대하는 행동 방식이나 의상 착용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평등을 위한 사회 운동에 영향을 받아 자신을 ‘파워풀’하게 보일 수 있는 옷을 입는 건 당연하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행보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아담 리폰이 가슴에 가죽 하니스가 달린 모스키노 슈트를 입고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한 일이다.”

현재 모스키노를 비롯한 하이엔드 패션, 페티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패션 디자이너는 주류의 대중문화를 통해 추진력을 얻고 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스트-페티시’ 레더 브랜드 재나 베인은 SM 플레이에서 영감을 얻은 시그너처 작품을 비욘세와 레이디 가가에게 입힌 바가 있다. 차트를 정복한 힙합 아티스트 카디 비 역시 ‘Bartier Cardi’ 뮤직비디오에 크리피예하의 크리스털과 PVC가 섞인 의상을 입었다. 작년에는 킴 카다시안이 라텍스 전문 디자이너 아츠코 쿠도의 드레스를 입었고, 이런 식으로 페티시는 패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트렌드를 부추기는 것은 소셜 미디어인데, 카일리 제너의 채널을 예로 들자. 카일리 제너는 자신의 계정에 코르셋 모양새의 티셔츠, 싸이 하이 부츠 차림으로 수많은 ‘셀피’를 올렸고, 그러자마자 그 룩은 세상천지의 포에버21과 어번 아웃피터에 등장했다. 1990년대 향수가 짙게 밴 디지털 시대의 후손은 그 시대의 고스와 펑크, 서브컬처를 연상시키는 체인벨트와 초커를 만들었다.

오버롤, 카라비너 키체인, 작업용 부츠, 보머 재킷과 같은 작업복과 밀리터리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은 패션계에 자리 잡은 페티시를 더욱 미묘하게 보여준다. ‘유니폼 차림의 남성’은 소위 블루칼라 노동자를 페티시의 대상으로 삼을 때 사용한 은어다. 필스 같은 신생 브랜드는 작업용 셔츠를 커스터마이징 크롭트 티와 캐주얼 버튼업 스타일로 변화시킨다. 또 익숙한 칼하트 역시 슈프림, 꼼데가르송, 케트멍 등 하이엔트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며 인기를 얻어왔다. 이 모든 사례를 훑어보면 의문이 생긴다. 패션은 무엇이건 페티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당대 페티시 매거진 <스킨 투(Skin Two)>의 창립자이자 발행인 팀 우드워드도 같은 의견이었다. “앞으로 패션은 늘 써먹을 수 있는 룩을 찾아다닐 거다. 카우보이건, 로마 시대 검투사건, 스코틀랜드의 타탄 무늬건, 아니면 그 무엇이든. 그와 비슷한 룩이 모두 등장할 거다. 물론 약간씩 다른 모습이겠지만.”

그렇다면 페티시 패션은 BDSM과 킹크 문화를 무단으로 도용하고 있을까? ‘프로페셔널 도미네이트릭스’인 미스트리스 벨벳의 대답은 “맞다.” 그러며 주장했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일원이 아닌 세계에서 트렌드를 훔치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확실히 그 문화를 도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의 눈에는 띄겠지만 그 문화의 근본이 걱정된다. 그래도 킹크 문화의 일원인 패션 디자이너가 이런 트렌드를 읽는다면 정말로 근사할 거다. 커뮤니티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고, 다른 사람이 대변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대변하니 말이다.”

많은 페티시 소매업자와 디자이너는 페티시 패션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긍정적 상황으로 본다. BDSM 문화의 관심을 확산시키고 그들의 사업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마스터 도미닉이 주장했다. “섹스와 페티시는 보편적인 거다. 그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그건 상속받은 문화도 아니고, 식민지화된 사회의 하위문화도 아니다. 우리는 라텍스를 입고 볼기를 얻어맞는 데에 꽂힌 사람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BDSM 커뮤니티는 비밀스러운 면도 분명 있지만, 소유하기 힘든 무언가를 놓고 문화적 도용이라며 주장하는 사람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페티시 문화에서 차용한 것이 분명한 알렉산더 맥퀸의 옷을 입고 온 여성을 보며 사람들은 ‘킹크 문화를 도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자가 은밀한 사생활에선 킹크 그 자체에 몰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Credit

  • 에디터 한수연
  • Julia Gray
  • 사진제공 Body Stock/Shutterstock